(루카 9,23-26)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누구든지, 누구나>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누구든지' 라는 말은 일차적으로는 '예외가 없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편법이 통하지 않는 일입니다.
또 예수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좀 더 편한 길을,
어떤 사람에게는 좀 더 어려운 길을 주시는 분도 아닙니다.
모두가 같은 길을 같은 방식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라는 말에는 '누구나'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누구나 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초인적인 능력이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남들보다 더 뛰어난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체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학식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길은 특별한 사람들만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입니다.
자신을 버리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는 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강요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고,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할 수 있습니다.
안 하려고 하는 사람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는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일인데도
박사학위를 몇 개씩 가지고 있는 대학교수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순교 성인들에 대해서 말할 때,
그분들의 신앙생활과 희생 등을 부각시키면서
그분들이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영웅들이었는지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만 이야기하면서 그분들을 본받자고 말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본받자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위대한 영웅이었기 때문에 한 일이라면 그런 영웅들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일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영웅들을 존경하고 찬양할 수는 있지만
그분들이 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지는 못합니다.
순교 성인들을 깎아내리려고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들이 위대한 영웅들이라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인데도 그런 생애를 살았고,
그런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위대한 영웅들입니다.
(평범했기 때문에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지금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또는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든 평범한 신앙인들은 전부 다 영웅입니다.
지금 자기가 있는 그곳에서 실천하는 작은 희생은
순교 성인들의 놀라운 희생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키고 있다면,
그 믿음은 순교 성인들의 위대한 믿음보다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들에게 닥치는 시련과 고난들이 '골리앗'이라면
신앙인들은 그 거인과 맞서 싸우는 '다윗'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골리앗과 싸울 때 다윗은 투구를 써 본 적도 없고
갑옷을 입어 본 적도 없고 칼을 사용해 본 적도 없는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다윗 자신의 말로는 양들을 지키면서 사자도 죽이고 곰도 죽였다고 했지만,
그래도 그는 골리앗과 상대가 되지 않는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힘으로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돌멩이 하나로 골리앗을 쓰러뜨렸는데,
사실 그 일은 다윗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너를 내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1사무 17,46)."
거인을 향해서 돌멩이 하나를 던지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느님을 믿기만 한다면...
그런데 하느님을 믿는 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아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안 믿으면 못하는 것이고, 믿으면 할 수 있는 것이고...
(혹시 "다윗은 하느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사람이니까..." 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보다 먼저 선택을 받았던 사울 왕이 있습니다.
다윗이 한 일들을 사울은 못한 이유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선택은 인간의 응답으로 완성됩니다.
세례를 받고 신앙인이 되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특별히 부르셨다는 뜻인데,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일은 각자 스스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순교 성인들이 한 일들, 즉 그분들의 믿음, 희망, 사랑, 희생, 헌신...
그 모든 것은 우리도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 하는 일입니다.
지금 자기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또 해야 하는 일부터
충실하게 실천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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