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9월 29일 다해 연중 제26주일

dariaofs 2013. 9. 29. 06:30

 

                                                                                (루카 16,19-31)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의 교훈은

1) 현세의 처지와 내세의 처지는 역전될 수 있다,

2) 이웃에게 무관심하고, 사랑 실천을 안 하는 것은 큰 죄가 된다,

3) 기본적인 신앙생활부터 충실하게 해야 한다,

4) 사랑 실천은 가장 기본적인 실천이다, 입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지금 자만심에 빠져 있는 부자들에게는 무서운 경고가 되고,

지금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위로의 말씀이 됩니다.

라자로는 예수님께서 행복 선언(루카 6,20-23)에서 언급하신

'가난한 사람들,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지금 우는 사람들'의 대표이고,

부자는 불행 선언(루카 6,24-26)에서 언급하신

'부유한 사람들, 지금 배부른 사람들, 지금 웃는 사람들'의 대표입니다.

라자로는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가난했고, 굶주렸고, 울었지만,

나중에 저 세상에 가서는 위로를 받았고, 복을 누렸습니다.

부자는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부유했고, 배불리 먹었고, 웃었지만

나중에 저 세상에 가서는 비참하게 되었고, 고초를 겪게 되었습니다.

 

"꼭 그렇게 저 세상에 간 다음에만 복을 누릴 수 있는가?

지금 이 세상에서 복을 누리면 안 되는 것인가?"

안 될 것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미리 복을 주시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처지가 현세에서 역전되어서 라자로가 부유하게 되고,

부자가 라자로처럼 비참한 거지 신세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부자가 된 라자로는 여전히 착한 사람으로 살게 될까?

아니면 교만하고 방탕한 부자로 변해버리게 될까?

가난해진 부자는 지난날을 회개하고 착한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을까?

아니면 회개하기는커녕 하느님을 원망하고 저주하면서 살게 될까?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단순히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을 무시하는 교만한 사람과

하느님과 함께 사는 착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행복 선언과 불행 선언을 다시 읽으면,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 라는 말씀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사람은 그 나라에서 행복하게 될 것이다." 입니다.

불행 선언에서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루카 6,24)." 라는 말씀은,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지옥에 간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거부하고 세속적인 물질과 쾌락만 추구하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당신의 복을 안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거부함으로써 못 받는 것입니다.

 

라자로를 하느님께서 부자에게 보내신 천사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마침 9월 29일은 대천사 축일입니다.)

부자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또 사랑을 실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라자로를 부자의 집으로 보내셔서

그 집의 대문 앞에 누워 있게 하신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라자로에게 제대로 사랑을 실천했다면,

그리고 라자로뿐만 아니라 모든 가난한 이웃들에게 사랑을 실천했다면,

그의 재산이 남아나지 않았겠지만

그는 재산보다 더 귀한 하느님의 복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라자로가 부자의 집 대문 앞에 누워 있다는 것은

부자에게는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사실상 그런 상황 자체가 곧 은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내 곁에 있는 '나보다 가난한 이'의 존재는

내가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면서 동시에 그의 존재 자체가 곧 은총입니다.

 

그런데 사랑이란 일방적인 일이 아닙니다.

사랑은 원래 '서로 주고받는 것'입니다.

라자로는 물질적으로는 부자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영적으로는 줄 것이 많이 있었고, 아마도 그것을 부자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라자로는 부자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부자는 라자로 덕분에 구원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자 자신이 사랑 실천을 하지 않음으로써

무상으로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을 거부했습니다.

 

나중에 부자가 저 세상에 가서 물 한 방울을 청하는 모습이

그런 상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한 방울의 물을 청했을 때(루카 16,24),

아브라함은 '큰 구렁'이 막고 있어서 줄 수 없다고 거절하는데(루카 16,26),

사실 '큰 구렁'은 부자 자신이 만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부자가 자기만 혼자서 호화롭게 살면서

자기와 라자로 사이에 만들어 놓은 거대한 벽이 바로 '큰 구렁'입니다.

라자로가 부자에게 복수하려고 물 한 방울 주기를 거절한 것은 아닙니다.

한 방울의 물도 얻어먹지 못하게 된 것은 부자 자신이 자초한 일입니다.

그는 자기가 만든 구렁(벽)에 자기 자신이 갇혀버렸습니다.

 

그처럼 사랑을 베풀지 않는 것은 사랑 받기를 거절하는 것이고,

이미 받았던 사랑마저도 잃게 되는 일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