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4월 11일 가해 사순 제5주간 금요일(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기념 허용)

dariaofs 2014. 4. 11. 01:00

 

 

 

폴란드 크라쿠프 교외 슈체파노프(Szczepanow)에서 출생한 성 스타니슬라우스(또는 스타니슬라오)는 그니에즈노(Gniezno)에서 수학한 뒤에 서품되었다.

 

그는 설교가로서 곧 명성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적 지도를 받으려고 애썼고, 교회 개혁 의지를 강력히 표명하여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다.

1072년 그는 크라쿠프의 주교가 되었는데, 국왕 볼레수아프 2세(Boleslaw II)의 잔학성과 불의를 고발함으로써 왕과 적대관계가 되었다.

 

그래서 그가 국왕을 파문하고 대성당의 출입을 저지하자, 볼레수아프 왕은 크라쿠프 시외의 성 미카엘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그를 직접 끌어내어 살해하였다.

 

스타니슬라오는 ’국가와 영광(榮光)’이란 뜻이다. 동부 유럽의 역사를 읽는 사람은 누구나 폴란드의 수호 성인이며 비극적인 크라코프의 주교인 스타니슬라오라는 이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는 성토마스 모어와 성토마스 베케트와 함께 불의한 정부의 죄악에 강경하게 맞선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1030년 7월 26일 크라크프 근처 슈체파노우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 폴란드의 수도인 그니에즈노의 주교좌 성당의 부속 신학교와 파리에서 공부한 뒤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크라코프 주교의 수석부제와 설교자로 임명되었으며 그곳에서 그의 놀라운 웅변과 표양으로 성직자와 수도자 등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회개하게 되었다.

그는 1072년에 크라코프의 주교가 되었다. 키에프 대공국에 대한 원정중에 스타니슬라오는 폴란드의 정치적 상황에 휩쓸리게 되었다.

뛰어난 언변으로 유명한 그는 왕과 농민들의 죄악 특히 왕인 불레슬라우스 2세의 부도덕한 행동과 불의한 전쟁에 대적하기도 하였다. 왕은 처음에 스스로 사과하고 참회의 모습을 보였으나 나중에는 다시 과거와 같은 행동을 하였다.

스타니슬라오는 반역죄로 몰려 사형이라는 위협을 받으면서도 그들에 대한 공개적인 반대를 계속했으며 결국은 왕을 파문시켰다. 왕은 분노하여 스타니슬라오를 죽이라고 군인들에게 명령하였으나 군인들이 이에 불복하자 자신이 직접 그를 살해했다.

헝가리로 도망가야 했던 불레슬라우스 2세는 아마도 헝가리의 오시아크에 있는 성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참회하며 남은 일생을 보내던 것 같다. 그는 1253년에 교황 인노첸시우스 4세로부터 시성되었다.


강론   :   (요한 10,31-42)

 

<예수님의 일, 사랑>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0,37-38)."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당신을 '믿지 않아도 좋다.'고 말씀하시는데,

진짜로 그렇다면 믿지 않아도 좋은 것이 아니라 믿으면 안 됩니다.

 

하느님(예수님)의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어떤 종교가 하느님(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랑을 실천하기는커녕 증오심만 부추기는 일을 한다면,

그래서 싸움만 일으킨다면, 그 종교는 하느님(예수님)의 종교가 아닙니다.

 

다른 종교, 다른 민족, 다른 인종, 다른 계층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은

하느님(예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요즘에도 다른 종교를 증오하고 헐뜯고 비방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 신앙의 순수성과 정통성을 지키는 일인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증오심'을 뿌려서 '사랑'이라는 열매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사랑은 없고 증오심만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라고 주장하면서 행하는 일들이

정말로 예수님을 위한 일인지를 먼저 반성해야 합니다.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라는 말씀은 표현이 좀 이상한데,

뜻은, "내가 하는 일은 하느님의 일이다. 그러니 나를 믿어야 한다."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과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분이고 하느님과 같으신 분이라는 것은

인간적인 방식으로는, 또는 '말'로는 증명할 수도 없고,

확인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하시는 일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을 보았다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일'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면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일은 하느님의 일'이라고 인정했을까?

예수님을 안 믿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일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0장 33절에 있는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라는 말은,

번역되어 있는 그대로 읽으면, 사람들이 예수님의 일을 '좋은 일'로,

즉 '하느님의 일'로 인정한 것처럼 되는데, 이것은 번역이 잘못되었습니다.

원문대로 번역하면, "좋은 일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당신에게 돌을 던지는 것은 신성모독 때문이다."입니다.

이 말의 뜻은, "당신이 좋은 일(하느님의 일)을 했다면 우리가 왜 돌을 던지겠소?

당신은 좋은 일을 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기 때문에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입니다.>

 

왜 그 사람들은 예수님의 일을 인정하지 않았을까?

모든 사람이 다 그랬던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일을 보고 그 일은 하느님의 일이라고 인정하고 믿었고,

그래서 예수님을 믿었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똑같은 일을 똑같이 보았으면서도 왜 누구는 믿고, 왜 누구는 안 믿었을까?

 

마태오복음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가리켜서

'사기꾼'이라고 말하는 구절이 있습니다(마태 27,63).

그들은 아마도 예수님의 일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어떤 속임수를 써서 사람들을 속였을 것이라고 의심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 이미 많은 사기꾼들이

자기가 메시아라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을 속였던 일들이(사도 5,36-37)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이미 속은 경험이 있어서 믿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서 전체 내용을 종합해서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도 병자들과 장애자들을 고쳐 주신 일들,

죄인이라고 낙인찍힌 세리들과 어울리신 일들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안 믿은 것은 그들 안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아니라 증오심만으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보지 못했고, 믿지 못했습니다.

 

이제 신앙인들은 이 문제를 반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내용과 중복되지만, 만일에 신앙인들의 삶에 사랑이 없다면

예수님을 증언하지도 못하고, 선포하지도 못한다는 것.

한다고 애를 써도 세상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사이비 종교들이 설치면서 사람들을 속이는 일들은

우리 교회에도 일부 책임이 있습니다.

진짜 교회가 제 구실을 안 할 때가 많으니까(사랑이 부족할 때가 많으니까)

사이비 종교가 아주 쉽게 진짜 종교 행세를 한다는 것입니다.

 

가짜 신부가 사람들을 속이는 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직자들이 권위만 내세우고 예수님의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가짜 신부들이 사람들을 쉽게 속일 수 있을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