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4월 24일 가해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dariaofs 2014. 4. 27. 01:00

 

                                                                                   (요한 20,19-31)

 

<믿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자들이 청하지 않았는데도 당신이 먼저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십니다(요한 20,20).

 

이것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예수님과 같은 분이라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또 당신이 유령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한 의도도 있습니다.

 

그런데 토마스 사도는 그 자리에 없었고,

나중에 다른 사도들에게서 그 일을 전해 듣게 됩니다(요한 20,24-25).

다른 사도들이 예수님을 뵈었다고 말하자

토마스가 "나는 ......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0,25)."

라고 말하는데, 이 말을

"나도 보고 싶고, 믿고 싶다." 라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신들의 말은 거짓말이다. 믿기 싫다." 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셨을 때에 토마스에게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요한 20,27)."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에 "너도" 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다른 사도들처럼 너도 직접 보아라." 라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성경을 마음대로 변조하는 것도 아니고,

토마스만 일방적으로 편드는 것도 아닙니다.

토마스는 예수님을 보자마자 믿었고, 예수님께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한 첫 번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저의 하느님!"이라고 말한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인데,

이것은 평소에 미리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고백입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요한 20,27)." 라고 말씀하시고,

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사실 이 말씀은 '토마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모든 사도에게(또는 모든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다른 사도들도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말을 안 믿었기 때문입니다(마르 16,11.13).

또 그들은 믿은 다음에도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도들의 믿음과 비교해 볼 때

토마스의 믿음은 결코 뒤떨어지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의심 많은 사람'으로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은 불공평한 일입니다.

 

어떻든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들이야말로 보지 않고도 믿어야 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보고서야 믿는다." 라는 말은 "직접 확인한 것만 믿는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확인되고 증명된 것만 믿는 것은 과학자들에게 요구되는 태도입니다.

과학의 진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진리'는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진리는

인간적인 방식으로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하려고만 하시면 증명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동정 잉태, 부활, 승천, 성령 강림 등도 다 마찬가지인데,

성체성사, 삼위일체 등의 교리는

증명하기는커녕 그 내용을 설명하는 일 자체도 어렵습니다.

특히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 종말, 재림, 심판 등은

글자 그대로 '그냥' 믿어야 할 일들입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직접 여러 가지 기적을 체험하거나

개인적으로 계시를 받거나

성모 발현 같은 일들을 목격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생긴다고 해도

당사자 외에는 모두 '보지 않고도 믿어야 하는' 처지가 변하지 않습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죽음의 구렁에 빠져서 점점 죽어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손을 내밀면서

"살고 싶으면 빨리 내 손을 잡아라." 라고 말합니다.

구렁 속에 있는 사람은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 말을 믿고 손을 잡을 것인가, 안 믿고 안 잡을 것인가?

 

결과는 아직 모릅니다.

그 손을 잡으면 구렁에서 벗어나서 살 수 있다고 믿을 수도 있고,

아니면 손을 잡아도 구렁에서 못 벗어나고 죽을 것이라고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구렁에서 그냥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손을 내밀고 있는 그 사람에게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요구하고,

도움을 주는 이유를 물어보고, 구조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라고 요구하고,

구렁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요구하고...

그런 식으로 계속 요구만 하고 있다면?

지금 말하는 '구렁에 빠져 있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고,

손을 내밀고 있는 '누군가'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

살고 싶다면 믿으라는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