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지금여기 강론대- [임상교 신부] 예수님이 승천하신 곳은 지금, 여기

dariaofs 2014. 5. 29. 05:30

6월 1일 (주님 승천 대축일) 마태 28,16-20; 사도 1,1-11

 

“6.4 지방선거, 꼭 투표합시다!”

 

요즘 자주 들리는 말입니다. 청양 읍내에 나가보면 인사를 참 많이 받습니다.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조아리며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내밉니다.

 

아마도 평생 받을 인사를 한꺼번에 받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다음에는 인사를 받지 못하겠구나’하는 작은 불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평소에도 국민을 대하는 모습이 오늘과 같은 이런 모습이면 참 좋겠습니다. 그런데 지난 경험을 통해서 보면 제가 품는 기대는 그저 기대에 불과하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예루살렘 성지를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일단 기회가 없었고, 돈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예루살렘에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제가 믿고 있는 성지는 지금 제가 있는 이곳입니다. 이곳에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육화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육화가 이루어진 지금 여기 이외에 다른 성지를 찾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참 흥미롭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승천이 있었다는 장소를 다녀오신 분들의 말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 말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남기신 족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허~~ 참……

 

교회가 고백하는 하느님은 ‘임마누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고백입니다. 구약은 당신의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지속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느님은 모세와 예언자들을 통해서 늘 당신 백성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육화를 통해서 인간 사이에서 거처하시는 당신을 분명하고 확고하게 드러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저 우주 공간 어디에 당신의 왕국을 만드시고 지구를 내려다보는 분이 아니시라 인간 사이에서 당신 거처를 정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인간 사이에 당신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우주, 저 아무도 모르는 공간의 옥좌에 앉아계신 분이 아니라, 인간 삶의 터 안에 당신의 자리를 정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임마누엘이 지속되는 나라가 하느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곳은 특정할 수 없는 공간이 아니라 생명들의 구체적인 삶이 살아있는 장소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승천 장소는 지금 여기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이곳 그리고 이 시간이 예수님의 승천 장소입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나라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실현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시간을 조각하고 만들어 가야 하는 책임이 이전되었음을 알려줍니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 <예수의 승천>, 피에트로 페루지노

“가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가라고 하신 장소가 백성들 사이입니다.

 

제자들이 파견된 장소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구체적인 삶의 장소입니다.

 

그리고 그 장소는 하느님의 육화가 이루어졌던 장소이고, 인간과 함께 머무시는 하느님을 발견하는 장소입니다.

 

파견의 첫째 목적은 세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제자가 되어야만 인간 사이에서 머무시는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사이에서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고백할 수 있을 때, 세례가 주어집니다.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구현하는 사람들입니다. 삶 속에서 드러내는 증거를 통해서 자신의 스승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사람들, 이들이 제자입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는 선언은 하느님의 뜻을 지금 여기에서 구현하겠다는 다짐이고 실천입니다. 그리고 희망을 살아가는 것이며 기쁨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쁨과 희망은 어떻게 오는 것일까요?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가 품고 있는 근심은 무엇일까?

어떤 근심을 품고 있을까?

세상 속에 자리한 교회가 품고 있는 근심이 있기는 한 것일까?

 

혹시 교황님을 맞이할 행사 관계로 근심을 품고 있을까? 그런데 이것은 근심이 아닙니다. 단지 우려와 걱정거리일 뿐.

 

근심이 있어야 희망, 기쁨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세상 속에 존재하는 교회가 품고 있는 근심이 있어야 그 속에서 빛을 발견하고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교회의 근심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우려와 걱정거리는 즐비하지만 교회가 근심을 갖고 품어야 하는 대상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사회에 희망과 기쁨을 전하지 못하게 됩니다. 세상으로 가라고 하신 주님의 뜻을 세상 속에서 살지 못합니다. 목자가 되어야 하는데 양치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돌봄을 받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는데 돌본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관리를 하고 있으면서 돌본다고 합니다.

 

인간 삶의 터 안으로 승천하신 예수님, 임마누엘 하느님을 고백합니다. 인간 사이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을 만나 뵙기를 희망합니다.

 

세상을 향해서 눈을 돌리는 이유는 세상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서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스승 예수님의 승천 장소를 향해서 나가보렵니다.


임상교 신부 (대건 안드레아)
대전교구 청양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