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중부 피렌체(Firenze) 태생인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Philippus Nerius, 또는 필립보 네리)는 산마르코(San Marco)의 도미니코 회원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18세 때에 그는 산제르마노(San Germano)로 가서 사업 경력을 쌓으려고 노력했으나, 자신의 뜻과는 달리 신비체험을 하게 되면서 수도생활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1533년에 로마(Roma)로 갔으며, 그곳에서 어느 부유한 고향 사람의 두 아들을 가르치면서 은거생활을 하다가 사피엔차(Sapienza)와 산타고스티노(Sant'Agostino)에서 철학과 신학을 3년 동안 공부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길거리나 시장바닥에서 로마인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는데, 신앙생활이 극히 미온적이었던 로마인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1548년 성 필리푸스는 자기의 고해신부인 페르시아노 로사(Persiano Rossa) 신부와 함께 '삼위일체 형제회'를 설립했는데, 이 수도회는 어려운 처지의 순례자들을 사목하기 위하여 평신도들로 구성되었으며 '40시간' 신심을 전파하였다.
그는 1551년에 사제로 서품되자마자 고해신부로 명성을 날렸으며, 수많은 군중들이 집단을 이루어 산 지롤라모 델라 카리타(San Girolamo della Carita)로 몰려왔다. 이곳은 그가 생활하고 있던 사제들의 공동체였다. 그는 수많은 개종자를 얻는 일에서뿐만 아니라, 자신을 도와줄 사제들을 확보하는 일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들은 신자들을 그들의 오라토리오(Oratorio, 방)에 모아놓고 영적 권고와 고해성사를 주곤 하였기 때문에 '오라토리언'(Oratorians)이란 이름으로도 알려졌지만, 실제로 '오라토리오회'가 설립된 연대는 1564년이다. 이때 필리푸스는 산조반니(San Giovanni) 성당의 주임신부였고, 다섯 명의 제자들이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 새로운 수도회는 1575년에 공식 승인을 받았는데 이때는 그가 이미 로마(Rome)의 명사로 알려진 때였다. 성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us XIII) 교황은 그에게 발리첼라(Vallicella)의 산타 마리아(Santa Maria) 성당을 하사했는데, 그는 옛 성당을 철거한 후 그 자리에 '키에사 누오바'(Chiesa Nuova)를 짓고 오라토리오회의 본원으로 사용하였다.
이즈음에 그는 '로마의 사도'로 알려졌고, 교황과 추기경 심지어는 권력자들과 일반 시민들로부터도 큰 존경을 받았다. 그는 뛰어난 영적 지혜와 환시를 통하여 부자와 가난한 자, 권력자와 힘없는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도와주었다.
특히 그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탈혼과 환시를 수차 경험하였고, 기적까지 행하였으며, 예언의 은혜도 받았다. 1593년에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장상직을 사임하였으며, 1622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로부터 시성되었다.
강론 : (요한 15,26-16,4ㄱ)
<신념>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요한 16,2-3)."
유대인들이 예수님과 그리스도교를 박해한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을 위한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행동이 옳은 일이라고 믿었고,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을 느끼기는커녕
더욱 열성적으로 박해하려고 애썼습니다.
로마제국이나 조선시대의 박해자들은 하느님을 안 믿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느님을 위해서 그리스도교를 박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그리스도교는
백성과 국가를 위험하게 만드는 사이비 종교로 보였고,
그래서 마치 암세포를 제거하듯이 그리스도교를 박해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선(善)이고 그리스도교는 악(惡)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어떻든 예수님께서는 박해자들이 아버지도 당신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한다고 설명하십니다.
그러나 만일에 우리 교회가
그들에게 하느님과 예수님을 제대로 알려 주지 않았다면,
우리 쪽에도 일부 책임이 있게 됩니다.
또 만일에 처음부터 꼭꼭 숨어서 몰래 신앙생활을 했다면
그렇게 박해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숨어 있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마태 10,27)."
박해 받는 것이 무서워서 숨어 있기만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이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종교박해는 거의 항상 공개적으로 선교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받게 됩니다.
복음을 선포했을 때 그 선포를 들은 사람들이 박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라는 말은 '모르기 때문에'가 아니라
사실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라는 뜻이 됩니다.
정말로 몰라서 그런다면 죄가 안 되겠지만,
알면서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죄가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처음에 가지고 있던 자신들의 믿음과 신념을 바꾸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교박해는 신념과 신념의 충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옛날처럼 폭력적인 종교박해는 별로 없지만
신념이 충돌하는 일은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로 설득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단순히 '말'로 설득하려고 시도하다가, 즉 말로만 복음을 선포하다가
실패하고 오히려 더 심하게 미움과 박해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1) 우리는 '믿음'을 '삶'으로 증언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삶'이 어떤 것인지,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시련을 겪을 때
부모가 흔들리지 않고 기도하는 모습을 본다면 자녀들도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가 믿음을 잃거나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자녀들이 믿음을 갖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또 박해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날씨가 좋다고 주일을 안 지키고 놀러가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성당에 다니자는 권고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2)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말로 전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 사랑을 실제로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사랑은 박해자들의 잘못된 신념을 바꾸게 만드는 가장 큰 무기가 됩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무력으로 박해자들과 맞서 싸운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증오심으로 전하는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오직 사랑으로만 전할 수 있습니다.
3) 희망을 실천해야 합니다.
박해를 받고 있을 때 희망 속에서 그것을 참고 견디는 모습 자체가
선교활동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박해가 아니더라도
살면서 겪게 되는 많은 고통과 시련을 참고 견디는 '인내'는
그 자체가 곧 복음 선포입니다.
믿음과 희망과 인내는 하나입니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신앙인들이 절망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믿음을 전하는 일은 할 수 없게 됩니다.
앞에서 '신념'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단순히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믿음 이상의 강한 확신과 신념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의 신을 선택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믿음 가운데 하나의 믿음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믿음은 오직 하나뿐인 믿음이라는 확신과 신념이 필요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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