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6월 24일 가해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dariaofs 2014. 6. 24. 01:00

 

 

 

 

성 요한 세례자(Joannes Baptistae)는 예루살렘 성전의 사제인 즈가리야(Zacharias, 11월 5일)와 성모 마리아(Maria)의 친척인 성녀 엘리사벳(Elisabeth, 11월 5일)의 아들로서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한 아인 카림에서 태어났다.

 

그 역시 가브리엘 천사의 탄생 예고를 통하여 그동안 수태하지 못하던 엘리사벳에게 잉태되었다(루가 1,5-25). 그는 서기 27년경까지 유대 사막에서 은수자로 살았고, 30세가 되었을 때부터 요르단 강가에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설교하기 시작하며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오실 때 그분이 메시아임을 알아보고는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며 말렸다(마태 3,14). 그리스도께서 갈릴래아로 떠나신 뒤에도 그는 요르단 계곡에서 자신의 설교를 계속하였다.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 왕은 세례자 요한의 언행과 또 군중들에 대한 요한의 권위를 두려워하던 중에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들어 그를 사해의 마캐루스 성채에 투옥하였다. 세례자 요한이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은 옳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헤로디아는 간계를 꾸며 딸 살로메에게 그의 목을 청하도록 하여 요한은 결국 참수 당하였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세례자 요한은 쿰란 공동체에서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 대축일은 6월 24일이고, 수난 기념일은 8월 29일이다.

 

강론   :   (루카 1,57-66.80)

 

<부르심과 응답>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루카 1,66.80)."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들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주님의 손길이' 그 아기를 보살피고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이 말은 주님께서 그 아기를 선택하셔서

어떤 특별한 임무를 맡기셨다고 생각했다는 뜻이고,

또 나중에 그 아기가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기대했던 '큰 인물'은 바로 '메시아'입니다.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루카 3,15)."

아마도 사람들은 나중에 세례자 요한이 예언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가 기대했던 대로 되었다."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린 시절의 요한은 자기 자신을 어떤 인물로 생각했을까?

또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아버지 즈카르야는 아들 요한을 이렇게 가르쳤을 것입니다.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루카 1,76-77)."

요한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

메시아를 준비하는 예언자라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고,

준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내용과 관련해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루카 1,80)." 라는 구절이 중요합니다.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때까지'입니다.

'광야에서 살았다.'는 실제로 광야에서 살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하느님과 함께 살았다."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요한이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또 자기가 하느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또 자기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하느님께 묻는 기도와 묵상을 하면서 지냈음을 나타냅니다.

또 이것은 하느님께서 부르실 때 즉시 응답하고 실천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었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정하신 시간이 되었을 때,

요한의 기도에 응답을 내려주셨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루카 3,2)."

 

하느님의 말씀이 내린 일은 요한의 기도에 응답을 주신 일이기도 하고,

요한을 부르신 일이기도 합니다.

요한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했고, 망설임 없이 곧바로 행동했습니다.

"그리하여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루카 3,3)."

 

요한의 삶과 죽음은, 즉 그의 생애 전체는 '응답의 삶'입니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해 놓으신 시나리오대로 움직인 로봇 같은 삶이 아니라,

그 자신이 자유의지로, 또 능동적으로 응답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르심과 응답'은 세례자 요한만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요한처럼 특별한 사람에게만 관심과 애정을 쏟으시고,

다른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무관심한, 그런 분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시는데

각자에게 조금씩 다른 임무와 사명을 맡기셨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아기 요한'만 보살피시는 분이 아니라

모든 아기를 보살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당신의 뜻에 응답하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부르시는 방식이 다르긴 합니다.

(요한처럼 직접 말씀이 내릴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또는 일반적인 교육 과정을 통해서 깨달음을 주실 수도 있고...)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똑같습니다.

"모든 사람의 구원(마태 18,14)"

 

만일에 하느님께서 어떤 아기에게는

"너는 자라서 독재자가 되어라." 라고 하시고,

어떤 아기에게는

"너는 자라서 너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재벌이 되어라." 라고 하시고,

어떤 아기에게는

"너는 자라서 범죄자가 되어라." 라고 하신다면, 그게 하느님이겠습니까?

 

사람마다 능력이 다르고, 여건이 다르고, 그래서 할 수 있는 일도 다르지만,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는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답게 살다가 사람답게 생을 마치는 것.

신앙인으로 좁혀서 말한다면,

"신앙인답게 살다가 신앙인답게 생을 마치는 것"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입니다.

특별한 일을 수행하든지, 평범하게 살든지 간에...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 대축일을 지내면서 경축하는 것은

요한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충실하게 응답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생일을 맞았을 때 사람들의 축하를 받기를 바란다면... ???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