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의 이몰라(Imola) 출신인 성 베드로 크리솔로구스(Petrus Chrysologus, 또는 베드로 크리솔로고)는 이몰라의 주교 코르넬리우스(Cornelius)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부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교황 성 식스투스 3세(Sixtus III)에 의하여 라벤나의 주교로 임명되었는데, 이 같은 엉뚱한 일은 교황이 환시를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결과 베드로는 규율이 극도로 이완된 교구를 크게 일신하였음으로 교황의 환시는 증명되었다.
그는 자선활동으로 매우 유명하였고, 또 뛰어난 설교를 하였으므로 ‘크리솔로고’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설교에 감명을 받은 황녀 갈라 플라시디아는 그를 여러 방면으로 도왔다.
또한 그는 에우티케스(Eutyches)를 권고하여 콘스탄티노플 시노드(Synod of Constantinople)의 파문 결정에 대하여 자신을 변호하지 않게 하였으며, 오세르(Auxerre)의 성 게르마누스(Germanus)의 장례식을 집전하였다. 그는 1729년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하여 교회학자로 선언되었다.
강론 : (마태 13,44-46)
<하늘나라, 기쁨>
7월 30일의 복음 말씀은
마태오복음 13장 44절-46절,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인데,
이 말씀은 이미 지난 주일에 나왔던 말씀입니다.
두 비유에서 중요한 말은
'보물, 진주, 기뻐하며, 가진 것을 다 팔아(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말은 '기쁨'입니다.
하늘나라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는 보물이고,
그 보물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너무 기뻐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얻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 그 보물을 얻은 다음에는 잃거나 빼앗기지 않도록 노력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보물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만,
보물 덕분에 얻은 '기쁨' 자체도
우리에게는 소중한 보물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늘나라' 라는 보물과 그 보물 덕분에 얻은 '기쁨'.
이 두 가지는 사실상 하나이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곧 기쁨이다.", 또는 "기쁨이 곧 하늘나라다."
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로마서에서 비슷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17)."
이 말에서 '먹고 마시는 일'이라는 말은 '먹고 마시는 일에 관한 율법'을 뜻하고,
다시 이 말은 율법이나 규칙이나 제도나 관습 같은 것을 지키는
외적인 종교생활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가 한 말은
"외적이고 형식적인 종교생활을 통해서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려고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내적이고 영적인 신앙생활을 통해서
그 나라를 차지하여라."입니다.
하늘나라(하느님의 나라)의 겉모습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그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을 누리는 곳"입니다.
'의로움, 평화, 기쁨'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말입니다.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고 기쁨도 없습니다.
평화가 없다면 그곳에는 정의가 없는 것이고,
그런 곳에는 참 기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기쁨이 없다면 그곳은 정의도, 평화도 없는 곳입니다.
만일에 정의도 있고 평화도 있는데 기쁨만 없다면,
그것은 정의와 평화가 아닌 다른 것에서 잘못된 기쁨을 찾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기쁨'은 '참 기쁨이 아닌 것, 즉 죄가 되는 쾌락'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베들레헴을 하나의 밭으로,
아기 예수님을 그 밭에 숨겨진 보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 당시에 베들레헴 사람들은 그 보물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들에 있었던 목자들은 그 보물을 알아보았습니다(루카 2,8-20).
물론 천사가 나타나서 목자들에게 알려 준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래도 어떻든 목자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아기 예수님에게 갔고,
자기들이 듣고 본 일들을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루카 2,17).
곧 출산하게 될 산모를 외면한 베들레헴 사람들의 모습은
'의로움'의 반대쪽에 있는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의 딱한 처지에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의 편안함만 추구하는 것은 불의이고,
그렇게 해서 얻는 만족감은 평화도 아니고 기쁨도 아닙니다.
이기적인 쾌락일 뿐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박사들은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찾게 된 상인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경배하고 예물을 드린 일은
상인이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진주를 산 것과 같은 일입니다.
정반대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헤로데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진주를 파괴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여기서 '가진 것을 다 팔아(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라는 말은
하늘나라를 얻기 위해서 박해와 고난을 참고 견디는 '인내',
그리고 '순교'까지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마침 제1독서가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의 일생은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은 그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 불행한 이 몸! 어머니, 어쩌자고 날 낳으셨나요?(예레 15,10)"
이 말은 자기를 낳은 어머니를 탓하는 말도 아니고,
자기가 예언자가 된 것을 후회하는 말도 아니고,
너무나도 힘들다고 하느님께 호소하는 말입니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그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예언자의 사명을 수행한 것은
'말씀'이 주는 '기쁨' 때문이었습니다.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예레 15,16)."
예레미야는 보물을 얻은 기쁨 때문에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한,
즉 온갖 고통을 견디고, 지신의 인생 전부를 바치고,
목숨까지 바친 예언자였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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