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8월 1일 가해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dariaofs 2014. 8. 1. 00:30

 

 

성 알폰수스 마리아 데 리구오리(Alfonsus Maria de Liguori)는 1696년 9월 27일 이탈리아의 나폴리(Napoli) 근교 마리아넬라(Marianella)에서 주세페(Giuseppe de Liguori)와 안나 카발리에리(Anna Cavalieri) 사이의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나폴리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었다. 아버지 주세페는 나폴리 공국의 해군이었으며 어머니는 트로야(Troja)의 카발리에리 주교의 동생으로 신앙심 깊은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였던 알폰수스는 불과 16세 나이로 나폴리 대학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아 변호사가 되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변호사로 일하면서 결코 패소하지 않는 변호사로 널리 알려졌다. 1723년 토스카나(Toscana) 대공과 어떤 공작 사이에 큰 돈일 걸린 소송이 벌어졌는데, 이 소송에 참여했던 알폰소는 어떤 중요한 문서를 잘못 해석하고 서명한 사실로 패소하였다.

이 사건으로 그는 변호사로서의 자격이 상실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며 기도하던 중 1723년 8월 28일 불치병 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찾아갔다가 신비체험을 하였다. 그래서 알폰수스는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여 1726년 12월 21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2년 정도 나폴리 근방을 돌며 선교사로 봉직하였고, 1729년에는 나폴리의 중국 신학원에서 활동했다.

1730년 친구인 토마스 팔코이아(Thomas Falcoia)가 스칼라(Scala) 지방에 있는 카스텔라마레 교구의 주교가 되자, 알폰수스는 그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스칼라에서 수녀들의 피정을 지도할 때 마리아 첼레스테 수녀를 만났고, 새로운 수도회에 대한 그녀의 환시를 확신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팔코이아 주교가 로마(Roma)에서 경험한 환시와 일치하였다. 그래서 1731년 마리아 첼레스테 수녀가 환시에서 받은 규칙을 따라 여자 구속주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다음해 스칼라로 이주하여 팔코이아 주교, 파가노 신부와 다른 몇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남자 구속주회(Redemptoris)를 설립하였다.

이 회는 공동생활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주님의 말씀 전파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성직 수도회였다. 본부는 스칼라 수녀회의 숙박소를 이용하였으며 명예원장으로 팔코이아 주교를 모셨다. 그런데 초창기에 중대한 알력이 일어나 마리아 첼레스테 수녀가 떠나가서 포치아에 따로 수도원을 설립하고, 또 1733년에는 쿠르시오(Curtius)라는 수도자 한 명만 남고 모든 회원들이 다른 회를 설립하여 떠났다.

하지만 알폰수스는 흔들리지 않고 회를 지키면서 다른 회원들을 맞아 1734년에 빌라 데글리 스키아비에서 두 번째 창립을 맞이하였다. 그는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수도회를 발전시켜 나갔다. 마침내 구속주회는 1749년 2월 25일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로부터 인가를 받았으며, 같은 해에 열린 총회에서 수도회 종신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다음 해에 여자 구속주회도 교황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왕권주의를 내세워 수도회들을 적대시하던 왕과 타누치(Tanucci) 후작 때문에 나폴리 왕국의 인가를 받지 못하였다. 1752년 왕은 교황령과 시칠리아(Sicilia)만을 사목 활동 영역으로 한정한다는 조건으로 인가를 해주었다.

이 기간 동안 알폰수스는 인근 지역을 다니면서 설교 사도직을 열렬히 수행하였으며 저술 활동에도 매진하였다. 그러던 중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는 1762년 6월 20일 산타 아가타 데이 고티(Santa Agata dei Goti)라는 나폴리의 한 작은 교구장 주교로 알폰수스를 임명하였다. 그는 이 교구를 돌보는 13년 동안 성직자, 수도원 그리고 전 교구의 혁신을 계획하였으며,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자선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런 열정적 활동으로 중병을 얻었고, 또 죽을 때까지 괴롭혀온 류머티즘으로 마비될 때도 많았기 때문에 1776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의 허락을 받고 주교직을 사임하였다. 주교직을 사임한 후에도 그는 구속주회의 정립과 운영을 위해 주력하였다. 하지만 나폴리 왕국의 당국자들 때문에 많은 괴로움을 겪었다.

예수회가 박해를 받은 이후 구속주회도 위험에 처하자, 알폰소는 중개자를 내세워 당국자들과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왕이 승인한 규칙과 교황 베네딕투스 14세가 수도회를 인가한 교서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으므로 늘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교회와 나폴리 왕국 사이의 갈등 상황에서 교황령 외의 지역에 있던 공동체들이 알폰수스의 관할권을 벗어나게 됨으로써 회는 두 계열로 분열되었다. 알폰수스는 둘로 분열된 수도회가 다시 합쳐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1787년 8월 1일 살레르노(Salerno)에서 사망하였다.

구속주회는 알폰수스가 사망한 직후 다시 하나로 재건되어 발전하였다. 알폰수스는 윤리, 신학, 수학에 관한 놀라운 저서들을 남겼다. 특히 그의 윤리신학은 얀세니즘(Jansenism)과 반성직주의를 극복하면서 올바른 윤리관을 정립한 저서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의 신심서에서 가장 돋보이는 책은 “마리아의 영광”이다. 그는 1816년 9월 15일 교황 비오 7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으며, 1871년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그 후 1839년 5월 26일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950년 4월 26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고해사제들과 윤리 신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되었다.

 

강론   :   (마태 13,54-58)

 

<'앎'과 '믿음'>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에 가셔서 사람들을 가르치시자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마태 13,54-55)"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지혜의 말씀'이라는 것과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이 기적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인정했습니다.

('지혜의 말씀'이란 하느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마태 13,57)." 라는 말은

"그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 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안 믿은 것은

예수님이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안 믿었습니다.

 

그런데 나자렛 사람들만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을 때,

예루살렘 주민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요한 7,27)"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나자렛 사람들의 생각과

예루살렘 주민들의 생각은 같은 생각이고,

자기들이 잘 알고 있다는 그 생각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모습도 같습니다.

 

따라서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마태 13,57)." 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고향'은 나자렛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자기가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모두 가리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요한 7,28-29)."

이 말씀은, "너희는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내가 하느님에게서 왔고 하느님과 일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믿어야 한다." 라는 뜻입니다.

 

사실, 모르는 것 자체를 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만 진리라고 고집부리는 것은 죄가 될 수 있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이나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하면서도,

또는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예수님을 안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은 제대로 알았기 때문에,

또는 잘 알았기 때문에 믿은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앎'과 '믿음'의 관계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앎'과 '믿음'의 순서를 생각해 보면, '믿음'이 '앎'보다 먼저입니다.

먼저 믿으면, 믿음을 통해서 잘 알게 됩니다.

반대로 잘 알아야만 믿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믿음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사도들의 경우에도 그들이 예수님을 잘 알아서 믿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먼저 믿었고,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알고 있는 예수님'이 아니라

'자기들이 믿고 있는 예수님'을 증언했습니다.

복음서와 서간문의 내용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이런 분이다."가 아니라,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은 이런 분이다."입니다.

 

그래서 믿으려는 마음 없이 단순히 잘 알기 위해서 성경을 읽는다면,

얻는 것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을 위한 책이지 '지식'을 위한 책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성경 해설서와 주석서들과 철학 서적과 신학 서적을

모두 읽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학자들이 무슨 말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고, 무슨 일을 하시는지가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나에게.

예수님께서 지금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믿는 일이 중요하고,

지금 나에게 하시는 일을 깨닫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마르코복음을 보면, '믿음'에 관한 중요한 구절이 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마르 9,24)."

이 말은 악령이 들린 어떤 아이의 아버지가 한 말인데,

"믿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믿음이 부족한 저를 도와주십시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쪽에서 생각하면 '믿음'은 '은총'이고,

우리 쪽에서 생각하면 '믿음'은 '믿으려는 노력'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