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Roma)의 일곱 부제(차부제 포함) 중 한 명인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또는 라우렌시오)는 에스파냐의 우에스카(Huesca) 출신이며,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그는 교황 성 식스투스 2세(Sixtus II, 8월 7일)의 부제였고, 식스투스 교황이 사형을 받게 되자 슬픔을 억누르지 못했다고 한다.
이때 교황은 그 역시 3일 안으로 자신을 따라 오리라고 예언하자, 라우렌티우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교회의 소유물들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로마의 집정관이 그의 이런 행위를 알고는 교회의 보물들을 모두 황제에게 바치라고 엄명을 내렸다.
이때 그는 모든 보물을 모으려면 3일 정도가 소요된다는 말을 하고 돌아와서는 모든 보물들을 맹인과 절름발이, 고아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에 분개한 집정관은 그를 체포하여 온갖 고문으로 괴롭히다가 석쇠 위에 눕히고는 구워 죽였다.
시인 프루덴티우스(Prudentius)에 의하면 그의 죽음과 표양이 로마의 회개를 가져왔고, 로마에서 이교의 종말을 고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문장은 석쇠이다.
강론 : (마태 14,22-33)
<왜?>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던 제자들은
새벽에 호수 위를 걸어오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생각해서 두려워했다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안심합니다(마태 14,22-27).
그런데 갑자기 베드로 사도가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마태 14,28)."
라고 요청합니다.
1) 예수님은 왜 물 위를 걸어가셨을까?
아마도 다른 배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제자들을 돕기 위해서 급하게 가시려고 했는데
배가 없어서 그냥 걸어서 가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일 자체는
"예수님은 하느님과 같은 권능을 갖고 계신 분, 예수님은 하느님과 같으신 분"
이라는 것을 나타내지만,
또 그 일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제자들이 더 잘 믿게 되었겠지만,
전후 상황을 보면 물 위를 걸으신 일에 특별히 다른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2) 베드로 사도는 왜 갑자기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라는 요청을 했을까?
당시의 상황에서는 베드로 사도가 물 위를 걸어서 예수님께 가야 할 정도로
절실한 어떤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요청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그는 바람과 파도에 시달리고 있는(마태 14,24) 배보다는
예수님 곁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랬다면 그는 예수님은 믿었지만 동료들은 안 믿은 것이 됩니다.
또 동료들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는 것이
예수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에(마태 14,22)
그의 요청은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이 됩니다.
어쩌면 그는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걷고 싶어 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네가 예수님의 제자라면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어 보아라."
라는 마귀의 유혹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마귀가 유혹을 했든지 안 했든지 간에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원인이라면
그가 물 위를 걸으려고 한 것은 주님을 시험하는 태도와 같기 때문에
결코 칭찬받을 일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마태 7,7)."
라는 산상 설교의 가르침을 이미 들었습니다.
그래서 물 위를 걷게 해 달라고 청하면 그렇게 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것은 주님을 시험하는 태도가 될 뿐입니다.
또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 17,20)." 라는 말씀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믿음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믿음을 시험해 보고 싶어 하는 것도 마귀의 유혹입니다.
신앙은 "내 능력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주님의 권능에 대한 믿음"입니다.
'기적'은 마법이 아니라 은총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호기심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또는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 아닌데도 뭔가 특별한 일을 바랄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집에 있는 성모상에서 눈물이 흐른다면 좋겠다."
같은 생각이 그런 것입니다.
남들에게는 없는 어떤 특별한 능력을 바라기도 하고,
특별한 체험을 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사적 계시 같은 것을 바라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거의 대부분 마귀의 유혹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어떤 특별한 체험을 하거나 계시를 받았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바로 고해성사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총인지, 악령의 장난인지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3)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오너라(마태 14,29)." 하시면서
그의 요청을 들어주신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가 물 위를 조금 걷다가
바람과 파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물에 빠지게 될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의 요청을 들어주신 것은
그 자신이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얻는 것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마태 14,31)"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가 두려움 때문에 물에 빠진 것뿐만 아니라
배를 떠나서 물 위를 걸으려고 한 것까지 꾸짖으시는 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았다면
그냥 배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반대로,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도 물 위를 걸어가려고 한 것은
믿음이 부족한 모습이 됩니다.
또 예수님을 향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면,
물 위를 걷든지 맨땅을 걷든지 하늘을 날든지 간에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예수님 쪽으로 곧장 가야 합니다.
옆에서 부는 바람도, 파도도, 어떤 위험도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오라고 하셨으니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겨야 합니다.
4)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만나신 뒤에는
물 위를 걷는 일을 멈추시고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에 오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일은
당신의 권능을 보여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에서 이미 말한 것처럼
제자들을 좀 더 빨리 만나서 도와주기 위해서였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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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려고, 또 제자들에게 깨달음과 체험을 주시려고
‘의도적으로’ 혼자 남으시고, ‘의도적으로’ 제자들만 먼저 가게 하셔서
그들을 위험에 빠뜨리시고, ‘일부러’ 유령처럼 나타나셨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에 그랬다면 그것은 약을 주려고 일부러 병에 걸리게 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시련을 통해서 예수님과의 만남을 체험하는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 시련을 예수님께서 주셨다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아무 일에나 다 ‘주님의 뜻’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악에서도 선을 끌어내시는 분이지만, 악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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