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8월 25일 가해 연중 제21주간 월요일(성 루도비코)

dariaofs 2014. 8. 25. 00:30

 

 

성 루도비쿠스(Ludovicus, 또는 루도비코)는 프랑스 왕 루이 8세와 카스티야(Castilla)의 블랑쉬(Blanche)의 아들로 프와시(Poissy)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1226년 그의 부친이 서거했을 때 그의 나이는 12세에 불과 했으므로 어머니가 섭정의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아들의 왕권을 노리는 샹파뉴(Champagne)의 티보를 비롯하여 야심 많은 귀족들과 대항했고, 어떤 때에는 전쟁도 불사하였다.

그는 1234년 5월에 프로방스의 공작 레이먼드의 딸인 마르가리타(Margarita)와 결혼하여 열 명의 자녀를 두었다. 같은 해에 그는 대권을 물려받고 통치자가 되었고, 모친 블랑쉬는 고문관으로 아들을 도왔다. 그는 1242-1243년의 남 프랑스의 반란을 진압했고, 또 잉글랜드(England)의 헨리 3세를 테임브르그에서 격퇴하였으며, 포와투를 손에 넣는 등 국가의 권력을 점점 확대하였다. 

 

1248년 그는 십자군을 지휘하여 출정하였으나 1249년에 다미에타에서 포로가 되어 사라센인들의 손에서 곤욕을 치렀다. 그 후 그는 석방되어 성지로 가서 1254년까지 머물다가 모친의 사망 통보를 받고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는 플랑드르(Flandre)와의 평화를 이룩했고 리모주(Limoges), 카오르(Cahors) 등 수많은 지역을 평정하였다.

루도비쿠스는 천성적으로 신심이 깊었고, 또 실제로 이상적인 수도자를 꿈꾸었다. 이 때문에 그는 정의를 펴고 그리스도교적 사랑으로 나라를 다스렸으며, 왕으로부터 농부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권리를 옹호하여 성왕으로 불리었다.

 

동시에 그는 예리하고 힘찬 군주였으며, 동시에 평화를 사랑하는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불경한 태도나 말을 한 사실이 없다. 그의 맏아들에게 했던 유언에서도 그는 자신의 신앙을 그대로 설명하고 지키도록 부탁할 정도였다. 1270년 그는 재차 십자군을 일으켰다가 8주일 후에 이질에 걸려 운명하였다.

성인은 한마디로 가장 이상적인 중세의 그리스도인 왕이었다. 그의 치하에서 프랑스는 최대의 번영을 누렸다. 그의 신심은 자신이 작은 형제회 3회원이 됨으로써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는 작은 형제회 3회의 남자 수호성인이다. 그는 1297년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Bonifatius V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임종시에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주님, 저는 이제 당신의 집에 들어가렵니다.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서 예배하리이다. 당신의 이름에 영광을 드리나이다.” 그리고 오후 3시경에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하며 숨을 거두었다. 그의 유해는 생드니(Saint-Denis) 수도원 성당에 안장되었다.

 

강론   :   (마태 23,13-22)

 

<잘못된 신념 때문에>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마태 23,13)."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 버린다." 라는 말은

"사람들을 가르칠 때, 잘못 가르치고, 잘못 인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성경 말씀과 율법들을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하고,

마음대로 가르치는 것을 비판하시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그리스도교에서도 볼 수 있는 문제입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 강론을 할 때, 교리를 가르칠 때...

잘못 가르치면 사람들을 하늘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로 인도하게 되고,

그러면 결과적으로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 버려서 못 들어가게 막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자기들이 사람들을 잘못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나,

'잘못 가르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을까?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하기는커녕 자기들은 잘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했고,

자기들이 가는 길이 옳다고 믿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율법학자들, 바리사이들과 예수님이 가장 크게 부딪친 문제가

안식일에 관한 율법인데,

그들은 안식일에는 무조건 일을 하면 안 된다고 했고,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은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는 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날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안식일에 자주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것이 십계명인 것은 맞지만,

무조건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안식일에 일하지 말고 쉬라고 명령하신 것은

중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 계명은 '사랑'의 실천이 본래의 뜻입니다.

 

그런데도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안식일에 사랑을 실천하는 일마저도 못하게 막은 것은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 버린 일과 같습니다.

 

오늘날의 우리 교회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안식일(주일)에 일을 해도 괜찮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주일미사 참례를 하면 주일을 지킨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 나머지 시간 동안 전혀 거룩하지 않은 생활을 합니다.

(거룩하게 지내기는커녕 지나치게 세속적인 놀이에 빠지기도 합니다.)

 

안식일(주일)에 일하지 말고 쉬면서 거룩하게 지내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예수님께서 폐지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 명령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만일에 주일미사 참례를 했다면 주일을 지킨 것이고

그 나머지 시간은 어떻게 지내든지 상관없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도 역시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게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는 사람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마태 23,15)."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닌다." 라는 말은

유대교의 열성적인 선교활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실제로 그 당시에는 그렇게 열성적으로 선교활동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린다." 라는 말은,

이방인이었다가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유대인들보다 더 지독한 광신자, 또는 더 나쁜 위선자가 되고,

그런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서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 일이 생긴 것도 역시 처음부터 잘못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라고,

하느님을 제대로 섬기는 것이라고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 배운 사람보다는 가르친 사람 쪽의 죄가 더 큽니다.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보아도 비슷한 일들이 많았고,

오늘날의 그리스도교에도 비슷한 일들이 있습니다.

사랑보다는 미움을 행하고, 용서보다는 복수를 행하면서

그것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를 바치면서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을 일으키는 경우,

과연 그 전쟁을 예수님께서 도와주실까?

 

예수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종교를 박해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박해자를 위해서 기도하여라, 같은

예수님의 계명은 무시하고,

우상숭배를 배격하라는 구약성경 구절만 강조하면서

다른 종교를 박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 라는 말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어쩌면 지옥은 천국의 바로 옆집일지도 모릅니다.

올바른 믿음과 잘못된 신념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를 항상 반성해야 하고,

잘못된 신념은 즉시 버려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