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 13,24-32)
<종말, 재림, 심판, 회개>
11월 18일의 복음 말씀은,
마르코복음 13장 24절-27절,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과
13장 28절-31절, '무화과나무의 교훈'과
32절,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입니다.
이 내용은 모두 종말과 재림에 관한 가르침들입니다.
24절-25절에서 묘사하는 해, 달, 별들의 모습은
종말 사건이 '지구' 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일이 아니고
전우주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26절,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권한으로 사람들을 심판하는
심판관으로 재림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구절에서 '사람들이 볼 것이다.' 라는 말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보는 것 자체가 심판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27절, "그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는
예수님의 심판은 사람들을 멸망시키기 위한 심판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한 심판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만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구원받기를 바란다면 구원받을 준비를 할 텐데 그 준비가 바로 회개입니다.)
"너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어느덧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된다(마르 13,28)."
무화과나무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는 것은
여름이 가까이 왔다는 표시인데, 그 지역에서는 여름은 추수철입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무화과나무의 변화를 보고 추수를 준비했습니다.
성경에서 추수는 보통 심판을 상징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마르 13,29)."
'이러한 일들'은 마르코복음 13장 14절-23절에 묘사되어 있는
재난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왔다는 말은
종말과 재림과 심판이 곧 시작될 것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문'은 '구원의 문'으로 해석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구원의 문'을 열고 사람들을 그 안으로 들여보내기 위한 일이고,
심판은 그 안으로 들어갈 사람을 가려내는 일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마르 13,30-31)."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라는 말은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뜻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는 예수님만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30절과 31절을
'그날이 언제가 되든지 그 일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고,
아무도 그 일에서 제외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마르 13,32)."
'아들도 모르고' 라는 말도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말씀은 삼위일체 교리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학자들이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지만 확실한 결론은 없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말씀이 종말의 시간을 계산하려고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종말과 심판을 대비하기 위해서 회개해야 하는 때는 항상 '지금'입니다.
이천 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은 어떤 대규모의 재난이나 질병이나 전쟁을 겪게 되면
이것이 혹시 종말의 징조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졸이고,
회개를 한다고 호들갑을 떨다가,
그 시기가 지나가면 '아닌가보다.' 라고 하면서 안심하고,
그러면서 차츰 마음이 무디어졌습니다.
각 개인의 모습을 보아도 그런 일이 흔합니다.
어떤 큰 사고나 중병을 겪게 되면
자기 인생을 잘 마무리하려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 고비를 넘기면 다시 방심하게 되고 나태해집니다.
'지금 회개해야 한다.' 라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는 아주 흔하게 듣는 상투적인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사순절을 지내는 마음가짐과 부활절을 지내는 마음가짐이 다르고,
대림절을 지내는 모습과 성탄절을 지내는 모습이 다릅니다.
부활절이 되면 사순절을 잊어버리고 성탄절이 되면 대림절을 잊어버립니다.
연말에는 좀 숙연해지다가 연초에는 다시 들뜬 모습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제 살았던 그 모습으로 오늘을 살고,
오늘 살고 있는 그 모습으로 다시 내일을 맞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내일'이 누구에게나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는 날일까?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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