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는 73권의 총서
유네스코 도서헌장은 제1조에서“모든 사람은 읽을 권리가 있다”고 선포한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모든 사람이 독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책임이 사회에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읽을 권리’가 있다. 특히 책 중의 성서는 권리 차원을 넘어서 날마다 의무적으로 읽어야 한다.(레지오 교본)따라서 교회는 신자들이 성서를 읽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배려해야 될 책무를 진다. “그리스도 신자에게는 성경을 가까이 할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계시헌장22).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신앙의 유무를 떠나서 참된 길을 걷고자 하는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불후의 명저인 성서가 어느 시대부터 집필되어 전해 내려오다가 마침내 한 권으로 집대성되었는지 그 역사를 더듬어 보는 여행을 떠나 보자.
성서는 총서다
성서는 한 권의 책치고는 꽤 두툼한 편이다. 몇 페이지나 될까? 이런 의문을 갖고 성서의 맨 뒤쪽을 펼쳐보는 이들은 누구나 고개를 한 번쯤 갸우뚱거릴 것이다. 성서의 판형과 본문 디자인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보통 쓰이는 국판성서일 경우 요한묵시록 22장 21절이 505쪽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505쪽?이렇게 두툼한 성서의 끝 페이지가 이 정도밖에 안되나?’
이런 의문점은 성서 맨 앞에 있는 목차를 펼쳐보면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거기에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목차가 각각 따로 제시되어 있다. 가톨릭용 공동번역 성서에는 제2경전의 목차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사이에 따로 있다. 물론 페이지도 별도로 시작한다. 구약성서는 창세1,1(1쪽)로 시작해서 말라3,24(1597쪽)로 끝난다. 제2경전은 토비1,1(1쪽)로 시작해서 2마카15,39(328쪽)로 끝나고, 신약성서는 마태1,1(1쪽)로 시작해서 묵시22,21(505똑)로 끝난다. 따라서 앞서 본 505쪽은 신약성서의 끝 페이지에 불과하지, 신약성서 전체의 끝 페이지는 아니다.
그러면 왜 한 권의 책에서 페이지를 달고 있을까? 페이지를 따로 단다 함은 별개의 책이라는 뜻이 아닌가? 별개의 책이라면 왜 한데 묶여 있는가? 이 물음은 ‘신구약 합본 성서’라는 성서의 본래의 이름을 생각할 때 쉽게 풀린다. 여기서 ‘합본(合本)’이라는 말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여러 권을 함께 매어 제본함. 또 그 책. ”따라서 신약과 구약을 함께 제본했기에 서로의 고유성을 살려주고자 페이지를 달리 매겼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의문이 완전히 가시랴. 별도 페이지를 달고 있는 구약성서, 제2경전, 신약성서 아래 열거된 제목들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구약성서 밑에 39개, 제2경전 아래에 7개, 신약성서 밑에 27개나 되는 제목들이 페이지 순을 같이 하면서 제시되어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이들 간에 긴밀한 연관은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산문과 운문이라는 문체의 차이는 언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루고 있는 내용 또한 역사와 율법, 속담과 격언, 예언과 민담 등 천차만별이다.
다시 말해서 한 제목 아래 쓰여진 내용은 각각 그 나름대로의 흐름이 있어 한 권으로 독립될 만한 소지가 많다. 아니 낱권성서로서 완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렇듯 한 권의 책으로 묶여지게 되었는가? 또 얻던 원칙 아래 묶여져 있는가? 이 물음이 바로 우리가 성서형성사를 다루면서 풀어야 할 핵심이다.
성서에서 보듯이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서로 다른 책들이 한데 모아져 있는 책들을 ‘총서(叢書)’라 부른다. 총서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일정한 형식으로 계속해서 간행되는 같은 종류의 출판물을 ② 갖가지 책을 통일 없이 많이 모은 서적. 다시 말해서 신약성서는 신약총서, 구약성서는 구약총서라 할 수 있다. ‘성서’라는 현재의 명칭은 여러 권을 모아 놓았다는 의미보다는 ‘거룩한 책’ 내지 ‘하느님의 책’ 이라는 의미에 강세를 두기 의해서 총(叢)자 대신에 성(聖)자를 썼을 뿐이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구약성서는 제2경전까지 포함해서 46권의 총서며, 신약성서는 27권의 총서다. 둘을 합친 신구약 합본 성서는 73권으로 된 총서인 것이다.
신약과 구약
73권이 되는 낱권들이 한데 모아진 총서인 성서는 크게 둘로 나뉜다.앞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신약성서와 구약성서다. 여기서 약(約)은 약속, 언약, 계약을 뜻한다. 딸서 신약(新約)성서는 새로운 계약에 관한 책을, 구약(舊約)성서는 옛 계약에 관한 책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신약성서와 구약성서는 신약과 구약이라는 원칙 아래에서 모아진 총서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성서를 신약과 구약으로 나누는 분류법은 그리스도교 안에서만 통용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계약이 체결되었음을 믿고 고백한다. 그런 믿음 아래 예수의 일생 및 그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쓰여진 27권의 문서를 구약성서와 똑같은 비중을 지닌 경전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 둘은 그 내용이나 특성상 하나로 보기가 힘들다. 그런 면에서 일찍부터 신약과 구약이라는 별도의 총서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페이지를 별도로 시작하는 신약성서와 구약성서가 모아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총서가 다르다고 해서 이 두 총서에 계시된 하느님이 서로 다른 분은 아니다. 신약은 구약의 연속선상에 있으면서 구약을 완성시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신약과 구약을 합본한 성서를 그리스도교 경전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하지만 구약성서를 경전으로 삼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서를 결코 구약성서라 부르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새 계약이 체결되었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수많은 예언자나 현인 또는 랍비의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간에 맺은 계약은 처음서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구약성서를 ‘히브리 민족과 함께 한 하느님의 책’ 이라 해서 “히브리 성서” 라 부른다.
그렇다고 히브리 성서가 곧 구약성서는 아니다. 히브리 성서는 24권인데 비해 구약성서는 46권이다. 히브리 성서의 경우 12소예언서를 한 권으로 칠 뿐 아니라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 역대기 상‧하, 에즈라-느헤미야 등 내용이 단절되지 않는 2권을 1권으로 셈한다(도표 참조). 딸서 현재 구약성서의 분류법에 따라 가르면 39권에 해당한다.
이 두 경전 목록을 비교하면 히브리 성서에는 제2경전으로 분류되어 있는 토비트, 유딧,지혜서, 집회서, 바룩, 마카베오 상, 마카베오 하 등 7권이 없다. 더불어서 에스델서와 다니엘서의 일부 부분이 빠져 있다.(개신교에서는 히브리 성서의 분류법을 따라 제2경전에 있는 7권을 외경(APOCRYPHA)이라 불러 경전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히브리 성서(TANAK)의 목록
-율법서(TORAH)-
1 . 창세기
2 . 출애굽기
3 . 레위기
4 . 민수기
5 . 신명기
-예언서(NEVIM)-
*전기 예언서
6. 여호수아
7. 판관기
8. 사무엘 상‧하
9. 열왕기 상‧하
*후기 예언서
10. 이사야
11. 예레미야
12. 에제키엘
13. 열두 예언서(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디야, 요나, 미가, 나훔, 하바꾹, 스바니야, 하깨, 즈가리야, 말라기)
-성문서(KETUBIM)-
14. 시편 19. 전도서 24. 역대기 상, 하
15. 욥기 20. 애가
16. 잠언 21. 에스델
17, 룻기 22. 다니엘
18. 아가 23. 에즈라, 느헤미야
그 이유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 경전의 목록을 확장할 때 각각 의거한 전승이 서로 달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구약성서는 경전 목록으로 굳어지기 전에 바빌론과 팔레스티나와 이집트 등 세 군데에서 낱권으로 기록되어 수집되었다. 그런 까닭에 서로 다른 판본과 낱권들이 생겼고, 이들 문서 중에 어느 것을 경전으로 삼을 것인지에 대해서 서로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다.
이 때 유대교에서는 히브리어로 쓰여진 판본이 남아 있는 문서를 대상으로 경전화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 따라 제2경전에 실린 부분은 그리스어로 된 판본뿐이라 경전으로 인정 받지 못했다. 반면에 그리스도교에서는 70인역에 보존된 이집트 전통을 살려 제2경전 부분을 구약성서안에 포함하게 되었다. 최근의 발굴 자료 및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들 7권 중에도 히브리어 원본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성서의 분류
구약성서와 히브리 성서의 분류법은 서로 다르다. 히브리 성서의 경우 전통적으로 셋으로 구분한다. 율법서(TORAH), 에언서(NEVIM), 성문서(KETUBIM). 히브리 성서에 없는 제2경전의 7권을 이 분류법에 따라 가르면 성문서에 해당한다. 유대인들은 이 셋의 머리 글자를 따서 히브리 성서를 다른 말로 타낙(TANAK)으로 부르기도 한다.
율법서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 앞부분에 위치해 있는 다섯 둰의 책으로 율법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다섯(PENTA) 두루마리(TEUCHOS)라 해서 보통 오경(PENTATEUCHOS)이라 불리운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킨 민족의 지도자 모세가 오경을 저술하였다고 하여 모세 오경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에언서는 비단 예언 말씀을 엮오 놓은 책만이 아니라,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느님을 뚜렷한 사관 아래 기록해 놓은 책도 포함했다.그래서 보통 신명기계 역사서라고 일컬어지는 여호수아, 판관기, 사무엘 상, 사무엘 하, 열왕기 상, 열왕기 하 등 6권이 전기 예언서로 분류되어 있다. 예언 말씀과 예언자들의 행적을 담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등 대예언서 3권과 소예언서 12권 등은 후기 에언서로 일컬어진다.
반면에 똑같이 역사 사실을 다룬다 하더라도 유배 아후에 기록된 에즈라, 느헤미야, 역대기 상, 역대기 하 등 역대기 사가의 작품과 마카베오 상‧하권은 성문서로 분류된다. 공동번역에서는 내용의 성격을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역사서란 항목을 따로 설정하여 제2경전과 성문서 속에 있는 역사서 성격의 문서와 역사소설을 한데 모았다.
성문서는 히브리 성서의 목록이 확정된 얌니아 회의(기원후90년)이전에 나온 문서들 중에 경전성이 인정되는 작품들의 모음집이다. 시문학과 지혜문학이 주종을 이룬다. 룻기, 아가, 전도서, 애가, 에스델 등 축제와 관련된 다섯 두루마리(MEGILLOTH)도 여기에 포함된다. 공동번역에서는 서사와 지혜서란 항목으로 분류해 놓고 있다.
신약성서에는 별도의 분류는 없지만, 내용상 복음서 4권과 사도들의 행정1권, 서간편21권과 묵시록1권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영원의 책, 성서
“책은 기억의 확장이며 상상력의 확장이다”(보르헤스). 책을 통해 인간 지식의 지평은 한없이 뻗어 나간다. 한 권 한권의 책도 그렇겠지만, 총서에 단긴 책의 폭과 깊이는 무어라고 평할 수 없으리 만큼 대단하다. 그러나 글의 내용이 무거워 보통 베스트 셀러에 오르지 못하는게 관례이다.
그런데 성서는 총서이면서도 지금까지 계속해서 판매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것도 몇 주간의 반짝인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언제 어디서든 1위를 지키고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성서는 그 지평이 영원에 닿아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도대체 성서는 어떤 기획 아래 누구의 작품을 모았기에 시대가 바뀌어도 계속해서 판매1위를 달리고 있는 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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