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구약] 탈출기

dariaofs 2015. 2. 27. 16:24

탈 출 기

 

1. 책의 이름

 

오경 가운데 두 번째 책에 눈을 돌릴 때 먼저 부딪치는 문제가 책 제목이다. 우리 나라에서 출애굽기로 불리는 이 책은, 히브리말에서는 고대 근동의 전통 방식에 따라 그 첫 말마디인 그리고 이것들은 이름들또는 이를 줄여서 이름들로 불린다(우리말에서는 첫 문장이 끝에 “---이름은 이러하다.”로 옮겨진다). 반면에 히브리말 성서를 그리스말로 옮긴 에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유다인 번역자들은 이 책의 내용에 따라 나감, 탈출을 뜻하는 엑소도스를 제목으로 붙였다. 이것이 라틴말에서 Exodus로 음역되었으며, 현대 서양 언어들에서도 이 낱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한자말로, Exodus에 해당하는 ()’과 에집트에 해당하는 한자 애굽(埃及)’, 일의 내력을 기록한 문서를 뜻하는 ()’를 덧붙여 이 책의 이름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한자식 명칭은 이제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을 맨앞에 세우는 것은 명백히 중국식 어법이다. ‘애굽또한 문제를 안고 있다. 에집트에 해당하는 한자말은 애급(埃伋)’인데 (국어사전과 선종완 신부 번역본 참조), 우리는 현재 이 나라 이름을 애굽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를 우리말 어법에 맞게 고친다면 에집트 탈출기가 될것이다.(생명의 말쓰사 판<현대인의 성경>에는 이렇게 되어있다).

 

그러나 Exodus는 과거에 한 번 이루어진 에집트 탈출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미 구약성서 시대에 제2이사야는 하느님의 백성이 바빌론에서 귀향하는 것을 2의 엑소도스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영성에 따르면, 모든 인간의 여정은 완전한 해방을 향한 엑소도스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들을 보더라도 계속 출애굽출애굽기라는 개념과 제목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일정한 환경이나 구속에서 빠져 나감을 뜻하는 일반적잉 개념인 탈출을 쓰는 것이 더 마땅하다고 여겨지므로, 우리는 Exodus라는 말의 본뜻과 이 낱말을 제목으로 선택한 이들의 원의도를 살려 탈출기라 부르기로 한다.

 

2. 에집트 탈출의 의미

 

탈출기는 흔히 구약성서의 복음서로 일컬어 진다. 사실 이책은 하나의 복음서처럼, 하느님께서 한 무리의 사람들의 실존에 개입하셔서(4,31) 그들을 자유속에 다시 태어나계 하시고 그들을 당신께서 마련하신 나라로 불러모으신다는 기본적인 기쁜소식을 선포한다. 탈출기를 이해하려면 먼저 에집트 탈출이 이스라엘에서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1) 하느님의 백성을 탄생시킨 사건

 

이스라엘인들은 에집트 탈출을 자기들의 일반 역사와는 달리 특별한 것으로, 역사의 여느 사건들과는 다른 차원의 것으로 여겨왔다. 실제로 이 탈출은 이스라엘을 창조한 사건으로서, 이후 이스라옐 백성의 삶 전체가 그것에 종속되고, 많은 제도와 종교 의식과 신앙 조목들이 그것에 의거하여 만들어진다. 이스라엘이 지녔던 큰 민족적 희망들도 마찬가지로 이 사건과 관련된다. 또한 에집트 탈출에 대한 회상은,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에 영향을 끼친 다른 사건들을 지배할 정도로 결정적인 것이었다.

 

곧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점차 열두 지파의 통일성에 대한 의식을 갖추게 된 일(여호24), 왕국을 설립하고 다윗의 통치 아래 팔레스티나 국가를 형성한 일, 그리고 더 나아가서, 유배와 이 때문에 이스라엘인들이 여러 땅에 흩어지 공동체로 변화한 일 등이다. 이러한 일들이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아무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하더라도, 에집트 탈출, 그리고 그것에 이은 광야생활에 비길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모든 신학적, 역사적 사고가 바로 이 탈출로써 조명되었다.

 

사실 그 시기는 하느님께서 당신 것으로 받아들이신 한 민족이 초년기에 해당한다(호세 11,1-4 : 신명 8,11-16). 물론 이 민족은 이미 그때 처음으로 자기들의 하느님께 반항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14-17), 아울러 구약성서에 나오는 어떤 제도이 의미를 이해하고자 할 때 에집트 탈출 사건은 흔히 그 준거점이 된다. 그래서 파스카(12,26), 무교절(13, 6-8 : 12,39), 또는 맏아들과 맏물의 봉헌 의무(13,14-15)가 어떻계 해서 생겨났느냐는 질문에, 이스라옐 사람들은,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관습이다.’ 라고 대답하지 않고, ‘에집트를 나올 때 일어난 일을 회상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또 다른 본보기를 들자면, 이방인들을 존중하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이스라엘인들이 에집트에서 살면서 이방인의 삶이 어떠한지를 직접 겪은 그 체험에 바탕을 둔다(22,20 : 23.9).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한 민족의 제도, 종교 의식과 법에 정신을 불어넣는 작업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이 사건은, 한마디로, 이스라엘민족을 탄생시킨 일이었다.

 

2)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만남의 사건

 

이스라엘을 탄생시킨 에집트 탈출 사건은 또한 이스라엘에게 하느님을 만나는 일에서 특권적인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하느님과 그분 백성 사이의 관계를 한상적으로 그린다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특히 현대의 독자들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에집트 땅에 내린 재앙들이나 바다 횡단같은) 기적들만을, 또 하느님의 일반적인 개입과 이스러엘의 무조건적인 수용만을 열거하는 것도 아니다. 주위 깊게 읽을 때, 이 책은 일련의 근본적인 물음들과, 더 나아가서 이의를 제기하는 것으로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분을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4,1 : 6,9 : 14,31)? 주님께서는 우리 가운뎨 계신가, 계시지 않는가(17,7)? 그분의 이름은 무엇인가(3,13-15)? 사람이 그분을 뵐 수 있는가(33,18-23)? 모세는 왜 우리를 이렇게 위험하고 치명적인 모험 속으로 끌여들였는가(14,11 : 17,3 : 32,1)? 이 책은 이러한 의문과 물음에 이스라엘의 신앙을 근거로 한 대답을 준다.

 

여러 세기 동안 그리고 탈출기의 최종 작업 때까지 이 신앙은 끊임없이 성숙하였다. 당신의 백성에게 홀로 경배를 받으셔야 하는 하느님, 곧 계약의 하느님을 모세가 알려준 그날 이후, 이스라엘은 민족적 생존의 첫 사건, 구체적으로는 이 탈출, 그리고 이 계약을 오랫동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역사 속으로 개입하셨음을 깨닫게 된다(13,9. 16에 나오는 짧은 신앙고백참조).

 

그리고 에집트에서 백성을 이끌어 내시고 그 행렬을 인도하신 하느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그분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주님, 곧 모세와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사람들에게 일깨우신 희망에 충실하신 분으로서, 노예가 되어버인 불행한 사람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신 분이시다(2, 23-25).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자유롭게 하시고 결국 모든 장애를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7-11).

 

그리고 그분께서는 사람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한데 모으고자 하시는 분으로서 그들에게 계약을 세우고 그 계약예 따라 행동할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시다(19-24). 또한 그분께서는 죄를 저지르는 백성에게 당신의 인내와 자비를 드러내시는 분이시다(32-34). 끝으로 그분께서는 예언자 모세의 중개를 통하여 전례를 통해서 당신 백성 가운뎨 현존하시는 분이시다(25,8 : 40, 34-35).

 

3) 오늘도 계속되는 사건

 

이렇게 에집트 탈출은 과거의 한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살아있는 현실이 된다. 시편 114와 여호 4, 22-24는 이스라엘인들이 모세와 함께 바다를 건넌 일, 그리고 여호수아와 함께 요르단을 건넌 일을 하나로 결합하여 한 축제로 경축한다. 시편 81축제 날한데 모인 공동체에게 에집트 탈출 사건 당시에 울려 퍼진 목소리를 자기들의 선조들보다 더 귀여겨들으라고 권유한다 그리고 시편 95는 더욱 구체적으로 이 목소리가 오늘이야기한다고 말한다.

 

사실 시편 111, 4에 따르면 너그럽고 자비로우신 주님께서는(34, 6) 당신의 기적들을 사람들이 기억하기를 원하셨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전례 축제를 통해서(파스카를 하나의 기념으로 말하는 12, 14) 파스카의 구원에 온전히 참여하고, 시나이에서 체결된 계약에 계속 동참하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전례는 주기적으로 에집트 탈출 사건들을 다시 체험하도록 해주었다. 더 나아가서 자신의 근간을 뒤흔드는 큰 위기의 때에 하느님의 백성은 더욱 적극적인 방식으로 과거를 되돌아보았다.

그 한 본보기로서 아합 임금이 북부 왕국을 다스릴 때 백성을 자칫 배교로 이끌 뻔한 사건으로, 가나안인들이 일으킨 위기의 때에, 엘리야가 이스라엘 신앙의 원천인 호렙산으로 갔던 순례를 들 수 있다(1열왕 19). 마찬가지로 바빌론 유배 시대에 새계약을 선포한 예레미야와(예레 31,31-34) 에제키엘(에제 16,59-63 : 37,20-28) 다음에 나타난 제2이사야는 새로운 탈출의 시간이 왔다고 선포한다(이사 43,16-21).

 

이 예언자는 유배의 땅에서 기적적으로 이루어지는 해방에(이사 48,20-22 : 49), 더욱 기적적인 방식으로 죄에서의 해방이 더불어 이루어지리라 선포하며(이사 40,1 : 44,21-22), 이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분으로서 만민을 구원할 능력을 지니신 분께 돌아오라고 모든 민족을 향하여 호소한다(이사 45, 4-25).

 

그러므로 우리가 탈출기를 이해하려면,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책의 본문을 점진적으로 작업해 나갈 때, 그들이 자기들의 신앙에 이끌렸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후대의 유다인들은 파스카 예식을 거행하면서 모든세대의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직접 에집트에서 탈출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고 선포하게 되는 것이다(13, 8과 각주 참조).

 

4) 영원한 해방의 전망을 연 사건

 

여정 가운데 있는 백성의 책으로서 탈출기는 완결된 책이 아니다. 예전 사람들의 역사속에 이루어진 구원 개입에 대한 증언으로서 이 책은 계속해서 더욱 근본적이며 ㄱㄹ정적인 자유에 대한 희망을 함양시킨다. 이러한 전망에서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을 이스라엘이 수행한 에집트 탈출의 완성으로 여겼다. 한편, 그리스도교 시대가 시작될 무렵 유다교에서(지혜서와 타르쿰에서) 재해석 되기도 한 탈출기의 언어는 새로운 그리스도교적 체험을 표현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 그분의 파스카로 이해되었다(루가 22, 14-20 : 요한 13,1-3 : 19,36). 다른 본문들은(요한 6 : 1고린 5,7 : 10,2-4) 세례와 성찬을 이야기 하려고 만나, 구름, 바다 횡단, 바위에서 터져 나오는물, 누룩 없는 빵 등의 낱말들을 사용한다. 요한묵시록은 그리스도를 파스카의 어린양으로 경축한다(묵시5,6). 같은 책에서, “짐승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내리는 자앙들은 에집트에 내린 재앙들을 되풀이 하는 것이다(묵시 15, 5. 16. 21).

 

그리고 그 짐승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에 함께하는 이들은 다시 모세의 노래를 부른다(묵시 15,3). 끝으로 새 세상의 출현을 서술하려고 바다가 없어짐을 이야기한다(묵시 21,1). 탈출기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이해의 이 모든 주제들은 교부들에 의해, 특히 그들의 부활 강론과 교리 교수, 그리고 이보다는 덜하지만 계속 이어지는 그들의 주석서들에서 많이 활용된다. 이 모든 것은 또한 어떻게 하여 탈출기의 주제들이 그리스도교 전례에 여기저기 들어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여기에서 이것들을 하나하나 대조하여 확인할 수는 없고, 다만 비잔틴 전례와 로마 전례에서 부활 성야 축제 때, 바다 횡단의 구절을 봉독하는 것과 모세의 노래를 부르는 것(출애 14-15. 이 노래에 다음과 같은 기도가 이어진다: “그옛 날 행하신 기적을 오늘도 빛내시는 천주여, 당신 전능으로 한 백성을 에집트 사람들의 박해에서 구원하셨음같이 재생의 물로 이교 백성들도 구원하시니, 세상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어 이스라엘의 특전을 누리게 하소서.”), 또 경신례와 교회 교리 교수에서 십계명이 차지하는 비중만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3. 탈출기의 역사적 배경

 

탈출기가 이스라엘의 신앙을 표현하려고 쓰여졌다는 말은, 이 책이 허구적인 사실에 바탕을 두었음을 뜻하지 않는다. 성서 전통의 자료들과, 이제는 과거 그 어는 떄보다 더 잘 알려진, 고대 근동 역사의 자료들을 비교하면서 역사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어 왔다. 모세의 연대에 대해서 학자들은 기원전 15세기(에집트의 제18왕조, 특히 툿모시스 치하 때)13세기(19왕조 특히 세토스 1, 람세스 2세 또는 메르넵타 치하 때) 사이를 오가곤 하였다. 그러나 제18왕조 때 에집트인들이 팔레스티나를 지배한 사실이 야훼계전승 안에 그 흔적을 남겼을 것이라는 점에 유의하면서,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이른바 짧은(, 13세기에 탈출이 이루어졌다는) 연대기를 채택한다. 그때 그 지역의 정치적인 상황들을 고려하면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에집트 탈출의 사실들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기원전 16세기, 에집트의 신왕국은 150년 전 아시아에서 침입한 힉소스족을 내쫓는다. 특히 15세기에 툿모시스 3세가 등장하면서 에집트는 가나안 땅을 더욱 굳건히 지배한다. 그러나 14세기는(아멘호텝 4세 또는 툿안크아몬 때의) 이른-아마르나로 불리는 종교의 위기를 겪어야 했던 에집트의 약하로 특징지어지는데, 이때 가나안의 봉신 들은 증대하는 히타이트인들의 위력, 그리고 고대 문헌들에서 하비루/하피루라 불리는 거친 유랑민들이 일으키는 소요로 위협을 받게 된다(‘하비루/하피루라는 낱말이 이방 난민이나 유랑민 집단과 같은 사회적 신분을 뜻하는지, 아니면 한 민족을 가리키는지, 그리고 하비루/하피루히브리인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런 문제에 대해 학자들은 아직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을 호전시키려고 장군 하나가 (13세기에) 19왕조를 세워 수도를 나일강 삼각주로 옮기고 지중해변을 요새로 만든다. 그리고 람세스 2세에 와서는 히타이트 왕국과 맞서게 된다. 이때 이 삼각주에 살면서 에집트 정부에 일정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던 셈족 계통의 인력을 에집트인들이 끌어다 쓴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다른 셈족 사람들처럼 파라오의 대아시아 정책을 수행하려고 교육을 받았을) 모세는 성공리에 자기의 종족을 광야로 이끌어내어 그들의 종교생활을 정비하였다. 그들은 무엇보다 요셉 집안(에브라임과 므나쎄 지파)과 레위 집안에 속한 사람들로서, 모세는 이들이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러한 큰일을 한 것이다.

그리하여 가나안에서 다른 지파들이 그들과, 그리고 당신 백성을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내신 하느님과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한 유랑민을 당신의 소유”, “사제들의 왕국”, “거룩한 민족으로 만드시겠다는 뜻을 그들에게 밝히시며 개입하신, 당시의 인간적 - 역사적인 틀이다(19, 5-6). 결국, 주님의 계약 안에 모든 인간이 모여들기 시작하는 것도 바로 거기에서부터이다.

 

4. 탈출기의 문학적 구성

1 - 28 : 역 사 서 술

19 - 40 : 법 률

1,1 - 12,36

에집트 탈출

준비

12,37 - 15,21

에집트 탈출

15,22 - 18,27

광 야 여 행

19-24 ; 32-34

시나이 계약 과

갱 신

25-31 ; 35-40

전례(장막,사제)

지침과 실시

이 스 라 엘 백 성 에 대 한 하 느 님 의 구 원

역 사 적 구 원

계약적 구원

전례적 구원

창세기는 요셉이 110세가 되어 죽을 때에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어 이땅에서 이끌어내시고 아브라함과 이사악, 야곱에게 주시마고 맹세하신 땅으로 올라가게 하실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희를 찾아오실 것이다라고 말하고 죽는 것으로 끝맺는다(50, 22-26). 창세기를 잇는 탈출기는 첫 부분은(1, 1-7) 에집트에 간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을 소개하고, 그들의 후손들이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 찼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와같이 두 책은 그 인물이나 무대로 보아 연결 된 책 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상황은 틀린다. 여기서는 요셉과 그 형제들이 누리던 특권은 없어지고 마치 노예처럼 되어 혹독한 고생을 하고 있다. 가끔씩 탈출기를 문학유형상 역사서술 책으로 간주하지만, 여기에 해당하는 부분은 1-18장까지뿐이다. 19장에서 마지막 40장까지는 분명히 법률 부분이다. 이러한 역사 부분과 법률 부분으로의 구분은 또 다른 이유에서도 타당하다. 역사 부분에서는 이야기의 무대나 사건이 진행상태인 데 반하여 법률 부분에서는 그 무대가 시나이 산에서 정지된 상태에 있다. 또 역사 부분에서는 탈출기의 대주제인 하느님의 역사적인 구원 행위를 다루는 반면, 법률 부분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구원을 바탕으로 이 구원을 계속 보장하고 지속시키는 계약을 통한 구원행위와 전례적 구원행위를 다룬다.

5. 주제 및 내용

 

모세오경(다섯 두루마리로 나누어서 통에 넣어 보존 했다 해서)은 전체가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기초를 놓는 데 관한 이야기라 하겠다. 그중에서도 탈출기는 가장 중심이 되는 사건들 즉, 하느님이 직접 다스리는 신정왕국으로 이스라엘을 창건한 사실과 이같은 특별한 사건에 얽힌 과정, 그리고 그에 관련된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이미 공부한 바 있는 창세기는 하느님 나라 백성이 될 이스라엘이 에집트로 흘러 들어간 사실까지 다루고 있는데 이것은 곧 출애굽 사건의 전주곡 구실을 한다고 하겠다. 즉 창세기에서는 아브람함이 메소포타미아에서 부르심을 받고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의 선조가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큰 백성을 이루리라고 되풀이 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은 야곱의 아들이 에집트로 내려가 살게 된 경위와 또 하느님이 요셉을 이용하여 그들의 정착지를 어떻게 섭리적으로 마련하셨는지를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창세기와 탈출기를 이어주는 직접적인 고리는 요셉이 그 형제들에게 남긴 유언이다. “내가 죽어도 하느님은 반드시 당신들을 찾아 오시어 당신들로 하여금 이땅에서 떠나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올라가게 하시리라(창세 50,24 ; 46,3).

 

탈출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에집트로부터의 탈출에서 책이름을 땄다. 탈출기뿐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지는 세 권의 책들(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서까지 중심적인 인물은 모세(Moses)이다. 그는 하느님의 사람이자 백성의 사람으로서 히브리인들이 영도자이며 입법자, 그리고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한 위인이다. 그는 하느님의 선민으로 자라나 인류를 위하여 참으로 위대한 사명을 부여받도록 평생을 바쳤다.

 

이 위대한 사명이란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보존할 뿐만 아니라 세계에 메시아를 베출해 내는 일이다. 에집트로부터의 탈출은 에집트의 압제, 모세의 영도, 재앙 등과 함께 이책의 중요한 사건임에는 틀림 없지만 하느님이 지상에서 당신 나라의 기초를 놓는 결정적 사건들 중의 하나에 불과 하다는 것을 구세사적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탈출기의 단순한 구성은 다음과 같다.

 

1(1-12) : 매우 알아듣기 쉬운 이야기로 엮어져 있다.

(1) 히브리인들이 너무나 급속히 팽창하는 바람에 에집트왕 파라오는 정치적 위험까지 느끼고 히브리인들을 압박하고 인종말살의 정책을 편다(1).

(2) 이 백성을 패방시키라는 사명이 모세에게 주어진다(2-6).

(3) 파라오는 모세의 요구를 거절하고, 하느님은 열 가지 재앙을 내려 마침내 파라오를 굴복 시킨다(7-12).

 

2(12-18) : 에집트 탈출이 결정적인 사건들의 전개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에집트 탈출과 시나이산에 이주하는 과정 즉 히브리인들은 가까스로 자유를 얻어 에집트를 탈출했고 파라오는 뒤늦게나마 전차대를 풀어 추격한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기적적으로 골풀바다(홍해)를 건너고 파라오의 전차대는 물속에 잠긴다. 하느님은 히브리인들에게 만나라는 음식을 내려 주시고 바윗돌에서 생명수가 솟아나게 하시며 시나이산으로 인도하신다.

3(19-24) : 탈출기 뿐 아니라 구약 성서 전체의 핵심되는 중요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하느님과 히브리인 사이에 계약이 체결되고 하느님이 시나이산에서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어 지상에서의 신정왕국을 세우시고 하느님과 선민을 결합하고 계약을 맺으셨다. 이때 하느님이 내려주신 십계명은 영구불변하게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도덕법이다. 이는 장차 이스라엘이 준수해야 하고 또 하느님 백성의 모든 생활규범이 되는 것이다. 이를 받고 이스라엘은 제물로 바친 수송아지의 피를 뿌렸고, 따라서 하느님과의 계약이 체결되었다(24장 참조).

 

4(25-40) : 계약의 궤와 성막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이 성소는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곳이요, 또 모세에게 말씀을 내리시는 곳이다.

 

탈출기에 나타나는 이스라엘 민족국가 형성 과정은 다른 민족국가와는 다른 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 강력한 집단의식 : 이스라엘 사람들은 같은 조상(성조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혈연관계로 뭉쳐져 있었고 이방인 지역에서 하나의 통일적 집단을 형성하며 명맥을 이어 나갔다. 이들이 집단의식은 민족 전체의 사할을 건 투쟁이었다.

 

(2) 통일에의 확신 : 이방 지역의 지배자들의 압박(: 강제노역, 사내아이 살육 등), 모세의 영도로 전개된 파라오와의 집단투쟁 및 그 절정인 열 가지 재앙들, 그리고 마침내 에집트 탈출과 홍해를 건넌 기적 - 이 모든 사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깊은 인상을 박아 준 통일에로의 확신 체험이었다.

 

(3) 신정일치의 국가 : 처음부터 신정일치의 공동체로 출발했다. 하느님이 당신의 대리자를 시켜 통치 하셨으며, 이 대리자들은 십계명과 탈출기 라는 에 수록된 보조법(계약의 법전)의 준수 여부를 지휘 감독하였다.

 

(4) 지정된 땅 : 에집트와 시리아 사이예 길다랗게 가로놓인 팔레스티나는 하느님이 장차 이 독특한 백성의 국토가 되도록 지정해 주신 땅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마침내 이땅에 이르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민수기와 여호수아에서까지 다루어지고 있다.

 

 

 

 

 

 

탈출기가 다루고 있는 내용 전체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에집트 안에서의 이스라엘 백성과 탈출 준비 (1, 1 - 12, 36)

 

1) 이스라엘인들의 번성 : 1, 1-7

2)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박해 : 1, 8-22

3) 모세의 탄생과 입양 : 2, 1-10

4) 모세의 도망과 미디안에서의 체류 : 2, 11-22

5) 모세를 부르심 : 2, 23-4, 9

6) 조력자 아론 - 4, 10-17

7) 모세의 귀환과 파라오의 고집 : 4, 18-5, 14

8) 이스라엘인들의 불평과 하느님 약속의 갱신 : 5, 15-6, 13

9) 모세의 선조들 : 6, 14-27

10) 모세와 아론의 사명 : 6, 28-7, 13

11) 열 가지 재앙들 : 7, 14-11 ,10

물이 피로 변함 : 7, 14-24

개구리떼 : 7, 25-8, 11

모기뗴 : 8, 12-15

등에떼 : 8, 16-28

가축들의 전염병 : 9, 1-7

피부병 : 9, 8-12

우박 : 9, 13-35

메뚜기떼 : 10, 1-20

어둠 : 10, 21-29

맏아들의 죽음 : 11, 1-10

12) 과월절과 무교절 : 12, 1-28

13) 파스카 : 죽음과 구출 - 12, 29-36

 

(2) 탈출 과 방랑 (12, 37 - 18, 27)

 

1) 에집트에서의 출발 : 12, 37-53

2) 누룩 없는 빵과 맏아들의 봉헌 : 12, 37-51

3) 이스라엘이 속박 장소를 떠남 : 13, 17-22

4) 갈대 바다를 건넘 : 14, 1-22

5) 에집트인들의 멸망 : 14, 23-31

6) 승리의 노래 : 15, 1-21

7) 마라와 엘림 : 15, 22-27

8) 만나와 메추라기 : 16, 1-36

9) 바위에서 물이 나옴 : 17, 1-7

10) 아말렉의 도전 : 17, 8-16

11) 모세가 이드로를 만남 : 18, 1-12

12) 재판관 재도 설립 : 18, 13-27

 

(3) 계약 (19, 1 - 24, 18)

 

1) 이스라엘의 시나이 도착 : 19, 1-3

2) 야훼의 약속 : 19, 4-8

3) 시나이에서의 신현 : 19, 9-25

4) 십계명 : 20, 1-17

5) 모세의 중재 : 20, 18-21

6) 계약의 책 : 20, 22-23, 33

예배에 관한 법 : 20, 22-26

종에 관한 법 : 21, 1-11

살인에 관한 법 : 21, 12-17

과실치사상에 관한 법 : 21, 18-36

절도죄에 관한 법 : 21, 37-22, 14

기타 사회적 법 : 22, 15-30

이웃에 대한 정의와 의무 : 23, 1-9

종교적 법 : 23, 10-19

주위해야 할 일들 및 약속 : 23, 20-33

7) 계약체결 : 24 ,1-11

8) 시나이 산 위에서 모세의 체류 : 24, 12-18

 

(4) 성막 및 성궤 (25, 1 - 31, 17)

 

1) 건축재로와 비품 모음 : 25, 1-9

2) 성궤의 모형 : 25, 10-22

3) 제상의 모형 : 25, 23-30

4) 등잔대의 모형 : 25, 31-40

5) 성막 : 26, 1-14

6) 성막의 틀 : 26, 15-30

7) 성막의 휘장들 : 26, 31-37

8) 희생재단 : 27, 1-8

9) 성막 울 : 27, 9-21

10) 사제의 옷 : 28, 1-5

11) 에봇과 가슴받이 : 28, 6-30

12) 다른 옷들 : 28, 31-43

13) 사제들의 임명식 : 29, 1-9

14) 사제 임명 제사들 : 29, 10-37

15) 날마다 드릴 번제 : 29, 38-46

16) 분향제단 : 30, 1-10

17) 인구조사 및 세금 : 30, 11-16

18) 물두멍, 성별하는 향유, 가루향 : 30, 17-38

19) 기술자들 선택 : 31, 1-11

20) 안식일 : 31, 12-17

 

(5) 계약파기(배반)와 계약갱신 (32, 1 - 34, 35)

1) 황금 송아지 : 32, 1-29

2) 모세의 중재 : 32, 30-35

3) 떠나라는 명령 : 33, 1-6

4) 만남의 장막 : 33, 7-11

5) 모세의 기도 : 33, 12-23

6) 계약판의 갱신 : 34, 1-9

7) 계약갱신 : 34, 10-28

8) 모세가 백성들에게로 돌아옴 : 34, 29-35

 

(6) 하느님 지시의 수행 : 성막 건축 (35, 1 - 40, 38)

1) 이스라엘의 소임과 성막 건축 : 35, 1-39, 43

2) 성막 봉헌 : 40, 1-38

 

(7) 모형 : 그리스도의 모형

1) 과월절의 어린 양

하느님께서 정해주심 12, 13 - 요한 1,29 ; 묵시 13,8

흠이 없어야 됨 12, 5 - 1베드 1, 18-19

죽임을 당해야 함 12, 6 - 루가 24, 26

뼈를 꺽지 말아야 함 12, 46 - 요한 19, 36

피를 뿌려야 함 12, 7 - 히브 9, 21-23

고기는 불에 구워 먹어야 함 12, 8 - 요한 6, 53-54 ; 사도행전 2, 23

이는 희생제물로 십자가에 죽으실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함.

2) 만나 16, 11-35 - 요한 6, 32-35

하느님의 선물이며 알맞게 주시면서 (2일 분을 한꺼번에 주시지 않았음) 모자라지 않았다.

3) 반석 17, 1-7 - 1고린 10, 4

호렙 산의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한다

4) 첫 열매 22, 29 - 1고린 15, 20

(8) 신약에 나타나는 탈출기

 

모세의 출생 2, 2 - 히브 11, 23

모세가 에집트인을 죽임 2, 11-12 - 사도행전 7, 24

불타는 떨기나무 3, 2 - 사도행전 7, 30

과월절 양 피를 바름 12, 7 - 히브 12, 14

홍해를 건넘 14, 22 - 1고린 10, 2 ; 히브 11, 29

십계명 20, 1-7 - 마르12,29 ; 1고린10,14 ; 로마13,9 ; 마태5,33. 7,7 ; 루가23,56

언약의 피 24, 6-8 - 히브 9, 19-22

모세의 얼굴 위에 덮인 수건 34, 33 - 2고린 3,13

 

묵상 : 하느님과 직접적인 만남

 

(9) 구약의 십계명과 새 계명비교

 

구약의 계명 : 십계명 2 4

새 계약과 새 계명

예레 31, 33 ; 히브 8, 10 ; 2고린 3, 2-3

1. 돌판에 율법을 기록

2. 우리가 행하면

축복을 받고 행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

 

 

 

 

 

 

1. 생각, 마음에 기록

2. 새 계명 : 요한 13, 34 -“서로 사랑하라

3. 우리가 행하면

하느님 백성이 되고 : 히브 8, 10

제자 되고 : 요한 13, 35

벗이 되고 : 요한 15, 14

자녀, 상속자 되고 : 로마 8, 16

아들이 되고 : 마태 5, 45

아빠, 아버지라 부르고 ; 로마 8, 15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게 되고 :

요한 15, 10

하느님 안에, 하느님이 우리 안에

계시게 됨 : 1요한 3, 24

 

 

 

 

 

 

 

(10) 성전과 제사 비교

 

구 분

구 약

신 약

예 배 장 소

1. 이동하는 성막 성전

2. 솔로몬이 건축 후

예루살렘에만 있었다.

1열왕 8, 62-66

3. 건물로만 상징

1. 장소 구애 받지 않음 : 요한 4, 20-24

2. 영적인 예배드림 : 요한 4, 20-24

3. 가시적인 성전 어디든지 건립 가능

4. 우리들 자신이 성령의 궁전 :

1 고린 3, 16 ; 6, 19

지성소 출입

* 대사제만이 출입

* 누구라도 출입할 수 있다.

마태 27, 51 ; 히브 10, 19

사 제 자 격

* 아론의 후손들

레위기 지파

1. 예수 그리스도(유다 지파) : 히브7,1-25

2. 가시적인 교회에서는 어느 나라 사람이 든지 사제가 될 수 있다.

3. 모든 크리스챤은 사제직에 참여한다.

1베드로 2, 9

제 물

* , , 염소 등, 동물

* 날마다 봉헌

* 예수 그리스도의 단 한 번 봉헌 :

히브 7, 26-27

* 우리들 자신이다 : 로마 12, 1

 

1) 에집트에서의 이스라엘 백성과 탈출 준비(1,1 -12,36)

 

요셉의 죽음에서부터 모세의 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관해서는 탈출기에 아무런 언급도 없다. 성서에는 그 기간이 400년간 이었다고 밝혀 두고 있다(창세 15,13 : 사도 7,6). 탈출기는 1,7이스라엘 백성은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 찰만큼 무섭게 불어났다는 말씀이 있는데 이 기록 뒤에 숨겨진 역사적 배경이 중요하다.

 

셈족은 한때 강대한 힘으로 에집트 세 12왕조(기원전 1992 -1779)때에 에집트 삼각주를 침입한 적이 있다. 또한 기원전 1720년 경에는 셈족에 속하는 힉소스족이 에집트를 점령해서 지배 하다가 기원전 1550년 테벤(Theban)의 왕자 암모스(Ammose)에게 항복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셈족은 학살 당하거나 농노로 환원되었다.

 

이스라엘도 역시 셈족에 속했기 때문에 힉소스족과 똑같은 보복을 받았다. 탈출기 1, 8-9그때 요셉을 도무지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에집트의 왕이 되어---”라고 기록되어 있는 대로 하나의 비극이 연출되고 있다. 새 임금은 제 19왕조 람므세스2(기원전 1290-1224)라고 보고 있다. 강제 노역에 관해서는 (탈출 1,11-14. 15--21 ; 2사무 20,24 ; 1열왕 4,6 ; 5,28)에 잘 나타나 있다.

이스라엘은 에집트에서 노예로 전락했고 서서히 말살되는 운명에 처해 있었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사내들을 모조리 토목공사에 징발했고 사내아이들은 태어날 때 죽여 없앴다. 과거 여러 세기를 두고 하느님이 성조들에게 내린 자손이 바다의 모래알 처럼, 하늘의 별처럼 번성하리라는 약속은 빈 말처럼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약속을 내리신 하느님은 빈 말하는 분이 아니다. 어찌보면 이 겨레가 처한 암담하고 처참한 상태는 옛 성조들의 후손들이 성조들에게 내리신 하느님의 음성을 새삼스럽게 이해하고 하느님의 현존을 새삼스럽게 체험할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한 자그마한 소수의 이방민족이 너무 번성, 강대해져서 다른 민족의 안정을 위협하는 힘을 간주되게 되었다는점만 갖고서도 하느님의 약속은 실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하느님의 약속이 파라오의 정책으로 말소될 수는 더 더욱 없는 것이다. 하느님은 이런 악랄한 정책이 펼쳐지고 있는 사이에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셨음을 성서는 알려준다. 그러나 하느님은 자기 백성의 모든 사정을 살펴보시고 있었을 뿐 무능하거나 무관심했던 것이 아니다.

 

산파들의 이야기(1,15-21)와모세의 유아시적 이야기는 하느님의 보호하심의 증거이다(2,1-10). 종이풀로 엮은 광주리를 가져다 아스팔트칠을 하고 송진을 먹이고 나서 그 안에 그 사내아이를 넣어 나일강 갈대숲(등심초) 사이에 놓아 두고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길런지 알아 보려고 그 아이의 누이가 멀찍히 서서 지키더라(2,3-4). 아기 모세를 띄운 자리는 오늘날 콥틱정교회 성당자리로 아기예수 부모피난처와 일치한다.

 

하느님은 항상 하시던 방법 대로 전혀 뜻밖의 일로 인간사에 개입하신다. 만사가 하느님 손 안에 있으며 하느님은 만사를 당신 목적에 활용 하신다. 상반되어 보이는 일까지도 당신 뜻하시는 대로 당신 목적에 활용하신다. 나일강가에 떠 내려 가던 조그마한 종이풀 광주리에 이 백성의 모든 희망과 장래가 담겨 있었다. 바구니 속의 아기는 다름아닌 파라오의 딸 손에 구출되어 왕궁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당대 최고의 교육 생활 조건에서 장차 이스라엘의 지도자이며 입법자다운 성장을 했다. 파라오와 왕궁은 자기도 모르게 하느님의 계획에 봉사했던 것이다(2,1-10). 바구니 속에 담겨 나일강에 띄어진 모세의 이야기는 하느님이 어떻게 약한자를 택하여 강한자들을 당황하게 만드셨는가를 모여준다.

 

유아 모세 이야기와 아기 예수 이야기도(헤로대왕의 잔인하고 무자비한 어린 이기들 학살 이야기) 현저히 닮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하 그것은 이 세상의 권력잡은 자들의 적의가 하느님의 계획을 어떻게 방해하려 하는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강한 자들의 적의 마저도 하느님은 당신 구원 계획 안에서 이용하심을 뜻한다. 예수아기의 피난처와 모세를 건져낸 자리가 일치하는 콥틱정교회 성당자리에서 모세와 예수의 구세사적 출발이 일치함을 느낄 수 있다.

 

모세는 어른이 된 후 자기 핏줄을 알아낸다. 그는 이미 에집트 궁정에서 성장했고, 에집트인들의 고급 학문을 익혔고 그 말과 행동에 있어서 뛰어난 인물이 되었다(사도7,22). 그러나 그는 자기 겨레가 받는 압박을 보다 못해 왕궁에서 얻을 수 있는 명예, 부귀, 화려한 장래를 내버리고 일을 저지르고 파라오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미디안으로 도망친다. 그가 에집트인을 죽인 것은 순전히 모세의 격정(의협심, 열정)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힘을 과시 했으며 자기 민족들이 자기 뜻에 쉽게 동조하리라고 과신했지만 그의 인간적인 의도는 좌절되고 만다. 하느님은 그를 하느님의 사람으로 만들이 위해 미디안 땅에서 훈련 시키셨다.

 

그는 그의 조상들처럼 양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는 하느님의 계시가 있을 때까지 이 일을 하였다. 미디안은 시나이 반도의 동남부에 위치한다. 모세는 미디안 땅에서 르우엘 이라는 사람의 집안에 몸 붙여 살면서 그이 딸 시뽀라에게 장가까지 들어(2,21 ; 4,25 ; 18,2)옛 조상들이 했듯이 유목민생활을 하면서 광야의 악조건을 극복하는 법을 익혔다. 모세가 사명 받을 준비가 갖춰졌다고 판단 하시자 하느님이 시나이 산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나신다 그리고 당신 백성을 에집트에서 해방시키라는 사명을 맡기신다(3). 그 때에 하느님은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을 밝히신다. 히브리 백성이 장차 받들어 섬기고 부를 이름이다.

 

모세는 부름을 받았고, 말씀을 들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로 하여금 하느님의 구원계획의 도구가 되게 하기 위하여 하느님은 그를 따로 내세우셨다. 모세는 이제자기 자신의 힘에 의해 움직이지 아니하고 하느님 능력 안에서 메사를 진행 하였던 것이다. 야훼 라는 이름은 뜻을 풀면 “I am who I am”(Ego sum quisum). “나는 곧 나다. 존재자이다라는 뜻이다.

성서저자에게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 천지를 찬조하신 하느님이요, 아브라함과 성조들에게 나타나셨고 언약을 내리신 참 하느님이시다. “나는 곧 나다라는 좀 이상하게 들리는 이 낱말은 하느님께는 시간이 상관 없으며, 그 어른은 결코 변하지 않으신다는 것, 하느님은 당신 언약에 항상 충실 하시어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당신 언약을 절대 이행해 주신다는 사상이 담겨있다. 또한 어려움이 닥친다면 오히려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과시할 기회가 될 뿐이다.

 

그 어른이 유일하신 참 하느님 이시고 그 어른께 전적으로 귀의해도 좋다는 것을 생생하게 체험시킬 따름이다. 성조들에게 보여 주신 축복들은 그 자손들에게 끝까지 계속 지켜 주신다는 확신이 나타난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당신의 신비로운 이름을 밝힌 다음 너희 선조들의 하느님,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다시 밝히신다. 이처럼 당신의 신비로운 이름을 다시 상세히 밝히심으로써 모세나 이스라엘인들은 야훼라는 이름의 뜻을 훨씬 구체적을 알아 들을 수 있었고, 모세를 비롯한 이스라엘인들은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으로부터 계승되어 온 전통적 자손임을 즉, 하느님의 선민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모세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일단 회피할 생각부터 가졌다. 말주변이 없다고 슬쩍 핑계를 대었다(4,10). 이는 회피 했다기 보단 하느님의 종이 된다는 점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의 반응이라고 봐야한다. 야훼껫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나의 아들을 놓아 보내어 나를 섬기게 하라. 그러나 네가 저를 놓아 보내기를 거절 한다면, 보라! 내가 너의 자식, 너의 맏아들을 죽이리라(4,22-23). 누구의 아들이 살해 될 것인가? 하느님의 장자인 이스라엘인가? 아니면 파라오의 맏자식인가?

 

하느님의 은혜와 심판을 다루고 있는 구약에서는 파라오의 아들이 죽는다. 이때 하느님은 정의로운 심판을 하시는 정의의 신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구세사업을 다루고 있는 신약에서는 하느님의 아들이 죽임을 당하고 희생제물이 된다. 이 때의 하느님은 인류를 구원 하시는 사랑의 신이다.

 

모세의 생애와 업적

모세의 생애와 업적에 관한 자로는 오직 성서 뿐이라 하겠다. 고고학적 증거로 에집트에서 히브리인들이 노예생활을 한 것과, 가나안으로 침입한 것 등 모세와 연관된 성서적 사건들의 신빙성을 본질적으로 확증해 줄 수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모세라는 인물과 그 행적에 미치지 못한다. 오히려 성서 안에 낱나나는 모세 이후의 이스라엘의 신앙과 관습으로부터 모세의 영향을 소급해서 추론 해 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출생 이야기

모세의 출생 설화는 장래의 지도자가 될 사람을 소개하기 위한 민간 설화를 사용했다고 본다(2). 대부분의 민간 설화가 그렇듯이 여기서도 적절한 전조가 나타나고 특별한 힘을 가진 사람이 나타날 것을 알려주며 불길한 미래를 암시 해준다. 에집트 왕실이 악랄한 칙령을 내리지만 오히려 그왕실이 가장 겁내고 있는 그 아이를 양육시키는 이적행위를 범한다. 출생설화가 이스라엘에서 유래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

 

갈상자에 넣어 갈대 사이예 숨겨져 물에 떠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가드(Agade)의 사르곤(Sangon)출생 신화와 비슷하다. 사르곤은 유프라테스강에서 구조되어 어른이 되어 아카드(Akkad)라는 바빌로니아의 대도시 국가를 창건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모세는 특별한 업적과 해방을 이룩한 사람들을 예고하는 고대 근동의 공통적인 사고 방식으로 소개된 것으로 보인다.

 

레위 조상

모세의 조상과 레위 가문을 연결 시키는 것(2,1 : 레위 가문에 한 남자가 있었는데<=아므람> 그는 같은 레위 가문의 여자를<=고모 요게벳>아내로 맞았다 6,20)은 비록 그가 후에 제사장 직분을 행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사장의 가문과 연결 시켜려는 관심이 생겼을 것이다. 탈출기 2,1-2에서는 모세가 맏자식으로 낱나나는데, 다른 곳에서는 미리암(Miriam)과 아론(Aaron)이 모세의 손 위임을 뜻하는 구절이 있다(2,7 ; 6,20 ; 7,7).

이런 모순은 모세가 본래 레위족이 아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실제로 모세는 제사장의 직능들을 자기 아닌 다른 사람들, 즉 아론과 레위인(32,5. 29), 그리고 계약을 체결할 때 제사를 지낸 평신도로 보이는 청년들(24,5)에 의해 수행케 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에집트의 영향

모세를 에집트 사회와 연결 시키는 전승은 학실한 것 같다. 모세라는 이름은 분명히 태어나다란 에집트어 동사의 고대형 완료 형태이다. 이말은 Ra-Meses 처럼 신의 칭호들과 결합되어 개인의 이름으로 쓰이는 경우가 자주 있다. 성서에서는 그 유래가 파라오의 딸로부터 비롯 되었다고 보고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그녀가 그를 물에서 건져 내었음이다(2,10)고 하는데 이것은 비슷한 발음에 근거한 대중적인 어원을 나타낸 것이다.

 

레위 족보에는 수 세대 동안 Phinehas, Hophni, Merari(또한 아론과 미리암)과 같은 에집트어적 기원을 갖는 이름들이 나오는데(6,16-25), 이는 에집트와 연결에 대한 부차적인 증거가 된다. 그러나 모세나 레위인들이 에집트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모세와 파라오와의 협상 중에서도 그것에 관한 언급이 없다. 하긴 그 두사람 사이에 언어의 장벽이 없었다는 것은 모세와 에집트 왕실이 무관한 것으로 보이는 이 설화의 특징에 반대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지 모른다.

 

미디안의 영향

모세와 미디안(Midian)과의 연결은 잘 입증된다. 이스라엘인들과 미디안인들이 후대에 적대관계예 있었음을 고려해 볼 때(이사 9,3 ; 미디안을 쳐부수던 날 처럼 꺾으실 것입니다), 그런 연결이 사실 없다면 일부러 기록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모세는 여기서 목자로 고용되어 제사장 겸 양떼 주인의 딸 시뽀라와 결혼한다(2,15-3,1). 또 다른 설화에 의하면 모세가 구스(에디오피아)여자와 결혼 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민수 12,1), 이 여자는 아마 시뽀라와 동일 인물일 것이다. 모세와 모세의 야훼 종교가 제의 및 문학적 교훈과 형식에 있어 미디안의 제사장인 이드로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았는지의 여부는 아직까지 확실치않다.

모세의 소명

모세는 백성을 애훼께 인도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는다. 그래서 모세를 야훼의 종으로 선택한다는 이 말씀은 또한 모세가 하느님을 섬기는 백성을 선택한다는 말과 같다. 모세의 소명에 있어 결정적인 특징은 모세가 맡은 소명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출발기를 위해서 봉사 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 뿐이지 계속해서 이스라엘 생활의 중심이 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다.

따라서 초시간적인 의미가 그의 인격예 부여될 수는 없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미래로 지향하게 하는 표시 아래 그들을 에집트로부터 인도해 내기로 되어 있었다. 하느님이 함께 하신다는 보증은 단지 네가 백성을 에집트에서 인도해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느님을 섬기리라(3,12)하는 말씀 뿐이다.

모세 없이, 또는 모세의 지도 없이 약속된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간 것처럼(신명 34,4) 모세가 개입되어 있는 종교도 그가 없이 존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종교는 모세를 자주 자주 재발견, 재음미 해야 했지만 그래서 이스라엘은 과거(모세)에 의해 지시는 받았지만, 그렇다고 모세에게 속박을 받는 것이 아닌 미래를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위임

모세는 이스라엘의 해방자가 되려고 자원하진 않는다. 모세가 에집트에서 압제받는 히브리인들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결과로 시나이 부근으로 온 것으로 되어 있지만(2,11-15), 그 외에는 별로 그를 자유운동의 선봉자로 암시하질 않는다. 오히려 그는 민족해방자 의지를 시도했다해도 애초부터 참담한 실패를 경험하고 미디안으로 도피하여 목자로서 안주하려 했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모세는 특별히 두드러지게 경건한 사람도 아니었다(화려한 궁중생활 등). 더구나 종교적 의미로 하느님 산(3,1)으로 올라간 것도 아니었다. 뜻밖에도 우연히 그는 거룩한 장소로 드러난 그곳을 발견하게 되는뎨 이는 목자로서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다. 그리고 모세가 소명 받기 직전 상태가 어떠했건, 하느님의 산에 일단 올라간 뒤에는 그에게 어마어마한 사명이 부여 되었고, 그는 그 사명 완수를 위해 하느님께 선발된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야훼를 만나기 전에 하느님께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던 인물은 아니었다고 보아야 한다. 오히려 그느 어떤 특정 과업을 위해 하느님의 선택과 은혜 아래 잠재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인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모세는 하느님이 자기를 부르신 것이 유창하게 말하도록 하려는 것 이라고 착각한 나머지 자기는 말 재주가 없는 사람 이라고 한다(4,10). 그런 사실상 그를 부른 것은 하느님께복종하게 하려함이며 따라서 하느님의 목적 속에서는 모세의 무능력이 더 적절한 것이었다.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4,12). 인간의 힘, 재주로서가 아닌 하느님의 힘으로 !

 

야훼가 모세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것은 불타는 떨기나무, 거룩한 땅, 하느님의 이름 등 장엄한 상징들을 통해 묘사된다. 야훼가 자신을 계시할 때 말씀하신 것은 야훼가 에집트에서 히브리인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있으며 그 상황에서 역사(役事)하려고 하신다는 것이다. 모세에게 새삼스럽게 밝힌 하느님의 야훼라는 이름(창세 4,26에도 이미 나온 이름)은 에집트의 사건 속에 역사(役事)하시겠다고 자신의 의지를 분명히 선언 하시는 성명서 구실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가 에집트에 있는 자기 동포들에게 해야 할 일도 하느님에 대하 신비한 지긱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처해 있던 시대가 하느님의 역사(役事)의 개입이 절대적으로 요구되고 있다는 특징을 일깨워 주는데 있었다.

 

야훼라는 이름은 모든 시대의 사건들 속에 나타나시는 야훼 임재의 강렬하고 지속적인 성격을 장조하는 것이다. “내가 네 힘이 되어 주겠다(3,12)는 구절은 야훼의 이름을 아이나믹하게 풀이한 것이며,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이스라엘의 운명을 결정 하시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이사 43,14-21에서 이주제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나오고 있다).

에집트에서의 과정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에집트로 보내어진다. 그는 에집트에 살고 있는 히브리인들과 에집트인들을 만나서 시나이 산에서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 하기로 되어 있다. 그 일은 히브리 백성을 위해 생긴 일이며 모세는 그 일을 그 백성에게 전하는 중개자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특별한 유형으로 선택된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공동체적인 표시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잡다한 하나의 집단으로부터 야훼가 자기 자신의 공동체 창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성도들 때처럼 족장에 의해 어느 족속이 새로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기존하는 잡종들을 한 종류로 규합시킨 것이다).

 

따라서 모세의 과업은 야훼의 의도에 의한 것이다. 즉 한 집단이 새롭고 모험적인 공동 경험을 하도록 하는 것이며 그 경험을 통해 그 집단을 인도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 경험에는 이 세상의 공동생활에 필요한 사회적, 경제적, 법적, 제의적 구조들의 지속적인 형태가 첨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구조들이 형식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이웃들의 구조를 모상한 것일지라도 이스라엘은 독톡한 역사적 경험에 의해 창조된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에 적합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구조들 이어야 한다.

 

모세의 첫 과업은 에집트에 있던 많은 식구들(12,28)을 이끌고 떠날 전략을 짜는 일이다. 모세의 노력이 물론 거창하게 묘사되고 있긴 하지만 성서의 주인공은 야훼 하느님과 파라오라 하겠다. 파라오의 배후에는 에집트 전체의 힘이 있다. 즉 신성화된 왕권과 주술사들, 그리고 군대들이다. 에집트의 신들이 야훼의 적대자로 언급된 것은 단 한번 뿐이지만(12,12) 그들의 힘이 어떠한지 일단 그 경쟁에 성패가 걸려있다. 온 땅에 자기와 같은 자가 아무도 없음을 보이려고 하는 파라오의 지나친 교만(5,2 ; 9,16-17)과 에집트 마술사들의 신비한 술법은 에집트 신들의 힘에 의존한 것이다.

 

모세는 자기 백성 앞에서 인정을 받고 내 백성이 내 앞에서 축제를 올리도록 광야로 내어 보내라(4,30 -5,1)고 하신 하느님 명령에 파라오가 순종 하도록 하기 위해 특별한 능력을 받는다. 모세의 표적들과 재앙들이 확신을 주지 못한점으로 보아 그것들은 신앙과 의심, 순종과 반항 사이의 시소게임 같은 형식을 취한다. 또한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도 이스라엘 자체의 의심과 파라오의 고집 앞에 좌절 되기도 했다(8,15 ; 14,11-12). 그러므로 모세를 마술사, 마법사로 볼수는 없다. 그는 자기 뜻대로 상황을 변화키지도 못했고, 그를 따르던 자들로부터 불신까지 받은 적이 허다하다(14,11-16,3 ; 11,4-5).그 자신 노력의 목표인 가나안 땅에 발을 딛지도 못하고 죽었으며, 그의 무덤이 알려지지 않고 그 장소가 제의적 장소로도 되지 못한 것은 모세가 철저히 하느님의 도구로만 쓰여졌음을 알 수 있다.

10 가지 재앙

이스라엘 백성의 에집트 탈출에 관한 기록 중 그냥 흘려 넘길 수 없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야훼계문헌이 전하는 대목으로서 하느님이 봄 축제를 기해서 당신 백성을 해방 시켰다는 것이다(3,18-20). 여기서 커다란 발단이 생겼다. 이제 당신 백성으로 하여금 봄 축제를 지내게 하시려는 하느님과 그러한 경신적 축제를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 놓기를 거절하는 파라오 사이에 투쟁이 대 서사시처럼 펼쳐진다.

 

이제 에집트에 내려 덮치는 재앙은 이 거창한 싸움을 벌이시는 하느님의 무기이다. 하느님은 모든 자연계 현상까지도 주재 하시는 분으로서 당신 뜻대로 이용 하신다. 모세가 예고하는 재앙은 하느님 분노의 표시이며, 하느님 요구를 학인하는 위협이다. 마음이 완고한 파라오(7,3)는 그 의미를 처음엔 몰랐다가 차츰 깨닫게 된다. 드디어 파라오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하느님의 힘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파라오의 완전 굴복이 있기까지는 인간 심리를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의 위력이 점차 고조되어, 최절정의 순간에 가서야 완전승복을 따 내셨다. 모세가 파라오와의 처음 담판에서 제시한 요청은 유목민들의 몸 축제를 위한 삼일간의 여행과 광야(성소) 제공이었다(5,3). 교만하게 거절한 파라오는(7,22-23) 나일강 물이 피로 변하는 액화를 치룬다(7,22-25). 그러나 완고한 파라오에게는 이런 정도는 모세를 에집트의 마술장이 정도로 밖에 취급하지 않는 제 1재앙이었다.

 

그러나 개구리떼의 소동(2재앙)에서는 파라오의 마음이 조금 숙어졌고 재앙이 끝나자 다시 완고해져 제3재앙(모기뗴)이 닥친다.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을 기만했고, 재앙은 더욱 더 심해져 하느님은 에집트인들의 가축 등을 치셨다(9,1-7). 그러나 파라오는 여전히 완고하여 모세의 청을 듣지 않으므로 제6(종기), 7(우박)의 재앙을 내리셨다. 파라오는 개심한 체 하나 모세는 그의 약속을 믿지 않는다(9,27-30).

 

사실 파라오는 거짓말은 한 것이다. 모세는 완고한 파라오에게 다시 위협적인 말을 던져야 했다. 신하들의 충고로 모세를 만난 파라오는 메뚜기 재앙(8)을 자초한다(10,8-17). 견디지 못한 파라오가 모세에게 재앙을 거두어 달라고 부탁하자 야훼께서 바람을 오게 하시어 메뚜기떼를 검은 구름처럼 바다로 몰아가게 하셨다. 파라오는 모세를 다시 불렀다. 이제 정말 그는 양보할까? 그러나 여전히 파라오는 완고했다.

 

재앙이 절정(9, 10재앙 ; 어두움과 맏배 죽이심)에 도달한다. 야훼계 사료에는 모세가 지팡이로 모든 재앙을 불러 일으켰다(4,17. 28 ; 7,9. 23 ; 10,13. 16 ;17,5)고 한다. 또 엘로힘계 사료에는 하느님 친히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셔(9,12 ; 10,20), 나일강을 피바다로 변하게 하였고 우박, 메뚜기뗴 그리고 어두움과 최후의 강타인 모든 맏아들을 죽이심 등의 4재앙을 내리셨다고 한다. 그런데 10가지 재앙 중 몇가지 재앙은 해마다 나일강이 범람할 때 생기는 자연적 현상들과 일치한다.

그러나 그 재앙이 일어난 경위가 기묘한 데서 기적적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재앙들이 모세의 명령으로 시작되어 역시 모세의 명령으로 끝났고, 재앙마다 혹심하기 짝이 없었고 또 에집트 사람들에게만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10번째 재앙은 자연 현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하느님은 에집트의 모든 맏물들을 징벌로 몰사 시킨다. 그들의 야훼의 맏아들이스라엘(야곱)을 압박해 왔기 때문이다(4,22-23 ; 12,29-33 ; 레위 24,20). 파라오가 반항하면 할수록 하느님의 위력은 더욱더 강하게 나타나신다.

 

이 투쟁에서 최후의 결단을 내리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다 우세한 강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성서의 기본적 테마(Thema)가 밝혀준다. , 역사(役事)는 하나의 결전장이고 여기서 자비의 구원 계획을 실현하시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세력과 당신을 반대하는 암흑의 세력의 맞부딪혀 싸운다는 테마이다. 성서의 맨 끝 책인 묵시록에까지 이 기본 사상은 일관하며 결국 최후의 승리자는 하느님이심을 알게 된다.

 

빠스카 축일

에집트 탈출을 기념하여 해마다 거행된 축제인 빠스카(과월절 Pascha, 넘어간다는 뜻)의 명칭은 하느님의 사람을 비롯하여 가축에 이르기까지 에집트 안의 맏배를 모두 죽게 하였을 때, 문설주에 양의 피가 묻은 집은 넘어가기로 약속하신 열번째 재앙에서 유래하고 있다(12,13이하). 쉽게 말하면 이 축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에집트 종살이에서 자유로 넘어갔던밤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감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의 죽음 - 부활신비로 쉽게 확장된다. 우리 자신도 죄의 노예라는 죽음에서 은총의 새 생명과 자유로 넘어감으로써 그 신비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빠스카 축제일은 기념의 날이었다(13,13 ; 12,12 ; 신명 16,1-3). 그런 그것은 지나간 역사적 사건에 대한 단순한 희생만이 아닌 것이다. 기념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무척 생동적인 느낌을 주는 말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 축제는 현세대의 사람들이 하느님의 구원활동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그 활동을 기억시키며 지금 여기에 그것을 현존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축제를 지내는 사람들은 우리 조상들은 에집트에서 종살이를 했었습니다라고 말을 한다(13,8 ; 신명 6,20-25).

 

예수님께서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1고린 11,24) 하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이러한 동적인 기념의 형태를 마음 속에 지니고 계셨던 것이다.

원래의 빠스카는 유목민들이 봄철에 가축을 보호하기 위하여 양이나 염소를 제물로 바치던 축제였다. 또한 누룰없는 빵의 축제(무교절)는 농부들이 봄에 보리추수 때에 지내던 것으로써, 누룩 없는 빵 즉 묵은 보리가 아닌 새 보리로 된 빵을 먹었다. 이것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였는데 근본적으로는 햇곡식을 바치는 행사였다. 이러한 빠스카 축제와 무교절 축제는 모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에집트의 탈출 사건과 연결 되었다. 즉 노예살이에서 해방과 죽음에서 생명, 묵은 생활에서 새생활로 넘겨준 하느님의 구원행위의 기념 예식이 되었던 것이다.

2) 에집트 탈출과 광야 생활 (12,37-18,27)

에집트 탈출

역사적 철학적 분석은 이스라엘이 갈대바다(reeds of sea)를 건넌 것이 출애굽의 경험에 있어 처음으로 불을 당기는 순간이었다고 지적한다(14,15-22). 이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 그 사건을 야훼의 승리행위<‘야훼를 찬양하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기병과 기마를 바다예 쳐 넣으셨다(15,21)>로 해석한 것처럼 후대의 성찰도 반드시 그 사건에 비추어 모든 실존을 해석한다(시편 114 ; 이사 51,9-11). 야훼는 자기 백성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자기의 궁극적인 목적에 따라 자연과 역사(役事)를 이용하신다.

이스라엘 후대 해석가들은 자연과 역사의 연결 속에 놓여진 인간의 삶을 이러한 일정한 과정에서 보게 된다. 이 결정적인 순간은 논쟁의 여지가 없으며 하느님의 주권행사에 아무도 동참할 수 없고 모세조차 끼어들 수 없는 순간이다. “너희는 두려워말라. 움직이지도 말고 오늘 야훼께서 어떻게 구원 하시는가 보라(14,13)고 모세가 선언한 표어는 이것을 입증해준다.

 

이 이야기에 대한 최초의 산문형태로 보이는 그 다음의 수식어(14,15. 19,21-22)들은 기적의 범위 뿐 아니라 모세의 중요성을 한층 더 높이려고 한다(14,16. 22. 26). 하지만 모세가 행할 중요한 책임은 이스라엘인들을 에집트인들과 바다 사이 즉 야훼의 도움이 있어야만 그들을 구해낼 수 있는 위치로 인도해 가는 것인 듯하다(14,1-14). 따라서 바다를 건넌 것은 모세의 전략이 찬양을 받을 일이 아니고 하느님의 능력이 찬양 받을 일이다. 야훼만이 자기 백성을 구출 하시기에 적합하시다. 누가 보아도 험난한 길을 잘못든 것처럼 보이는 이 어려움을 자초한 듯 하였다.

 

광야 생활

이와 비슷한 전망이 이스라엘의 광야시대 이야기에도 나타난다(15,22-27 ; 민수 10,29-31).

지리와 후생문제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야훼가 어떻게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양육 하시는지에 대하여 지배적 관심을 보여 준다. 성서에 이스라엘이 시나이산에 머문 때를 다루는 극적이고 법적인 자료(19,1 ; 민수 10,28)의 핵심 내용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경험한 것을 열거한 일련의 삽화라 하겠다.

 

그 이야기는 생존경쟁 즉 물과 음식을 찾고 길을 발견하고, 오아시스를 차지하고, 지휘 안에서 일치와 질서를 보존하고, 적에 의한 멸망을 피하려는 노력을 묘사한다.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갈대바다에서 구출 하셨지만, 시나이 광야에서의 가혹한 생활조건을 극복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러나 야훼는 자기 백성의 고투에 동참하시고 독수리 날개로자기에게로 인도하신(19,4) 그 백성의 생존 의지를 시험하는 동시에 그들의 생명을 보호하시는 것으로 묘사된다.

 

탈출기에 나타난 해방관

에집트인들에게 가장 공포의 밤이었던 10번째 재앙을 치루는날 밤, 히브리인들은 최초로 해방절을(Pascha)지낸다. 이날은 하느님이 에집트의 맏물들을 죽이면서 히브리인들은 거르고 지나가셨음을 실감한 밤이다. 이스라엘이 해방된 민족, 하느님꼐 구원 받은 백성으로 탄생한 이 사건은 세세대대 기념되고 경축 되어야 했다. 대대로 물려 가면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하느님께 관한 교리를 가르치는 기회로 삼았다(12,25-27 ; 13,14-15).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자기네는 바로 출애굽의 역사적 순간에 하느님께 구원 받았고 해방 되었다는 의식을 골수에 사무치도록 배워 알지 않으면 안되었다. 자기네들의 존망은 선조들의 하느님의 선하심과 성실하심에 전적으로 달려 있음을 인정하고 고백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여기에 해방(종살이 하던 사람의 몸값을 내고 그를 자유인의 신분으로 되돌림)의 본 뜻을 글자 그대로 알아 듣게 된다. 하느님은 부당하게도 이스라엘을 노예로 부리던 완고한 주인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출 해 내셨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해방 시키신 백성이라는 자각이 철두철미했다. 전혀 특수한 방법으로 하느님께 속한다는 의식이 강했다. 이스라엘은 그 모든 사건에서 하느님의 놀라우신 권능을 체험했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하느님의 역사를 경험했다. 인간과 사물을 이용 하시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선익을 이루시는 하느님, 더 할나위 없이 절망적인 상태에서 오히려 당신의 은혜로운 전능을 과시하는 하느님을 직접 목격한 것이다.

출애굽 사건에 나타난 하느님의 이 위대한 개입은 이스라엘이 지니는 하느님 신앙의 초석을 이룬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믿었다기 보다는 자기네 역사 한 가운데에서 활동하신 그 현존을, 구원을 베푸시는 그 어른이 전능을, 당신의 언약을 변함없이 이루시는 그 어른의 성실성을 목격하면서 얻었다.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하느님의 첫 번째 약속은 이미 실현을 보았다. 그의 후손이 큰 백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번째 약속이 실현 되어야 했다. 이 백성에게 땅을 차지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거기까지 도달하는 길은 멀고도 험한 것이지만, 그 참담한 상태로부터의 해방과 구출이라는 하느님의 선물이 이미 내린 이상 이미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출애굽의 극적인 사건을 마무리 짓는 환희와 경축의 노래(15,1-21)는 드디어 모든 위험이 사라지고 하느님이 능하신 손과 튼튼한 팔로 이룩하신 놀라우신 일을 깨닫는데서 온 찬미가이다.

바닷물이 갈라진 것은 짐작컨데 동풍과(14,21) 썰물로 인한 자연적 현상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몰이 빠진 바로 그 시각에 무사히 바다를 건넜고, 그 뒤를 쫒던 에집트 군사들은 참변을 당하게 된 시간의 일치가 기적적 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계약 (19,1-24,18)

원래 계약이란 인간 사이에

 

'문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약] 구약입문 2  (0) 2015.02.27
[구약] 구약입문 1  (0) 2015.02.27
[구약] 창세기  (0) 2015.02.27
성서 73권  (0) 2015.02.27
[구약] 랍비의 성서풀이  (0) 201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