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는 누구인가요?
여호수아란 이름은 “야훼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으로, 짧게 줄여 예수아 또는 요수아, 호세아라고도 부릅니다(그리스말로는 ‘예수스’가 됩니다). 어느 분 이름이 떠올려지죠? 눈의 아들로 태어나(민수 14,30) 모세의 충직한 시종으로 활동하였습니다(출애 17,8-16 참조). 갈렙과 함께 가나안 지역을 정탐하였고 모세가 죽은 뒤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되어 가나안 땅을 정복한 큰 인물이었답니다.
'여호수아’란 성서 이름은 어떻게 붙여졌나요?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지도자 여호수아의 지휘를 받아 가나안 땅을 차지한 뒤 지파별로 분배 받는 과정을 기록한 성서로서 역사서, 또는 전기 예언서의 첫째 권입니다. 이 책의 전승상 저자와 중심 인물이 여호수아이기 때문에, 히브리어 성서나 그리스어 성서 모두 그의 이름을 책이름으로 삼았답니다. 우리말 성서도 그렇구요(‘춘향전’ 하는 식이죠).
누가 썼나요?
유대와 교회의 전승에는 여호수아를 저자로 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죽음 기사나 같은 내용이 두세 차례 반복되는 걸 볼 때, 여호수아가 쓴 것은 아니에요. 누가 이 성서를 썼는지는 잘 몰라요. 다만 요즈음 학자들은 전승해 온 여러 자료를 한데 모아 여호수아서를 체계적으로 엮은 이들이 그 뒤에 나오는 판관기, 사무엘서와 열왕기까지 모두 엮었다고 설명해요. 그들이 신명기를 저술 편집한 사람들과 같은 계보에 속한다고 보기 때문에, 그들을 흔히 ‘신명기계 역사가’라 불러요.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의 계약에 충실하고 그분만을 섬길 것을 아주 강조한답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백성으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언제 쓰여졌나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간 시기는 대략 기원전 1200년경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에 관한 이야기들이 구전으로 전해지면서 덧붙여지고 기록된 것은 훨씬 후의 일이에요. 아마도 기원전 7세기경에 꼴이 잡혔고 바빌론 유배 이후인 기원전 5~4세기경에 최종 편찬되었다고 믿어집니다.
왜 썼나요?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선조 아브라함에게 하신, 자손 번성과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늘 기억하고 갈망해 왔어요. 그런데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큰 민족을 이루어서 첫 번째 약속은 이루어졌어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두 번째 약속은 여호수아서에서 결실을 맺게 되어요.
그럼으로써 하느님의 약속은 언제나 유효하며 변함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어요. 다만 인간의 신뢰와 충실 여부에 따라 그 약속의 실현이 늦추어질 수도 있고 앞당겨질 수도 있다고 지적하죠. 또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한 것은 여호수아의 군대가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분명히 밝히시죠.
결국 여호수아서는 당시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던 유대에, 또 멸망하여 실의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 말씀에 따라 살면 생명의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들어 보여줍니다. 그 외침은 오늘의 하느님 백성들에게도 여전히 하느님의 말씀으로 유효하답니다.
<새김과 나눔>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당신 약속에 충실하십니다.내가 지난 해와 새해에 하느님, 또는 자신과 한 약속은 무엇이며,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끔말(1,1-18)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겠다고 하시는 영토의 경계는 어디까지입니까?(1,4)
모세가 죽은 다음, 하느님께서는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세워 당신이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 갈 것을 명하십니다. 당신께서 함께 하실 터이니 두려워 말고 있는 힘을 다해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할 것을 당부하셔요. 여호수아는 이 사실을 전군에 알려 미리 준비하게 하고, 이미 요르단강 동편 지역을 차지한 새 지파에게는 힘을 합쳐 약속의 땅을 정복할 것을 지시합니다. 그들은 이 말에 기꺼이 순종하죠.
라합의 도움과 요르단강 건넘(2,1-5,12)
여호수아가 예리고 지역을 미리 점탐하기 위해 파견한 정탐원 둘은 예리고의 라합의 집에 머물다 그녀의 도움을 받아 추격을 피하게 되어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라합은 장차 이스라엘 백성이 올 때 자신들을 봐 달라고 부탁하죠.
자유를 찾아 홍해를 건널 때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이 때도 요르단강이 멈춰 마른 땅을 밝고 건너게 되어요. 하느님의 놀라운 손길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은 돌 열두 개를 길갈에 세우고 할례를 한 뒤, 가나안에서 첫 과월절을 지내며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죠.
예리고와 아이의 점령(5,13-8,29)
부정한 물건을 탐냈다가 돌에 맞아 죽은 사람은 누구입니까?(7,19-21)
여호수아가 예리고 가까이 이르자 주께서 총사령관으로 임하셔요. 그분이 함께 하시면서 본격적인 예리고 공격이 시작되지요. 야훼의 궤를 모시고 침묵 속에 성 주위를 돌던 이스라엘 백성이 이렛날에 고함을 지르자, 예리고 성은 삽시간에 무너졌습니다. 라합 일족을 제외한 모든 것이 불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지시를 어기고 아간이 부정한 재물을 가진 탓에, 예리고에 이어 공격한 아이에서는 이스라엘이 패해요. 하느님의 말씀을 좇아 그 범인을 찾아내어 처형한 뒤, 다시 아이를 공격하여 함락합니다. 이러한 성서 내용이 자못 잔인해 보이지만, 이는 하느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승리할 수 있음을 가르치는 표현일 따름입니다. 아울러 하느님의 백성은 다른 무엇과도 타협하지 말고 하느님께만 목표를 두고 따를 것을 일러주죠.
마침내 가나안 정복을 끝내고(8,30-12,24)
이스라엘 백성의 용맹함과 하느님의 위업이 널리 소문나자, 겁에 질린 기드온 사람들은 속임수를 써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어요. 또 예루살렘 왕 등 다섯 나라 왕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호되게 치십니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남부와 북부 많은 땅을 차지하게 되었어요.
현재 성서 고고학과 사회학적 연구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을 전쟁으로 정복하기보다 점차적으로 세력을 넓히면서 땅을 차지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서는 이 과정을 압축하여 보여주면서, 가나안 땅은 하느님께서 주셨고 이 일은 그 분의 놀라운 권능을 보여준다고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새김과 나눔>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과거의 역사에서 하느님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사에서, 이 시대의 역사에서 어떻게 하느님을 만났습니까?
요르단 동부지역을 나눔(13장)
레위 지파가 차지한 몫은 무엇입니까?(13,33)
여호수아가 늙도록 아직 불레셋족과 가나안족이 차지하고 있는 땅 등 정복하지 못한 지역이 많이 남아 있지만, 이 땅은 장차 주시겠다고 하느님은 이르셔요(이 약속은 다윗 왕 때 가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현재 차지하고 있는 땅을 각 지파별로 나누어주게 하죠. 먼저 요르단강 동부지역을 르우벤, 가드, 므나쎄 지파의 절반 등에게 나누어 줍니다.
요르단 서부지역을 나눔(14-19장)
이스라엘의 일곱 지파가 추첨을 해서 땅을 분배받은 곳은 어디입니까?(18,10; 19,51)
여호수아의 사제 엘르아잘과 각 지파의 장로들은 제비를 뽑아 요르단 서부지역을 아홉 지파에게 나눠주어요.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갈렙에게는 헤브론을, 유다에게는 북부지역이 주어지죠. 베냐민, 즈불룬, 이싸갈, 아셀, 납달리, 단 지파에게도 추첨을 통해 각자의 몫이 주어집니다.
이렇게 각 지파의 땅이 구체적으로 분배됨으로써, 하느님의 약속이 온전히 이루어져요. 또 땅이라는 생활의 터전이 마련됨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함께 사회생활과 종교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죠.
도피성과 레위인의 성읍(20-21장)
도피성에서 온 살인자는 언제까지 그 곳에서 살아야 합니까?(20,6)
실수로 살인한 자가 앙갚음을 받지 않도록, 요르단 강 동편에 세 개, 서편에 세 개 등 여섯 개의 도피성이 지정됩니다. 그 살인자가 먼저 회중 앞에서 자초지종을 밝히고 바른 판결을 받기 위해서죠. 그리고 하느님께 봉사하는 특별한 직책을 맡은 레위지파에게는 일정한 지역이 주어지지 않고, 대신 그들이 살면서 가축을 칠 수 있는 성읍과 목장지대로 마흔 여덟 곳이 주어져요.
땅의 분배가 끝나자, 이스라엘 백성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이렇게 야훼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겠다고 맹세한 모든 땅을 주셨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그 땅을 차지하고 정착하였다. 야훼께서 이스라엘 가문에 약속해 주신 온갖 좋은 일은 하나도 그대로 안된 일이 없이 다 이루어졌다”(21,43.45).
맺음말(22-24장)
여호수아가 백성과 함께 계약을 맺은 성소는 어디입니까?(24,25)
모든 일이 정리되자, 요르단 동부지역을 분배받은 세 지파는 자기 땅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그들이 거기에 제단을 쌓았다는 말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이교신을 섬기는 줄 알고 공격하려고 해요. 그러면서 양쪽 대표가 만나 진심을 알아 보니, 그 제단은 각 지파의 일치와 하느님 공경의 표시로 세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평화롭게 헤어지죠.
여호수아는 몹시 늙어 죽을 때가 되자 이스라엘 사람들을 세겜으로 불러 유언을 들려주어요. 그는 성조시대부터 지금까지 흘러온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야훼 하느님을 섬길 것인지, 다른 신을 섬길 것인지 다시금 묻고 다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야훼께 충성할 것을 맹세하자 그들과 계약을 맺은 뒤, 여호수아는 숨을 거둡니다.
<새김과 나눔>
여호수아는 거듭거듭 하느님께 충실할 것을 당부합니다. 그분께 충실함은 그분의 말씀에 충실함을 뜻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고 있는지 새겨봅시다.
판관기란 성서 이름의 뜻은?
판관기란 가나안 땅 정착으로부터 왕정이 세워지기 전까지 이스라엘을 이끌던 지도자를 가리킵니다. 흔히 “판가름하는”(판관 11,27) 일을 한다고 해서 판관이라 부르지만, 재판관이란 뜻보다는 통치자의 뜻에 더 가깝습니다. 학자들은 판관들을 두 부류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하나는 외적 공격이나 지배로부터 이스라엘 전체를 구하는 군사지도자, 또는 구원하는 영웅으로서 대판관이라 부릅니다. 또 하나는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분쟁을 해결하고 다스리는 이로서 소판관이라 부릅니다. 이 책에는 12명의 판관에 관한 일이 기록되어 있어 판관기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판관기는 전기 예언서 또는 신명기계 역사서의 둘째 권이기도 합니다.
누가 썼나요?
민족의 위기를 극복한 뛰어난 영웅이나 용사에 관한 이야기는 어느 민족에게나 설화나 민담 등으로 전해집니다. 이런 이야기는 오랜 시일을 거쳐 여러 사람에 의해 다듬어지고 보완되기 마련입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의 초기 시대에 활약한 여러 위인들에 관한 이야기가 왕정시대에 이르러 하나 둘 모아져 기록되었을 겁니다. 이 이야기 묶음을 전체적으로 편집하여 현재의 판관기로 엮은 이들은 ‘신명기계 역사가’이구요.
언제 쓰여졌나요?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왕국 설립 전까지 겪었던 여러 차례의 이민족 지배와 그로부터 해방된 체험은 신나는 민담으로 계속 전해졌을 겁니다. 그러다 기원전 9세기경에 책으로 쓰여졌고, 나라가 위태롭던 기원전 7-6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다듬어져 바빌론 유배 후인 기원전 5세기경에 오늘날과 같은 꼴이 잡혔답니다.
왜 썼나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그 자손이 불어나 백성을 이루고, 가나안 땅을 차지함으로써 모두 실현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느님만을 예배하는 참신앙 공동체로 세워지지 못했습니다. 우상숭배에 빠져든 이스라엘은 그 잘못으로 이민족의 억압을 여러 차례 받아야 했어요. 출애굽 이전의 상황과 똑같게 된 것이죠. 그러다 억압이 심해 울부짖으면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세우신 것처럼, 백성을 이끄는 판관을 세워 해방시켜 주셨음을 판관기는 게속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결국 판관기는 옛날 옛적 판관시절에 이스라엘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려주는 역사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판관기는 하느님을 외면하고 우상을 숭배하게 되면 이스라엘 공동체가 무너진다는 역사적 체험(판관시대부터 바빌론 유배까지)을 바탕으로 하느님만을 섬기길 호소하는 신앙의 책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판관들도 한낱 잘난 영웅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을 받은 사람이었기에 민족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즉 민족의 구원은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이죠. 또 오늘날도 하느님을 알고 바로 섬겨야 공동체에 자유와 평화가 보장된다는 진리를 전해 주지요.
<새김과 나눔>
오늘날의 가정이나 사회에서 판관의 역할을 하는 이들은 누구일까요? 우리는 지도자들을 어떻게 뽑으며 그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합니까?
마지막 가나안 정복(1,1-2,5)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도 가나안 땅 정복은 계속됩니다.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가 가나안 남부 산악 지역을, 에브라임 지파 등 나머지 지파가 가나안 중 북부의 산악 지역을 차지하지요. 그러나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민족을 다 몰아낼 수는 없었어요. 이 부분은 여호수아의 종합편인 셈 입니다.
이스라엘을 건지는 판관들(2,6-3,6)
불레셋 족 등 이민족을 남겨두신 까닭은 무엇입니까?(3,1-4)
가나안에 정착한 새 세대는 야훼를 저버리고 이방신인 비알과 아스다롯을 섬깁니다. 야훼께서는 그들을 원수들 손에 넘기시어 고통받게 하시다가도, 그들이 심한 곤경에 빠지면 판관들을 일으키시어 구원해 주십니다. 그러나 그 판관이 죽으면 이스라엘은 또 다시 예전의 못된 행실을 되풀이합니다.
결국 이 대목은 판관기 전체의 머릿글인 동시에 이스라엘 역사를 보는 신명기계 역사가의 관점을 정리한 부분입니다. 판관시대에도 그렇듯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빌론에게 정복당했다는 설명입니다.
판관 오드니엘, 에훗, 삼갈(3,7-31)
이방신을 섬겨 메소포타미아 왕의 억압을 받던 이스라엘을 구하시려, 하느님께서는 오드니엘을 구원자로 내세우십니다. 마찬가지로 모압 왕의 압제에서는 왼손잡이 에훗을, 불레셋 족에게는 삼갈을 구원자 판관으로 세우십니다. 이들 모두 야훼의 영을 받아 판관이 되었습니다.
판관 드보라(4,1-5,31)
야빈의 군대 지휘관 시스라를 죽인 여인은 누구입니까?(4,17-22)
가나안 왕 야빈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억압하자, 여예언자인 드보라가 구원자로 세워집니다. 드보라는 바락을 불러 군사지휘관으로 삼아 하느님의 이름으로 출전시킵니다. 하느님의 도움으로 놀라운 승리를 거둔 드보라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이 노래를 미리암의 노래와 마찬가지로 기원전 12세기까지 올라가는 아주 오랜 옛 노래입니다.
판관 기드온과 아비멜렉(6,1-57)
요담의 우화에서 왕이 되고자 한 나무는 무엇입니까?(9,15)
이번에는 미디안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힙니다. 하느님께서는 므나쎄 지파에서도 가장 약한 부대의 가장 어린 사람인 기드온을 판관으로 부르십니다. 기드온은 하느님께 표징을 구해 소명을 확인한 다음, 바알의 제단을 헐고 미디안 사람들을 물리칩니다. 사람들이 왕이 되어줄 것을 청하지만, 기드온은 야훼만이 왕이시라며 이를 물리칩니다.
그러나 기드온의 아들 중의 하나인 아비멜렉은 세겜의 원로들을 매수하고 형제 70명을 죽인 뒤 왕 노롯을 합니다. 하지만 점차 세겜 원로들과 사이가 틀어져 그들 모두를 죽이고, 결국 자신도 한 여인의 맷돌에 맞아 죽습니다. 기드온과 달리 스르로 왕이 된 아비멜렉의 비참한 말로는 하느님 이외의 다른 왕을 반대하는 이스라엘의 사상을 잘 보여줍니다.
<새김과 나눔>
판관들이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된 것은 하느님의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구원자는 누구일까요? 그들 안에서 하느님의 영을 볼 수 있습니까?
판관 돌라와 야이르, 입다(10,1-12,7)
입다가 서원한 대로 바친 제물은 무엇입니까?(11,29-40)
아비멜렉 다음으로 돌라와 야이르가 이스라엘 각 지파의 질서를 잡는 소판관으로 활동합니다. 그러나 또 다시 이스라엘이 야훼를 저버리자, 하느님은 그들을 이민족의 손에 넘기십니다. 그들이 고난 속에서 회개하자, 하느님은 창녀의 아들인 입다를 판관으로 세우십니다.
길르앗 원로들로부터 수령으로 모셔진 입다는 야훼의 영을 받아 암몬군을 쳐부숩니다. 그러나 자신의 서원대로 외동딸을 번제제물로 바치는 아픔을 겪습니다. 이 대목은 인신제사라는 옛 관습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하느님과의 약속에 충실했던 한 지도자를 보여줍니다.
판관 입산, 엘론, 압돈, 삼손(12,8-16,31)
이스라엘의 소판관으로 베들레헴 출신 입산, 즈불룬 출신 엘론, 비라돈 출신 압돈이 활약합니다. 그 뒤를 이어 잘 알려진 판관 삼손이 등장합니다. 삼손은 이제껏 나온 판관들과 달리, 이스라엘의 군대를 지휘한 적도 없고 지파의 추대도 받지 않은 채 혼자 활동한 영웅입니다.
삼손은 출생 때부터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영을 받아 힘이 장사였습니다. 그는 그 힘으로 이스라엘을 억누르던 불레셋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다 여인 들릴라의 유혹에 빠져 자기 힘의 비밀을 알려준 그는 엄청난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불레셋인들의 조롱을 받던 그는 하느님께 청하여 되찾은 힘으로 다곤 신전을 무너뜨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죽었습니다.
단 지파의 이동(17,1-18,31)
에브라임 산악지대에 사는 미가라는 사람이 신상을 만들고 떠돌이 레위인을 사제로 임명하여 자기 집을 성소로 만듭니다. 그 때 마침 정주할 땅을 찾아 그 지역으로 올라온 단 지파 사람들이 라이스를 빼앗아 자기들의 성읍으로 삼고 단이라 이름 짓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미가네 집에서 신상을 빼앗아 단에 세우고 섬깁니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단 지파가 북쪽에 자리잡게 된 배경, 왕이 없어 마음대로 하던 시절의 제의의 혼란, 예루살렘에 대항하던 단의 성소가 생긴 기원 등을 설명하려는 뜻에서 넣어진 부록 같습니다.
기브아인들의 만행과 전쟁(19,1-21,25)
판관시대에 야훼의 축제가 열리던 성소는 어디입니까?(21,19)
에브라임에 살던 어느 레위인의 첩이 베들레헴에서 오던 도중에 기브라에 사는 베냐민 사람들에게서 성폭행을 당합니다. 첩을 잃은 레위인은 그 사정을 각 지파로 알리면서 부당함을 호소합니다. 그러자 각 지파가 모여 베냐민 지파에게 못된 무뢰배를 처벌할 것을 요구하지만, 끝끝내 거절당하자 대대적인 전쟁이 벌어집니다. 그 결과 베냐민 지파가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자, 그들은 그 지파를 보존하기 위해 야베스길르앗과 실로 처녀들을 보쌈해서 짝을 맺어 줍니다.
이 이야기는 판관시대의 혼란스런 모습과 정의를 지키려는 지파들의 노력, 베냐민 지파를 살리려는 모습 등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부록입니다.
<새김과 나눔>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규범은 자주 어겼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과 규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룻기라는 성서 이름은?
룻기는 판관기 다음에 나오는 아주 짧은 성서에요. 4장밖에 안 되지만 그 자체로 완결된 작품인 룻기는 여주인공인 ‘룻’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룻기가 판관기 다음에 나오지만, 그 내용이 판관기와 이어지거나 전기 예언서에 속하지는 않아요. 단지 룻기가 “판관들이 세상을 다스리던 시절에”(룻기 1,1) 있었던 일로 소개되었기 때문에, 그리스어 성서와 불가타 성서에서 룻기를 이 자리에 놓은 것이죠. 히브리어 성서에서는 룻기와 아가, 애가, 에스델, 전도서 등 다섯 권을 큰 축제 때 읽는 성서라 하여 ‘축제 두루마리’라 불러요. 그 중 룻기는 밀 수확 축제인 오순절에 읽지요. 그래서 성서 위치도 과월절에 읽는 아가 다음에 놓아요.
누가 썼나요?
유대 전승에서는 예언자 사무엘이 룻기를 썼다고 하지요. 하지만 오늘날에는 어느 저자가 옛날부터 내려오는 민담을 바탕으로하여 아주 짧은 단편소설로 룻기를 지었다고 보아요.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인들의 삶과 하느님의 사랑에 민감하고 글을 꽤 잘 엮는 뛰어난 작가였으리라고 여겨져요. 아마도 남성이었던 것 같구요.
언제 썼나요?
이야기의 기원은 오래 되었겠지만, 실제 저술시기가 언제인지는 논란 중이어요. 지금까지 나온 의견을 모아 보면 크게 둘로 나눠 볼 수 있어요. 하나는 왕정시대의 초반, 또는 중반이라고 보는 견해에요. 룻기가 다윗 왕조의 집안 이야기로 쓰여졌다고 하는 주장이지요. 또 다른 이들은 포로기 때 아니면 그 이후에 쓰여졌다고 보아요. 이방 여자인 룻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만민 구원이란 틀이 엿보인다는 거죠.
왜 썼나요?
룻기는 짧지만 줄거리가 탄탄해요. 주요 등장인물은 룻과 시어머니 나오미, 그들의 친족인 보아즈에요. 이 관계에서 우선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고부간인 룻과 나오미의 깊은 사랑이에요. 룻은 남편과 자녀도 없이 힘들게 살아야 하는 청상과부요 이방여인이었지만, 기꺼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유대에 와서 열심히 봉양해요. 나오미는 그런 며느리에게 새 삶의 길을 열어주고자 나이든 이의 지혜로써 무던히 애를 쓰죠. 그런 나오미가 가장 신뢰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이지요.
룻기의 흐름속에서는 과부를 돌보고 친족을 보살피며 형제의 후손을 이어주는 이스라엘의 율법이 자리잡고 있어요.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 대한 충실함과 그분의 섭리입니다. 글 중에 하느님은 직접 출현하지 않지만, 이야기의 모든 단계마다 그분의 축복과 이끄심이 분명하게 드러나요.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하느님은 당신을 신뢰하고 당신 품에 안기는 이들을 항상 돌봐주시며 구원하신다는 믿음이 짙게 깔려 있지요. 아무 희망도 없는 빈털털이 이방여인을 다윗 왕의 증조모요 메시아 집안의 가족으로 삼으시는 하느님의 섭리가 놀랍지 않으세요?
<새김과 나눔>
룻처럼, 한국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낯선 땅에 사는 이방인입니다. 어렵고 힘든 그들의 처지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그들에게 도움을 준 체험이 있으면 나누어 보십시오.
나오미의 귀향(1,1-22)
엘리멜렉의 고향은 어디입니까?(1,1)
판관시대에 유대에 큰 기근이 들어 엘리멜렉의 일가는 모압 땅으로 이주했어요. 거기서 10년을 사는 동안 모압 여인과 혼인한 두 아들과 엘리멜렉은 모두 죽었어요. 결국 시어머니 나오미는 귀향을 결심하고 며느리인 룻과 오르바에게 모압 땅에 남아 새 남편을 맞아 보금자리를 꾸미라고 권유해요. 그래서 오르바는 떠나가지만, 룻은 “어머님의 겨레가 제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의 제 하느님이십니다”(1,16)라고 하며 끝까지 시어머니를 모시겠다고 고집해요.
결국 나오미는 룻을 데리고 빈손으로 유대 베들레헴으로 되돌아 오죠. 여기서 룻은 아브라함처럼, 새로운 삶을 찾아 하느님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는 거죠. 이 부분이 이야기의 발단이어요.
룻이 보아즈를 만남(2,1-23)
베들레헴에서 룻은 밭에 나가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 살려고 해요. 이것은 과부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율법에 규정된 방도였지요(레위 19,9-10; 23,22; 신명 24,19). 그런데 공교롭게도(이 말 속에 하느님의 인도하심이란 뜻이 스며 있지요) 룻이 이삭을 줍는 밭은 아비멜렉의 일가인 보아즈의 밭이었어요. 보아즈는 룻이 나오미의 집안 사람인 것을 알고 여러 가지로 호의를 베풀어 주어요. 또 룻이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었고 고향과 부모를 떠나 왔기에 야훼께서 갚아 주실 것이라고 축복을 빌어 주어요. 그런 덕택에 룻은 추수가 끝날 때까지 보아즈 밭에서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를 모시며 살게 되죠. 이야기의 전개 부분이지요.
룻이 보아즈를 찾아감(3,1-18)
추수가 끝날 무렵, 나오미는 룻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겠노라고 한 가지 꾀를 내어요. 그런 방책을 낸 것은 죽은 사람의 천척이 죽은 사람의 부인과 혼인하여 그 사람의 자녀를 이어주어야 한다는 율법의 규정에 따른 것이지요. 나오미는 이 제도를 이용하여 룻을 보아즈와 혼인시키려고 한 것이죠. 룻은 한밤중에 타작마당에서 곡식더미를 지키고 있는 보아즈를 살며시 찾아가 그 뜻을 밝혀요. 보아즈도 그 뜻을 알아차리고 자신이 알아 처리하겠다고 약속해요. 그럼으로써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솟게 되죠.
롯이 혼인하여 아들을 낳다(4,1-22)
* 엘리멜렉의 친척은 권리를 포기한다는 표시로 어떤 행동을 합니까?(4,7-8)
보아즈는 성문에서 자기보다 더 가까운 엘리멜렉의 친척을 만나 그에게 나오미의 땅과 그의 며느리와 혼인할 권리가 있음을 알려주지요. 그 친척은 땅에 관심을 보이다가 룻까지 떠맡아야 한다는 말에 그 권리를 포기하죠. 그래서 보아즈는 대신 그 권리를 갖겠다고 원로들 앞에서 맹세하고 룻을 아내로 맞이하지요. 룻은 “야훼께서 점지해 주셔서” 아들 오벳을 낳아 시어머니에게 기쁨을 주고 다윗왕의 증조 할머니가 되지요. 이 부분이 룻기의 절정이자 결말이어요. 제일 끝에 붙은 다윗의 족보는 나중에 덧붙여진 부록으로 여겨져요.
<새김과 나눔>
고부간의 관계는 오늘날도 쉽지 않습니다. 룻은 인간관계에 끝까지 충실하여 하느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이 룻기의 내용은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까?
사무엘이라는 성서 이름은 어떻게 붙었나요?
사무엘서는 룻기 다음에 나오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판관기에 이어집니다. 즉 판관시대를 마무리짓는 마지막 판관인 사무엘과 새로운 왕정시대를 여는 사울과 다윗왕의 이야기가 실려 있지요. 히브리 성서는 그 가운데에서 사무엘서 앞부분의 중심인물인 사무엘의 이름을 따서 성서 이름을 삼았어요. 그런데 그리스어 성서는 본래 한 권인 사무엘서의 분량이 너무 많아 사울의 죽음을 끝으로 상하 두 권으로 나누었어요. 그리고 사무엘이 전체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하여 뒤에 나오는 열왕기 상 하권과 함께 묶어서 열왕기 1·2·3·4권으로 불렀어요. 열왕기 1·2권이 사무엘서에 해당하지요. 사무엘서는 여호수아, 판관기, 열왕기 상 하권과 함께 전기 예언서 또는 신명기계 역사서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누가 썼나요?
유대의 탈무드 전승에서는 “사무엘의 역사서”(1역대 29,29)에 근거하여 사무엘이 썼다고 주장해요. 그렇지만 사무엘의 죽음이 두 번이나 기록된 것으로 보아(1사무 25, 1; 28, 3) 사무엘이 썼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탈무드는 사무엘의 죽음과 그 이후 내용은 예언자 나단과 가드가 써서 사무엘의 역사서에 덧붙였다고 밝히지만, 이 역시 근거가 약해요. 오늘날 학자들은 옛부터 전해오는 법궤 설화와 사울과 다윗이 왕이 된 이야기, 다윗에서 솔로몬으로 왕위가 넘어간 이야기 등 주요한 전승들을 바탕으로 신명기계 사가가 편찬했다고 보고 있어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 순종을 강조했던 그들의 견해가 사무엘서의 주된 흐름을 이루고 있거든요.
언제 썼나요?
사울이나 다윗의 이야기의 어떤 부분은 상당히 구체적이어서 당대에 가까이 있던 사람이 썼다고 여겨질 정도에요. 아마도 골격을 이루는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다윗이나 솔로몬 시대부터 전해오는 여러 전승이었을 거에요. 그러나 이러한 전승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그 의미를 밝혀서 하나의 연속적인 결정본으로 만든 이는 포로기에 활동한 신명기계 학파랍니다.
왜 썼나요?
사무엘서는 이스라엘의 역사 중 왕정체제로 나아가려고 하는 변혁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이 변혁기에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여전히 남아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길이 제시되어요. 이 때 나타나는 계층이 사무엘로 대변되는 예언자와 사울과 다윗으로 이어지는 왕이에요. 이스라엘도 주변 민족처럼 왕정체제로 나아갈 수 있지만, 그 왕국의 모습은 다른 나라와 달라야 한다는 거에요. 즉 왕은 절대자가 아니라 야훼 하느님의 뜻대로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 예언자는 이를 늘 왕에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스라엘의 참된 왕은 여전히 하느님이시니까요.
사무엘서는 이를 둘러싼 갈등과 해결책을 서술하고 있어요. 하느님에 의해 세워졌지만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사울 왕조는 몰락하였지만, 늘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께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은 다윗은 든든히 서리라는 약속을 받게 되지요. 결국 사무엘서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희망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할 때 있음을 보여주어요. 그럼으로써 역사의 격변기에서는 무엇보다 하느님을 찾고 그분께 의탁할 것을 호소하는 것이죠.
<새김과 나눔>
현재 우리가 사는 20세기말도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넘어가는 큰 변혁기랍니다. 이 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바람직한 길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사무엘 상권
사무엘의 출생과 소명(1사무 1,1-4,1a)
* 하느님이 부르셨을 때 사무엘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였습니까?(3,10)
돌계집이었던 한나는 실로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에서 기도하여 마침내 사내아이를 낳고 이름을 사무엘이라 짓습니다(그 이름의 뜻은 ‘하느님의 이름’ 또는 ‘그의 이름은 하느님이다’). 한나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면서(루가복음에 나오는 마리아의 노래와 비교해 보세요), 사무엘을 성전에 봉헌합니다. 사제 엘리의 밑에서 큰 사무엘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의 예언자로 활동하게 된답니다. 예언자의 새 시대가 열리는 서막입니다.
하느님의 궤는 거룩하니(1사무 4,1b-7,1)
불레셋 군이 쳐들어와 이스라엘이 패하자 하느님의 궤까지 모시고 가지만 그 궤마저 빼앗겨 버렸어요. 또 하느님의 말씀처럼 그 싸움에서 사제 엘리의 두 아들이 죽는 등 그 가문이 무너져 버려요. 그러나 전리품으로 빼앗아간 하느님의 궤 때문에 불레셋 족들은 떼죽음을 당하는 등 큰 곤경에 처하죠. 그래서 그들은 면죄제물을 담아 이스라엘로 다시 궤를 돌려보냅니다. 이는 하느님 야훼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모두에게 보인 사건이었죠.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1사무 7,2-12,25)
* 사울은 어느 지파의 어느 갈래 출신입니까?(9,1; 10,20-21)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통치합니다. 그의 통치 중에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돌아와 회개합니다. 미스바 모임은 바로 그런 회개의 자리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시고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쳐들어온 불레셋 족을 물리쳐주십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늙고 그의 두 아들이 올바로 판관 역할을 못하자 백성들은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합니다.
사무엘은 왕정이 가져올 폐해를 일러주지만 백성들이 왕을 고집하자, 하느님은 그들의 말을 들어주라고 일러주시며 사울을 왕으로 지명하십니다. 사울은 가장 작은 지파의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이지만 기름부음을 받고 왕으로 세워집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기운으로 암몬 군을 물리쳐 왕으로 인정받고 길갈에서 즉위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그 능력과 자격을 하느님으로부터 인정받아야 제대로 할 수 있답니다.
사울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 버림받고(1사무 13,1-15,35)
* 하느님의 지시를 어긴 사울에게 사무엘은 무엇이라고 말하였습니까?(15,22-23)
이스라엘은 불레셋 족과 계속 싸워야 했습니다. 그 당시 불레셋 족은 청동기는 물론 철기까지 다루는 앞선 문명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퍽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또 다시 불레셋 족이 쳐들어왔을 때에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지혜롭게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여 앞장서서 싸운 덕분에 크게 이겼습니다.
사울은 주변 국가들과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두어 왕위를 굳힙니다. 그러다가 아말렉을 쳐부수고 모든 생명체를 죽이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사무엘에게서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말렉을 이기고서도 전리품이 아까워 다 죽이고 없애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어깁니다. 그 결과 사무엘은 하느님의 말씀을 어긴 것은 그분께 대드는 죄이며 큰 잘못이기에 왕의 자리에서 파면되었다는 선언을 내립니다. 이스라엘에 승리는 주시는 분도 하느님이시고, 왕을 이끄시는 참된 왕도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새김과 나눔>
사무엘은 후대 예언자들이 반복하여 강조한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염소의 기름기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이 가르침의 뜻을 우리의 신앙생활에 비추어 생각해 봅시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다(1사무 16,1-13)
* 다윗은 이새의 몇째 아들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습니까?(16,10-11)
야훼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을 유대 베들레헴으로 보냅니다. 명목은 제사드리러 간 것이지만 사실은 새로운 왕에게 기름을 붓기 위해서이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초청한 사무엘은 큰 아들부터 차례로 보지만 누구도 아니었어요. 사무엘이 그럴 재목이라고 생각한 아들도 하느님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하느님은 속마음을 들여다 보시니까요” 마침내 그 자리에 없던 막내를 지목한 사무엘은 하느님의 지시대로 그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의 영이 다윗에게 내립니다.
다윗이 사울 왕실에서 득세하나(1사무 15,14-20,42)
* 다윗이 불레셋 장수와 싸울 때 누구의 이름을 믿고 나갔습니까?(17,45)
다윗이 사울 왕실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로 소개됩니다. 맨 먼저 악령에 시달리는(아마도 조울증 같은 정신질환인 듯) 사울을 치료하는 수금타는 사람으로 궁정에 들어갑니다. 그 다음 계기는 불레셋 장수를 이긴 전과입니다. 또 다시 불레셋 족과 싸움이 벌어졌을 때 형들의 안부를 알기 위해 진지에 간 다윗은 엄청난 불레셋 장수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듣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이름에 의지해나가 돌팔매로 그들 이겨요.(그 장수 이름을 골리앗이라 한 것은 후대에 붙여진 것 같아요. 엘하난이 골리앗을 죽였다고 나오거든요. 2사무 21,10을 보세요.)
다윗이 사울의 군사령관으로서 자꾸 승전하여 백성들의 인기가 높아가자, 사울 왕은 다윗을 질투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호시탐탐 죽일 기회를 노리는데,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사울의 둘째딸로 다윗의 아내가 된 미갈이 다윗을 감싸 위기를 넘겨주지요.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고(1사무 21,1-27,12)
* 다윗은 왜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일 기회에서 살려줍니까?(24,11-16; 26,23-24)
다윗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사울 왕궁을 벗어나 여기저기로 떠돌아 다닙니다. 놉의 제관 아히벨렉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갓 나라에 가서 미친 행세도 합니다. 그러다 유다에 가서 부하 육백 명을 모아 여러 곳을 약탈하며 점차 힘을 키웁니다. 마온 지역의 유지인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한 것도 그의 힘 덕분입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나선 사울 왕을 두 차례(마온 광야와 지브 광야)나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다윗은 하느님께서 기름부어 세운 왕을 사람이 죽일 수는 없다하여 살려줍니다. 늘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사는 다윗의 경건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마침내 사울은 전사하니(1사무28,1-31,13)
불레셋 족에게 몸을 위탁한 다윗은 아마렉 족 등 주변의 이방민족들을 약탈하지요. 그러는 가운데 또 불레셋 군이 대대적으로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어요. 길보아 산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사울과 그의 아들은 전사하고 이스라엘은 완전히 패배하였어요. 하느님의 도움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이스라엘의 첫 왕인 사울은 이렇게 하여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새김과 나눔>
하느님이 당신의 사람을 선택하시는 기준은 우리의 기준과 다릅니다. 사울과 다윗의 소명 기사를 생각해보며 우리 각자의 소명을 되새겨 봅시다.
사무엘 하권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다(2사무 1,1-5,5)
* 다윗은 어디에서 얼마 동안 왕위에 있었습니까?(5,4-5)
다윗은 뒤늦게 한 아말렉 젊은이로부터 사울과 요나단의 사망 소식을 듣고 몹시 슬퍼합니다. 그는 사울왕의 물품에 손댄 그 젊은이를 죽여 사울에 대한 충성심을 보입니다. 그런 뒤에 다윗은 하느님의 지시를 받아 헤브론에 가 자리잡고 유다의 왕으로 임명됩니다.한편 북쪽 지파들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고, 다윗의 유다 가문과 대치합니다. 두 왕실 사이에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다윗은 점차 강해집니다. 마침내 북 왕실에서 내분이 일어나 우두머리가 모두 사라지자, 복쪽 지파는 다윗과 조약을 맺고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습니다. 이리하여 다윗은 이스라엘 전체 지파의 왕이 되었습니다. 성서 저자는 늘 모든 것에서 야훼 하느님의 뜻을 물으며 그대로 시행하는 다윗의 믿음을 계속 강조합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차지하다(2사무 5,6-8,18)
* 다윗에게 왕조의 지속성을 일러준 예언자는 누구입니까?(7,4-17)
아직도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에는 여부스 족이 사는 예루살렘 같은 이방민족의 도시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다윗은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방어시설이 잘 된 예루살렘을 정복한 뒤 자신의 도성으로 삼습니다.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예루살렘은 두 나라를 잇는 도성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됩니다.
다윗은 불레셋 군을 물리친 뒤, 하느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옵니다. 거룩한 그 궤를 경솔하게 만진 우짜는 죽고 잘 모신 오베데돔은 복을 받습니다. 또 궤를 모셔오면서 덩실거리며 춤춘 다윗을 비웃은 미갈은 돌게집이 되고 맙니다. 다윗은 그 궤를 모실 성전을 짓고자 하지만, 하느님은 다윗의 자식대에 가서야 성전을 지을 것이며, 다윗 왕조를 흔들리지 않게 하겠노라는 말씀을 내리십니다. 이에 다윗은 감격하여 하느님의 위업을 찬양하는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다윗은 계속하여 주변 민족을 무찔러 영토를 넓히고 국력을 키웁니다. 결국 이 모든 일은 다윗이 아니라 야훼 하느님이 하신 구원행위였음이 강조됩니다.
다윗이 죄를 짓다(2사무 9,1-12,31)
* 솔로몬의 또 다른 이름은 무엇이며,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무엇입니까?(12,24-25)
다윗은 예전에 요나단과 맺은 우정을 기억하여 그의 아들인 므비보셋을 잘 대우해 줍니다. 신의에 충실한 다윗의 모습이죠. 또 다윗은 자신을 모욕한 암몬과 아람을 쳐 대승을 거둡니다. 이 전쟁 중에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인 바쎄바를 데려다가 정을 통합니다. 그녀가 임신하자, 다윗은 남편을 전쟁터에서 불러와 잠자리를 하도록 함께 계략을 세우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하는 최후의 수단을 씁니다.
하느님은 예언자 나단을 시켜 다윗이 저지른 불의를 고발하고 엄중히 처벌할 것을 예고합니다. 다윗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자, 하느님은 그 죄는 용서하지만 벌로써 다윗과 바쎄바 사이에 난 아이가 죽습니다. 이처럼 성서 저자는 성왕이라 일컬어진 다윗이 지은 큰 죄를 숨김없이 드러내면서, 죄의 무서움과 참회의 자세를 강조합니다.
<새김과 나눔>
다윗은 늘 하느님께 여쭈어보며 행동하는 신앙인이지만, 인간적인 욕정에 이끌려 죄를 범합니다. 그에 비추어 우리의 신앙 자세를 되새겨 봅시다. 잘못을 드러내고 고백하는 참회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묵상해 봅시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다(2사무 13,1-19,9a)
* 아히도벨의 좋은 수를 꺾으신 이는 누구입니까?(17,14)
다윗의 맏아들 암논이 배다른 누이 다말을 욕보이고 내쫓았는데도 다윗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다. 앙심을 품은 다말의 오빠 압살롬은 암논을 죽이고 외갓집인 그술 왕에게 망명합니다. 세월이 흐른 뒤 요압이 꾀를 내어 압살롬을 예루살렘에 오게 하고, 마침내는 왕의 용서를 받아 예전의 지위를 차지하게 합니다.
그 뒤 압살롬은 친위부대를 만들고 재판에 관여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의 환심을 산 다음, 헤브론에서 왕의 즉위식을 갖고 반란을 일으켜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옵니다. 다윗은 급히 요르단 강 건너편으로 피신합니다. 급팽창하던 압살롬의 세력은 후새의 계략에 넘어가 전투에서 지고 압살롬 자신도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성서 저자는 이 모든 일의 배후에 하느님이 계시다고 일러 줍니다.
다윗이 다시 왕위를 차지하다(2사무 19,9 b-20,25)
* 아벨 벳마아가 성을 함락의 위기에서 구한 사람은 누구입니까?(20,16-22)
압살롬이 죽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시 다윗을 왕으로 모시자고 논의합니다. 또 다윗은 유다 지파에게 자신을 왕으로 모시도록 촉구합니다. 이를 보면 당시 다윗이 온 이스라엘 사람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튼 유다 백성의 마음이 돌아와 다윗을 왕으로 맞이합니다. 다윗은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는 등 너그러움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선수를 빼앗긴 이스라엘 지파들과 유다 지파 사이에 다툼이 시작됩니다. 아직도 두 그룹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고 갈등관계에 있음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베냐민 사람 세바의 주동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각기 고향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또다시 분열의 위기에 처하자, 다윗은 세바를 죽여 왕권을 굳힙니다. 그가 죽음으로써 일단 갈등은 가라앉지만, 솔로몬 대에 가서 결정적으로 갈라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다윗이 하느님을 찬양하다(2사무 21,1-24,24)
* 다윗은 하느님을 자신의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22,2-51)
사무엘서 하권의 끝부분에는 다윗 시대에 있었던 몇가지 사건이 앞뒤없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먼저 삼 년이나 흉년이 들었을 때, 그 원인이 사울 가문이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한 데 있다는 신탁이 나옵니다. 그래서 사울 가문의 일곱 명을 기브온 사람들에게 넘겨 처형시킵니다. 그러나 다윗이 그들의 뼈를 잘 매장해 줄 때 하느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는 피의 복수에 따른 정의를 나타내는 고대의 이야기를 빌어 전왕에 대한 다윗의 충성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불레셋을 이기게 해주신 날, 다윗은 자신의 생애를 통해 끊임없이 은혜를 베푸신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하느님의 능력의 크심을 기리고, 하느님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병적조사를 하여 하느님의 진노를 사 전염병으로 숱한 백성이 죽습니다. 다윗이 잘못을 고백하고 제사를 지낸 뒤에야 재앙이 그칩니다. 병적조사는 다윗이 자신의 힘을 확인하고 드러내려는 짓으로서, 하느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참된 신앙에서 벗어난 일이었기에 그런 재앙을 가져온 것입니다.
<새김과 나눔>
다윗은 “한 마음으로 당신을 위하면 당신께서도 한 마음으로 위해 주십니다”(22,26)라고 찬양했습니다. 우리의 생활과 신앙은 얼마나 갈라져 있는지 묵상해봅시다.
사무엘이라는 성서 이름은 어떻게 붙었나요?
사무엘서는 룻기 다음에 나오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판관기에 이어집니다. 즉 판관시대를 마무리짓는 마지막 판관인 사무엘과 새로운 왕정시대를 여는 사울과 다윗왕의 이야기가 실려 있지요. 히브리 성서는 그 가운데에서 사무엘서 앞부분의 중심인물인 사무엘의 이름을 따서 성서 이름을 삼았어요. 그런데 그리스어 성서는 본래 한 권인 사무엘서의 분량이 너무 많아 사울의 죽음을 끝으로 상하 두 권으로 나누었어요. 그리고 사무엘이 전체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하여 뒤에 나오는 열왕기 상 하권과 함께 묶어서 열왕기 1·2·3·4권으로 불렀어요. 열왕기 1·2권이 사무엘서에 해당하지요. 사무엘서는 여호수아, 판관기, 열왕기 상 하권과 함께 전기 예언서 또는 신명기계 역사서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누가 썼나요?
유대의 탈무드 전승에서는 “사무엘의 역사서”(1역대 29,29)에 근거하여 사무엘이 썼다고 주장해요. 그렇지만 사무엘의 죽음이 두 번이나 기록된 것으로 보아(1사무 25, 1; 28, 3) 사무엘이 썼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탈무드는 사무엘의 죽음과 그 이후 내용은 예언자 나단과 가드가 써서 사무엘의 역사서에 덧붙였다고 밝히지만, 이 역시 근거가 약해요. 오늘날 학자들은 옛부터 전해오는 법궤 설화와 사울과 다윗이 왕이 된 이야기, 다윗에서 솔로몬으로 왕위가 넘어간 이야기 등 주요한 전승들을 바탕으로 신명기계 사가가 편찬했다고 보고 있어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 순종을 강조했던 그들의 견해가 사무엘서의 주된 흐름을 이루고 있거든요.
언제 썼나요?
사울이나 다윗의 이야기의 어떤 부분은 상당히 구체적이어서 당대에 가까이 있던 사람이 썼다고 여겨질 정도에요. 아마도 골격을 이루는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다윗이나 솔로몬 시대부터 전해오는 여러 전승이었을 거에요. 그러나 이러한 전승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그 의미를 밝혀서 하나의 연속적인 결정본으로 만든 이는 포로기에 활동한 신명기계 학파랍니다.
왜 썼나요?
사무엘서는 이스라엘의 역사 중 왕정체제로 나아가려고 하는 변혁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이 변혁기에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여전히 남아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길이 제시되어요. 이 때 나타나는 계층이 사무엘로 대변되는 예언자와 사울과 다윗으로 이어지는 왕이에요. 이스라엘도 주변 민족처럼 왕정체제로 나아갈 수 있지만, 그 왕국의 모습은 다른 나라와 달라야 한다는 거에요. 즉 왕은 절대자가 아니라 야훼 하느님의 뜻대로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 예언자는 이를 늘 왕에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스라엘의 참된 왕은 여전히 하느님이시니까요.
사무엘서는 이를 둘러싼 갈등과 해결책을 서술하고 있어요. 하느님에 의해 세워졌지만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사울 왕조는 몰락하였지만, 늘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께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은 다윗은 든든히 서리라는 약속을 받게 되지요. 결국 사무엘서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희망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할 때 있음을 보여주어요. 그럼으로써 역사의 격변기에서는 무엇보다 하느님을 찾고 그분께 의탁할 것을 호소하는 것이죠.
<새김과 나눔>
현재 우리가 사는 20세기말도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넘어가는 큰 변혁기랍니다. 이 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바람직한 길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사무엘 상권
사무엘의 출생과 소명(1사무 1,1-4,1a)
* 하느님이 부르셨을 때 사무엘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였습니까?(3,10)
돌계집이었던 한나는 실로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에서 기도하여 마침내 사내아이를 낳고 이름을 사무엘이라 짓습니다(그 이름의 뜻은 ‘하느님의 이름’ 또는 ‘그의 이름은 하느님이다’). 한나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면서(루가복음에 나오는 마리아의 노래와 비교해 보세요), 사무엘을 성전에 봉헌합니다. 사제 엘리의 밑에서 큰 사무엘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의 예언자로 활동하게 된답니다. 예언자의 새 시대가 열리는 서막입니다.
하느님의 궤는 거룩하니(1사무 4,1b-7,1)
불레셋 군이 쳐들어와 이스라엘이 패하자 하느님의 궤까지 모시고 가지만 그 궤마저 빼앗겨 버렸어요. 또 하느님의 말씀처럼 그 싸움에서 사제 엘리의 두 아들이 죽는 등 그 가문이 무너져 버려요. 그러나 전리품으로 빼앗아간 하느님의 궤 때문에 불레셋 족들은 떼죽음을 당하는 등 큰 곤경에 처하죠. 그래서 그들은 면죄제물을 담아 이스라엘로 다시 궤를 돌려보냅니다. 이는 하느님 야훼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모두에게 보인 사건이었죠.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1사무 7,2-12,25)
* 사울은 어느 지파의 어느 갈래 출신입니까?(9,1; 10,20-21)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통치합니다. 그의 통치 중에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돌아와 회개합니다. 미스바 모임은 바로 그런 회개의 자리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시고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쳐들어온 불레셋 족을 물리쳐주십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늙고 그의 두 아들이 올바로 판관 역할을 못하자 백성들은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합니다.
사무엘은 왕정이 가져올 폐해를 일러주지만 백성들이 왕을 고집하자, 하느님은 그들의 말을 들어주라고 일러주시며 사울을 왕으로 지명하십니다. 사울은 가장 작은 지파의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이지만 기름부음을 받고 왕으로 세워집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기운으로 암몬 군을 물리쳐 왕으로 인정받고 길갈에서 즉위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그 능력과 자격을 하느님으로부터 인정받아야 제대로 할 수 있답니다.
사울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 버림받고(1사무 13,1-15,35)
* 하느님의 지시를 어긴 사울에게 사무엘은 무엇이라고 말하였습니까?(15,22-23)
이스라엘은 불레셋 족과 계속 싸워야 했습니다. 그 당시 불레셋 족은 청동기는 물론 철기까지 다루는 앞선 문명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퍽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또 다시 불레셋 족이 쳐들어왔을 때에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지혜롭게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여 앞장서서 싸운 덕분에 크게 이겼습니다.
사울은 주변 국가들과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두어 왕위를 굳힙니다. 그러다가 아말렉을 쳐부수고 모든 생명체를 죽이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사무엘에게서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말렉을 이기고서도 전리품이 아까워 다 죽이고 없애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어깁니다. 그 결과 사무엘은 하느님의 말씀을 어긴 것은 그분께 대드는 죄이며 큰 잘못이기에 왕의 자리에서 파면되었다는 선언을 내립니다. 이스라엘에 승리는 주시는 분도 하느님이시고, 왕을 이끄시는 참된 왕도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새김과 나눔>
사무엘은 후대 예언자들이 반복하여 강조한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염소의 기름기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이 가르침의 뜻을 우리의 신앙생활에 비추어 생각해 봅시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다(1사무 16,1-13)
* 다윗은 이새의 몇째 아들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습니까?(16,10-11)
야훼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을 유대 베들레헴으로 보냅니다. 명목은 제사드리러 간 것이지만 사실은 새로운 왕에게 기름을 붓기 위해서이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초청한 사무엘은 큰 아들부터 차례로 보지만 누구도 아니었어요. 사무엘이 그럴 재목이라고 생각한 아들도 하느님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하느님은 속마음을 들여다 보시니까요” 마침내 그 자리에 없던 막내를 지목한 사무엘은 하느님의 지시대로 그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의 영이 다윗에게 내립니다.
다윗이 사울 왕실에서 득세하나(1사무 15,14-20,42)
* 다윗이 불레셋 장수와 싸울 때 누구의 이름을 믿고 나갔습니까?(17,45)
다윗이 사울 왕실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로 소개됩니다. 맨 먼저 악령에 시달리는(아마도 조울증 같은 정신질환인 듯) 사울을 치료하는 수금타는 사람으로 궁정에 들어갑니다. 그 다음 계기는 불레셋 장수를 이긴 전과입니다. 또 다시 불레셋 족과 싸움이 벌어졌을 때 형들의 안부를 알기 위해 진지에 간 다윗은 엄청난 불레셋 장수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듣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이름에 의지해나가 돌팔매로 그들 이겨요.(그 장수 이름을 골리앗이라 한 것은 후대에 붙여진 것 같아요. 엘하난이 골리앗을 죽였다고 나오거든요. 2사무 21,10을 보세요.)
다윗이 사울의 군사령관으로서 자꾸 승전하여 백성들의 인기가 높아가자, 사울 왕은 다윗을 질투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호시탐탐 죽일 기회를 노리는데,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사울의 둘째딸로 다윗의 아내가 된 미갈이 다윗을 감싸 위기를 넘겨주지요.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고(1사무 21,1-27,12)
* 다윗은 왜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일 기회에서 살려줍니까?(24,11-16; 26,23-24)
다윗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사울 왕궁을 벗어나 여기저기로 떠돌아 다닙니다. 놉의 제관 아히벨렉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갓 나라에 가서 미친 행세도 합니다. 그러다 유다에 가서 부하 육백 명을 모아 여러 곳을 약탈하며 점차 힘을 키웁니다. 마온 지역의 유지인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한 것도 그의 힘 덕분입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나선 사울 왕을 두 차례(마온 광야와 지브 광야)나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다윗은 하느님께서 기름부어 세운 왕을 사람이 죽일 수는 없다하여 살려줍니다. 늘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사는 다윗의 경건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마침내 사울은 전사하니(1사무28,1-31,13)
불레셋 족에게 몸을 위탁한 다윗은 아마렉 족 등 주변의 이방민족들을 약탈하지요. 그러는 가운데 또 불레셋 군이 대대적으로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어요. 길보아 산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사울과 그의 아들은 전사하고 이스라엘은 완전히 패배하였어요. 하느님의 도움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이스라엘의 첫 왕인 사울은 이렇게 하여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새김과 나눔>
하느님이 당신의 사람을 선택하시는 기준은 우리의 기준과 다릅니다. 사울과 다윗의 소명 기사를 생각해보며 우리 각자의 소명을 되새겨 봅시다.
사무엘 하권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다(2사무 1,1-5,5)
* 다윗은 어디에서 얼마 동안 왕위에 있었습니까?(5,4-5)
다윗은 뒤늦게 한 아말렉 젊은이로부터 사울과 요나단의 사망 소식을 듣고 몹시 슬퍼합니다. 그는 사울왕의 물품에 손댄 그 젊은이를 죽여 사울에 대한 충성심을 보입니다. 그런 뒤에 다윗은 하느님의 지시를 받아 헤브론에 가 자리잡고 유다의 왕으로 임명됩니다.한편 북쪽 지파들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고, 다윗의 유다 가문과 대치합니다. 두 왕실 사이에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다윗은 점차 강해집니다. 마침내 북 왕실에서 내분이 일어나 우두머리가 모두 사라지자, 복쪽 지파는 다윗과 조약을 맺고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습니다. 이리하여 다윗은 이스라엘 전체 지파의 왕이 되었습니다. 성서 저자는 늘 모든 것에서 야훼 하느님의 뜻을 물으며 그대로 시행하는 다윗의 믿음을 계속 강조합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차지하다(2사무 5,6-8,18)
* 다윗에게 왕조의 지속성을 일러준 예언자는 누구입니까?(7,4-17)
아직도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에는 여부스 족이 사는 예루살렘 같은 이방민족의 도시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다윗은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방어시설이 잘 된 예루살렘을 정복한 뒤 자신의 도성으로 삼습니다.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예루살렘은 두 나라를 잇는 도성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됩니다.
다윗은 불레셋 군을 물리친 뒤, 하느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옵니다. 거룩한 그 궤를 경솔하게 만진 우짜는 죽고 잘 모신 오베데돔은 복을 받습니다. 또 궤를 모셔오면서 덩실거리며 춤춘 다윗을 비웃은 미갈은 돌게집이 되고 맙니다. 다윗은 그 궤를 모실 성전을 짓고자 하지만, 하느님은 다윗의 자식대에 가서야 성전을 지을 것이며, 다윗 왕조를 흔들리지 않게 하겠노라는 말씀을 내리십니다. 이에 다윗은 감격하여 하느님의 위업을 찬양하는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다윗은 계속하여 주변 민족을 무찔러 영토를 넓히고 국력을 키웁니다. 결국 이 모든 일은 다윗이 아니라 야훼 하느님이 하신 구원행위였음이 강조됩니다.
다윗이 죄를 짓다(2사무 9,1-12,31)
* 솔로몬의 또 다른 이름은 무엇이며,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무엇입니까?(12,24-25)
다윗은 예전에 요나단과 맺은 우정을 기억하여 그의 아들인 므비보셋을 잘 대우해 줍니다. 신의에 충실한 다윗의 모습이죠. 또 다윗은 자신을 모욕한 암몬과 아람을 쳐 대승을 거둡니다. 이 전쟁 중에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인 바쎄바를 데려다가 정을 통합니다. 그녀가 임신하자, 다윗은 남편을 전쟁터에서 불러와 잠자리를 하도록 함께 계략을 세우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하는 최후의 수단을 씁니다.
하느님은 예언자 나단을 시켜 다윗이 저지른 불의를 고발하고 엄중히 처벌할 것을 예고합니다. 다윗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자, 하느님은 그 죄는 용서하지만 벌로써 다윗과 바쎄바 사이에 난 아이가 죽습니다. 이처럼 성서 저자는 성왕이라 일컬어진 다윗이 지은 큰 죄를 숨김없이 드러내면서, 죄의 무서움과 참회의 자세를 강조합니다.
<새김과 나눔>
다윗은 늘 하느님께 여쭈어보며 행동하는 신앙인이지만, 인간적인 욕정에 이끌려 죄를 범합니다. 그에 비추어 우리의 신앙 자세를 되새겨 봅시다. 잘못을 드러내고 고백하는 참회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묵상해 봅시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다(2사무 13,1-19,9a)
* 아히도벨의 좋은 수를 꺾으신 이는 누구입니까?(17,14)
다윗의 맏아들 암논이 배다른 누이 다말을 욕보이고 내쫓았는데도 다윗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다. 앙심을 품은 다말의 오빠 압살롬은 암논을 죽이고 외갓집인 그술 왕에게 망명합니다. 세월이 흐른 뒤 요압이 꾀를 내어 압살롬을 예루살렘에 오게 하고, 마침내는 왕의 용서를 받아 예전의 지위를 차지하게 합니다.
그 뒤 압살롬은 친위부대를 만들고 재판에 관여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의 환심을 산 다음, 헤브론에서 왕의 즉위식을 갖고 반란을 일으켜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옵니다. 다윗은 급히 요르단 강 건너편으로 피신합니다. 급팽창하던 압살롬의 세력은 후새의 계략에 넘어가 전투에서 지고 압살롬 자신도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성서 저자는 이 모든 일의 배후에 하느님이 계시다고 일러 줍니다.
다윗이 다시 왕위를 차지하다(2사무 19,9 b-20,25)
* 아벨 벳마아가 성을 함락의 위기에서 구한 사람은 누구입니까?(20,16-22)
압살롬이 죽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시 다윗을 왕으로 모시자고 논의합니다. 또 다윗은 유다 지파에게 자신을 왕으로 모시도록 촉구합니다. 이를 보면 당시 다윗이 온 이스라엘 사람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튼 유다 백성의 마음이 돌아와 다윗을 왕으로 맞이합니다. 다윗은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는 등 너그러움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선수를 빼앗긴 이스라엘 지파들과 유다 지파 사이에 다툼이 시작됩니다. 아직도 두 그룹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고 갈등관계에 있음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베냐민 사람 세바의 주동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각기 고향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또다시 분열의 위기에 처하자, 다윗은 세바를 죽여 왕권을 굳힙니다. 그가 죽음으로써 일단 갈등은 가라앉지만, 솔로몬 대에 가서 결정적으로 갈라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다윗이 하느님을 찬양하다(2사무 21,1-24,24)
* 다윗은 하느님을 자신의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22,2-51)
사무엘서 하권의 끝부분에는 다윗 시대에 있었던 몇가지 사건이 앞뒤없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먼저 삼 년이나 흉년이 들었을 때, 그 원인이 사울 가문이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한 데 있다는 신탁이 나옵니다. 그래서 사울 가문의 일곱 명을 기브온 사람들에게 넘겨 처형시킵니다. 그러나 다윗이 그들의 뼈를 잘 매장해 줄 때 하느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는 피의 복수에 따른 정의를 나타내는 고대의 이야기를 빌어 전왕에 대한 다윗의 충성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불레셋을 이기게 해주신 날, 다윗은 자신의 생애를 통해 끊임없이 은혜를 베푸신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하느님의 능력의 크심을 기리고, 하느님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병적조사를 하여 하느님의 진노를 사 전염병으로 숱한 백성이 죽습니다. 다윗이 잘못을 고백하고 제사를 지낸 뒤에야 재앙이 그칩니다. 병적조사는 다윗이 자신의 힘을 확인하고 드러내려는 짓으로서, 하느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참된 신앙에서 벗어난 일이었기에 그런 재앙을 가져온 것입니다.
<새김과 나눔>
다윗은 “한 마음으로 당신을 위하면 당신께서도 한 마음으로 위해 주십니다”(22,26)라고 찬양했습니다. 우리의 생활과 신앙은 얼마나 갈라져 있는지 묵상해봅시다.
열왕기란 성서 이름은?
열왕기(列王記)는 말 그대로 왕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다윗 이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망할 때까지 재위했던 왕들과 그들의 역사가 실려 있지요. 사무엘서와 마찬가지로 열왕기도 본래 한 권이었습니다. 분량이 너무 길기 때문에 그리스어 성서에서 아합의 죽음까지 잘라 두 권으로 만들었는데, 그 뒤 다른 성서들이 모두 이 분류를 따르게 되었죠. 또 그리스어 성서에서 사무엘서를 열왕기 1·2권으로 불렀다는 게 기억나세요? 그렇다면 열왕기 상·하권은 열왕기 3·4권으로 불렸겠죠. 열왕기는 이미 앞에 나온 여호수아, 판관기, 사무엘서와 함께 묶여서 ‘전기 예언서’ 또는 ‘신명기계 역사서’라 불려요. 전체적으로 보면 가나안 땅 정복으로부터 멸망해서 가나안 땅을 잃게 되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담아 보여주고 있는 셈이죠.
누가 썼지요?
유대교의 탈무드 전승에는 예언자 예레미야가 열왕기를 썼다고 나와요. 하지만 이는 율법은 모두 모세, 시편은 다윗, 지혜문학은 솔로몬 하는 식으로 성서의 권위를 관련된 특정인에게 모두 연관시켰던 후대 유대교의 한 경향을 나타낼 뿐이지요. 열왕기는 이미 전해온 사료들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인데, 이를 하나로 체계화시켜 편집한 이는 신명기계 역사가라고 해요. 그(들)은 주로 바빌론 포로기 시대에 활동한 인물인데, 특별히 야훼 신앙에 투철했다고 여겨져요.
언제 썼지요?
안타깝게도 분명히 알 수는 없어요. 우리나라의 ‘조선 왕조 실록’이나 주변 국가의 연대기처럼, 이스라엘과 유다에도 왕의 제위 때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한 문서가 있었다고 추정되어요. 어떤 것은 솔로몬 시대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기도 하거든요. 이런 기록들이 계속 전해오다 현재와 같이 하나로 정리된 시기는 아마도 바빌론 포로기나 그 이후일 거에요.
왜 썼나요?
열왕기는 역사서이지만, 현대의 역사서같이 ‘사실’을 비판적으로 정리 기록한 그런 역사서가 아니라, 신명기 역사가의 관점에서 정리된 ‘신학적 역사서’라 할 수 있어요. 바빌론 포로기를 겪은 그는 자기 민족이 멸망당한 까닭을 신앙 안에서 깊이 생각하고 그 이유를 하느님께 대한 불순종에서 찾았어요. 즉 그는 야훼 하느님께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망한다는 역사의식을 갖고 자기네 역사를 되돌아보았던 것이 신명기계 역사서죠. 아울러 그 역사 중에 하느님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어 하느님의 능력과 성실하심도 일러주어요.
열왕기를 유심히 보시면 각 왕들의 치적이 일정한 도식으로 반복해서 기술되어 있으며, 요시아 왕이 가장 칭찬받는 반면 므나쎄 왕이 가장 나쁜 평을 받음을 알 수 있어요. 그 평가기준은 정치경제적 역량이 아니라 야훼 신앙에 얼마나 충실했는가에요. 결국 이를 통해 열왕기는 하느님 말씀에 충실하고 그분만을 올바로 섬기는 것이 다시 하느님 공동체를 회복하여 잘 사는 길임을 포로기 시대의 동족들에게 강조하는 것이에요. 나아가 우리 시대에도 진짜 중요한 것은 국력의 신장보다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그분 말씀에 따르는 올바른 삶임을 일러주고 있어요.
<새김과 나눔>
요즈음, 한 개인의 역사부터 가정이나 국가, 인류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역사를 많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역사를 볼 때 판단기준으로 삼는 것은 무엇인가요? 세상의 기준과 성서의 기준은 어떻게 다른가요?
열왕기 상권
솔로몬의 즉위와 다윗의 죽음(1열왕 1,1-2,26)
다윗이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을 되새겨 보십시오(2,3)
다윗이 늙어 기력이 쇠하여지자 왕위를 둘러싼 싸움이 벌어집니다. 먼저 맏아들인 아도니야가 요압 장군과 사제 에비아달의 지원을 받아 세력을 모읍니다. 그러나 나단 예언자와 바쎄바의 측면지원을 받은 솔로몬이 다윗의 재가를 얻어 후계자가 됩니다. 다윗은 임종 자리에서 솔로몬에게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명령을 지키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왕조를 굳건히 세워주실 것이라고 충고합니다. 다윗이 죽은 뒤, 솔로몬은 정적인 아도니야와 요압을 죽이고 에비아달을 추방한 다음 정권을 단단하게 굳힙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건축과 봉헌(1열왕 3,1-8,66)
솔로몬은 성전을 봉헌하면서 어떤 말로 백성들에게 축복해주었습니까?(8,54-61)
어느날 솔로몬이 기브온에 있는 산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잠들었을 때, 하느님이 나타나 그의 소원을 묻습니다. 솔로몬이 하느님의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만을 청하자, 하느님은 부귀와 명예도 덧붙여 주십니다.
하느님이 돌보아주셔서 솔로몬은 놀라운 지혜를 지니며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평화롭게 살게 됩니다. 그러자 솔로몬은 자신을 지켜주시는 하느님께 성전을 지어 바칠 준비를 합니다. 띠로 왕 히람과 계약을 맺어 레바논의 송백나무를 베어오고 전국에 근로소집령도 내립니다. 마침내 출애굽한 지 480년 되던 해에 성대한 성전을 짓기 시작하여 칠 년만에 완공시킵니다. 성전에 필요한 각종 기구도 다 만든 다음, 솔로몬은 계약의 궤를 모시고서 하느님께 기도드리고 백성들에게 복을 빌어줍니다. 야훼 하느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구름이 성전을 가득 채워 하느님의 뜻에 부합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로써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이름을 불러 예배할 곳”(8,16)으로 굳건히 자리잡게 됩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예루살렘 성전과 병행해서 지방의 성소와 산당들도 유다가 멸망할 때까지 세력을 유지합니다. 결국 유다가 망했다가 다시 돌아온 포로기 이후 시대에 가서야 예루살렘은 유일한 야훼 예배처로 자리잡게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통치와 타락(1열왕 9,1-11,43)
이스라엘이 분열된 것이라고 알려준 예언자는 누구입니까?(11,29)
하느님께서는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 당신의 계명과 법을 잘 지키면 그의 왕좌를 지켜주겠노라고 이르십니다. 잘 안 지키면 재앙이 덮칠 것이구요. 하느님의 경고를 받았지만 솔로몬은 점차 하느님의 길에서 벗어납니다. 왕궁과 기타 성을 쌓는데 주변민족들은 강제노역을 시키는데, 이는 이집트에서 강제노동을 한 이스라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많은 이방여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의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결정적인 배반행위를 합니다. 그 결과 하느님의 예고대로 나라가 분열되리라는 경고가 떨어지는 속에 솔로몬이 숨을 거둡니다. 무려 11장에 이르는 솔로몬 이야기 중에 우리는 하느님의 사람이 지닌 밝음과 어두움을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새김과 나눔>
자신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백성들을 잘 돌볼 지혜를 구하는 바른 지도자 솔로몬의 모습과, 백성들을 강제노동시키고 이방신을 섬기는 타락된 솔로몬의 모습은 우리의 두 측면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항구하게 하느님 안에 머물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왕국은 찢어지고(1열왕 12,1-13,24)
르호보암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무슨 말로 거부합니까?(1열왕 12,14)
솔로몬이 죽은 뒤, 그의 아들 르호보암은 왕으로 추대 받으려면 세겜으로 갑니다. 이를 보면, 왕위가 자동적으로 계승되기보다 백성들의 동의와 추대가 있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백성들은 심한 일을 덜어달라고 요구하지만, 르호보암은 그 요구를 거절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다윗 왕조를 거부하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이스라엘 왕조를 세웁니다. 여로보암은 베델과 단에 야훼를 상징하는 금송아지상까지 세워 종교적으로도 갈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일이 하느님을 거역하는 큰 죄가 됩니다.
서로 다투는 분열왕국(1열왕 14,1-16,34)
이 대목에 등장하는 왕 중에서 하느님 보시기에 곧은 일을 한 왕은 누구입니까?(15,9-24)
분열된 왕국 중에서 유다는 유다 지파만을 다스리는데, 다윗 왕조가 순탄하게 이어갑니다. 르호보암의 뒤를 이어 아비야와 아사, 여호사밧이 차례로 왕위에 오릅니다. 이들은 북이스라엘과 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이집트의 침략을 받으면서 어렵게 나라를 이끌어갑니다.
북이스라엘의 사정은 좀더 복잡합니다. 열 지파가 연합하여 있는 데다가 예전의 평등했던 히브리 전통과 한정된 기간만 판관의 지위를 인정했던 전통들이 강해 세습왕조의 뿌리를 내리기가 어려웠습니다.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아들 나답이 왕위를 계승하지만, 바아사, 지므리, 오므리의 반란이 거듭됩니다. 열왕기 저자는 그들이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기에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고 풀이합니다.
예언자 엘리야 이야기(1열왕 17,1-19,21)
엘리야에게 하느님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까?(19,9-14)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 때, 구약의 대표적인 예언자 엘리야가 활동합니다. 그는 하느님을 옳게 섬기지 않는 아합 왕에게 가뭄을 예고한 뒤, 사렙다 과부의 도움을 받아 살아갑니다. 그의 죽은 아들도 살려주고요. 삼 년 후에 엘리야는 아합 왕을 찾아가 가르멜 산에서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하겠다고 제의합니다. 엘리아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승리한 다음 바알 예언자를 모두 죽이고 왕비 이세벨의 살해 위협을 피해 광야로 도망갑니다. 하느님은 의기소침에 있는 엘리야를 격려하시며 그에게 새로운 임무를 주십니다.
아합 왕 이야기(1열왕 20,1-22,54)
라못길르앗 전투가 하느님의 뜻에 부합되는지를 묻는 왕에게 예언자 미가야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22,19-23)
아합 왕은 북이스라엘 오므리 왕조의 둘째 왕으로 역사적으로 국가를 퍽 잘 다르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돈왕 에드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여 바알을 숭배한 탓에 하느님의 질타를 받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시리아 군대를 물리쳐 주시어 당신이 참된 하느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또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폭력으로 빼앗을 때는 엘이야를 통해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결국 아합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라못길르앗 전투에 나갔다가 전사합니다. 이 대목은 참된 예언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하느님 말씀에 순종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러줍니다.
<새김과 나눔>
이스라엘의 왕정시대에는 특별하게 예언자라는 이들이 등장합니다. 엘리야와 미가야 같은 참 예언자와 시드키야 같은 거짓 예언자를 보며, 이 시대의 우리 그리스도인의 예언직은 어떠한지 생각해보십시오.
열왕기 하권
엘리사 이야기 1(2열왕 1,1-4,44)
엘리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2열왕 3,15)
엘리야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에크론 신 바알즈붑에게 병세를 문의하러 간 이스라엘 왕 야하지아에게 죽음을 선포한 것이었습니다. 야훼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은 잘못을 탓하는 것이지요. 그가 하느님의 말씀대로 죽고 여호람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 뒤에 엘리아는 엘리사와 함께 가다가 불수레에 휩싸여 하늘로 올라 사라집니다. 이제부터는 엘리사가 엘리야의 영검을 받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지적을 행합니다.
그는 나쁜 물을 전하게 하고, 모압을 토벌하리라는 말씀을 전하며, 과부의 기름이 계속 나오게하여 빚을 갚게도 합니다. 또 수넴 여인에게 아들을 예고하고 그 아들이 죽었을 때에는 다시 살리기도 하며, 독이 든 국을 문제없게 하고, 보리떡 스무 개로 백 명을 먹입니다.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1,17;2,21;4,43-44) 이루어짐을 믿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엘리사 이야기 2(2열왕 5,1-8,29)
시리아의 군사령관인 나아만은 야훼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어떻게 고백합니까?(5,15-18)
엘리사의 명성이 널리 알려져 마침내 시리아의 군사령관인 나아만이 그에게 찾아가 문둥병을 치유받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제자 게하지는 스승이 나아만으로부터 사례받기를 거부하자 아깝게 여겨 뒤쫓아가 은과 옷을 받아옵니다. 그는 부유하게 되었지만 그 욕심 때문에 문둥병에 걸려 스승 곁을 떠나게 됩니다.
그밖에 엘리사는 시리아의 강도떼를 사로잡기도 하고, 사마리아를 포위한 시리아군을 내쫓으시겠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이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기원전 9세기 초반인 이 당시 유다 왕은 여호람과 그 뒤를 이은 아하지야였고, 이스라엘의 왕은 아합의 아들 요람이었습니다. 유다 왕 여호람이 이스라엘 왕 아합의 사위가 될 정도로 두 나라의 관계는 아주 우호적이었답니다.
예후의 쿠데타와 엘리사의 죽음(2열왕9,1-13,25)
보기 드물게 요아스 왕이 칭찬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12,3)
엘리사는 제자를 시켜 북이스라엘의 장군인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는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예후는 이 말씀을 쫓아 쿠데타를 일으켜 요람과 이세벨 등 아합의 일족과 바알을 숭배하는 자들을 모두 죽이고 야훼 신앙을 회복합니다. 그러나 그 역시 금송아지를 야훼로 섬기는 잘못을 바로잡지는 못합니다. 예후의 아들과 손자인 여호아하즈와 여호아스가 뒤를 이어 예후 왕조를 지속시켜 가지만, 계속 시리아로부터 괴롭힘을 받습니다. 그러나 야훼께서 도우시어 그들을 구해주십니다. 여호아스의 통치 중에 엘리사가 죽습니다. 열왕기 상권에서 엘리야가 차지한 비중과 하권에서 엘리사가 차지한 분량을 보면, 이 두 예언자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유다에서는 예후에게 아하자야 왕이 살해당하자 그의 어머니 아달리야가 다른 아들을 모두 죽이고 자신이 직접 통치합니다. 그러나 사제 여호야다가 칠년 후에 아달리야를 죽이고, 그동안 숨어 지내던 아하지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으로 세웁니다.
<새김과 나눔>
이스라엘과 유다는 경쟁과 협력 관계를 오갑니다. 현재 경직된 경쟁 관계에 있는 한반도가 화해와 협력관계로 나아가려면, 우리 신앙인들은 어떤 일을 하는 게 필요할까요?
북이스라엘의 멸망(2열왕 14,1-17,41)
열왕기는 이스라엘이 멸망한 까닭을 어떻게 풀이하고 있습니까?(17,7)
이사야, 아모스, 미가 등 많은 예언자가 활동했던 기원전 8세기에 이스라엘과 유다는 잠깐 반짝하는 번영의 순간도 있었지만, 매우 어지러운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그래도 유다는 다윗 왕조가 계속 이어지고 한 왕의 재위기간이 비교적 길었습니다. 아마지야가 반란으로 죽었지만, 아들 우찌야가 대를 이어 무려 52년간 통치하고, 요담과 아하즈가 차례로 대를 이어 16년씩 유다를 다스립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에서는 계속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예후 왕조의 셋째 왕인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는 솔로몬 시대의 영토를 거의 찾을 정도로 국력을 키웁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즈가리야는 6개월만에 반란으로 무너지고, 이어 살롬, 므나헴, 베가 ,호세아 등이 계속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면서 국가는 멸망의 길로 접어듭니다. 마침내 기원전 722/721년에 북 메소포타미아의 막강한 제국 아시리아가 이스라엘을 멸망시킵니다. 그리고 많은 유력자를 끌어가고 대신 다른 민족을 사마리아로 이주시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이 생겼다고 전합니다.
히즈키야와 이사야(2열왕 18,1-20,21)
히즈키야는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였습니까?(19,15-19)
이스라엘이 멸망할 당시의 유다 왕은 히즈키야였습니다. 그는 보기 드물게 야훼 신앙에 투철한 왕이었습니다. 아시리아가 유다마저 짓누르자, 그는 달걀로 바위치는 격이었지만 아시리아에 대들었습니다. 막상 아시리아가 유다를 공격하자 히즈키야는 각종 금은을 모아 몽땅 바치고 잘못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래도 아시리아가 철수하지 않고 히즈키야를 조롱하자, 히즈키야는 회개의 복장을 하고, 간절하게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마침내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하느님의 응답이 들렸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아시리아를 물리쳐주시고 유다를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말씀대로 아시리아의 군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철수하고 산헤립은 아들에게 피살당합니다. 또 중병에 걸려 죽을 지경이 된 히즈키야가 울면서 드린 기도를 하느님은 귀담아 들으시고 그의 수명을 늘려주시나, 그가 바빌론 사절단을 환대하면서 의지하려 하자 바빌론에게 망하리라고 이사야는 예언합니다. 이 대목은 아사야서와 함께 보시면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하느님께 신뢰하는 자는 결코 망하지 않으리라고 일러준답니다.
유다와 멸망(2열왕 21,1-25.30)
요시아 왕은 하느님의 율법을 어떻게 준수하였습니까?(23,25)
므나쎄는 아버지 히즈키야와 정반대로 주변 민족들의 우상을 섬기는 등 야훼 하느님을 거역하는 죄를 많이 지었기에,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겠다는 하느님의 선고가 떨어집니다. 그의 손자 요시아는 아시리아가 쇠퇴한 틈을 타서 대대적인 개혁을 하여 다시금 유다를 정화합니다. 일명 신명기 법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 개혁은 이스라엘 종교사에서 무척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진노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뒤 유다는 이집트의 침략에 시달리다 결국 바빌론에 의해 기원전 587년에 멸망하고 맙니다. 하느님의 경고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지요.
<새김과 나눔>
솔로몬으로부터 유다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몇 백 년에 걸친 왕조의 흥망사를 보며 여러분이 느끼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삶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주님의 손길을 어떻게 느끼며 고백합니까?
열왕기란 성서 이름은?
열왕기(列王記)는 말 그대로 왕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다윗 이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망할 때까지 재위했던 왕들과 그들의 역사가 실려 있지요. 사무엘서와 마찬가지로 열왕기도 본래 한 권이었습니다. 분량이 너무 길기 때문에 그리스어 성서에서 아합의 죽음까지 잘라 두 권으로 만들었는데, 그 뒤 다른 성서들이 모두 이 분류를 따르게 되었죠. 또 그리스어 성서에서 사무엘서를 열왕기 1·2권으로 불렀다는 게 기억나세요? 그렇다면 열왕기 상·하권은 열왕기 3·4권으로 불렸겠죠. 열왕기는 이미 앞에 나온 여호수아, 판관기, 사무엘서와 함께 묶여서 ‘전기 예언서’ 또는 ‘신명기계 역사서’라 불려요. 전체적으로 보면 가나안 땅 정복으로부터 멸망해서 가나안 땅을 잃게 되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담아 보여주고 있는 셈이죠.
누가 썼지요?
유대교의 탈무드 전승에는 예언자 예레미야가 열왕기를 썼다고 나와요. 하지만 이는 율법은 모두 모세, 시편은 다윗, 지혜문학은 솔로몬 하는 식으로 성서의 권위를 관련된 특정인에게 모두 연관시켰던 후대 유대교의 한 경향을 나타낼 뿐이지요. 열왕기는 이미 전해온 사료들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인데, 이를 하나로 체계화시켜 편집한 이는 신명기계 역사가라고 해요. 그(들)은 주로 바빌론 포로기 시대에 활동한 인물인데, 특별히 야훼 신앙에 투철했다고 여겨져요.
언제 썼지요?
안타깝게도 분명히 알 수는 없어요. 우리나라의 ‘조선 왕조 실록’이나 주변 국가의 연대기처럼, 이스라엘과 유다에도 왕의 제위 때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한 문서가 있었다고 추정되어요. 어떤 것은 솔로몬 시대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기도 하거든요. 이런 기록들이 계속 전해오다 현재와 같이 하나로 정리된 시기는 아마도 바빌론 포로기나 그 이후일 거에요.
왜 썼나요?
열왕기는 역사서이지만, 현대의 역사서같이 ‘사실’을 비판적으로 정리 기록한 그런 역사서가 아니라, 신명기 역사가의 관점에서 정리된 ‘신학적 역사서’라 할 수 있어요. 바빌론 포로기를 겪은 그는 자기 민족이 멸망당한 까닭을 신앙 안에서 깊이 생각하고 그 이유를 하느님께 대한 불순종에서 찾았어요. 즉 그는 야훼 하느님께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망한다는 역사의식을 갖고 자기네 역사를 되돌아보았던 것이 신명기계 역사서죠. 아울러 그 역사 중에 하느님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어 하느님의 능력과 성실하심도 일러주어요.
열왕기를 유심히 보시면 각 왕들의 치적이 일정한 도식으로 반복해서 기술되어 있으며, 요시아 왕이 가장 칭찬받는 반면 므나쎄 왕이 가장 나쁜 평을 받음을 알 수 있어요. 그 평가기준은 정치경제적 역량이 아니라 야훼 신앙에 얼마나 충실했는가에요. 결국 이를 통해 열왕기는 하느님 말씀에 충실하고 그분만을 올바로 섬기는 것이 다시 하느님 공동체를 회복하여 잘 사는 길임을 포로기 시대의 동족들에게 강조하는 것이에요. 나아가 우리 시대에도 진짜 중요한 것은 국력의 신장보다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그분 말씀에 따르는 올바른 삶임을 일러주고 있어요.
<새김과 나눔>
요즈음, 한 개인의 역사부터 가정이나 국가, 인류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역사를 많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역사를 볼 때 판단기준으로 삼는 것은 무엇인가요? 세상의 기준과 성서의 기준은 어떻게 다른가요?
열왕기 상권
솔로몬의 즉위와 다윗의 죽음(1열왕 1,1-2,26)
다윗이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을 되새겨 보십시오(2,3)
다윗이 늙어 기력이 쇠하여지자 왕위를 둘러싼 싸움이 벌어집니다. 먼저 맏아들인 아도니야가 요압 장군과 사제 에비아달의 지원을 받아 세력을 모읍니다. 그러나 나단 예언자와 바쎄바의 측면지원을 받은 솔로몬이 다윗의 재가를 얻어 후계자가 됩니다. 다윗은 임종 자리에서 솔로몬에게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명령을 지키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왕조를 굳건히 세워주실 것이라고 충고합니다. 다윗이 죽은 뒤, 솔로몬은 정적인 아도니야와 요압을 죽이고 에비아달을 추방한 다음 정권을 단단하게 굳힙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건축과 봉헌(1열왕 3,1-8,66)
솔로몬은 성전을 봉헌하면서 어떤 말로 백성들에게 축복해주었습니까?(8,54-61)
어느날 솔로몬이 기브온에 있는 산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잠들었을 때, 하느님이 나타나 그의 소원을 묻습니다. 솔로몬이 하느님의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만을 청하자, 하느님은 부귀와 명예도 덧붙여 주십니다.
하느님이 돌보아주셔서 솔로몬은 놀라운 지혜를 지니며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평화롭게 살게 됩니다. 그러자 솔로몬은 자신을 지켜주시는 하느님께 성전을 지어 바칠 준비를 합니다. 띠로 왕 히람과 계약을 맺어 레바논의 송백나무를 베어오고 전국에 근로소집령도 내립니다. 마침내 출애굽한 지 480년 되던 해에 성대한 성전을 짓기 시작하여 칠 년만에 완공시킵니다. 성전에 필요한 각종 기구도 다 만든 다음, 솔로몬은 계약의 궤를 모시고서 하느님께 기도드리고 백성들에게 복을 빌어줍니다. 야훼 하느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구름이 성전을 가득 채워 하느님의 뜻에 부합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로써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이름을 불러 예배할 곳”(8,16)으로 굳건히 자리잡게 됩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예루살렘 성전과 병행해서 지방의 성소와 산당들도 유다가 멸망할 때까지 세력을 유지합니다. 결국 유다가 망했다가 다시 돌아온 포로기 이후 시대에 가서야 예루살렘은 유일한 야훼 예배처로 자리잡게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통치와 타락(1열왕 9,1-11,43)
이스라엘이 분열된 것이라고 알려준 예언자는 누구입니까?(11,29)
하느님께서는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 당신의 계명과 법을 잘 지키면 그의 왕좌를 지켜주겠노라고 이르십니다. 잘 안 지키면 재앙이 덮칠 것이구요. 하느님의 경고를 받았지만 솔로몬은 점차 하느님의 길에서 벗어납니다. 왕궁과 기타 성을 쌓는데 주변민족들은 강제노역을 시키는데, 이는 이집트에서 강제노동을 한 이스라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많은 이방여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의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결정적인 배반행위를 합니다. 그 결과 하느님의 예고대로 나라가 분열되리라는 경고가 떨어지는 속에 솔로몬이 숨을 거둡니다. 무려 11장에 이르는 솔로몬 이야기 중에 우리는 하느님의 사람이 지닌 밝음과 어두움을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새김과 나눔>
자신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백성들을 잘 돌볼 지혜를 구하는 바른 지도자 솔로몬의 모습과, 백성들을 강제노동시키고 이방신을 섬기는 타락된 솔로몬의 모습은 우리의 두 측면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항구하게 하느님 안에 머물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왕국은 찢어지고(1열왕 12,1-13,24)
르호보암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무슨 말로 거부합니까?(1열왕 12,14)
솔로몬이 죽은 뒤, 그의 아들 르호보암은 왕으로 추대 받으려면 세겜으로 갑니다. 이를 보면, 왕위가 자동적으로 계승되기보다 백성들의 동의와 추대가 있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백성들은 심한 일을 덜어달라고 요구하지만, 르호보암은 그 요구를 거절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다윗 왕조를 거부하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이스라엘 왕조를 세웁니다. 여로보암은 베델과 단에 야훼를 상징하는 금송아지상까지 세워 종교적으로도 갈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일이 하느님을 거역하는 큰 죄가 됩니다.
서로 다투는 분열왕국(1열왕 14,1-16,34)
이 대목에 등장하는 왕 중에서 하느님 보시기에 곧은 일을 한 왕은 누구입니까?(15,9-24)
분열된 왕국 중에서 유다는 유다 지파만을 다스리는데, 다윗 왕조가 순탄하게 이어갑니다. 르호보암의 뒤를 이어 아비야와 아사, 여호사밧이 차례로 왕위에 오릅니다. 이들은 북이스라엘과 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이집트의 침략을 받으면서 어렵게 나라를 이끌어갑니다.
북이스라엘의 사정은 좀더 복잡합니다. 열 지파가 연합하여 있는 데다가 예전의 평등했던 히브리 전통과 한정된 기간만 판관의 지위를 인정했던 전통들이 강해 세습왕조의 뿌리를 내리기가 어려웠습니다.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아들 나답이 왕위를 계승하지만, 바아사, 지므리, 오므리의 반란이 거듭됩니다. 열왕기 저자는 그들이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기에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고 풀이합니다.
예언자 엘리야 이야기(1열왕 17,1-19,21)
엘리야에게 하느님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까?(19,9-14)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 때, 구약의 대표적인 예언자 엘리야가 활동합니다. 그는 하느님을 옳게 섬기지 않는 아합 왕에게 가뭄을 예고한 뒤, 사렙다 과부의 도움을 받아 살아갑니다. 그의 죽은 아들도 살려주고요. 삼 년 후에 엘리야는 아합 왕을 찾아가 가르멜 산에서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하겠다고 제의합니다. 엘리아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승리한 다음 바알 예언자를 모두 죽이고 왕비 이세벨의 살해 위협을 피해 광야로 도망갑니다. 하느님은 의기소침에 있는 엘리야를 격려하시며 그에게 새로운 임무를 주십니다.
아합 왕 이야기(1열왕 20,1-22,54)
라못길르앗 전투가 하느님의 뜻에 부합되는지를 묻는 왕에게 예언자 미가야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22,19-23)
아합 왕은 북이스라엘 오므리 왕조의 둘째 왕으로 역사적으로 국가를 퍽 잘 다르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돈왕 에드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여 바알을 숭배한 탓에 하느님의 질타를 받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시리아 군대를 물리쳐 주시어 당신이 참된 하느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또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폭력으로 빼앗을 때는 엘이야를 통해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결국 아합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라못길르앗 전투에 나갔다가 전사합니다. 이 대목은 참된 예언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하느님 말씀에 순종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러줍니다.
<새김과 나눔>
이스라엘의 왕정시대에는 특별하게 예언자라는 이들이 등장합니다. 엘리야와 미가야 같은 참 예언자와 시드키야 같은 거짓 예언자를 보며, 이 시대의 우리 그리스도인의 예언직은 어떠한지 생각해보십시오.
열왕기 하권
엘리사 이야기 1(2열왕 1,1-4,44)
엘리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2열왕 3,15)
엘리야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에크론 신 바알즈붑에게 병세를 문의하러 간 이스라엘 왕 야하지아에게 죽음을 선포한 것이었습니다. 야훼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은 잘못을 탓하는 것이지요. 그가 하느님의 말씀대로 죽고 여호람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 뒤에 엘리아는 엘리사와 함께 가다가 불수레에 휩싸여 하늘로 올라 사라집니다. 이제부터는 엘리사가 엘리야의 영검을 받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지적을 행합니다.
그는 나쁜 물을 전하게 하고, 모압을 토벌하리라는 말씀을 전하며, 과부의 기름이 계속 나오게하여 빚을 갚게도 합니다. 또 수넴 여인에게 아들을 예고하고 그 아들이 죽었을 때에는 다시 살리기도 하며, 독이 든 국을 문제없게 하고, 보리떡 스무 개로 백 명을 먹입니다.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1,17;2,21;4,43-44) 이루어짐을 믿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엘리사 이야기 2(2열왕 5,1-8,29)
시리아의 군사령관인 나아만은 야훼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어떻게 고백합니까?(5,15-18)
엘리사의 명성이 널리 알려져 마침내 시리아의 군사령관인 나아만이 그에게 찾아가 문둥병을 치유받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제자 게하지는 스승이 나아만으로부터 사례받기를 거부하자 아깝게 여겨 뒤쫓아가 은과 옷을 받아옵니다. 그는 부유하게 되었지만 그 욕심 때문에 문둥병에 걸려 스승 곁을 떠나게 됩니다.
그밖에 엘리사는 시리아의 강도떼를 사로잡기도 하고, 사마리아를 포위한 시리아군을 내쫓으시겠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이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기원전 9세기 초반인 이 당시 유다 왕은 여호람과 그 뒤를 이은 아하지야였고, 이스라엘의 왕은 아합의 아들 요람이었습니다. 유다 왕 여호람이 이스라엘 왕 아합의 사위가 될 정도로 두 나라의 관계는 아주 우호적이었답니다.
예후의 쿠데타와 엘리사의 죽음(2열왕9,1-13,25)
보기 드물게 요아스 왕이 칭찬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12,3)
엘리사는 제자를 시켜 북이스라엘의 장군인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는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예후는 이 말씀을 쫓아 쿠데타를 일으켜 요람과 이세벨 등 아합의 일족과 바알을 숭배하는 자들을 모두 죽이고 야훼 신앙을 회복합니다. 그러나 그 역시 금송아지를 야훼로 섬기는 잘못을 바로잡지는 못합니다. 예후의 아들과 손자인 여호아하즈와 여호아스가 뒤를 이어 예후 왕조를 지속시켜 가지만, 계속 시리아로부터 괴롭힘을 받습니다. 그러나 야훼께서 도우시어 그들을 구해주십니다. 여호아스의 통치 중에 엘리사가 죽습니다. 열왕기 상권에서 엘리야가 차지한 비중과 하권에서 엘리사가 차지한 분량을 보면, 이 두 예언자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유다에서는 예후에게 아하자야 왕이 살해당하자 그의 어머니 아달리야가 다른 아들을 모두 죽이고 자신이 직접 통치합니다. 그러나 사제 여호야다가 칠년 후에 아달리야를 죽이고, 그동안 숨어 지내던 아하지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으로 세웁니다.
<새김과 나눔>
이스라엘과 유다는 경쟁과 협력 관계를 오갑니다. 현재 경직된 경쟁 관계에 있는 한반도가 화해와 협력관계로 나아가려면, 우리 신앙인들은 어떤 일을 하는 게 필요할까요?
북이스라엘의 멸망(2열왕 14,1-17,41)
열왕기는 이스라엘이 멸망한 까닭을 어떻게 풀이하고 있습니까?(17,7)
이사야, 아모스, 미가 등 많은 예언자가 활동했던 기원전 8세기에 이스라엘과 유다는 잠깐 반짝하는 번영의 순간도 있었지만, 매우 어지러운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그래도 유다는 다윗 왕조가 계속 이어지고 한 왕의 재위기간이 비교적 길었습니다. 아마지야가 반란으로 죽었지만, 아들 우찌야가 대를 이어 무려 52년간 통치하고, 요담과 아하즈가 차례로 대를 이어 16년씩 유다를 다스립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에서는 계속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예후 왕조의 셋째 왕인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는 솔로몬 시대의 영토를 거의 찾을 정도로 국력을 키웁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즈가리야는 6개월만에 반란으로 무너지고, 이어 살롬, 므나헴, 베가 ,호세아 등이 계속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면서 국가는 멸망의 길로 접어듭니다. 마침내 기원전 722/721년에 북 메소포타미아의 막강한 제국 아시리아가 이스라엘을 멸망시킵니다. 그리고 많은 유력자를 끌어가고 대신 다른 민족을 사마리아로 이주시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이 생겼다고 전합니다.
히즈키야와 이사야(2열왕 18,1-20,21)
히즈키야는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였습니까?(19,15-19)
이스라엘이 멸망할 당시의 유다 왕은 히즈키야였습니다. 그는 보기 드물게 야훼 신앙에 투철한 왕이었습니다. 아시리아가 유다마저 짓누르자, 그는 달걀로 바위치는 격이었지만 아시리아에 대들었습니다. 막상 아시리아가 유다를 공격하자 히즈키야는 각종 금은을 모아 몽땅 바치고 잘못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래도 아시리아가 철수하지 않고 히즈키야를 조롱하자, 히즈키야는 회개의 복장을 하고, 간절하게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마침내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하느님의 응답이 들렸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아시리아를 물리쳐주시고 유다를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말씀대로 아시리아의 군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철수하고 산헤립은 아들에게 피살당합니다. 또 중병에 걸려 죽을 지경이 된 히즈키야가 울면서 드린 기도를 하느님은 귀담아 들으시고 그의 수명을 늘려주시나, 그가 바빌론 사절단을 환대하면서 의지하려 하자 바빌론에게 망하리라고 이사야는 예언합니다. 이 대목은 아사야서와 함께 보시면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하느님께 신뢰하는 자는 결코 망하지 않으리라고 일러준답니다.
유다와 멸망(2열왕 21,1-25.30)
요시아 왕은 하느님의 율법을 어떻게 준수하였습니까?(23,25)
므나쎄는 아버지 히즈키야와 정반대로 주변 민족들의 우상을 섬기는 등 야훼 하느님을 거역하는 죄를 많이 지었기에,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겠다는 하느님의 선고가 떨어집니다. 그의 손자 요시아는 아시리아가 쇠퇴한 틈을 타서 대대적인 개혁을 하여 다시금 유다를 정화합니다. 일명 신명기 법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 개혁은 이스라엘 종교사에서 무척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진노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뒤 유다는 이집트의 침략에 시달리다 결국 바빌론에 의해 기원전 587년에 멸망하고 맙니다. 하느님의 경고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지요.
<새김과 나눔>
솔로몬으로부터 유다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몇 백 년에 걸친 왕조의 흥망사를 보며 여러분이 느끼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삶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주님의 손길을 어떻게 느끼며 고백합니까?
'역대기’라는 성서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나요?
히브리어 역대기는 본래 한 권이었고, 그 이름은 “다브레 하야밈”(그 때에 있었던 사건들)이라 하였어요. 그런데 그리스어 성서에서는 솔로몬 왕의 즉위를 중심으로 이 성서를 상하 두 권으로 갈랐으며, 또한 이 성서가 사무엘서와 열왕기에 쓰여진 내용을 보완하고 있다고 보아 그 이름을 “파랄레이포메나”(빠진 사항들)라고 지었어요. 라틴어 성서인 불가타 성서도 처음에는 그리스어 성서 이름을 쓰다가 곧 예로니모가 주해에서 붙인 “하느님 역사 전체에 관한 역대기”라는 긴 이름을 즐겨 쓰게 되었어요. 이 이름을 줄인 “역대기”(歷代記)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오늘날까지 통용되고 있답니다. 역대기는 히브리 성서에서 ‘성문서’편에 속하며, 판관기-열왕기에 이르는 신명기계 역사서와 구별하여 에즈라 느헤미야서와 함께 역대기계 역사서라고 불립니다.
누가 썼나요?
탈무드 전승에서는 에즈라가 시작하여 느헤미야가 역대기를 끝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다른 구약성서와 마찬가지로 저자가 누군지 정확하게 알 수 없어요. 다만 바빌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유대 공동체를 재건하면서 갖가지 고초를 겪으면서도 그 공동체를 하느님의 공동체로 만들려는 열망이 뜨거웠던 학자였으리라고 봅니다. 그는 모세오경과 여호수아서, 열왕기 등 성서 이외에 스무 가지가 넘는 역사서를 참고하여 이 성서를 엮으면서 하느님의 뜻을 뚜렷하게 부각시켰지요. 오늘날 학자들은 이 사람을 흔히 역대기 사가, 역대기 편찬자라고 부릅니다.
언제 쓰여졌나요?
정확한 집필시기 역시 알 수 없어요. 역대기 사가가 신명기계 역사서를 바탕으로 하고 전해 내려온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썼고, 그 뒤로는 여러 차례 가필되었다고 보아요. 아마도 그 시대는 페르시아 시대, 기원전 4세기나 3세기쯤 되리라고 여겨져요.
왜 썼나요?
역사서는 예나 지금이나 단순히 예전에 있던 사건에 대한 기록이 아니죠. 그것은 사건을 새롭게 해석하여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교훈과 비전을 던져주어요. 모든 것이 무너진 다음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는 포로기 이후의 유대인들에게, 역대기는 새로운 꿈과 용기를 던져주려고 해요. 역대기를 읽어본 분들은 알겠지만, 역대기는 유다 왕조, 특히 다윗 왕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어요.
즉, 역대기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번창했던 다윗 시대의 역사를 부각시키면서 보잘것없는 현재 상태에서도 힘을 잃지 말 것을 이야기해 주는 거죠.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공동체의 방향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다윗은 역사상의 다윗은 역사상의 다윗이라기보다 이상적으로 그려진 다윗의 모습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야훼 하느님께 지극히 성실했던 다윗을 보여주면서 그렇게 충실히 하느님을 섬기면, 당신과의 계약을 충실히 지키시는 하느님께서 다시금 이 공동체를 보살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불어넣고 키워주려는 뜻이 가득 담겨 있어요. 더불어 예루살렘 성전 제의를 올바로 지키는 예배 공동체가 포로시대 이후 유대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점도 함께 지시되고 있죠.
<나눔과 새김>
유대인들에게 다윗이 그러하듯, 우리가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본받고자 하는 모델은 누구일까요? 나와 자녀, 교회 공동체의 경우를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역대기 상권
아담으로부터 시작되는 족보(1역대 1,1-9, 34)
* 모세와 아론은 어느 지파, 누구의 자손입니까?(5,29)
역대기는 인류의 첫 사람인 아담으로부터 족보를 시작합니다.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 중 유다지파가 소개되고, 그중에서도 다윗의 가문이 집중적으로 소개됩니다. 이어서 남쪽과 요르단강 동편에 살던 지파들의 명단이 나열됩니다.
그 뒤에는 특별한 영토를 갖지 못한 레위 지파가 퍽 소상하게 소개됩니다. 그리고 북쪽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짧게 언급되면서 족보가 끝납니다. 왜 이렇게 족보가 장황하게 나올까요? 이 모든 것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이스라엘로 되돌아온 사람들의 족보입니다. 이것을 소개하는 까닭은 이스라엘의 참된 선민이 누구인지를 한 처음으로 소급하여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루가 3,23-38 참조).
뛰어난 왕인 다윗(1역대 9, 35-16,43)
다윗이 부른 감사의 노래를 다시 한 번 읽어보십시오(16,3-36)
이스라엘의 첫 왕인 사울의 계보가 짧게 언급된 뒤 그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거역한 죄 때문에 비참하게 죽었다고 밝힙니다. 그럼으로써 사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다윗의 모습이 한결 빛납니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 사람들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었고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자신의 도성으로 삼습니다. 각 지파에서 다윗을 따르기 위해 모여온 용사들의 명단이 소개됨으로써 다윗의 덕이 드러납니다. 다윗은 하느님의 도움으로 불레셋족을 무질러 명성을 널리 떨칩니다.
마침내 다윗은 사울 때 잃어버렸다가 간신히 되찾은 야훼의 궤를 키럇여아림 땅에서 모시고 오베데돔의 집으로, 그 다음에 예루살렘으로 모시고 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섬기라고 뽑으신 레위인들이 계약궤를 정중하고도 즐거운 마음으로 모시고 와 번제와 친교제를 바치고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 모든 절차는 하느님을 모시기에 합당하게 진행됩니다. 이런 모습을 통해 다윗이 하느님을 얼마나 극진하게 잘 섬겼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성전을 지을 준비를 마치고(1역대 17,1-29,30)
다윗은 자신의 제물을 누가 준 것이라고 고백합니까?(29,11-17)
다윗이 하느님의 집을 지으려고 나서자, 하느님께서는 나단 예언자를 시켜 그 일은 자식대에 가서 해야할 일이라고 일러주시며 다윗의 왕조를 영원히 튼튼하게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다윗은 주변국가를 복속시키며 번영을 누리지만, 사탄에게 넘어가 병적조사를 함으로써 하느님의 벌을 받습니다. 다윗은 하느님께 번제와 친교제를 드려 잘못을 속죄한 뒤, 성전을 지을 준비를 갖춥니다. 금과 은,목재 등 재료 이외에도 레위인들을 찬양대와 수위대, 창고관리인과 행정직,사제반 등으로 편성합니다.
마지막으로 늙은 다윗은 솔로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은혜를 상기시키며 하느님께 바칠 성전을 기쁜 마음으로 온 정성을 쏟아 지을 것을 거듭거듭 당부한 뒤 숨을 거둡니다. 이 대목에서 다윗은 정치적인 왕을 뛰어넘어 이스라엘 공동체의 기초가 될 성정과 제의를 준비하는 특별한 인물로 소개됩니다.
<나눔과 새김>
성전과 제의는 하느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내용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성당과 전례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역대기 하권
성전을 세운 솔로몬(2역대 1,1-9, 31)
하느님께서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표시로 하늘에서 내리신 것은 무엇입니까(7,1)
솔로몬은 하느님께 청해 얻은 슬기와 지식으로 이스라엘의 번영을 가져왔습니다. 그런 다음 예루살렘의 모리야산에 성전을 지은 뒤에 계약궤를 모시고 하느님께 기도와 찬양을 바칩니다. “참마음과 뜻을 다쏟아 참회하고 당신의 이름을 기리며 간절히 빌거든” 이스라엘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기도를 들어달라고 청하는 솔로몬의 기도를 받아들이신 하느님은 그의 꿈에 나타나 다윗과 맺으신 계약을 갱신하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주셨기에 가능했던 것임을 역대기는 거듭 밝힙니다.
분열된 왕국과 남유다의 왕들(2역대 10,1-28,27)
모압과 암몬 족이 쳐들어왔을 때 여호사밧은 어떻게 기도하였습니까?(20,6-12)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 시절에 이스라엘은 둘로 나뉩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의 모든 사제와 레위인들을 비롯하여 야훼를 찾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내려 왔습니다. 열왕기에는 없는 이 구절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 제의가 정통임을 역대기는 강조합니다. 뿐만 아니라 르호보암 이후 북 이스라엘의 왕들을 전혀 소개하지 않고 오직 남유다의 왕들만 언급합니다. 이로써 예루살렘 및 다윗왕조와 분리된 북 이스라엘은 야훼 하느님과 멀어진 공동체라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다의 왕들에 대한 내용은 그들이 하느님께 얼마나 온전히 충실했냐에 따라 그들의 삶과 공동체의 운명이 좌우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야훼의 법을 저버린 르호보암은 이집트 왕 시삭의 침공을 받지만, 야훼께 부르짖은 아비야는 협공을 받는 처지에서도 승리를 거둬요. 아사와 여호사밧은 주변국가와 싸우면서 하느님께 의지할 때는 승리하지만 신뢰하지 않을 때는 지고 맙니다.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정치를 편 여호람과 아하지야는 각각 병을 앓다 죽거나 살해되고 맙니다.
히즈키야의 종교개혁에서 국가의 멸망까지(2역대 29,1- 36,23)
백성들의 기도가 하늘에 미쳤던 때는 어느 축제중이었습니까?(30,21-27)
역대기 하권에서 히즈키야에 관한 기사는 솔로몬에 이어 두 번째로 분량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히즈키야가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정화하고 강화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전을 정화한 뒤 속죄제와 번제를 드렸습니다. 또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사람들을 보내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과월절과 무교절을 함께 보내자고 초대하여, 그들과 더불어 마음을 기울여 축제를 지냅니다. 이 모든 일을 보시고 하느님은 복을 주시고, 아시리아 왕 산헤립이 쳐들어왔을 때도 물리쳐 주십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왕들은 하나같이 야훼께 충실치 않아 외세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시드키야 시절에 바빌론에게 망하는 벌을 받고 맙니다. 하지만 역대기는 맨 마지막에 하느님께서 페르샤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시어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락한다고 적음으로써, 당신 말씀에 충실하신 하느님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곧 하느님께 신뢰와 희망을 두는 이는 결코 외면받지 않으리라는 가르침이죠.
<새김과 나눔>
히즈키야 시절에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은 공동체 전체로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신앙인들이 받는 하느님의 축복은 어떤 것일까요?
'역대기’라는 성서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나요?
히브리어 역대기는 본래 한 권이었고, 그 이름은 “다브레 하야밈”(그 때에 있었던 사건들)이라 하였어요. 그런데 그리스어 성서에서는 솔로몬 왕의 즉위를 중심으로 이 성서를 상하 두 권으로 갈랐으며, 또한 이 성서가 사무엘서와 열왕기에 쓰여진 내용을 보완하고 있다고 보아 그 이름을 “파랄레이포메나”(빠진 사항들)라고 지었어요. 라틴어 성서인 불가타 성서도 처음에는 그리스어 성서 이름을 쓰다가 곧 예로니모가 주해에서 붙인 “하느님 역사 전체에 관한 역대기”라는 긴 이름을 즐겨 쓰게 되었어요. 이 이름을 줄인 “역대기”(歷代記)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오늘날까지 통용되고 있답니다. 역대기는 히브리 성서에서 ‘성문서’편에 속하며, 판관기-열왕기에 이르는 신명기계 역사서와 구별하여 에즈라 느헤미야서와 함께 역대기계 역사서라고 불립니다.
누가 썼나요?
탈무드 전승에서는 에즈라가 시작하여 느헤미야가 역대기를 끝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다른 구약성서와 마찬가지로 저자가 누군지 정확하게 알 수 없어요. 다만 바빌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유대 공동체를 재건하면서 갖가지 고초를 겪으면서도 그 공동체를 하느님의 공동체로 만들려는 열망이 뜨거웠던 학자였으리라고 봅니다. 그는 모세오경과 여호수아서, 열왕기 등 성서 이외에 스무 가지가 넘는 역사서를 참고하여 이 성서를 엮으면서 하느님의 뜻을 뚜렷하게 부각시켰지요. 오늘날 학자들은 이 사람을 흔히 역대기 사가, 역대기 편찬자라고 부릅니다.
언제 쓰여졌나요?
정확한 집필시기 역시 알 수 없어요. 역대기 사가가 신명기계 역사서를 바탕으로 하고 전해 내려온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썼고, 그 뒤로는 여러 차례 가필되었다고 보아요. 아마도 그 시대는 페르시아 시대, 기원전 4세기나 3세기쯤 되리라고 여겨져요.
왜 썼나요?
역사서는 예나 지금이나 단순히 예전에 있던 사건에 대한 기록이 아니죠. 그것은 사건을 새롭게 해석하여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교훈과 비전을 던져주어요. 모든 것이 무너진 다음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는 포로기 이후의 유대인들에게, 역대기는 새로운 꿈과 용기를 던져주려고 해요. 역대기를 읽어본 분들은 알겠지만, 역대기는 유다 왕조, 특히 다윗 왕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어요.
즉, 역대기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번창했던 다윗 시대의 역사를 부각시키면서 보잘것없는 현재 상태에서도 힘을 잃지 말 것을 이야기해 주는 거죠.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공동체의 방향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다윗은 역사상의 다윗은 역사상의 다윗이라기보다 이상적으로 그려진 다윗의 모습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야훼 하느님께 지극히 성실했던 다윗을 보여주면서 그렇게 충실히 하느님을 섬기면, 당신과의 계약을 충실히 지키시는 하느님께서 다시금 이 공동체를 보살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불어넣고 키워주려는 뜻이 가득 담겨 있어요. 더불어 예루살렘 성전 제의를 올바로 지키는 예배 공동체가 포로시대 이후 유대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점도 함께 지시되고 있죠.
<나눔과 새김>
유대인들에게 다윗이 그러하듯, 우리가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본받고자 하는 모델은 누구일까요? 나와 자녀, 교회 공동체의 경우를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역대기 상권
아담으로부터 시작되는 족보(1역대 1,1-9, 34)
* 모세와 아론은 어느 지파, 누구의 자손입니까?(5,29)
역대기는 인류의 첫 사람인 아담으로부터 족보를 시작합니다.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 중 유다지파가 소개되고, 그중에서도 다윗의 가문이 집중적으로 소개됩니다. 이어서 남쪽과 요르단강 동편에 살던 지파들의 명단이 나열됩니다.
그 뒤에는 특별한 영토를 갖지 못한 레위 지파가 퍽 소상하게 소개됩니다. 그리고 북쪽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짧게 언급되면서 족보가 끝납니다. 왜 이렇게 족보가 장황하게 나올까요? 이 모든 것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이스라엘로 되돌아온 사람들의 족보입니다. 이것을 소개하는 까닭은 이스라엘의 참된 선민이 누구인지를 한 처음으로 소급하여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루가 3,23-38 참조).
뛰어난 왕인 다윗(1역대 9, 35-16,43)
다윗이 부른 감사의 노래를 다시 한 번 읽어보십시오(16,3-36)
이스라엘의 첫 왕인 사울의 계보가 짧게 언급된 뒤 그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거역한 죄 때문에 비참하게 죽었다고 밝힙니다. 그럼으로써 사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다윗의 모습이 한결 빛납니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 사람들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었고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자신의 도성으로 삼습니다. 각 지파에서 다윗을 따르기 위해 모여온 용사들의 명단이 소개됨으로써 다윗의 덕이 드러납니다. 다윗은 하느님의 도움으로 불레셋족을 무질러 명성을 널리 떨칩니다.
마침내 다윗은 사울 때 잃어버렸다가 간신히 되찾은 야훼의 궤를 키럇여아림 땅에서 모시고 오베데돔의 집으로, 그 다음에 예루살렘으로 모시고 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섬기라고 뽑으신 레위인들이 계약궤를 정중하고도 즐거운 마음으로 모시고 와 번제와 친교제를 바치고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 모든 절차는 하느님을 모시기에 합당하게 진행됩니다. 이런 모습을 통해 다윗이 하느님을 얼마나 극진하게 잘 섬겼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성전을 지을 준비를 마치고(1역대 17,1-29,30)
다윗은 자신의 제물을 누가 준 것이라고 고백합니까?(29,11-17)
다윗이 하느님의 집을 지으려고 나서자, 하느님께서는 나단 예언자를 시켜 그 일은 자식대에 가서 해야할 일이라고 일러주시며 다윗의 왕조를 영원히 튼튼하게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다윗은 주변국가를 복속시키며 번영을 누리지만, 사탄에게 넘어가 병적조사를 함으로써 하느님의 벌을 받습니다. 다윗은 하느님께 번제와 친교제를 드려 잘못을 속죄한 뒤, 성전을 지을 준비를 갖춥니다. 금과 은,목재 등 재료 이외에도 레위인들을 찬양대와 수위대, 창고관리인과 행정직,사제반 등으로 편성합니다.
마지막으로 늙은 다윗은 솔로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은혜를 상기시키며 하느님께 바칠 성전을 기쁜 마음으로 온 정성을 쏟아 지을 것을 거듭거듭 당부한 뒤 숨을 거둡니다. 이 대목에서 다윗은 정치적인 왕을 뛰어넘어 이스라엘 공동체의 기초가 될 성정과 제의를 준비하는 특별한 인물로 소개됩니다.
<나눔과 새김>
성전과 제의는 하느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내용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성당과 전례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역대기 하권
성전을 세운 솔로몬(2역대 1,1-9, 31)
하느님께서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표시로 하늘에서 내리신 것은 무엇입니까(7,1)
솔로몬은 하느님께 청해 얻은 슬기와 지식으로 이스라엘의 번영을 가져왔습니다. 그런 다음 예루살렘의 모리야산에 성전을 지은 뒤에 계약궤를 모시고 하느님께 기도와 찬양을 바칩니다. “참마음과 뜻을 다쏟아 참회하고 당신의 이름을 기리며 간절히 빌거든” 이스라엘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기도를 들어달라고 청하는 솔로몬의 기도를 받아들이신 하느님은 그의 꿈에 나타나 다윗과 맺으신 계약을 갱신하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주셨기에 가능했던 것임을 역대기는 거듭 밝힙니다.
분열된 왕국과 남유다의 왕들(2역대 10,1-28,27)
모압과 암몬 족이 쳐들어왔을 때 여호사밧은 어떻게 기도하였습니까?(20,6-12)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 시절에 이스라엘은 둘로 나뉩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의 모든 사제와 레위인들을 비롯하여 야훼를 찾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내려 왔습니다. 열왕기에는 없는 이 구절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 제의가 정통임을 역대기는 강조합니다. 뿐만 아니라 르호보암 이후 북 이스라엘의 왕들을 전혀 소개하지 않고 오직 남유다의 왕들만 언급합니다. 이로써 예루살렘 및 다윗왕조와 분리된 북 이스라엘은 야훼 하느님과 멀어진 공동체라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다의 왕들에 대한 내용은 그들이 하느님께 얼마나 온전히 충실했냐에 따라 그들의 삶과 공동체의 운명이 좌우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야훼의 법을 저버린 르호보암은 이집트 왕 시삭의 침공을 받지만, 야훼께 부르짖은 아비야는 협공을 받는 처지에서도 승리를 거둬요. 아사와 여호사밧은 주변국가와 싸우면서 하느님께 의지할 때는 승리하지만 신뢰하지 않을 때는 지고 맙니다.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정치를 편 여호람과 아하지야는 각각 병을 앓다 죽거나 살해되고 맙니다.
히즈키야의 종교개혁에서 국가의 멸망까지(2역대 29,1- 36,23)
백성들의 기도가 하늘에 미쳤던 때는 어느 축제중이었습니까?(30,21-27)
역대기 하권에서 히즈키야에 관한 기사는 솔로몬에 이어 두 번째로 분량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히즈키야가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정화하고 강화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전을 정화한 뒤 속죄제와 번제를 드렸습니다. 또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사람들을 보내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과월절과 무교절을 함께 보내자고 초대하여, 그들과 더불어 마음을 기울여 축제를 지냅니다. 이 모든 일을 보시고 하느님은 복을 주시고, 아시리아 왕 산헤립이 쳐들어왔을 때도 물리쳐 주십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왕들은 하나같이 야훼께 충실치 않아 외세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시드키야 시절에 바빌론에게 망하는 벌을 받고 맙니다. 하지만 역대기는 맨 마지막에 하느님께서 페르샤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시어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락한다고 적음으로써, 당신 말씀에 충실하신 하느님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곧 하느님께 신뢰와 희망을 두는 이는 결코 외면받지 않으리라는 가르침이죠.
<새김과 나눔>
히즈키야 시절에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은 공동체 전체로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신앙인들이 받는 하느님의 축복은 어떤 것일까요?
에즈라-느헤미야는 어떤 성서인가요?
에즈라, 느헤미야라는 성서 이름의 유래
본래 히브리어 성서에는 이 두 권이 ‘에즈라’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었어요. 그런데 그리스어 성서인 칠십인 역 성서에는 이 두 권에다 두 권을 덧붙여 ‘에스드라서’라 불렀어요. 불가타 성서도 에스드라서 1,2,3,4권으로 갈라 놓았지요. 그 뒤에 각기 주인공의 이름을 따 에스드라서 1권은 ‘에즈라’로, 2권은 ‘느헤미야’로 이름지어졌고, 3권과 4권은 외경으로 분류되었어요. 에즈라- 느헤미야서는 ‘성문서’편에 속하며, 역대기 상·하와 함께 역대기계 역사서라고 불립니다.
누가 썼나요?
탈무드 전승에서는 에즈라가 역대기와 에즈라서 앞 부분을 썼고 느헤미야가 여러 자료를 덧붙여 완성시켰다고 해요. 지금도 에즈라를 유력한 저자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많은 학자들은 역대기 사가 또는 역대기 편찬자가 에즈라와 느헤미야가 남긴 자료와 그 밖의 여러 문헌을 모아 저술하고 편집했다고 보아요. 그 편집자(들)은 포로기 이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하느님을 올바로 예배하는 백성 공동체로 굳건히 세우기 위해 갖은 애를 썼던 레위족 사람일 거라고 해요.
언제 쓰여졌나요?
에즈라와 느헤미야가 활동한 시기는 대략 기원전 460년경부터 380년경이에요. 그러니까 이 책은 그 전에 나온 자료와 에즈라 느헤미야 시대에 쓰여진 편지, 칙령, 수기 등 각종 자료를 담아 기원전 350-300년경에 쓰여졌을 거라고 추정해요.
왜 썼나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바빌론 포로기 이후 시대는 정말 어려운 시련의 시절이었어요. 고레스 대왕이 귀환시켜주어 돌아올 수 있었지만, 이미 팔레스티나의 땅들은 남아 있던 백성들과 주변 민족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어요. 땅이 없으니 경제생활은 빈곤하고 자기를 지킬 힘도 약하니 주변민족들이 수시로 괴롭혔어요. 포로 생활 동안 참으로 회개하여 어떤 어려움에서도 참되게 하느님을 섬기고자 귀환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점차 무기력해지고 생존에 급급하면서 혼란 속에 빠졌어요.
에즈라·느헤미야서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희망과 좌절, 그러면서도 새롭게 제의 공동체로 일어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역대기가이스라엘 백성의 갈 길로 다윗 왕가의 충실한 신심과 제의의 회복을 강조했다면,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전 제의와 함께 율법을 한층 더 강조하고 있어요. 즉 에즈라와 느헤미야가 지도한 것처럼,하느님께 받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제단과 성전, 도시를 재건하고 사회경제적 체제를 갖추는 것, 우상숭배를 배척하며 율법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길이 곧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살아날 길임을 일깨워주고 있어요.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유대교는 그 틀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새김과 나눔>
바빌론에서의 귀환은 또 하나의 출애굽이었습니다. 풍요로움에서보다 어려움 속에서 하느님께 다가가 회개한 이스라엘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줍니까?
하느님의 법전을 듣고 지키니
(느헤 1-13장)
느헤미야가 돌아와 성벽을 쌓고(느헤 1,1-7,5)
공사를 방해하는 산발랏에게 느헤미야는 무엇이라고 답변하였습니까?(2,19-20)
이 대목은 느헤미야의 수기입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샤의 고관이었는데, 동족인 유다인들이 심하게 핍박받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황제께 아뢰어 총독으로 부임합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아 자신들을 방비하고 사회의 질서를 바로 세우려고 하자, 주변에 있는 세도가인 산발랏 일당이 집요하게 방해합니다.
느헤미야는 한편으로 무력으로 대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돈놀이로 동족이 분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변리를 받지 않도록 조치를 내립니다. 마침내 공사를 시작한 지 52일만에 성벽수축 공사가 끝났습니다. 이렇게 잘 마칠 때까지 느헤미야는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이 모든 일을 이룩하신 이가 다름 아닌 하느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절기와 율법을 지키고(느헤 7,6-10,40)
* 단식하기 위해 모인 이스라엘 백성은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습니까?(9,1-3)
느헤미야의 수기에 이어 에즈라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절을 지키기 위해 수문(水門) 앞 광장에 모이자, 에즈라는 날마다 하루 종일 현재의 오경과 비슷한 형태로 된 모세의 법전을 들려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가르침을 깨닫고 마냥 기뻐하며 잔치를 벌이고, 율법의 규정대로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또 단식하며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이 이스라엘에 베푸신 은혜로운 역사를 회고하며, 자신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아 이처럼 무서운 고역을 치루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마침내 온 백성이 모세에게서 물려받은 법을 따라 야훼의 계약과 법령과 규례대로 살기로 맹약을 맺습니다.
느헤미야가 다시 돌아와 개혁하고(느헤 11,1-13,31)
느헤미야는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어떤 조치를 내렸습니까?(13,15-22)
다시금 느헤미야의 수기가 이어집니다. 여기서 “나”는 느헤미야를 가리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수축한 다음 예루살렘 성 봉헌식을 갖습니다. 그 다음에 사제와 레위인의 몫을 마련하여 아무 어려움없이 성전을 돌보도록 조치를 합니다. 십이 년 동안 총독으로 일한 후 페르샤로 돌아갔다 다시 돌아온 느헤미야는 성전을 정화하고, 레위인들이 규정된 몫을 받도록 다시 조치하고 안식일에 일을 하지 못하게 막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느헤미야는 에즈라보다 앞서 와서 포로기 이후 피폐한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몹시 애쓴 사람입니다. 그가 예루살렘 성벽 공사로 대변되듯 이스라엘의 외적인 제도와 질서를 세운 공헌자라면, 에즈라는 율법으로 이스라엘의 내적인 정신세계의 뼈대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 하느님의 종으로 일했음을 성서는 증언합니다.
<새김과 나눔>
느헤미야는 형제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변리를 받는 돈놀이를 엄하게 금지시켰습니다. 오늘날 이런 정신에 비춰서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을 묵상하고 의견을 나눠보십시오.
하느님의 법전을 듣고 지키니
(느헤 1-13장)
느헤미야가 돌아와 성벽을 쌓고(느헤 1,1-7,5)
공사를 방해하는 산발랏에게 느헤미야는 무엇이라고 답변하였습니까?(2,19-20)
이 대목은 느헤미야의 수기입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샤의 고관이었는데, 동족인 유다인들이 심하게 핍박받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황제께 아뢰어 총독으로 부임합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아 자신들을 방비하고 사회의 질서를 바로 세우려고 하자, 주변에 있는 세도가인 산발랏 일당이 집요하게 방해합니다.
느헤미야는 한편으로 무력으로 대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돈놀이로 동족이 분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변리를 받지 않도록 조치를 내립니다. 마침내 공사를 시작한 지 52일만에 성벽수축 공사가 끝났습니다. 이렇게 잘 마칠 때까지 느헤미야는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이 모든 일을 이룩하신 이가 다름 아닌 하느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절기와 율법을 지키고(느헤 7,6-10,40)
* 단식하기 위해 모인 이스라엘 백성은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습니까?(9,1-3)
느헤미야의 수기에 이어 에즈라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절을 지키기 위해 수문(水門) 앞 광장에 모이자, 에즈라는 날마다 하루 종일 현재의 오경과 비슷한 형태로 된 모세의 법전을 들려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가르침을 깨닫고 마냥 기뻐하며 잔치를 벌이고, 율법의 규정대로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또 단식하며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이 이스라엘에 베푸신 은혜로운 역사를 회고하며, 자신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아 이처럼 무서운 고역을 치루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마침내 온 백성이 모세에게서 물려받은 법을 따라 야훼의 계약과 법령과 규례대로 살기로 맹약을 맺습니다.
느헤미야가 다시 돌아와 개혁하고(느헤 11,1-13,31)
느헤미야는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어떤 조치를 내렸습니까?(13,15-22)
다시금 느헤미야의 수기가 이어집니다. 여기서 “나”는 느헤미야를 가리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수축한 다음 예루살렘 성 봉헌식을 갖습니다. 그 다음에 사제와 레위인의 몫을 마련하여 아무 어려움없이 성전을 돌보도록 조치를 합니다. 십이 년 동안 총독으로 일한 후 페르샤로 돌아갔다 다시 돌아온 느헤미야는 성전을 정화하고, 레위인들이 규정된 몫을 받도록 다시 조치하고 안식일에 일을 하지 못하게 막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느헤미야는 에즈라보다 앞서 와서 포로기 이후 피폐한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몹시 애쓴 사람입니다. 그가 예루살렘 성벽 공사로 대변되듯 이스라엘의 외적인 제도와 질서를 세운 공헌자라면, 에즈라는 율법으로 이스라엘의 내적인 정신세계의 뼈대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 하느님의 종으로 일했음을 성서는 증언합니다.
<새김과 나눔>
느헤미야는 형제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변리를 받는 돈놀이를 엄하게 금지시켰습니다. 오늘날 이런 정신에 비춰서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을 묵상하고 의견을 나눠보십시오.
에즈라-느헤미야는 어떤 성서인가요?
에즈라, 느헤미야라는 성서 이름의 유래
본래 히브리어 성서에는 이 두 권이 ‘에즈라’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었어요. 그런데 그리스어 성서인 칠십인 역 성서에는 이 두 권에다 두 권을 덧붙여 ‘에스드라서’라 불렀어요. 불가타 성서도 에스드라서 1,2,3,4권으로 갈라 놓았지요. 그 뒤에 각기 주인공의 이름을 따 에스드라서 1권은 ‘에즈라’로, 2권은 ‘느헤미야’로 이름지어졌고, 3권과 4권은 외경으로 분류되었어요. 에즈라- 느헤미야서는 ‘성문서’편에 속하며, 역대기 상·하와 함께 역대기계 역사서라고 불립니다.
누가 썼나요?
탈무드 전승에서는 에즈라가 역대기와 에즈라서 앞 부분을 썼고 느헤미야가 여러 자료를 덧붙여 완성시켰다고 해요. 지금도 에즈라를 유력한 저자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많은 학자들은 역대기 사가 또는 역대기 편찬자가 에즈라와 느헤미야가 남긴 자료와 그 밖의 여러 문헌을 모아 저술하고 편집했다고 보아요. 그 편집자(들)은 포로기 이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하느님을 올바로 예배하는 백성 공동체로 굳건히 세우기 위해 갖은 애를 썼던 레위족 사람일 거라고 해요.
언제 쓰여졌나요?
에즈라와 느헤미야가 활동한 시기는 대략 기원전 460년경부터 380년경이에요. 그러니까 이 책은 그 전에 나온 자료와 에즈라 느헤미야 시대에 쓰여진 편지, 칙령, 수기 등 각종 자료를 담아 기원전 350-300년경에 쓰여졌을 거라고 추정해요.
왜 썼나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바빌론 포로기 이후 시대는 정말 어려운 시련의 시절이었어요. 고레스 대왕이 귀환시켜주어 돌아올 수 있었지만, 이미 팔레스티나의 땅들은 남아 있던 백성들과 주변 민족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어요. 땅이 없으니 경제생활은 빈곤하고 자기를 지킬 힘도 약하니 주변민족들이 수시로 괴롭혔어요. 포로 생활 동안 참으로 회개하여 어떤 어려움에서도 참되게 하느님을 섬기고자 귀환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점차 무기력해지고 생존에 급급하면서 혼란 속에 빠졌어요.
에즈라·느헤미야서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희망과 좌절, 그러면서도 새롭게 제의 공동체로 일어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역대기가이스라엘 백성의 갈 길로 다윗 왕가의 충실한 신심과 제의의 회복을 강조했다면,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전 제의와 함께 율법을 한층 더 강조하고 있어요. 즉 에즈라와 느헤미야가 지도한 것처럼,하느님께 받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제단과 성전, 도시를 재건하고 사회경제적 체제를 갖추는 것, 우상숭배를 배척하며 율법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길이 곧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살아날 길임을 일깨워주고 있어요.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유대교는 그 틀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새김과 나눔>
바빌론에서의 귀환은 또 하나의 출애굽이었습니다. 풍요로움에서보다 어려움 속에서 하느님께 다가가 회개한 이스라엘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줍니까?
하느님의 법전을 듣고 지키니
(느헤 1-13장)
느헤미야가 돌아와 성벽을 쌓고(느헤 1,1-7,5)
공사를 방해하는 산발랏에게 느헤미야는 무엇이라고 답변하였습니까?(2,19-20)
이 대목은 느헤미야의 수기입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샤의 고관이었는데, 동족인 유다인들이 심하게 핍박받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황제께 아뢰어 총독으로 부임합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아 자신들을 방비하고 사회의 질서를 바로 세우려고 하자, 주변에 있는 세도가인 산발랏 일당이 집요하게 방해합니다.
느헤미야는 한편으로 무력으로 대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돈놀이로 동족이 분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변리를 받지 않도록 조치를 내립니다. 마침내 공사를 시작한 지 52일만에 성벽수축 공사가 끝났습니다. 이렇게 잘 마칠 때까지 느헤미야는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이 모든 일을 이룩하신 이가 다름 아닌 하느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절기와 율법을 지키고(느헤 7,6-10,40)
* 단식하기 위해 모인 이스라엘 백성은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습니까?(9,1-3)
느헤미야의 수기에 이어 에즈라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절을 지키기 위해 수문(水門) 앞 광장에 모이자, 에즈라는 날마다 하루 종일 현재의 오경과 비슷한 형태로 된 모세의 법전을 들려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가르침을 깨닫고 마냥 기뻐하며 잔치를 벌이고, 율법의 규정대로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또 단식하며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이 이스라엘에 베푸신 은혜로운 역사를 회고하며, 자신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아 이처럼 무서운 고역을 치루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마침내 온 백성이 모세에게서 물려받은 법을 따라 야훼의 계약과 법령과 규례대로 살기로 맹약을 맺습니다.
느헤미야가 다시 돌아와 개혁하고(느헤 11,1-13,31)
느헤미야는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어떤 조치를 내렸습니까?(13,15-22)
다시금 느헤미야의 수기가 이어집니다. 여기서 “나”는 느헤미야를 가리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수축한 다음 예루살렘 성 봉헌식을 갖습니다. 그 다음에 사제와 레위인의 몫을 마련하여 아무 어려움없이 성전을 돌보도록 조치를 합니다. 십이 년 동안 총독으로 일한 후 페르샤로 돌아갔다 다시 돌아온 느헤미야는 성전을 정화하고, 레위인들이 규정된 몫을 받도록 다시 조치하고 안식일에 일을 하지 못하게 막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느헤미야는 에즈라보다 앞서 와서 포로기 이후 피폐한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몹시 애쓴 사람입니다. 그가 예루살렘 성벽 공사로 대변되듯 이스라엘의 외적인 제도와 질서를 세운 공헌자라면, 에즈라는 율법으로 이스라엘의 내적인 정신세계의 뼈대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 하느님의 종으로 일했음을 성서는 증언합니다.
<새김과 나눔>
느헤미야는 형제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변리를 받는 돈놀이를 엄하게 금지시켰습니다. 오늘날 이런 정신에 비춰서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을 묵상하고 의견을 나눠보십시오.
하느님의 법전을 듣고 지키니
(느헤 1-13장)
느헤미야가 돌아와 성벽을 쌓고(느헤 1,1-7,5)
공사를 방해하는 산발랏에게 느헤미야는 무엇이라고 답변하였습니까?(2,19-20)
이 대목은 느헤미야의 수기입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샤의 고관이었는데, 동족인 유다인들이 심하게 핍박받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황제께 아뢰어 총독으로 부임합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아 자신들을 방비하고 사회의 질서를 바로 세우려고 하자, 주변에 있는 세도가인 산발랏 일당이 집요하게 방해합니다.
느헤미야는 한편으로 무력으로 대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돈놀이로 동족이 분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변리를 받지 않도록 조치를 내립니다. 마침내 공사를 시작한 지 52일만에 성벽수축 공사가 끝났습니다. 이렇게 잘 마칠 때까지 느헤미야는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이 모든 일을 이룩하신 이가 다름 아닌 하느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절기와 율법을 지키고(느헤 7,6-10,40)
* 단식하기 위해 모인 이스라엘 백성은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습니까?(9,1-3)
느헤미야의 수기에 이어 에즈라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절을 지키기 위해 수문(水門) 앞 광장에 모이자, 에즈라는 날마다 하루 종일 현재의 오경과 비슷한 형태로 된 모세의 법전을 들려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가르침을 깨닫고 마냥 기뻐하며 잔치를 벌이고, 율법의 규정대로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또 단식하며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이 이스라엘에 베푸신 은혜로운 역사를 회고하며, 자신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아 이처럼 무서운 고역을 치루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마침내 온 백성이 모세에게서 물려받은 법을 따라 야훼의 계약과 법령과 규례대로 살기로 맹약을 맺습니다.
느헤미야가 다시 돌아와 개혁하고(느헤 11,1-13,31)
느헤미야는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어떤 조치를 내렸습니까?(13,15-22)
다시금 느헤미야의 수기가 이어집니다. 여기서 “나”는 느헤미야를 가리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수축한 다음 예루살렘 성 봉헌식을 갖습니다. 그 다음에 사제와 레위인의 몫을 마련하여 아무 어려움없이 성전을 돌보도록 조치를 합니다. 십이 년 동안 총독으로 일한 후 페르샤로 돌아갔다 다시 돌아온 느헤미야는 성전을 정화하고, 레위인들이 규정된 몫을 받도록 다시 조치하고 안식일에 일을 하지 못하게 막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느헤미야는 에즈라보다 앞서 와서 포로기 이후 피폐한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몹시 애쓴 사람입니다. 그가 예루살렘 성벽 공사로 대변되듯 이스라엘의 외적인 제도와 질서를 세운 공헌자라면, 에즈라는 율법으로 이스라엘의 내적인 정신세계의 뼈대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 하느님의 종으로 일했음을 성서는 증언합니다.
<새김과 나눔>
느헤미야는 형제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변리를 받는 돈놀이를 엄하게 금지시켰습니다. 오늘날 이런 정신에 비춰서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을 묵상하고 의견을 나눠보십시오.
토비트는 어떤 책인가요?
토비트란 성서 이름은?
토비트는 제2경전 중에서 첫번째로 나오는 성서입니다. “이 책은 토비트에 관한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토비 1,1)고 책 첫머리에 밝혀져 있는 대로, 아시리아 왕에게 포로로 사로잡혀간 납달리 지파 사람 토비트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야기라 그 이름을 따서 책이름이 붙여졌어요. ‘토비트’는 ‘하느님은 나의 선하심’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신앙으로 고아와 과부와 이방인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고 죽은 사람을 묻어주는 선한 행동을 해왔던 토비트의 성품과, 하느님의 선하신 배려로 눈을 뜨게 되었음을 잘 나타내 주는 이름이지요.
누가 썼나요?
유다인 중의 한 사람이 썼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가 없어요. 사마리아인이니, 사두가이파 사람이니, 꿈란공동체의 일원이니 하는 의견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학자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어요. 집필 장소에 대해서도 이집트, 페르시아, 메대, 아시리아, 팔레스티나 등 여러 가지 의견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합의를 이루지는 못하고 있어요.
언제 썼나요?
책 내용은 기원전 7세기의 일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지리적인 위치나 역사적인 인물을 잘못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많아서, 기원전 7세기나 5세기경에 집필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모세 율법’이나 ‘모세의 책’(토비 6,13; 7,11. 12. 13)과 같은 구절은 역대기(2역대 23,18)가 작성된 이후에나 가능한 표현일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토비 13,9-18; 14,5-6) 토비트 저자가 기원전 1세기 말에 헤로데에 의해 완공된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거든요. 나아가 기원전 1세기에는 거의 통용되지 않았던 친족간의 결혼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개인적인 부활에 대한 신앙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기원전 3세기 말이나 2세기 초에 작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어요.
왜 썼나요?
올바른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비록 어려움이 있다 해도 하느님께서 끝까지 돌보아 주심을 일깨우고자 했어요. 사람들의 흥미를 돋구기 위해, 죽은이들에게 선행을 베풀면 반드시 보답을 받는다는 민담서부터 악령에 사로잡힌 신부 이야기, 모함에 빠졌다가 헤쳐나오는 충신설화 등을 모티브로 삼아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세 율법에 기록된 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계몽하고자 했어요. 모세 법전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명절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첫 수확물과 가축의 맏배와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쳤던 토비트를 본으로 삼아, 죽은 이들을 묻어 주고 고아와 과부와 이방인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일이 참 중요함을 일러주지요. 하지만 이렇게 올바른 삶을 살았다 해도 시련이 닥치지 않는 것은 아님을 보여줌으로써, 부유할 때나 어려울 때나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참 신앙인임을 일깨우고 있어요.
<새김과 나눔>
토비트는 부유할 때나 시련에 처했을 때나 늘 한결같은 믿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한결같은 믿음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주님, 나를 돌보아 주소서
(토비 1-6장)
자선을 베풀며 살아온 토비트(토비 1,1-22)
토비트는 누구에게 돈을 맡겼습니까?(1,14)
아시리아로 귀양간 토비트는 명절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 경신례를 드리면서, 고아와 과부와 이방인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삶을 살아요. 왕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들이는 일을 하면서 메대에 사는 친척 가바엘에게 은 십 달란트를 맡길 정도로 풍족한 생활을 하지요.
맹인이 된 토비트(토비 2,1-3,6)
토비트는 무엇 때문에 눈이 멀게 됩니까?(2,10)
토비트는 장터에서 살해된 동족을 묻어 준 날 저녁에, 담 옆에서 누워 자다가 참새 똥이 눈에 떨어져서 실명해요. 그 바람에 아내가 품을 팔아서 생활하게 되면서, 괴로운 마음을 하느님께 털어 놓아요.
남편을 일곱이나 잃어 버린 사라(토비 3,7-15)
하느님께서는 토비트와 사라의 기도를 듣고 누구를 내려보내시나요?(3,17)
메데의 엑바타나에 사는 라구엘의 딸 사라는 일곱 번이나 결혼을 하였지만, 아스모데오라는 귀신 때문에 남편을 잃는 슬픔을 맛보아요. 하느님께 자신의 목숨을 거두어 달라는 소원을 드리는 사라의 기도가 응답되어, 하느님께서는 천사 라파엘을 내려보내기로 해요.
힘닿는 데까지 자선을 베풀어라(토비 4,1-21)
토비트는 친척 가바엘에게 돈을 맡겨 주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 일러줍니까?(4,2. 20)
토비트는 아들 토비아에게 어머니 마음을 슬프게 해드리지 말고, 재산 정도에 맞게 자선을 베풀라고 이야기합니다. 동족 중에서 아내를 얻고, 지혜로운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라고 당부하죠. 아울러 메대에 사는 가바엘에게 돈을 맡겨 두었음을 알려 주어요.
메대로 가는 길(토비 5,1-6,1)
천사 라파엘은 누구의 이름으로 토비아의 길동무가 되나요?(5,13)
토비아는 맡겨둔 돈을 찾을 수 있는 증서를 아버지한테서 받고는, 메대로 가는 길을 안내해 줄 길동무를 찾아요. 이 때 천사 라파엘이 동족 아자리아의 이름으로 다가와서, 토비아의 여행길을 동반하게 됩니다.
여행 중에 생긴 일(토비 6,2-18)
토비아는 어느 강가에서 약효가 있는 물고기를 잡습니까?(6,2)
토비아는 티그리스강 가에서 커다란 물고기를 잡아요. 악마를 퇴치하는 효과가 있는 염통과 간이며, 시력이 회복되는 쓸개를 따로 보관해요. 그리고는 메대에 도착해서,귀신에 시달리는 사라의 남편이 될 사람은 토비아밖에 없다는 라파엘 천사의 말을 듣고 그리로 향해요.
<새김과 나눔>
토비트와 사라는 고통을 겪는 가운데서도 하느님께 탄원하며 기도하기를 잊지 않습니다. 나는 어느 때 주님께 기도드리는지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자선은 사람을 죽음에서
건져냅니다 (토비 7-14장)
무사히 결혼하는 토비아와 사라(토비 7,1-8,21)
토비아와 사라는 신혼방에서 어떤 기도를 드립니까?(8,5-7)
토비아는 메대의 라구엘의 집에 가서, 사라를 아내로 달라고 간청합니다. 토비아는 라구엘로부터 결혼 허락을 받고는 사라와 함께 신방에서 물고기 간과 염통을 태워 귀신을 쫓아내고는, 하느님께 자비를 베풀어 주시길 간구해요. 이어 열나흘 동안 혼인잔치가 벌어져요.
가바엘에게서 돈을 되찾음(토비 9,1-6)
메대의 가바엘 집에 증서를 넘겨준 사람은 누구입니까?(9,1. 5)
토비아는 라파엘에게 돈을 찾을 증서를 넘겨주고는, 자기 대신 메대의 가바엘 댁에 가달라는 부탁을 드려요. 가바엘은 증서를 보고 토비트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잔치집에 와서 돈주머니를 넘겨주면서 축복해요.
시력을 되찾게 되는 토비트(토비 10,1-11,18)
토비트는 무엇으로 눈을 뜨게 됩니까?(11,8. 11-12)
토비트는 아들의 여행 날수가 다 차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근심에 사로잡혀요. 안나 또한 날마다 길을 살펴보면서 밤새 흐느껴 울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요. 한편 14일 간의 혼인잔치를 끝낸 토비아는 장인에게 가서, 부모님이 걱정하실 거라면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이야기해요. 라구엘 부부의 축원을 받으며 출발한 토비아 일행은 걸음을 재촉해서 니느웨에 도착해요. 토비아는 어머니와 재회하는 기쁨을 나누면서, 물고기의 쓸개를 아버지의 눈에 넣어서 시력을 되찾게 해요.
정체를 드러내는 라파엘(토비 12,1-22)
라파엘은 황금을 쌓아두는 것보다 무엇을 행하는 것이 더 좋은 일이라고 이야기합니까?(12,8)
라파엘은 가져온 재산의 절반을 보수로 드리려는 토비비트와 토비아에게, 자선은 사람을 죽음에서 건져내고 모든 죄를 깨끗이 없애버린다고 일러주어요. 그리고는 토비트와 사라가 기도할 때 그 기도를 하느님께 전해 드린 사람이 바로 자기였으며, 자신은 주님을 시중드는 일곱 천사 중의 하나인 라파엘이라고 밝혀요. 이 말을 듣고 겁에 질려 엎드리는 토비트와 토비아에게, 라파엘은 하느님을 찬양하라고 일러요.
토비트의 유언과 죽음(토비 13,1-15)
토비트는 토비아에게 어디로 피신하라고 당부합니까?(14,4))
토비트는 시력을 되찾은 후에도 자선을 행하면서 112세라는 수를 누려요. 그리고 죽기 전에 토비아를 불러 니느웨가 멸망하리라는 나훔의 예언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므로, 메대로 피신하라고 일러요. 토비아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메대로 가서 장인 장모를 모시고 살아요. 117세까지 살면서 니느웨가 멸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새김과 나눔>
토비아와 사라는 신혼 첫날밤에 하느님께 기도드리기를 잊지 않습니다. 우리 부부는 어떤 기도를 드렸는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유딧은 어떤 책인가요?
유딧이란 성서이름은?
유딧은 제2경전 중에서 토비트 다음으로 나오는 성서입니다. 아시리아군에게 포위당한 요새 베툴리아를 구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여주인공 유딧의 이름을 따서 책이름이 붙여졌어요.
누가 썼나요?
예루살렘과 성전을 중시하고 성전과 연관된 각종 희생제사와 봉헌물을 강조하며, 기도와 단식 등의 제사를 올리는 모습으로 보아서는, 마카베오 시대에 시행되었던 바리사이즘을 연상케 됩니다. 또한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사거너이 팔레스티나에서 펼쳐지고 그곳의 지리가 다른 곳의 지리보다 정확한 것을 보면, 팔레스티나에 사는 바리사이가 썼을 것으로 보여요.
언제 썼나요?
유딧서 안에는 헬레니즘적인 요소가 여러 곳에 언급되고 있어요. 화환이나 올리브로 만든 관을 쓰는가 하면(3,7;15,13), 식사할 때에도 비스듬히 기대서 먹어요(12,15). 왕을 신으로 받들어 모시면서 왕에게 예배드리게 하구요(3,8).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대사제가 정치적·군사적인 권력을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4,6), 예루살렘 원로들이 다른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4,6.8; 11.14)에서 마카베오 시대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마리아와 그 지역에 대한 예루살렘의 태도가 우호적이며(4,4.6), 사마리아 일대에 우상숭배가 완전히 뿌리뽑혔다고 단언되는 것(8,18-20)을 보면, 기원전 107년 그리짐산에 있는 사마리아 성전을 완전히 파괴하고 사마리아 지역을 유다의 통치권 아래에 편입시킨 요한 히르카누스 1세(기원전 135-104) 이후에 쓰여졌을 거에요. 하지만 알렉산더 얀네우스(기원전 103-78) 시절에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이 학살된 사건이 반영되어 있지 않을 것으로 보아, 이 시기 이전에 집필되었을 것으로 보여요. 더군다나 사두가이파나 에세네파에 반대하는 듯한 내용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아요.
따라서 바리사이즘이 형성되던 초기 시절에 해당되는 요한 히르카누스 시절에 집필되었을 거에요.
왜 썼나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약소국으로서 멸망하지 않고 생존해 나가기 위해서는, 남다른 비상한 노력과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이 필요하지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종교 박해에 맞서 싸운 결과로 생겨난 하스모니안 왕조에 있어서, 사람들의 이러한 노력과 헌신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절실했습니다. 강대국 안에서 벌어진 패권다툼을 잘 이용해서 유다 왕국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키는 한편, 닥쳐온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될 시대적인 요청이 절박했던 것이죠. 따라서 이방인 군대에 포위되어 함락될 날만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베툴리아 주민들을 구해내기 위해, 일신상의 작은 위험을 무릅쓰고 나섰던 유딧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해서 쓰여졌어요.
<새김과 나눔>
유딧은 자신이 살던 성읍이 위기에 처했을 때, 용감하게 한 몸을 내던져 주민들을 구해냅니다. 나는 어떤 일에 내 시간과 노력을 모두 쏟습니까?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유딧 1-7장)
아시리아와 메대의 전쟁(유딧 1,1-16)
* 느부갓네살 왕과 아르박삿 왕의 싸움에서 누가 승리했습니까?(1,13)
아시리아의 왕 느부갓네살과 메대 왕 아르박삿 사이에 전쟁이 벌어져요(원래 느부갓네살은 바빌론의 왕인데, 유딧서 저자가 아시리아의 왕으로 혼동했나 봐요.) 느부갓네살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예루살렘과 이집트를 비롯한 여러 지방에 사신을 보내어 협조를 구했지만, 이들 나라가 응낙해 주지 않자 몹시 분노해요.
서방 제국을 토벌하는 홀로페르네스(유딧 2,1-3,10)
* 느부갓네살은 어느 장군을 내세워 서방 제국을 토벌하려고 합니까?
느부갓네살은 승전 후 자신의 명령을 거역했던 서방 제국을 토벌하기로 결심해요.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홀로 페르네스는 서방 제국의 여러 나라를 점령하기에 이르려요. 이 소식을 듣고 화평을 청하는 도시에는 수비병을 배치하고 느부갓네살만을 예배하게 해요.
주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이스라엘(유딧 4,1-15)
* 이스라엘 사람들은 적군을 맞아, 어디에서 싸우기로 결심했습니까?(4,6-8)
유다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홀로페르네스가 여러 민족을 굴복시키고 신전을 파괴해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안절부절해요. 각 도시로 사람을 보내어 높은 산 꼭대기를 미리 확보하게 하는가 하면, 전쟁 준비로 식량을 마련해 놓으라고 일러요. 대사제 요아킴은 베툴리아와 베트마스타임 주민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유다로 들어가는 관문인 산간지방의 통로들을 고수하라고 명령해요. 한편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시 포로로 끌려가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하느님께 울부짖으며 간절히 기도드려요.
홀로페르네스의 작전회의(유딧 5,1-6,21)
* 이스라엘 민족의 실정을 정확하게 이야기하다가 추방당한 암몬군 지휘관은 누구입니까?(5,5.22;6,13)
홀로 페르네스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항전결의를 보인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들이 어떤 민족인지 알려달라고 해요. 그러자 암몬 사람들의 지휘관인 아키오르가 나서서 그들은 이집트에서 그들을 구해내신 하느니미을 믿는 민족이라며, 그들이 하느님께 잘못을 하지 않는 한 쳐 부술 수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에 분노한 지휘관들은 아키오르를 묶어서 베툴리아로 보내요.
포위된 베툴리아(유딧 7,1-32)
* 베툴리아 주님들은 무엇을 얻기 위해 노예가 되는 일도 마다하지 않으려 합니까?(7,27)
아시리아군은 베툴리아를 포위하고 성 안으로 들어가는 물을 차단해요. 34일 후에 저수지가 바닥나자, 사람들은 우찌야를 비롯한 지도자들에게 몰려 가서 아시리아와 화평하자고 을러요. 이에 우찌야는 닷새 후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해요.
<새김과 나눔>
아키오르는 바른 말을 하다가 홀로페르네스의 미움을 사서 내쫓기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에스델서는 어떤 성서인가요?
이 성서 이름은 어떻게 생겼나요?
에스델서는 역사적 배경을 빌어 유대인의 꿈 같은 소망을 그린 일종의 역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책의 여주인공 이름이 에스델인데, 그 인물의 이름을 따서 책의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공동번역 성서의 “제2 경전”에 실려 있는 에스델서의 단편은 110절에 달하며, 히브리 성서에는 없고 그리스어 성서에만 있는 내용입니다. 에스델서는 히브리 성서 분류상 ‘성문서’에 속합니다. 그 중에서도 룻기, 아가, 애가, 전도서와 함께 축제 때 읽는 이른바 ‘축제오경’에 속하는 성서이지요. 에스델서는 부림절에 읽혀졌어요.
누가 썼나요?
누군지 알 수 없어요. 다만 추정컨데,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유다 공동체의 일원이 부림절의 근거로 삼기 위해 이 이야기를 꾸미지 않았을까 해요. 제2경전을 덧보태어 에스델서의 종교적 의미를 두드러지게 한 이는 퍽 세련된 그리스계 유대인일 것으로 보아요.
언제 쓰여졌나요?
에스델서는 페르샤 제국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아요. 즉 에스델서는 페르샤 시대가 아닌, 그 뒤에 쓰여졌음을 알 수 있지요. 또 마카베오 시대에 유대인들이‘모르드개의 날’을 지낸 사실이 언급된 것(2마카 15,36)을 보면, 기원전 50년경에는 부림절 축제를 지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점을 감안하면 에스델서는 기원전 2세기 전반부에 씌어졌다고 추정할 수 있어요. 제2 경전 부분은 더 늦게, 기원전 100년경에 생겨났을 거에요.
왜 썼나요?
에스델서는 성서 중에서 가장 유대 중심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게다가 에스델서(제2 경전 제외)에는 하느님이 명시적으로 등장하지도 않고, 부림절이라는 이방인 축제가 부각되어 있기도 하지요. 무엇보다도 이방인에 대한 대량 학살이 정당화되어 있어요. 그래서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에서 에스델서를 정경으로 인정할 것인지 여부가 몹시 치열하게 논의된 바 있어요.
그러면 에스델서의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에스델서의 작가는 페르샤의 신년축제 설화 등 주변 이야기를 이용하여 부림절의 근거를 제시하면서, 이교사회에 사는 유대인의 민족의식을 깨우치기 위하여 이 소설을 썼던 것으로 보여요. 룻기도 그렇지만, 여기서도 하느님은 드러나지 않게 역사 안에서 당신이 예비하신 사람들 - 에스델과 모르드개 같은 이 - 을 통하여 구원과 생명을 주시는 당신의 일을 계속하시지요. 따라서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자기들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려 최선을 다하면서 그분의 도우심을 굳게 신뢰하고 참회하며 기도하면(4,1-3.16), 하느님은 그들을 통해 그 공동체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신다(4,13-14)는 것이죠.
<새김과 나눔>
에스델서는 이교사회에서 어떻게 유다인들이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 나갔는가를 그려줍니다. 낯선 땅에 와서 한인 교포들이 어떻게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느낀 아픔과 하느님의 돌보심은 어떠했는지 나눠봅시다.
구원의 손길로 살 길을 여니
(에스 1-16장)
왕후가 된 에스델(에스 1,1-2,23)
에스델의 히브리 이름은 무엇입니까?(2,7)
페르샤의 아하스에로스 왕은 재위 삼 년을 맞아 베푼 잔치에 와스디 왕후를 초대했으나 나오지 않자, 몹시 화를 내며 대신들의 의견을 들어 폐위시켜요. 그리고 페르샤의 처녀 가운데서 새로운 왕후를 뽑는데, 유대인 모르드개의 양녀인 에스델이 간택되지요. 한편 모르드개는 왕 암살 음모를 왕에게 고하여 큰 공을 쌓게 되지요.
대신 하만의 음모와 몰락(에스 3,1-7,10)
에스델은 왕 앞에 나가기 전에 먼저 어떤 일을 합니까?(4,16)
페르샤의 고관인 하만은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를 밉게 여겨 그를 비롯한 유대인 전체를 전멸시킬 음모를 꾸미고 왕에게 재가를 받은 후에 전국에 공고해요. 이 엄청난 일에 놀란 모르드개는 에스델에게 왕께 호소할 것을 알려요. 에스델은 기도한 다음 어느 누구도 왕의 허락없이 왕께 나아갈 수 없다는 국법을 어기고 왕 앞에 나아가 왕과 하만을 잔치에 초대해요. 더욱 기고만장해진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일 계획을 갖추고 다음날 잔치에 참석하지요. 한편 그 밤에 왕은 궁중실록을 읽다가 예전에 모르드개가 세운 공적에 관한 기사를 읽고 나서 하만을 불러 모르드개를 영예롭게 대하라고 지시해요. 두 번째 잔치 자리에서 에스델이 왕에게 하만의 음모를 알리면서 자기 민족을 살려달라고 호소하자, 왕은 하만을 처형하고 말아요.
유대인들이 부림절을 지내다(에스 8,1-10,3)
부림절은 언제 어느 의미로 지내는 축제입니까?(9,21-22)
하만이 몰락한 후 페르샤의 대신이 된 모르드개는 왕께 청원하여 유대인들의 복수를 허락하는 새로운 칙령을 내리게 하지요.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유대인들은 힘을 합쳐 원수를 갚게 됩니다. 모르드개는 죽을 뻔하다가 살아난 이 사건을 기념하여 부림절을 지낼 것을 지시하지요. 부림은 ‘주사위’를 뜻하는 아카드어 ‘푸르(pur)’에서 나온 말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각종 원수들에게서 살아남을 기뻐하는 축제로서 부림절을 지내고 있답니다.
제2경전에 덧붙여진 이야기들 (에스 11,1-16,24)
모르드개는 자신이 하만에게 굴복하지 않은 이유를 무엇이라고 밝힙니까(13,12-14)
제1경전의 에스델서를 보충하는 종교적 내용이 덧붙여 있어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계시받은 모르드개의 꿈 이야기와 왕의 암살 음모를 알려서 하만과 모르드개가 원한관계가 된 일, 유대인을 전멸하려는 왕의 칙령, 죽음의 위협에 직면한 모르드개와 에스델의 기도내용과 에스델이 왕 앞에 나아가 실신한 사건, 유대인들에게 복수를 허락한 왕의 칙령 등이 소개되지요.
마카베오는 어떤 책인가요?
마카베오란 성서 이름은?
마카베오는 제2경전 중에서 바룩 다음에 나오는 성서로,구약성서의 맨끝에 위치한 책입니다. 마카베오는 마따디아의 한 아들의 이름이에요.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4세의 종교박해에 맞선 종교항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한 중심 인물이라서, 그의 이름을 따서 성서 이름으로 삼았던 거죠.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마카베오 하권은 유다 마카베오의 항쟁을 중심으로 엮어졌지만, 상권은 마카베오뿐만이 아니라 아버지 마따디아를 비롯하여 마카베오 사후에 종교항쟁을 함께 이끌어 갔던 형제들의 이야기도 함께 나와요. 그래서 초기의 유다 문헌에서는 마카베오 상권을 이들 가문의 이름을 따서 ‘하스모니안’이라 부르기도 했답니다.
누가 썼나요?
한 사람이 마카베오 상·하를 모두 쓰지는 않았어요. 마카베오 상권은 시몬의 아들 요한에 이르기까지 하스모니안 왕조의 공식적인 역사에 관심을 보이면서 그 가문의 확립과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는 내용으로 보아, 하스모니안 왕조를 적극 지지한 사람이 히브리어로 썼을 거에요. 히브리어 원본은 전해지지 않지만, 히브리 관용어가 자주 언급되거든요.
반면에 마카베오 하권은 북부 아프리카의 키레네 출신 야손이 다섯 권으로 기록해 놓은 것을 후대 사람이 요약해 놓은 책이에요. 하스모니안 왕조를 언급하면서도 시몬을 좋지 않은 관점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2마카 10,18-22; 14,17-19)을 보면, 하스모니안 왕조를 반대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그리스어로 썼을 거에요. 그리스어 문장 실력이 대단한 것으로 보아 해외에 거주하는 유다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언제 썼나요?
마카베오 상권은 시몬이 죽은(기원전 134년) 이후, 로마에 의해 함락되기(기원전 63년) 전에 쓰여졌을 거라고 봐요. 대략 기원전 100년경으로 추정해요. 로마를 상당히 호의적으로 표현하고 있거든요. 하권의 자료로 사용된 야손의 책은 유다 마카베오의 행적만을 전하고 있어, 늦어도 기원전 160년(유다가 전사한 해)경에는 완성되었을 거에요. 그런데 서두에 실려 있는 편지(2마카 1,9)에는 분명히 188년(= 기원전 124년)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대략 이 무렵에는 야손의 책이 요약된 형태로 꼴을 갖추었을 것으로 생각돼요.
왜 썼나요?
상·하권 모두 이스라엘 역사에 깊이 개입하시는 하느님을 일깨우고자 쓰여졌어요. 많은 유다인들이 일신의 안위를 위하여 민족을 배신하거나 죽음의 위협을 느껴 우상과 이방 관습을 받아들이는 풍토에서, 신앙과 민족을 지키려 목숨을 던져 순교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뢰만이 이스라엘이 살 길임을 되새기게 한답니다.
<새김과 나눔>
마카베오서 저자는 우상과 이방 관습이 범람하는 가운데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불러일으키고자 합니다. 우리도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그릇된 가치관 가운데서 하느님을 믿는 신앙으로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의 신앙을 굳건히 합시다.
율법을 굳게 지켜라(1마카 1-16장)
마카베오 전쟁의 시작(1마카 1,1-2,70)
모든 사람이 왕명에 굴복하여 조상들의 종교를 버린다 해도, 자기 가문만은 하늘이 주신 율법을 지켜나가겠다고 선언한 사람은 누구인가요?(2,19-21)
알렉산더 대왕이 퍼뜨린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이스라엘에서는 할례받은 흔적을 없애는가 하면 이방인들의 풍속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설상가상으로 시리아를 다스리던 안티오쿠스 4세가 이집트군을 쳐부수고는 그 여세를 몰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유다교를 탄압하기 시작했어요. 안식일을 지키고 할례를 하면 무조건 사형에 처했죠. 이에 많은 사람들이 왕명에 따랐지만, 마따디아는 조상들의 계약을 지키겠다면서 저항운동을 시작해요. 마따디아 이후에는 유다 마카베오를 중심으로 항쟁이 계속됩니다.
유다 마카베오의 항쟁(1마카 3,1-9,22)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성전을 정화하고 재봉헌한 달은 언제입니까?(4,52)
마카베오라고도 불리우는 유다는 총 지휘관이 된 후,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도 전쟁에서의 승리는 군대의 다수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내려 주신 힘에 달려 있다는 믿음으로 용감히 싸워요. 고르기아군을 엠마오 전투에서 크게 무찌르고 나서는, 더럽혀진 성전을 정화하고 재봉헌하는 기쁨을 누려요. 이후 적들에게 포위된 갈릴래아와 길르앗의 유다인을 구출하고, 니가노르군을 쳐부수고는 로마인과 맹약을 맺어요. 하지만 결국 베레아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하고 맙니다.
요나단의 항쟁(1마카 9,23-12,53)
요나단은 누구의 속임수에 넘어가 포로가 됩니까?(12,41-53)
유다가 죽은 후 기세가 꺾인 항쟁의 불길은 요나단이 그 뒤를 이음으로써 다시금 불타 올라요. 바키데스군을 크게 쳐부수고는, 데메드리오와 알렉산더의 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입지를 넓혀 나가요. 이후로도 국제정세의 흐름에 따라 슬기롭게 처신하면서, 로마와 스파르타와 동맹을 맺어요. 하지만 트리폰의 속임수에 넘어가 포로가 되고 말아요.
시몬의 항쟁(1마카 13,1-16,24)
시몬은 로마 사람들과의 동맹을 굳히기 위해서 무엇을 선물로 보냅니까?(14,24)
요나단이 잡힌 후 트리폰이 유다 땅을 침입하려는 것을 보고, 시몬은 온 백성을 이끌고 맞서요. 데메드리오와 동맹을 맺고, 게젤과 예루살렘 요새를 점령하는 등 개가를 올려요. 하지만 프톨레매오의 흉계에 넘어가 죽고, 그의 아들 요한이 뒤를 이어요.
<새김과 나눔>
하스모니안 가문은 격변하는 국제정치 안에서 자국의 이익을 증진시켜 나갑니다. 여러 가치관이 혼재되어 있는 이 사회에서 하느님 나라를 신장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살아서나 죽어서나
(2마카 1-15장)
이집트에 사는 유다인들에게(2마카 1,1-2,32)
동굴 속에 장막과 계약궤와 분향제단을 안치한 사람은 누구입니까?(2,5))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 사는 유다인들이 이집트에 사는 유다인 동포들에게 두 통의 편지를 띄워, 초막절과 성전 정결 예식을 지키도록 촉구해요. 이 예식은 외세의 압력과 그에 편승한 민족의 반역자들에 의해 환난과 위기에 처했던 민족을 구해 주신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의 축제임을 강조하고 있어요. 또한 그 과정을 재미있게 전하기 위해서 야손의 기록을 요약했다고 밝히고 있어요.
종교박해와 순교자들(2마카 3,1-7,42)
이스라엘 안에 헬레니즘을 대거 확산시킨 대사제는?(4,10)
시몬, 야손, 메넬라오스, 리시마코스 등은 부정한 방법으로 대사제직에 올라 그리스식 생활양식을 도입하는가 하면, 조상들의 율법에 따른 제도를 폐지하고 선조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명예로운 전통을 짓밟아요. 심지어 상대방으로부터 대사제직을 뺏기 위해 군대를 동원했다가, 안티오쿠스 군대를 불러들이는 결과를 초래해요. 안티오쿠스는 대사제 메넬라오스의 안내를 받아 성전기물을 약탈하는가 하면, 사람들에게 이교예식을 강요해요. 하지만 엘르아잘을 비롯하여 일곱 아들을 둔 어머니는 박해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면서 죽음을 맞아요.
유다의 승리와 성전의 정화(2마카 8,1-10,9)
유다 마카베오와 그의 부하들은 니가노르와 교전하기 전에 무엇을 읽습니까?(8,21-23)
유다 마카베오는 유다 민족의 전통을 꾸준히 지켜온 사람들을 소집하여 군대를 결성해요. 그리고는 니가노르와 싸워서 대승을 벌여요. 그런 와중에 안티오쿠스 4세는 비참한 최후를 맞고, 유다 일행은 예루살렘 성전을 새롭게 정화해요. 그리고 해마다 이 축제를 지킬 것을 법령으로 포고해요.
다시 시작되는 박해와 부활 신앙(2마카 10,10-15,39)
전투에서 죽은 병사들을 위해 속죄제사를 드리기 위한 모금을 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12,43-45)
화평하게 지내기로 약속되어 있는 상태에서, 일부 도시에서 유다인들이 학살되는 사건이 벌어져요. 그러자 유다 마카베오는 군대를 조직하여 곧바로 응징하고, 전투에서 죽은 사람들을 위해 속죄예식을 드리기 위한 모금을 해요. 부활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런 희망으로 유다인들은 자신들을 끝까지 탄압하던 니가노르를 무찌를 수 있었답니다.
<새김과 나눔>
대사제들의 싸움은 결국 외세를 끌어들이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고 맙니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이와 같은 일들은 없었는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마카베오는 어떤 책인가요?
마카베오란 성서 이름은?
마카베오는 제2경전 중에서 바룩 다음에 나오는 성서로,구약성서의 맨끝에 위치한 책입니다. 마카베오는 마따디아의 한 아들의 이름이에요.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4세의 종교박해에 맞선 종교항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한 중심 인물이라서, 그의 이름을 따서 성서 이름으로 삼았던 거죠.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마카베오 하권은 유다 마카베오의 항쟁을 중심으로 엮어졌지만, 상권은 마카베오뿐만이 아니라 아버지 마따디아를 비롯하여 마카베오 사후에 종교항쟁을 함께 이끌어 갔던 형제들의 이야기도 함께 나와요. 그래서 초기의 유다 문헌에서는 마카베오 상권을 이들 가문의 이름을 따서 ‘하스모니안’이라 부르기도 했답니다.
누가 썼나요?
한 사람이 마카베오 상·하를 모두 쓰지는 않았어요. 마카베오 상권은 시몬의 아들 요한에 이르기까지 하스모니안 왕조의 공식적인 역사에 관심을 보이면서 그 가문의 확립과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는 내용으로 보아, 하스모니안 왕조를 적극 지지한 사람이 히브리어로 썼을 거에요. 히브리어 원본은 전해지지 않지만, 히브리 관용어가 자주 언급되거든요.
반면에 마카베오 하권은 북부 아프리카의 키레네 출신 야손이 다섯 권으로 기록해 놓은 것을 후대 사람이 요약해 놓은 책이에요. 하스모니안 왕조를 언급하면서도 시몬을 좋지 않은 관점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2마카 10,18-22; 14,17-19)을 보면, 하스모니안 왕조를 반대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그리스어로 썼을 거에요. 그리스어 문장 실력이 대단한 것으로 보아 해외에 거주하는 유다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언제 썼나요?
마카베오 상권은 시몬이 죽은(기원전 134년) 이후, 로마에 의해 함락되기(기원전 63년) 전에 쓰여졌을 거라고 봐요. 대략 기원전 100년경으로 추정해요. 로마를 상당히 호의적으로 표현하고 있거든요. 하권의 자료로 사용된 야손의 책은 유다 마카베오의 행적만을 전하고 있어, 늦어도 기원전 160년(유다가 전사한 해)경에는 완성되었을 거에요. 그런데 서두에 실려 있는 편지(2마카 1,9)에는 분명히 188년(= 기원전 124년)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대략 이 무렵에는 야손의 책이 요약된 형태로 꼴을 갖추었을 것으로 생각돼요.
왜 썼나요?
상·하권 모두 이스라엘 역사에 깊이 개입하시는 하느님을 일깨우고자 쓰여졌어요. 많은 유다인들이 일신의 안위를 위하여 민족을 배신하거나 죽음의 위협을 느껴 우상과 이방 관습을 받아들이는 풍토에서, 신앙과 민족을 지키려 목숨을 던져 순교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뢰만이 이스라엘이 살 길임을 되새기게 한답니다.
<새김과 나눔>
마카베오서 저자는 우상과 이방 관습이 범람하는 가운데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불러일으키고자 합니다. 우리도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그릇된 가치관 가운데서 하느님을 믿는 신앙으로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의 신앙을 굳건히 합시다.
율법을 굳게 지켜라(1마카 1-16장)
마카베오 전쟁의 시작(1마카 1,1-2,70)
모든 사람이 왕명에 굴복하여 조상들의 종교를 버린다 해도, 자기 가문만은 하늘이 주신 율법을 지켜나가겠다고 선언한 사람은 누구인가요?(2,19-21)
알렉산더 대왕이 퍼뜨린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이스라엘에서는 할례받은 흔적을 없애는가 하면 이방인들의 풍속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설상가상으로 시리아를 다스리던 안티오쿠스 4세가 이집트군을 쳐부수고는 그 여세를 몰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유다교를 탄압하기 시작했어요. 안식일을 지키고 할례를 하면 무조건 사형에 처했죠. 이에 많은 사람들이 왕명에 따랐지만, 마따디아는 조상들의 계약을 지키겠다면서 저항운동을 시작해요. 마따디아 이후에는 유다 마카베오를 중심으로 항쟁이 계속됩니다.
유다 마카베오의 항쟁(1마카 3,1-9,22)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성전을 정화하고 재봉헌한 달은 언제입니까?(4,52)
마카베오라고도 불리우는 유다는 총 지휘관이 된 후,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도 전쟁에서의 승리는 군대의 다수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내려 주신 힘에 달려 있다는 믿음으로 용감히 싸워요. 고르기아군을 엠마오 전투에서 크게 무찌르고 나서는, 더럽혀진 성전을 정화하고 재봉헌하는 기쁨을 누려요. 이후 적들에게 포위된 갈릴래아와 길르앗의 유다인을 구출하고, 니가노르군을 쳐부수고는 로마인과 맹약을 맺어요. 하지만 결국 베레아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하고 맙니다.
요나단의 항쟁(1마카 9,23-12,53)
요나단은 누구의 속임수에 넘어가 포로가 됩니까?(12,41-53)
유다가 죽은 후 기세가 꺾인 항쟁의 불길은 요나단이 그 뒤를 이음으로써 다시금 불타 올라요. 바키데스군을 크게 쳐부수고는, 데메드리오와 알렉산더의 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입지를 넓혀 나가요. 이후로도 국제정세의 흐름에 따라 슬기롭게 처신하면서, 로마와 스파르타와 동맹을 맺어요. 하지만 트리폰의 속임수에 넘어가 포로가 되고 말아요.
시몬의 항쟁(1마카 13,1-16,24)
시몬은 로마 사람들과의 동맹을 굳히기 위해서 무엇을 선물로 보냅니까?(14,24)
요나단이 잡힌 후 트리폰이 유다 땅을 침입하려는 것을 보고, 시몬은 온 백성을 이끌고 맞서요. 데메드리오와 동맹을 맺고, 게젤과 예루살렘 요새를 점령하는 등 개가를 올려요. 하지만 프톨레매오의 흉계에 넘어가 죽고, 그의 아들 요한이 뒤를 이어요.
<새김과 나눔>
하스모니안 가문은 격변하는 국제정치 안에서 자국의 이익을 증진시켜 나갑니다. 여러 가치관이 혼재되어 있는 이 사회에서 하느님 나라를 신장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살아서나 죽어서나
(2마카 1-15장)
이집트에 사는 유다인들에게(2마카 1,1-2,32)
동굴 속에 장막과 계약궤와 분향제단을 안치한 사람은 누구입니까?(2,5))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 사는 유다인들이 이집트에 사는 유다인 동포들에게 두 통의 편지를 띄워, 초막절과 성전 정결 예식을 지키도록 촉구해요. 이 예식은 외세의 압력과 그에 편승한 민족의 반역자들에 의해 환난과 위기에 처했던 민족을 구해 주신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의 축제임을 강조하고 있어요. 또한 그 과정을 재미있게 전하기 위해서 야손의 기록을 요약했다고 밝히고 있어요.
종교박해와 순교자들(2마카 3,1-7,42)
이스라엘 안에 헬레니즘을 대거 확산시킨 대사제는?(4,10)
시몬, 야손, 메넬라오스, 리시마코스 등은 부정한 방법으로 대사제직에 올라 그리스식 생활양식을 도입하는가 하면, 조상들의 율법에 따른 제도를 폐지하고 선조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명예로운 전통을 짓밟아요. 심지어 상대방으로부터 대사제직을 뺏기 위해 군대를 동원했다가, 안티오쿠스 군대를 불러들이는 결과를 초래해요. 안티오쿠스는 대사제 메넬라오스의 안내를 받아 성전기물을 약탈하는가 하면, 사람들에게 이교예식을 강요해요. 하지만 엘르아잘을 비롯하여 일곱 아들을 둔 어머니는 박해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면서 죽음을 맞아요.
유다의 승리와 성전의 정화(2마카 8,1-10,9)
유다 마카베오와 그의 부하들은 니가노르와 교전하기 전에 무엇을 읽습니까?(8,21-23)
유다 마카베오는 유다 민족의 전통을 꾸준히 지켜온 사람들을 소집하여 군대를 결성해요. 그리고는 니가노르와 싸워서 대승을 벌여요. 그런 와중에 안티오쿠스 4세는 비참한 최후를 맞고, 유다 일행은 예루살렘 성전을 새롭게 정화해요. 그리고 해마다 이 축제를 지킬 것을 법령으로 포고해요.
다시 시작되는 박해와 부활 신앙(2마카 10,10-15,39)
전투에서 죽은 병사들을 위해 속죄제사를 드리기 위한 모금을 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12,43-45)
화평하게 지내기로 약속되어 있는 상태에서, 일부 도시에서 유다인들이 학살되는 사건이 벌어져요. 그러자 유다 마카베오는 군대를 조직하여 곧바로 응징하고, 전투에서 죽은 사람들을 위해 속죄예식을 드리기 위한 모금을 해요. 부활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런 희망으로 유다인들은 자신들을 끝까지 탄압하던 니가노르를 무찌를 수 있었답니다.
<새김과 나눔>
대사제들의 싸움은 결국 외세를 끌어들이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고 맙니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이와 같은 일들은 없었는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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