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4월 29일 나해 부활 제4주간 수요일(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dariaofs 2015. 4. 29. 00:30

 

 

카타리나 베닌카사(Catharina Benincasa, 또는 가타리나)는 시에나의 한 염색업자의 25명의 자녀 가운데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생기발랄하고 상냥한 아가씨였으므로, 아버지가 항상 점잖게 굴라고 하는 말을 싫어하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과 6살의 어린 나이에 자신의 생애를 미리 보는 신비한 체험을 하였다. 그녀는 부모가 자신을 결혼시키려는 모든 노력에 반항하고, 오로지 기도와 단식에만 전념하였다.

그녀는 16세 되던 해에 도미니코 3회원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그리스도, 마리아, 성인들에 대한 환시는 더욱 잦아졌고, 동시에 악마적인 환시도 종종 일어났다고 한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특히 나병환자와 같은 절망적인 병을 앓는 환자들을 간호하는 일을 즐겨하였다.

 

그녀가 받은 초자연적인 선물들로 인하여 열렬한 지지자들이 지나치게 열광하였기 때문에, 그녀가 혹시 협잡꾼이 아닌가 하여 고발됨에 따라 도미니코회의 총회 석상에까지 출두한 일도 있었다. 그 당시 카푸아(Capua)의 레이몬드 성인이 그녀의 고해신부로 임명되었으나, 곧 그녀의 제자가 되었고, 후일에는 그녀의 전기 작가가 되었다.


시에나로 돌아온 그녀는 페스트로 황량해진 그 도시와 주민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였고, 선고받은 죄수들을 찾았으며, 평화를 전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분쟁을 해결하였다. 그녀는 터키인을 대항하려는 십자군을 모집하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Gregorius XI)를 적극 지원하였고, 1375년에 피사를 방문하는 도중에 오상 성흔을 받았다.

 

그러나 이 오상이 생전에는 볼 수 없었는데, 임종할 즈음에는 확연히 드러났다고 한다. 그녀는 플로렌스와 그레고리우스 교황간의 불화를 중재하는 데에는 실패하지만, 아비뇽(Avignon)의 교황좌가 1376년에 로마(Roma)로 돌아오게 하는 일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 후로는 자신의 신비적인 체험들을 기록하는 일에 전념하여 성녀 카타리나의 대화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1378년 교황 그레고리우스의 서거에 즈음하여 우르바누스 2세(Urbanus II)가 교황으로 선출됨으로써, 이를 반대하는 일단의 추기경들이 스위스 제네바(Geneva)의 로베르투스(Robertus)를 대립교황으로 선출하는 사건으로 큰 분열이 발단되어 여간 혼란스럽지 않을 때, 그녀는 단호히 우르바누스 교황을 지지하여 분열을 종식시켰다. 그녀는 중풍 증세로 고생하다가 며칠 후에 로마에서 운명하였다.

카타리나는 그리스도인 신비가 중에서도 대가에 속한다. 그녀는 “대화” 외에도 400여 통의 서한들을 남겼다. 1461년에 시성되었고, 1939년에는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으며, 1970년에는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하여 교회 박사로 선언되었다.

 

강론   :   (요한 12,44-50)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요한 12,44-45)."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은 하나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느님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을 보는 것은 하느님을 보는 것입니다.

(이 말에는, 하느님을 믿으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하느님을 보려면 예수님을 보아야 한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그냥 '내가 바로 하느님이다.' 라고 선언하면 될 텐데,

왜 이렇게 복잡한 표현을 사용하셨을까?"

아마도 이것은 삼위일체와 관련된 표현일 것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은 하나이지만,

아버지와 아드님으로 분명히 구분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씀으로 생각됩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제자들의 신앙고백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곧 하느님을 믿는 것이다."

라는 신앙고백을 예수님의 말씀으로 바꿔서

복음서에 기록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라는 신앙고백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이라는

토마스 사도의 신앙고백이 끝부분에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전체적으로 보면,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설명하고 고백하는 내용이

기본 줄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뒤의 14장에 다시 나옵니다.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8-9)"

이처럼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다."는 그리스도교의 기본 신앙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2,46)."

'빛'은 생명을 뜻하고, '어둠'은 죽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어둠 속에 머무르는 것은 영원히 멸망하는 것을 뜻합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복음서 머리글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빛이 너희 가운데에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빛이 너희 곁에 있는 동안에 걸어가거라.

그래서 어둠이 너희를 덮치지 못하게 하여라.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빛이 너희 곁에 있는 동안에 그 빛을 믿어, 빛의 자녀가 되어라(요한 12,35-36)."

 

"빛이 너희 곁에 있는 동안"이라는 말은

원래는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사람들과 함께 지내신 시간을 뜻하는 말이지만,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을 가리키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또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에만 할 수 있는 일, 죽은 다음에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은 '지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느님 앞에서 받게 되는 심판을 죽은 뒤의 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심판은 이미 지금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나를 물리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를 심판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요한 12,47-48)."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는 것이고,

그 구원을 거부하면 스스로 멸망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지금 하는 그 선택이 바로 심판입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그를 심판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 말씀을 받아들여서 그대로 사는지,

아니면 안 받아들이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지,

지금의 선택과 삶 자체가 심판이라는 뜻입니다.

 

'마지막 날'은 언제인지 모르는 먼 훗날에 닥치는 날이 아니라,

이미 시작되어서 지금도 진행 중인 날이고,

언젠가 마무리되고 완성되는 날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날은 '지금'입니다.

(최후의 심판은 자신의 선택을 최종적으로 확인 받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 내용이 지금 당장에는 실감이 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죽으면 그만이다." 라고 생각하고,

지금 당장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싶은 대로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죽어도 끝나는 것이 아니다." 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또 다른 세상이 있고,

지금의 인생이 전부가 아니라 또 다른 인생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인생이란, 죽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는다면

지금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