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1월 31일 다해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dariaofs 2013. 1. 31. 06:00

 

                                                                                   (마르 4,21-25)

 

 

 

<등불의 비유>

 

1월 31일의 복음 말씀은 마르코복음 4장 21절-25절, '등불의 비유'입니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마르 4,21)" 라는 말씀은,

'등불을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지 말고 등경 위에 놓아라.' 라는 명령입니다.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마르 4,22)."

라는 말씀도 등불을 감추지 말고 드러내라는 명령입니다.

 

('매일미사' 복음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 있는데,

성경에는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 있고,

'그들'은 군중이 아니라 사도들입니다.

그래서 '등불의 비유'는 군중이 아니라 사도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전례용 복음 말씀의 번역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편집 작업이 잘못된 것인지...?)

 

예수님의 명령은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됩니다.

1) 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라는 명령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4-16)."

 

신앙인은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이 등불의 기능을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데,

어둠을 물리치는 조명등의 기능이 있고,

길을 찾는 사람들을 인도하는 등대의 기능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둠 속에 숨어서 죄를 짓고 있을 때 그곳에 밝은 조명을 비추면

부끄러워서(또는 두려워서) 죄 짓는 일을 멈출 것입니다.

그렇게 신앙인은(또는 교회는) 세상의 양심 역할을 해야 합니다.

또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인도하는 등대 역할도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또 세상이 교회와 신앙인의 삶을 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깨닫고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2)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마태 10,26-27)."

 

'복음(기쁜 소식)'은 자기 혼자만의 것으로 간직하면 안 되고,

널리 알려야 할 모두의 소식입니다.

'기쁜 소식'이라는 말에서 '기쁜'이라는 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식'이라는 말도 중요합니다.

'소식'은 모든 사람에게 널리 알려야 진짜로 '소식'이 됩니다.

 

'등불의 비유' 다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은

'격려'의 말씀이기도 하고, '경고'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르 4,24-25)."

 

이 말씀은 '탈렌트의 비유'(마태 25,29)에도 나오는 말씀인데,

신앙인들이(교회가) 등불의 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더 많은 은총을 받겠지만,

만일에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받을 수 있었을 은총을 못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이미 받은 은총도 잃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신앙인들이(교회가) 세상을 인도하기는커녕 세상의 풍조를 흉내 내고

따라가는 모습을 볼 때가 가끔 있는데, 위험한 일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바뀌어도 선은 선이고 악은 악입니다.

생명은 생명이고 죽음은 죽음입니다.

 

만일에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하느님의 말씀도 바뀐다면

그것은 더 이상 하느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영원하신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도 영원합니다.

 

(예를 들면, 성경을 종이에 인쇄해서

두껍고 무거운 책으로 만들어서 들고 다닐 수도 있고,

스마트폰에 몽땅 저장해서 간편하게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닐 수도 있지만,

성경 말씀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고, 바꿔도 안 됩니다.)

 

이것은 보수냐, 진보냐? 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영원한 것'과 '허무한 것'에 관한 문제입니다.

 

세상을 치유해야 할 교회가

거꾸로 세상으로부터 치유를 받는 일이 생기면 안 됩니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더 이상 교회의 자격이 없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 5,13)."

 

                ~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