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2월 3일 다해 연중 제4주일

dariaofs 2013. 2. 3. 01:43

 

                                                                                    (루카 4,21-30)

 

 

 

<들었으면 들은 것을 실행해야>

 

예수님께서 이사야 예언서를 인용해서 복음을 선포하셨을 때,

나자렛 사람들의 첫 번째 반응은 '놀라움'이었습니다.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루카 4,22)."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설교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득 찬 말씀이었다는 뜻입니다.

 

'좋게 말하며' 라는 말의 원문 단어는 '증언하다.'인데,

여기서는 '인정하다.' 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나자렛 사람들이 처음에는

예수님의 복음을 복음으로 알아들었고,

메시아의 복음이라고 인정했음을 나타냅니다.

 

그렇게 그들은 제대로 알아듣긴 했는데,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는 못했습니다.

'놀라워하였다.' 라는 말에는

긍정적인 뜻과 부정적인 뜻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긍정적인 뜻으로 보면,

겉으로는 보잘것없게 보이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득 찬 말씀을 하시자 경탄했다는 뜻이 되고,

부정적인 뜻으로 보면,

그런 은총의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보잘것없는 겉모습에 놀랐다는 뜻이 됩니다.

 

이 두 가지 뜻을 합해서 생각하든 따로 떼어서 생각하든 간에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경탄을 했든 그냥 놀라기만 했든 간에)

그들의 '놀라움'은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놀라기는 했지만 믿고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루카 4,22)."

이 구절의 '그러면서' 라는 말은 '그러면서도'로 바꾸는 것이 적절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하는 말은,

"가난한 목수 요셉의 아들이 어떻게 저렇게 설교를 잘하지?"

하고 놀랐음을 나타냅니다.

('성서학 박사학위도 없는 사람이 성경 강의를 제법 잘하네?' 같은...)

 

예수님께서는 그런 나자렛 사람들에게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라고 하시면서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와 '시리아 사람 나아만'

에 관한 말씀을 하십니다(루카 4,24-27).

 

이 말씀은, 이스라엘은 이미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특권을 잃었고,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이방인들이 먼저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화가 나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이 이유를 생각해 보면,

 

1)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이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라는 점 때문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못했습니다(루카 4,22).

 

2) 나자렛 사람들은 자기들을 믿게 하려면 다른 지역에서 행한 기적들을

나자렛에서도 행해 보라고 예수님에게 요구했는데(루카 4,23),

거절당하자 예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3) 나자렛 사람들뿐만 아니라 당시 모든 유대인들은

하느님을 이스라엘 민족만의 하느님으로 생각했고,

자기들은 틀림없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자만심과 특권 의식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따로 더 믿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4)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지 못하고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방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

라고 생각하고 있던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야훼 하느님을 이방인들의 신으로 격하시킨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 말씀이고,

따라서 그들에게는 그런 발언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로 들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은 단순히 화가 나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거짓 예언자로 생각했기 때문이고,

또 하느님을 모독했다고(신성모독죄를 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이런 상황은, 또 예수님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나자렛만의 일이 아니고, 당시 거의 모든 유대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특권의식, 우월감, 자만심, 예언자에 대한 편견 등은

유대인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되는 문제입니다.

 

한 번 믿음을 고백했다고 해서 믿음이 완성되는 것도 아니고,

한 번 회개했다고 해서 회개가 완료되는 것도 아닙니다.

마지막 그날 그때가 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큰소리칠 수 없습니다.

 

복음을 알아듣고 이해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들은 말씀을 믿고, 삶으로 실행하지 않으면, 들은 것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서 음식을 밥상에 차려놓은 일과 같습니다.

그것은 음식을 구경하고 맛을 평가하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 음식을 먹고 소화시키고 영양분을 흡수시켜서 생명을 얻으라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일입니다.

한 번 밥을 먹는다고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계속 먹어야 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고, 삶으로 실천하는 일은

날마다 계속해야 하는 일입니다.

 

음식을 차려놓았다면 보지만 말고 먹어야 합니다.

복음 말씀을 듣지만 말고(읽지만 말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