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 6,1-6)
<믿음과 믿지 않음의 차이>
고향 나자렛으로 가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설교를 하시자
사람들이 놀라면서 말합니다.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마르 6,2)"
이 말은 '예수의 지혜로운 가르침은 하느님에게서 받은 것일까?
사람에게서 배운 것일까?' 라는 뜻인데,
일단 '예수의 설교는 하느님의 은총의 말씀(루카 4,22)이다.' 라는 것을
인정했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마르 6,2)" 라는 말은,
'예수의 기적의 힘은 하느님에게서 온 것일까?
사탄에게서 온 것일까?(마르 3,22)' 라는 뜻인데, 이 말은
예수님께서 나자렛에서도 기적을 행하셨음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뒤의 5절,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라는 말은
거꾸로 생각하면, '그래도 몇 명은 예수님을 믿었고,
예수님은 그 사람들에게 기적을 행하셨다.' 라는 뜻이 됩니다.
(루카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나자렛에서 기적을 행하셨다는 말이 없는데,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에는
나자렛에서도 기적을 행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떻든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랍비가 아니라 목수로 알고 있고(마르 6,3),
목수인데도 지혜로운(은총으로 가득 찬) 설교를 하시니까 놀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놀라기는 했지만 믿지는 않았습니다.
(사도들도 예수님 때문에 여러 번 놀랐지만,
그들은 그 놀라움 덕분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마르 6,3)." 라는 구절에서
'못마땅하게 여겼다.' 라는 말은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로 번역을 바꿔야 합니다.
사람들의 그런 태도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마르 6,4)."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에서 '고향'은 나자렛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나타나엘은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
라는 말을 했고, 예루살렘의 최고의회 의원들은 예수님이 갈릴래아 출신이어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요한 7,52).
또 예수님의 설교와 기적에 대해서 놀라면서도 믿음을 갖지는 않은 모습은
나자렛 사람들만의 모습은 아닙니다.
카파르나움 회당에 있었던 사람들도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기적을 보면서 놀라긴 했지만(마르 1,21-27)
그냥 놀라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배우지도 않았는데 성경을 잘 알고 있다고 놀랐는데(요한 7,15),
그 놀라움이 믿음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처럼 오늘날의 우리 역시
나자렛 사람들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이라는 말씀은,
고향과 친척과 집안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존경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어디서든지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만이 믿게 되고,
예언자의 말을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존경'이라는 말은 '믿음'을 가리키는 말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마르 6,6)." 라는 구절의
'놀라셨다.' 라는 말은 '안타까워 하셨다.' 라는 뜻입니다.
믿으려고 하지 않아서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님께 은총을 청하지 않았고,
청하지 않았으니 주시는 은총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받을 수 있는 은총도 못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
안타까워하신 것입니다.
(안 주신 것이 아니라 주셨는데도 사람들이 못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 믿은 것을
단순히 편견과 선입관 때문으로만 생각할 것은 아닙니다.
만일에 예수님이 나자렛 출신이 아니라 예루살렘이나 로마 출신이었다면?
외양간이 아니라 로마 황제의 궁전에서 태어나셨다면?
유명한 랍비가 스승이었다면?
그랬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을까?
바오로 사도는 유명한 랍비의 제자였고, 열성적인 바리사이였고,
정통 유대인이었지만
다른 사도들과 똑같이(어쩌면 더 많이) 박해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 믿고 미워한 것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씀만 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나를 미워한다.
내가 세상을 두고 그 일이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요한 7,7)."
또 '죄의 종'(요한 8,34)이었기 때문에(죄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예수님의 복음을 거부했습니다.
(편견과 선입관은 죄와 악에 사로잡혀 있음을 드러내는 한 단면일 뿐입니다.)
자기 안에 빛이 있으면 빛을 향해서 더욱 나아가고,
어둠에 사로잡혀 있으면 더욱 어둠 속으로 숨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 아닌지 살펴보아라.
너의 온몸이 환하여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이 그 밝은 빛으로 너를 비출 때처럼,
네 몸이 온통 환할 것이다(루카 11,35-36)."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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