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2월 5일 연중 제4주간 화요일(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dariaofs 2013. 2. 5. 08:36

 

                                                                                 (마르 5,21-43)

 

 

 

<예수님의 자비>

 

2월 5일의 복음 말씀은 마르코복음 5장 21절-43절,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시다.'입니다.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던 여자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후에 병이 낫게 되는데,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예수님의 옷이 그 여자를 고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죽은 소녀의 손을 잡으시고 그 소녀를 살려내시는데,

예수님의 손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살려 내셨습니다.

 

지금 그것을 강조하는 것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오해와 착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바오로를 통하여 비범한 기적들을 일으키셨다.

그의 살갗에 닿았던 수건이나 앞치마를 병자들에게 대기만 해도,

그들에게서 질병이 사라지고 악령들이 물러갔다(사도 19,11-12)."

 

바오로 사도의 몸에 닿았던(바오로 사도가 사용했던)

수건이나 앞치마를 병자들에게 대기만 해도 병이 나았다는 것은

그 자리에 바오로 사도가 없어도

(바오로 사도가 직접 병자를 만나지 않아도) 기적이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기적은 수건이나 앞치마가 행한 것도 아니고,

바오로 사도가 행한 것도 아니고,

하느님(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입니다.

 

만일에 하느님(예수님)에 대한 믿음 없이

그 수건이나 앞치마에 병을 고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그냥 미신일 뿐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경우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병자들을 한길까지 데려다가 침상이나 들것에 눕혀 놓고,

베드로가 지나갈 때에 그의 그림자만이라도 누구에겐가 드리워지기를 바랐다.

예루살렘 주변의 여러 고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병자들과 또 더러운 영에게 시달리는 이들을 데리고 몰려들었는데,

그들도 모두 병이 나았다(사도 5,15-16)."

 

베드로 사도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병이 나았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의 그림자가 기적을 행한 것도 아니고,

베드로 사도가 기적을 행한 것도 아니고,

하느님(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만일에 하느님(예수님)을 믿지 않고 베드로 사도의 그림자를 믿는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적 이야기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사람들을 고쳐 주시는 예수님의 자비와 의지입니다.

 

'벳자타 못가의 병자'는 예수님을 몰랐고,

예수님께 자기 병을 고쳐 달라고 청하지도 않았습니다(요한 5장).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그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만난 '눈먼 거지'도 예수님을 몰랐고,

예수님께 자기의 장애를 고쳐 달라고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를 고쳐 주셨습니다(요한 9장).

 

열두 해 동안 하혈하던 여자 이야기로 되돌아가서,

복음서의 표현만 보면,

그 여자가 아무도 모르게(예수님도 모르게)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고,

그래서 병이 나았고,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그 일을 알아차리고 여자를 찾으신 것처럼 되어 있는데,

예수님도 모르는 사이에 기적의 힘이 예수님에게서 빠져나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옆에서 목격한 사람이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렇게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실제로는 예수님께서 그 여자의 딱한 사정을 먼저 아셨고,

그 여자를 고쳐 주셨고,

그 여자에게 치유의 은총뿐만 아니라 전인적인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사람들 앞으로 불러내서 믿음을 고백하게 하신 것으로 해석됩니다.

다시 말해서 그 상황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의 주도권은

여자가 아니라 예수님 쪽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치유의 선택권과 결정권은 병자가 아니라 언제나 항상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언제 어떻게 자비를 베풀 것인지는

전적으로 예수님께서 결정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밀쳐 댔던 군중 가운데에서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믿어야 할 것은 예수님의 옷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자비입니다.

믿음과 미신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만일에 오늘날 어디선가 바오로 사도의 수건과 앞치마가 발견된다면?

얼마나 큰 소동이 생길지...

 

                   ~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