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6월 1일 나해 연중 제9주간 월요일(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dariaofs 2015. 6. 1. 00:30

 

성 유스티누스(Justinus, 또는 유스티노)는 100-110년 사이에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사마리아 지방에 세워진 플라비아 네아폴리스(Flavia Neapolis)의 이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의 성장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자세로 꾸준히 탐구하는 학구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스토아 철학,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피타고라스 철학 그리고 플라톤 철학에 연이어 몰두하였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카에사레아(Caesarea)의 바닷가를 산책하던 중에 한 노인을 만나 인간의 모든 사상, 플라톤 사상에도 한계와 부족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였다. 그가 그리스도교에 심취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순교자들의 영웅적인 태도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성 유스티누스가 에페수스(Ephesus)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것은 130년경이다. 그는 이후 구도자로서가 아니라 진리의 설파자, 신앙의 설교가로 길을 바꾸어 한평생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그는 평신도였으나 스승이며 복음의 사도가 된 것이다.

그는 132-135년 사이에 에페수스에서 유대인 트리폰과 종교에 관한 토론을 가졌으며, 이것을 토대로 155년에 “트리폰과의 대화”(Dialogue with Trypho the Jew)를 저술하였다. 그는 순회교사로서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가르치다가 안토니우스 피우스(Antonius Pius) 황제가 있는 로마(Roma)에 도착해서 그곳에 머물며 자기 집에서 교리를 가르치는 학교(schola)를 세웠다. 유스티누스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를 항의하는 2편의 “호교론”(Prima Apologia, Secunda Apologia)을 썼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첫 번째 호교론자이며 또 그리스도교에 대한 장문의 글을 남긴 최초의 평신도이다. 그는 크레센스라는 견유학파 사람과 논쟁을 벌이다가 그의 사주로 인하여 로마(Rome)의 집정관인 유니우스 루스티쿠스(Junius Rusticus)에게 고발되어 다른 6명의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이방 신전에 희생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수많은 고문을 당한 후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2세기 호교론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신학자였다.

 

강론   :   (마르 12,1-12)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6월 1일의 복음 말씀은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마르 12,1-12)입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포도 철이 되자 소작료를 받아오라고 종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종들을 때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면서

소작료 내는 것을 거부합니다.

주인은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내는데,

소작인들은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그 아들을 죽여 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하신 다음에,

주인은 그 소작인들을 없애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이야기에서 소작인들이 종들을 때리거나 죽이는 것은

예언자들을 박해한 이스라엘 역사를 가리키고,

주인의 아들을 죽이는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주인이 포도밭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라는 말씀은,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이스라엘의 특별한 지위가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에게로 넘어갈 것이라는 예언이기도 하고,

늦기 전에(그렇게 되기 전에) 회개하라는 경고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경고는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에게도 해당됩니다.)

 

이야기 속에서 소작인들이 종들을 때리거나 죽이는 것은

주인에게 소작료를 내지 않고

자기들이 포도밭의 소출을 전부 다 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이스라엘이 예언자들을 박해한 이유는 다릅니다.

하느님께 바쳐야 할 것을 바치지 않고 자기들이 차지하기 위해서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인 것은 아닙니다.

 

구약시대 예언자들은(세례자 요한도)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는 하느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말씀이 듣기 싫어서 예언자들을 박해했습니다.

1) 사람들은 자기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고,

자기들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회개하라는 말씀을 듣기 싫어한 것입니다.

(소작료를 잘 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자꾸만 내라고 하니까 소작인들이 화를 내는 것과 같은 상황.)

 

2) 사람들은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이 듣기 싫어서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불행을 예언하는 예언자들은 환영받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복을 받기만을 바라는데,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고, 심판과 처벌과 멸망을 예언하기 때문에

예언자들을 미워한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들의 죄는 생각하지 않고 예언자들 탓만 한 것입니다.

 

3) 회개하고 구원을 받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눈앞의 쾌락만 중요하게 생각해서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인 경우도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을 죽인 헤로데와 헤로디아가 그런 경우입니다.

그런 자들은 하느님의 심판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이 없고,

예언자들의 경고를 부당한 간섭이고 참견이라고만 생각합니다.

 

비유 속에서 소작인들이 주인의 아들을 죽인 것은

포도밭을 자기들이 완전히 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또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려고 예수님을 죽인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께 충성을 바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몰라서 그런 것이라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알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자기들이 직접 눈으로 본 것도 안 믿으려고 했고,

다른 사람들의 증언도 안 받아들였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하느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유대인들과는

아주 대조적인 유대인들이 나옵니다.

"그곳(베로이아) 유다인들은 테살로니카 유다인들보다 점잖아서

말씀을 아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였다.

그리하여 그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가 믿게 되었다(사도 17,11-12)."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이야기 속에서는 종들이 소작인들에게 간 것은

소작료를 받아내기 위해서였지만(주인의 이익을 위해서였지만),

실제 역사에서 예언자들이 사람들에게 가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것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였다는 점입니다.

회개하고 구원을 받는 것은 인간들 자신들을 위한 일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주인의 아들이 소작인들에게 간 것은

심판하고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타이르고 설득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냥 내버려두면 멸망하게 될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들을 구원하려고 오신 분을 배척하고 죽였습니다.

이것은 구원받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혹시라도 모르고 그랬다면 나중에라도 믿고 회개하면 되는데...

모르고 그랬다가 나중에 믿고 회개한 사람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바오로 사도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가르침을 생생하게 하시려고 주인과 소작인으로 표현하셨지만,

실제로는 하느님과 우리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하느님의 '상속 재산'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기 위한 일입니다.

상속자가 될 수 있는데도 싫다고 하면서 거부하면 상속 재산을 받지 못합니다.

안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시는 것을 안 받아서 못 받는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