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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칼럼] (148)인도의 관점에서 본 이주 문제와 그 수수께끼/ 미론 페레이라 신부

현대 세계는 두 개의 현상으로 특징지어진다. 하나는 커뮤니케이션과 재정 시스템을 단단히 뒷받침하는 디지털 세상이며 또 다른 하나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지정학적 경계를 넘는 이주다. 사람들의 이동은 세 가지 형태로 일어난다. 먼저 관광이 있다. 특정 나라의 부유한 이들은 다른 나라를 방문해 역사적 기념물에 경탄하고, 자연 풍경을 즐기며 다양한 문화가 담긴 기념품을 수집한다. 그리고 이주민과 난민이 있다. 이주민은 경제적인 이유로, 난민은 종교와 정치적 박해를 피해 다른 곳으로 떠난다. 경제적인 이유든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든 국경을 넘는 이주민과 난민은 대개 가난하고 삶이 팍팍하다. 게다가 이 둘을 구분하는 일은 종종 쉽지 않다. 많은 소수민들은 가난하고 박해받기 때문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세 계 교 회 2024.01.28

[사도직 현장에서] ‘바쁜 것’과 ‘힘든 것’

농구 경기에서 벤치에 앉아있는 대기 선수를 ‘식스 멤버’라고 한다. 다섯 명의 출전 선수를 제외한, 언젠가는 경기에서 뛸 여섯 번째 선수라는 의미다. ‘식스 멤버’가 없다면, 주전 선수들은 최선을 다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경기 도중 다치거나 체력이 소진돼도 대체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감독·코치도 다양한 작전을 구상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도미니코 수도회 역사와는 달리 우리 공동체는 한국에 진출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회원 수가 많지 않고, 다양한 사도직을 구상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성직자·수도자가 공동체 사도직에서 편한 일만 골라 한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 어울리지 않지만, 적어도 고정된 사도직에서 개인의 탈렌트와 성향을 맞춰야 하는 고충은 덜한 면이 있다. 그래서..

길 을 찾 아 서 2024.01.28

[담화] 2024년 제32회 해외 원조 주일 담화

2024년 제32회 해외 원조 주일 담화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 찬미 예수님, 하느님을 사랑하시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2024년 해외 원조 주일을 맞이합니다. 주교회의는 1992년 추계 정기 총회에서 1월 마지막 주일의 2차 헌금을 해외의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결정하였습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도움은 이제 세계로 뻗어 나아갑니다. 이는 지구가 하나의 촌이요, 세계의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앞에 모두 한 형제임을 드러냅니다. 지난해 11월 ‘대한민국-교황청 수교 60주년 기념’ 관계사 발굴 사업 학술 심포지엄이 있었습니다. 한국-교황청 관계사 발굴 사업을 중심으로 주제가 발표되고 질의와 토론이 이..

세 계 교 회 2024.01.28

[일요한담] 참 만남 / 최현정

상담사로서 새해를 열고 있습니다. 집단 상담을 중심으로 운영하고자 ‘여기, 지금, BEING’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개인 상담에 대한 문의도 종종 들어옵니다. 상담을 받아보겠다고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잘 알기에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먼저 듭니다. 동시에 내가 경험하지 못한 영역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내담자에게 좋은 상담사가 되어줄 수 있을지 걱정과 두려움도 느낍니다. 상담 신청서를 받으면서 인상적으로 느낀 것은 개인 상담을 신청할 때 비대면 상담 요청이 부쩍 많아졌다는 점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우리는 여러 가지 장면에서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처리하는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야 했고, 뭔가 답답하고 충분치 않더라도 그런 비대면 상황에 익숙해져야 했죠. 우리는 적응의 동물..

길 을 찾 아 서 2024.01.27

[알기 쉬운 미사 전례] (4)성당 문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하느님의 신비로 이끌어 주는 성당 문 파스카 신비 기념·재현하는 공간 예수님 향한 마음의 문 먼저 열고 차분하고 조심스럽게 들어가길 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대성당 정문. 성당 문은 ‘속’(俗)에서 ‘성’(聖)으로 들어가게 하는 공간으로, 부산하고 급하게 들어가기보다는 침착한 걸음으로 마음을 차분하게 하여 조심스럽게 들어가는 것이 좋다.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문’ 하면 떠오르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2016년 방영된 ‘도깨비’에는 많은 명대사가 있는데, 그중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져도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대사가 기억에 오랫동안 남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문’을 통해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신기한..

전 례 상 식 2024.01.27

[방주의 창]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 황성철

청소년시절 아버지의 부재로 늘 허기지고 고달팠다. 성취에 대한 열망과 욕구가 누구보다 강했고 공부를 곧잘 했던 나는 현실을 이기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했다. 그래도 어느 것 하나 순조롭게 이룬 것이 없었다. 재수로 대학을 들어갔고 취업도 대학 졸업 후 4년 뒤에야 할 수 있었다. 입사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100m 경주 출발선에서부터 50m 뒤처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늘 두려움이 있었다. 무엇이라고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불안이 숨어 있었다. 그 두려움을 사람들과 어울리고 술로 달랬지만 나 자신까지 속이고 감출 수는 없었다. 중년이 되어 소위 잘나가던 때도 악몽을 꾸었다. 꿈속의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밥벌이 현장에서 고생하고 있거나, 시험 날이 다가왔는데 시험장을 찾지..

길 을 찾 아 서 2024.01.26

[교회 상식 팩트 체크] (4) 3년 동안 매일 미사를 드리면 성경 대부분을 읽을 수 있을까?

‘대부분’은 아니지만 중요 내용 다 읽는 셈 주일·축일 ‘가·나·다’해 3년 주기 연중 평일 ‘짝수·홀수’해 2년 주기 다른 평일엔 매년 같은 독서 배정 ‘주제의 조화’ ‘준연속 독서’가 원칙 「미사 전례 독서와 묵상」 총 다섯 권. 미사 독서는 ‘주제의 조화’와 ‘준연속 독서’라는 두 가지 기준에 따라 신·구약 성경의 중요한 부분들을 배정한다.주교회의 미디어부 제공 ‘어? 어제 읽었던 부분 다음 내용이네?’ 며칠간 연달아 미사에 참례해 보셨다면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독서가 매일 이렇게 이어진다면 매일 미사를 드리면 성경을 거의 다 읽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조금 더 예리한 관찰력이 있으신 분이라면 「매일미사」나 교회 달력이 가·나·다해로 반복된다는 것을 발견하..

가 톨 릭 상 식 2024.01.26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4) 한발자국 내딛은 아브라함

카라바조 ‘이사악의 제사’. 아브라함을 묵상할 때 늘 떠나는 것에 초점을 두었는데 조금 다른 관점에서 묵상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김미소진(마리아) 작가의 「그래도 앞으로 가보지, 뭐!」를 읽으면서 마음에 두려움을 간직한 채 하느님을 믿고 삶을 한발자국씩 내딛는 작가와 아브라함이 많이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편안한 안주에 대한 미련, 미지에 대한 두려움, 갈까 말까하는 망설임, 그런데 그때 내딛는 그 한발자국이 인생의 지도를 바꿔버린다. 아브라함은 유다인들이 공경하는 성조(聖祖)이며 하느님에게 전적으로 순종하는 인물이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아브라함의 일생 최고의 시련, 아들 이사악 봉헌을 결정했을 때 그는 절대적인 복종자에서 한발 더 나아간 신앙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신앙은 때로는 이론이나..

성 경 속 인 물 2024.01.25

[신한열 수사의 다리 놓기] 명동의 ‘파란 천막’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입구 도로변에는 파란색 천막이 세워져 있다. 거기 걸린 현수막에는 ‘명동재개발2지구 강제집행 저지투쟁 농성장’, ‘가게는 삶이다. 폭력적인 강제집행 중단하라!’라는 글귀가 씌어 있다. 명동성당 계단을 내려오면 바로 맞은편에 보이는 좁은 골목과 작은 건물들. 땅값이 제일 비싸기로 손꼽히는 명동에 시골 읍내 분위기의 골목이 남아 있다는 것이 어쩌면 놀랍다. 한때 ‘먹자골목’으로도 불리던 이곳 을지로2가 163-3번지 일대는 1983년에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됐지만, 명동에서 유일하게 재개발 되지 않은 구역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도시 정비’라는 이름의 재개발 광풍이 밀려왔다.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20년 이상 장사를 하다가 대책 없이 쫓겨나게 된 상가 세입자들이 문제였다. 그들 일부가..

길 을 찾 아 서 2024.01.25

[이소영 평화칼럼] 깜짝 선물

한 해의 마지막 밤을 봉사활동 함께하던 분들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보낸 적 있다. 그 밤, 영성체 예식 중의 일이었다. 성체분배를 위해 뒤편으로 향하던 신부님께서 다시 앞으로 오시더니 평소와 달리 측면 첫 줄부터 성체를 나누어주셨다. 측랑의 앞줄에 앉아 있던 나도 서둘러 나갔다. 신부님이 손바닥에 얹어주신 조각은 뜻밖에 그것이었다. 성찬 전례 중 “내 몸이다” 할 때 들어 올려지는 크고 둥그런 성체를 사제의 손으로 쪼개어 나눈, 바로 그 조각이었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크림빵을 한 입 크게 베어 먹은 꼬마처럼 들떴다.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려 해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느라 혼났다. 큰 성체에서 나온 조각을 받아먹었다며 좋아하다니, 그건 첫영성체 앞둔 아이한테마저 놀림감이 될 법한 유치한 감정일 테니까. 기도..

길 을 찾 아 서 2024.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