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심 교리 1046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29) 한 사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상호작용’ 아기는 한동안 자기에게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뇌 신경세포 연결망, 시냅스(synapse)를 갖게 됩니다. 향후 효율적인 뇌 사용을 위해서는 유아기, 아동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꼭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명료화시키는 가지치기(synaptic pruning)가 중요합니다. 시냅스의 과잉 생성은 ‘인간이 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으로 태어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린 아이들은 1인분이 넘는 생각들을 합니다. 현실적인 생각 외에도 해괴망측한 생각, 공상, 상상 등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부모와 자주 어울려 놀고 개방적인 의사소통을 하게 되면 일종의 가지치기 작용이 일어납니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생각을 정돈합니다. 또 ..

인간중심 교리 2023.08.01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28) 가볍고 뻔뻔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게 ‘자비’를 10여 년 전부터 제가 상담이나 강의할 때마다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볍고, 뻔뻔하게’. 이미 여러분들 사이에 퍼져서 어떤 분은 저를 만날 때, ‘가볍고, 뻔뻔하게’를 줄여서 “가·뻔!”이라고 인사하는 분도 계십니다. 사실 ‘가볍고, 뻔뻔하게’라는 말은 지역주민 대상 상담을 진행하는 가운데, 마음속에 떠오른 단어입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의 공통점을 찾았습니다. 그 공통점이 바로 가볍고, 뻔뻔하다는 것입니다. 가볍다는 말은 무겁지 않다는 말입니다. 반드시 꼭 이렇게 돼야만 한다는 도식에 갇혀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습니다. 또 예상한 결론이 나오지 않더라도 제2, 제3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도..

인간중심 교리 2023.07.27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27) 소통일로(疏通一路)

서로에 대해 알려면 소통해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에 대해 우리는 생각보다 아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평생을 키워주신 부모님에 대해서도 아는 게 별로 없고, 성인이 되어 분가하기 전까지 함께 살았던 형제자매에 대해서도 그다지 아는 바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상례(喪禮)에서는 임종(臨終)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임종자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살면서 절이고 삭혀두었던 정서를 가족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남은 가족들 역시 돌아가시려는 분에게 마음 속 깊이 농축되어 있던 고밀도의 표현을 쏟아냅니다. 역설적이게도 마지막 순간에 임종자와 남은 자가 가장 맹렬하게 삶을 공유합니다. 사실 평소에도 우리는 소통을 갈망합니다. 그러나 매번 소통에 좌절하고 소통이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

인간중심 교리 2023.07.19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26) 기억의 인화(印畵)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을 수용하는 법 길을 걷다 오래된 사진관 앞에 멈춰 섰습니다. 유리창 너머에 전시된 사진들은 햇빛에 바래 원래의 색을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문득 우리의 기억도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와 본연의 색을 상실한 채 의식 어딘가에 덩그러니 걸려 있는 것은 아닐까?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을 경험했을 때 우리는 보통 그 일 자체를 억압하고 기억하기를 거부합니다. 기억을 거부한 대가는 기회의 소실입니다. 고통을 경감하고 슬픔을 해소할 기회 말이죠.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편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공포와 슬픔, 원망과 분노를 표출하고 누군가 혹은 자신에게 심연의 어두움을 토해냅니다. 사람들은 마치 무언가를 잊기 위해 사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잊어야만 살 수 있을 것처럼, 전력을 ..

인간중심 교리 2023.07.13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25) 인생에 획을 그어주다

잠시 함께 머물러주는 것으로 충분 현재 대한민국의 역술시장, 사주와 점을 보는 사업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누군가 들어줬으면 좋겠고, 지금 힘든 게 해결되지 않더라도 힘든 이유(의미)라도 알면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아 찾는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답답한 처지에 있는지 보여주는 듯합니다. 최근에 면담한 어느 30대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갑자기 힘들어서 한순간도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몸도 여기저기 아픈 게 느껴지고 당장이라도 모든 걸 놓고 싶었지만 부모님 생각, 주변 사람들 생각하며 그날도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출근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왜 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

인간중심 교리 2023.07.07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24) 살아간다는 것 자체로는 살 수 없었던 사람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 삶의 무게 중국 작가 위화(余华)가 쓴 소설 「인생」(活着:살아간다는 것) 서문에는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외에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간혹 상담할 때, 작가의 표현을 떠올리면서 죽음을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그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처음 K를 만났을 때, 먼저 그녀의 눈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환하게 웃는 미소도 매력적이었지만 상황을 재밌고 유쾌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K는 매일같이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고 주변을 축제 분위기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시끌벅적함에서 나와 홀로 집에 돌아갈 때, K는 주체할 수 없는 공허감과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K는 자신이..

인간중심 교리 2023.06.28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23) 부디

자살, 유가족의 책임이 아닙니다 자살유가족 모임은 마치 세상의 모든 슬픔과 고통을 집약한 곳이 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형언하기 어려운 유가족의 아픔을 바라보면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헤아려보았습니다. 자살사망자 역시 보통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죽기 전까지는 어떤 형태로든 살길을 찾습니다. 문제는 살길을 찾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커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려 하고, 누군가 도움을 주려 해도 근원적 해결에는 한계가 있다고 미리 판단하고 거부합니다. 가까운 사람의 힘든 면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털어놓지 못합니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을 도우려는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인간은 혼자 책임질 수 없는 문제..

인간중심 교리 2023.06.20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22) 이야기의 힘

말하는 이 스스로 성찰하게 도와 덴마크의 소설가인 이자크 디네센(Isak Dinesen)은 “모든 종류의 슬픔은 이야기할 때에야 자각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 자신은 어떤 체험을 하고 그 체험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네센의 말처럼 우리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말하는 사람이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이야기에서 교훈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 이야기할 때는 대부분 상처가 된 부정적 사건과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은 세상에 대한 원망스러운 감정을 쏟아내지만 나중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고 종전과는 다른 시각에서 과거를 해석하고 미래를 전망합니다. 이처럼 이야기는 말하는 사람에게 ..

인간중심 교리 2023.06.14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21) 베르테르를 부르는 언론

희극인 박지선씨가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우연히 연예인 한 분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참 대화 끝에 저는 연예인만의 특별한 자살 이유가 있는지, 일반인과 다른 연예인만의 특별한 어려움이 있는지, 평소 궁금했던 내용을 그분께 질문드렸습니다. 그분은 제 질문에 조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시면서 “연예인도 보통 사람과 똑같아요. 특별히 연예인이어서 자살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이유로 힘든 거예요. 연예인이라는 사실이 자살의 이유가 될까요?”라고 반문하셨습니다. 순간 제 생각이 아주 짧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뒤부터는 연예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주위의 지지와 일상적인 삶이 잘 유지되어야 건강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려면 우선 연예인 활동과 평범한 ..

인간중심 교리 2023.06.12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20) 교회의 역할, 두려움보단 자비

심판·구원은 오직 하느님의 몫 고통 겪는 이 위해 기도하고 공동체 안으로 품고 돌봐야 “자살한 사람은 천국에 못 가지 않나요?” “장례미사는 가능한가요?” ‘가자(가톨릭 자살예방교육) 생명으로!’를 하다보면 가끔씩 나오는 질문들입니다. 아무래도 구원에 대한 질문은 신자들에겐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몇몇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는데, 이 문제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 짐작을 해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자살이라는 주제를 가톨릭 안에서 다루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하십니다. 교리에서 이미 정해진 내용인데 새롭게 다룰게 무엇이냐는 겁니다. 자살한 사람들은 죄인이고 그들에게 구원이 없다는 생각은 우리 안에 뿌리 깊은 두려움입니다. “사실 나는 의인이 ..

인간중심 교리 2023.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