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심 교리 1046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9) 누구도 원하지 않는 존재, 누구도 애석해하지 않는 죽음

빈곤·질병·고독에 시달리는 노인들 몇 년 전 위기상담 전화를 받던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한 70대 어르신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제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시고, 제가 살아야 하는지 죽어야 하는지 말씀해주세요.” 그 순간 뭔가 심각하다는 느낌이 들어 최대한 침착하게 “어르신, 무슨 일이 있으신지, 찬찬히 한번 말씀해주세요. 무슨 이야기든 제가 잘 들어볼게요”하고 응대했습니다. 어르신은 잠시 머뭇거리시다가 차근차근 자신의 상황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어르신은 혼자 사시면서 기초생활수급비로 매월 40만 원가량을 받으셨는데, 집세 20만 원과 각종 공과금을 내고 나머지 돈으로 생필품, 라면 등을 사서 생활하시는데, 하루 한 끼 이상 먹기가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중심 교리 2023.03.09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8) 일자리, 설자리, 살자리

몇 해 전 중년 남성 자살시도자를 주제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를 한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70~80대 노인 자살률이 높긴 하지만 매년 자살사망자 수로 봤을 때 40~50대가 가장 많았고, 남성이 여성보다 2~3배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데도 실제 지역사회 자살 고위험군 관리에서 중년 남성들이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들 중년 남성들은 최근 자주 이슈화되고 있는 취약한 1인 가구 문제, 고독사 문제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인구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를 통해 확인한 중년 남성 자살시도자들의 경험은 이러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했습니다. 부모의 이른 사망이나 가출로 인한 부모의 부재, 가정폭력을 동반한 부모의 불화와 이혼 ..

인간중심 교리 2023.02.26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7) 빈곤과 배제 사이에 선 청년들

아무리 애써도 희망 볼 수 없다면…? 2022년 서울연구원이 7개 빈곤영역(경제/건강/사회자본/노동/교육/복지/주거)으로 분석한 ‘서울시 청년의 다차원 빈곤실태’에 의하면, 서울 청년 10명 중 9명은 어떤 형태로든 1개 영역에서 빈곤을 경험하고 있고, 3개 이상 영역에서 빈곤을 경험하는 중복빈곤율도 42.4%나 된다고 하였습니다. 주로 경제, 건강, 사회적 자본, 노동 영역의 빈곤이 많이 거론되었는데, 단순히 소득만으로 빈곤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호소하는 상대적 박탈, 미래에 대한 절망, 고립 등을 포괄한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청년들이 성인 초기부터 사회의 한 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시의적절하게 교육, 일자리, 독립(주거), 사회적 관계 등에서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의..

인간중심 교리 2023.02.18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6) 행복의 전제, 자기 중심의 꿈에서 깨어나는 것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Rene Girard)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요소를 폭력으로 규정하고 상징화된 대리 희생물을 찾는 종교 역시 여기서 발생한 것이라고 해석한 바 있습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욕망을 품는데, 이 욕망의 원인은 본질적으로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가령 내가 무엇을 원하게 되는 것은, 나에 앞서 타인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에 나 역시 그것을 더 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결국 타인과 나 사이에 있는 욕망의 유사성으로 인해 갈등과 다툼, 즉 폭력이 일어나게 됩니다. 폭력이 발생하는 가정 안에서도 욕망의 유사성으로 인한 갈등이 존재합니다. 갈등하는 부부들을 보면 남편과 아내 모두 행복한 가정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인간중심 교리 2023.02.12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5) 그리스도교의 자살 금지 역사

‘유사순교’ 막으려 자살 단죄했던 것 고대 그리스·로마의 스토아 사상은 순환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사람의 생명에 그리 집착하지 않았다. 이런 영향을 받은 학자들은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삶을 포기하는 것을 일종의 자유 행위로 간주했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박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가족과 형제와 자매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할 수 있어야 한다”(루카 14,26)와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였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신앙을 죽음으로 지키려는 열망과 현세의 억압과 박해에서 자유로워지려 했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하게 된다. 그리고 313년 밀라노 관용령을 통해 상황은 급변하게 된다. 소수..

인간중심 교리 2023.02.05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4)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자기표현

죽음 통해서라도 인정받고 싶은 고통 자살시도자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자살 행동을 분석해 보면, 크게 은폐된 차원과 표면적 차원으로 구분된 형태가 나옵니다. 자살 행동 과정에서 양자는 동시에 서로를 자극하며 활성화되는 특징을 보입니다. 먼저 은폐된 차원은 자살 행동을 실행하게 만드는 가장 핵심적이고 심층적인 차원들로, 표면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표면적 차원은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들로 주로 사회 환경(사회적 조건), 개인 심리, 대처 행동 등의 맥락에서 나타납니다. 은폐된 차원에는 ‘무의식’과 ‘시간성’, 그리고 ‘공격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무의식’은 어린 시절부터 가정불화, 폭력, 학대, 버려짐 등을 통해 존재가 생명력을 상실하면서 무의식 안에 자리 잡은 손상된 존재가 언제든 소멸을..

인간중심 교리 2023.01.26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3) 한국은 지금 자살유가족 사회

준비 못한 이별에 울부짖는 사람들 현장에서 상담하면서 저는 줄곧 자살유가족을 만났습니다. 자살유가족이 언급했던 가족의 죽음은 이별에 대한 예고가 없었습니다. 그저 이별을 건너뛴 상실과 감당할 수 없는 충격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밤중에 바람 쐬러 나간다던 아내의 익사, 중요한 일들을 어느 정도 해결하고 편안해 보였던 남편의 예상치 못한 질식사, 취업이 늦어지긴 했지만 매일 같이 도서관에 다니던 아들의 음독사, 사업이 어려워도 걱정하지 말라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의사(목맴), 병원 치료를 받으며 우울증에서 호전되던 딸의 추락사, 누구보다 뛰어났고 장래가 촉망됐던 남동생의 의사(목맴), 비즈니스 관계로 외국 출장을 가겠다던 남자친구의 질식사 등 조금 전까지 생생하게 함께 했던 사람의 죽음은 수용할 수..

인간중심 교리 2023.01.24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2) 한국 사회의 기질과 자살

“벼랑 끝에 몰린 이들 품는 사회 돼야” 안정적 일터·사회적 돌봄 등 ‘살 수 있는 조건’ 갖춰져야 자살 예방, 사회 변화가 중요 2022년 9월 27일 통계청에서 배포한 2021년 사망원인 통계 결과에 의하면 한국 사회는 10대부터 30대까지는 자살로 인한 사망 비율이 가장 높고 40대와 50대는 암으로 인한 사망에 이어 자살로 인한 사망이 높았습니다. 60대의 경우는 암, 심장질환, 뇌혈관 질환에 이어 자살이 네 번째 사망원인이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본래 알고 있던 자연적인 죽음은 점차 사라지고 인위적인 죽음이 만연해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5년 전 「자살론」(1897년)을 쓴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은 서로 흩어진 채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각자 자살을 결심하고 해마다..

인간중심 교리 2023.01.17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1) 왜 교회가 자살예방에 나서는가?

교회는 고립된 이 위한 ‘구원의 방주’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루카 15,6) 요즘 뉴스를 보기가 두려울 만큼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실직을 앞둔 가장, 경제적 어려움과 외로움에 지친 독거노인, 악성 댓글과 증오 표현 등 SNS 사이버 공간에서의 폭력 피해자,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던 청소년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수능 성적을 비관한 수험생,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점점 희망을 잃어가는 청년들이 스스로 삶을 놓아버리고 있습니다. 또한, 빙산의 일각처럼 자살통계에 잡히지 않거나 미수에 그쳐 주변에서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자살자의 문제를 개인 혹은 그 가정의 문제로 여기..

인간중심 교리 2023.01.07

[내리신앙 깊어가는 믿음] (30·끝) 누군가 나의 신앙을 흔든다면 이렇게 이야기합시다

하느님 뜻에 우리 뜻 일치시킬 때 인간은 기쁨과 평화·안정감 느껴 자녀가 삶에서 하느님 뜻 추구하고 사회적으로 복음 실천하도록 도와야 신앙 안에서 균형있게 자라난 아이 행복 향해 긴 호흡으로 나아갈 수 있어 “저와 남편은 주일학교 교사회에서 만나 결혼하여 아이들의 신앙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런 제가 동네 엄마들 사이에서 소위 왕따가 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복사를 서는 날에 학원 보충을 빠지게 하고, 영어캠프보다 성당캠프 일정을 먼저 챙기는 저는 이상한 엄마가 되어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제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흔들립니다. 신부님, 지혜가 필요해요.” 신자로서 잘 살아가려고 애쓰는 부부와 그런 노력 안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흐뭇하고 ..

인간중심 교리 2022.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