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2월 14일 다해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dariaofs 2013. 2. 14. 06:57

 

                                                                                    (루카 9,22-25)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당시에 십자가는 사형 도구였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은

사형수가 사형을 당하기 위해서 지고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십자가를 지고 간다.' 라는 말은

'죽으러 간다.' 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라는 예수님 말씀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를 따라야 한다.' 라는 뜻입니다.

(죽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십자가'가 죄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예수님 말씀을

'죄인이 되어야 한다.' 라고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십자가는 죄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는 예수님의 사랑을 상징합니다.

 

실제로 당시 유대인들 입장에서도 십자가는 죄의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형은 주로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을 처형하는 방법이었는데,

로마인들 입장에서는

반란을 일으켰다가 붙잡혀서 십자가형을 당하는 사람은 대역 죄인이지만,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죄인이 아니라 독립투사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안중근 의사를 살인범으로만 생각했지만

우리에게는 안중근 의사는 독립투사이고, 성인인 것처럼...

 

예수님의 죄목은 로마인들 기준으로는 반역죄였습니다.

바라빠도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붙잡힌 사람입니다(루카 23,19).

아마도 바라빠는 반란군(독립군) 두목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바라빠의 석방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형을 당한 다른 두 죄수도

반란을 일으켰다가 붙잡힌 사람들일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어떻든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라는 예수님 말씀은 죄인이 되라는 뜻은 아니고,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라는 뜻입니다.

('자신을 버린다.' 라는 말과 '십자가를 진다.' 라는 말은

모두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인데,

예수님과 함께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십자가로 끝난 것이 아니고,

십자가 다음에 부활과 승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뒤를 따라오려면'이라는 말씀은

'내가 주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세속의 목숨은 버려야 하고,

세속의 목숨을 버리는 방법은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4)."

 

이 말씀은, "세속의 목숨에 집착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고,

나를 따르기 위해서 세속의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내가 주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루카 9,25)"

라는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면

살아서 온 세상을 얻는다고 해도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목숨'이라는 말은 목숨 자체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넓은 뜻으로 생각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을 방해하는

모든 세속적인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속의 목숨에 집착한다는 말은

세속적인 것과 허무한 것들에 대한 집착을 가리키는 말이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세속의 목숨을 버리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 덜 중요한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진주 상인의 비유'와 뜻이 같습니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루카 13,45-46)."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는 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 덜 중요한 것을 모두 버리는 것이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예수님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고,

갖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고,

고통과 고난을 참고 견뎌야 하고...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실 예수님을 따르는 일 자체가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길 끝에는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이 있습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