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9,28ㄴ-36)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다.>
제자들에게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신(루카 9,22)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라는 말씀을 하셨고, 그 뒤에 제자들을 데리고 산으로 가셔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십니다(루카 9,28-36).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일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부활과 하늘나라를 미리 체험하게 만들어 준
일종의 시청각 교육이었습니다.
수난 예고 말씀을 듣고 기가 꺾여 있는 제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미리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체험을 한 제자들은 예수님이 체포될 때
왜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나버렸는가?(마르 14,50)
제자들이 달아났다고 표현되어 있는 일에 대해 제자들을 위해서 변명을 한다면,
"너희가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들은 가게 내버려 두어라(요한 18,8)."
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겉으로는 제자들이 달아난 것으로 보여도
사실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보내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그 상황에서 제자들이 달아난 것은 예수님을 '배반'한 것은 아니고,
또 그들이 달아난 뒤에 뿔뿔이 흩어진 것도 아닙니다.
제자들은 일단 달아났다가 다시 모였고, 함께 있었습니다(루카 24장).
일시적으로 달아나고 흩어진 모습만 보고,
그 뒤에 바로 모여서 함께 있었던 모습을 안 본다면,
그것은 몹시 불공평한 일이 될 것입니다.
제자들이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예수님을 체험했으면서도 달아난 것이 아니라,
그런 체험을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무서워서 달아났지만 금방 다시 모였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제자들은 수난 예고 말씀을 들었고, 영광스럽게 변모하시는 모습도 보았지만,
실제로 수난이 닥쳤을 때의 상황은 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날씨가 추워질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듣는 것과
실제로 추위를 겪게 되는 것의 차이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또는 실제온도와 체감온도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일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일과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본 일들은 모두
그 뒤에 사도들이 박해를 받고 순교할 때까지
흔들림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 준 힘과 용기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종착역이 어디인지 확실히 알고서 경유지를 거쳐 가는 일과 같고,
또 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수학문제를 푸는 것과 같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르면 헤맬 수밖에 없는데,
제자들은 헤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목적지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활 없는 십자가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교는 부활을 믿는 종교입니다.
십자가만 강조하다가 그 뒤에 있는 부활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교는 고통을 숭배하는 이상한(변태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신앙인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죽으셨지만 영광스럽게 부활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패배자의 뒤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승리자의 뒤를 따릅니다.
신앙인의 영원한 고향인 하느님 나라에 영원한 행복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지상 생애의 힘든 나그네 길을 감수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 "부활하기 위해서 꼭 죽어야 하는가?"
(또는 "영광스럽게 되기 위해서 꼭, 항상, 언제나 고통과 죽음을 겪어야 하는가?")
물론 당연한 말이지만, 죽으셨으니까 부활하신 것인데,
예수님처럼 부활하려면 예수님처럼 죽어야만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재림 때 자기가 살아 있기를 희망했고, 믿었습니다.
"우리 모두 죽지 않고 다 변화할 것입니다. ...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1코린 15,52)."
"주님의 재림 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1테살 4,15)"
종말이 닥칠 때, 그때까지 안 죽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살아 있는 채로
주님의 재림과 심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늘나라로 들어가서 영생을 얻으려면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는 말은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최종 목적지인 영광스러운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려면
가는 도중에 고난의 가시밭길 같은 십자가의 길을 만나더라도
참고 견디면서 끝까지 가야 한다."
('만난다.'가 아니라 '만나더라도'입니다.
중간에 가시밭길을 안 만날 수도 있고, 그러면 다행이고,
혹시 만난다면 믿음과 희망을 잃지 말고 잘 참고 견뎌내야 하고...)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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