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3월 3일 다해 사순 제3주일

dariaofs 2013. 3. 3. 08:07

 

                                                                                    (루카 13,1-9)

 

 

 

<무서워하지만 말고 기쁨으로>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기에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이는 사건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일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루카 13,2-3)."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실로암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반복되는데,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라는 말씀은

불의의 사고나 사건으로 죽은 사람들이

남들보다 더 큰 죄를 지어서(또는 회개를 하지 않아서)

천벌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죽은 사람들이 전혀 죄가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런 일은 인간 세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고나 사건일 뿐이고,

죄인들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심판과 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진짜 죄인은 죽은 사람들이 아니라 살인자 빌라도입니다.

통치자가 법질서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죽이는 것도 살인입니다.

그런데도 그 살인자는 법이라는 간판 뒤에 숨어버리고,

죽은 사람들만 무슨 죄가 있어서 죽은 것이라는 오해를 받을 때가 많습니다.

또 대지진이나 해일 같은 재난을 종말의 징조로 생각하거나

죄인들에 대한 심판과 천벌로 생각하는 일도 많은데,

그런 일은 인간 세계에 늘 있는 일이고,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사고일 뿐입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너희가 회개하지 않으면

최후의 심판 때에 그런 모습으로 멸망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처럼'이라는 말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아서 죽은 것으로 오해하거나,

'아니다.' 라는 말과 '그처럼'이라는 말이 모순된다고 생각하기가 쉬운데,

'그처럼'이라는 말은 '그런 식으로', 또는 '그런 모습으로' 정도의 뜻입니다.

 

바로 뒤에 나오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회개를 미루지 말고 지금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가르침입니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루카 13,8-9)."

 

'올해'는 예수님의 복음이 선포되고 전해지는 기간이고,

사람들이 그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고 회개하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사람들이 회개할 수 있는 여유 시간이고, '바로 지금'입니다.

'내년'은 최후의 심판 때입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회개'를 뜻합니다.

단순히 죄를 뉘우치는 것만 회개가 아니라,

신앙의 열매를 맺는 일은 모두,

'믿음, 희망, 사랑'이 전부 다 회개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나무를 가꾸고 보살피고 거름을 주어서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는 일은

포도 재배인(예수님)이 하는 일이지만,

열매를 맺는 일 자체는 나무 자신이 해야 한다고 표현되어 있는 점입니다.

회개는 지금 해야 하고, 자기 자신이 스스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3월 3일의 복음 말씀은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이지만,

예수님 말씀은 사람들을 위협하고 겁을 주기 위한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는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소극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서

'회개하면' 구원과 생명을 얻는다는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멸망당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받기 위해서입니다.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국에 가기 위해서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혼나는 것이 무서워서 착한 일을 하는 것과

부모에게 상을 받으려고 그 일을 하는 것과

부모를 사랑하기 때문에,

또 부모에게 기쁨을 드리고 자기도 기뻐하는 일이기 때문에

칭찬과 상이 없어도 그 일을 하는 것은 모두 다릅니다.

 

지옥에 안 가려고(멸망당하지 않으려고) 신앙생활을 하고,

죄 안 짓고, 억지로라도 선행과 사랑을 실천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지옥에 가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는 나중에 심판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신앙생활에 기쁨도 없고, 보람도 없고, 의미도 없고, 삭막하기만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하느님 나라의 기쁨과는 너무 거리가 먼 생활입니다.

 

또 단순히 상을(복을) 받을 욕심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직 미숙한, 초보적인 단계의 신앙생활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서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는 일이 나의 기쁨도 되기 때문에

기쁨 속에서 하는 그런 회개와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뜻과 계획에 응답하고 순종하신 것은

벌을 안 받으려고 그랬던 것도 아니고,

복을 받을 욕심으로 그랬던 것도 아니고,

하느님의 기쁨이 곧 마리아 자신의 기쁨도 되기 때문이었습니다(루카 1,47).

우리도 그 모범을 본받아서 그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