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1,14-23)
<중립이란 없다는 것>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시자 사람들이 놀라기는 하는데,
하느님의 권능으로 마귀를 쫓아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루카 11,14-16).
마귀를 쫓아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하느님의 권능으로 쫓아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으니,
정말로 하느님의 권능으로 마귀를 쫓아낸 것이라면
그것을 표징으로 증명해 보라는 요구입니다.
사람들의 요구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을 쫓아낸 일 자체가
당신의 권능을 증명하는 표징이라고 답변하십니다.
마귀를 쫓아낼 수 있는 힘은 하느님의 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19-20)."
이 말씀은, "나는 하느님의 권능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있기 때문에
이 일 자체가 바로 하느님 나라의 표징이 된다."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손가락'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힘(권능)'을 뜻합니다.
20절의 우리말 번역이 좀 이상하고 어색합니다.
뜻을 생각하면, '그러나 내가'는 '그런데 나는'으로 바꿔야 하고,
'쫓아내는 것이면'은 '쫓아내는 것이니'로 바꿔야 합니다.
번역을 할 때 너무 직역만 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나는'이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하느님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낸다는 것을
예수님도 인정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유대인들이 마귀를 쫓아내는 일과
당신이 마귀를 쫓아내는 일은 많이 다르다는 것도 나타냅니다.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힘을 빌려서', 즉 하느님께 기도를 하고,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서 마귀를 쫓아내기 때문에,
그것은 유대인들 자신들이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쫓아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손가락(힘)'이라는 말은
'나의 손가락(힘)'이라는 말이 되고,
'내 힘은 곧 하느님의 힘이다.' 라는 것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이 일에 관해서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선언을 하십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루카 11,23)."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마귀 편에 서는 자고,
내 일을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마귀처럼 내 일을 방해하는 자다." 라는 뜻입니다.
적극적으로 마귀 편에 서지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권능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신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마귀 우두머리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등의 말을 하는 것은
사실상 마귀 편에 서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마귀 편에 서려고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닌데도
그렇게 되어버립니다.
예수님과 마귀의 싸움에는 중립이란 없고, 구경만 하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마귀 입장에서 생각하면,
마귀는 적극적으로 예수님 편에 서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자기편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넓은 뜻으로 생각하면,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것인지 말 것인지에 관한
선택과 결단을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그날이 되면, 하느님 나라 안에 있는 사람들과
못 들어가고 밖에 있는 사람들로 갈라질 것입니다(묵시 22,14-15).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중간지대란 없습니다.
들어가든지 못 들어가든지(안 들어가든지) 두 가지 경우 밖에 없습니다.
'편'이라는 말을 사용하긴 했지만,
이 말씀은 신자와 비신자, 그리스도교와 비그리스도교로
편 가르기를 하시는 말씀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루카 9,50)."
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편을 가르시는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이 스스로 갈라서게 됩니다.
이것은 종말의 심판 때뿐만 아니라 신앙생활 전반에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믿지 않는 것은 모두 안 믿는 것입니다.
'믿음'과 '믿지 않음' 사이의 중간은 없습니다.
선행을 실천하지 않는 것은 모두 악행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지 않는 것은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루카 6,9).
죽어가는 자기 자신의 영혼을 살리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 죽으려고 작정한 것과 같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영원한 멸망을 선택하는 것과 같습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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