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3월 10일 다해 사순 제4주일

dariaofs 2013. 3. 10. 08:45

 

                                                                              (루카 15,1-3.11ㄴ-32)

 

 

 

<아버지와 함께 기뻐하지 않는 아들의 비유>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작은아들은

'죄인이었지만 회개한 사람'을 상징하고,

큰아들은 '다른 사람의 회개를 인정하지 않고,

죄인에 대한 하느님의 용서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아버지와 동생에 대한 큰아들의 태도는

회개한 죄인들과 어울리는 예수님을 비판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태도를 비유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되찾은 아들의 비유' 라는 제목보다는

'아버지와 함께 기뻐하지 않는 아들의 비유' 라는 제목이 더 적당할 것입니다.

 

일단 이야기의 내용을 겉으로만 보면,

큰아들은 잘못한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아버지로부터 억울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잔치가 시작될 때 왜 아무도 큰아들에게 가서 말을 하지 않았을까?

보통의 상황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것이 비유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큰아들이 집에서 일어나는 일에 (또는 아버지의 일에)

관심이 없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큰아들은 '들'이 아니라 '집'에서 아버지 곁에 있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들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 왜 잘못이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내용을 보면, 그 집은 '종들'을 거느리고 있는 집이고,

들에서 일할 사람은 큰아들이 아니라 종들입니다.

큰아들은 자기 입으로 자기가 종처럼 일했다고 말하는데(29절),

아버지가 그를 종처럼 부린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아들의 지위를 버린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인에게서 잔치를 벌이게 된 이유를 들은 큰아들이

화를 내는 모습이 정당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그 소식을 들은 큰아들은 당연히 기뻐하면서

집으로 달려갔어야 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아버지가 잔치를 벌이기 위해서

큰아들의 동의를 얻거나 허락을 받을 의무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큰아들에게 잔치에 참석하라고 '명령'하거나

'부탁'할 이유도 없습니다.

큰아들이 스스로 기뻐하면서 달려가야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임금과 신하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큰아들을 아버지로서 타이릅니다(28절, 32절).

 

큰아들 쪽에서 생각하면, 잔치에 참석하는 것은 아들의 권리이면서

동시에 아버지와 동생을 사랑하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그가 화를 내면서 집에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는 태도는

자기의 권리를 스스로 버리는 일이 되기도 하고,

아버지와 동생을 사랑하기를 거부하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큰아들은 자기가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또 아버지가 자기에게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준 적 없으면서

방탕한 동생이 돌아오니까

그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아 준다고 비난합니다(29절).

그러나 아버지는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라고 큰아들을 타이릅니다(31절).

 

큰아들은 자기가 종처럼 아버지의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이 주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고,

아버지가 염소 한 마리 준 적이 없다고 비난하지만,

아버지의 것이 사실은 자기의 것인 줄을 몰라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원문을 보면, 큰아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동생을 동생이라고 부르지 않고 있습니다.

큰아들이 '아버지' 라고 부른 것으로 번역한 것은 오역이고

원문에는 모두 '당신'으로 되어 있습니다.

큰아들이 동생을 '저 아들'이라고 부른 것으로 번역한 것은

원문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큰아들은 지금 부자관계도 부정하고 있고, 형제관계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큰아들에게 아버지는, '너의 아우'가 죽었다가 살아났기 때문에

함께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고 타이릅니다.

 

사실 그 잔치는 아버지와 작은아들만을 위한 잔치가 아니라

큰아들을 위한 잔치이기도 합니다.

잃었던 동생을 되찾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내용들을 모두 종합해서 생각하면,

작은아들은 겉으로 표시 나는 큰 죄를 지은 죄인이고,

큰아들은 겉으로는 잘 표시나지는 않지만 잘못한 일이 많은 죄인입니다.

작은아들은 스스로 사랑을 버렸다가 되찾은 아들이고,

큰아들은 자기가 항상 사랑을 받고 있는 줄도 모르면서

받고 있는 사랑도 스스로 버리려고 하는 아들입니다.

 

큰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집으로 들어갔는지,

끝끝내 밖에 있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것은 이 이야기를 읽는 모든 독자들의 숙제입니다.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이제는 큰아들이 잃어버린 아들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오늘날에는 누가 그런 모습의 큰아들일까?

자기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자신하고,

그렇게 큰 죄는 안 지었다고 생각하면서,

특별히 따로 회개를 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있다면...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회개와 용서받음을 함께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큰아들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