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8,1-11)
<용서, 회개, 보속>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모세 율법대로 여자에게 돌을 던져야 하는지를
예수님께 묻고 있습니다(요한 8,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하시자,
그들은 여자를 놓아두고 떠나버립니다(요한 8,7-9).
예수님께서는 혼자 남은 그 여자에게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요한 8,11).
이 이야기에 예수님께서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는
구절이 두 번이나 나오는데,
이것은 옛날부터 사람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했던 특이한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침묵'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해석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땅에 무엇을 쓰셨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침묵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쓰신 글자가 중요했다면 복음서 저자가 그것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이 침묵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의 죄를 깨닫게 하는,
즉 스스로 양심성찰을 하게 만드는 침묵입니다.
(예수님께서 침묵을 지키셨을 때 사람들도 침묵 속에 빠져 있었는가?
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침묵 덕분에 자기의 죄를 깨달았을 것이고,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여자를 심판하거나 처벌할 용기를 잃고 그냥 떠나버립니다.
사람들이 떠나버린 것은 그들에게 양심이 남아 있었음을 나타내고,
또 자기도 죄인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고백한 것이 됩니다.
그들이 돌아가서 회개를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회개는 그들 각자의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죄가 없는 사람은 돌을 던져도 된다." 라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똑같은 죄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심판하지 마라."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죄 없는 자'는 없습니다. (성모님만 제외하고.)
그래서 이 말씀은,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마태 7,1)."와 같은 말씀입니다.
혼자 남은 여자에게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라고 하신 말씀은,
"나도 죄가 있기 때문에 너에게 돌을 던지지 않겠다."
라는 뜻이 절대로 아니고, "내 권한으로 너를 용서하겠다." 라는 뜻입니다.
'용서'는 하느님의 권한이고 예수님의 권한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용서하신 것은 그 여자가 회개했기 때문일까?
아닙니다.
회개했기 때문에 용서하신 것이 아니라 회개하라고 용서하신 것입니다.
바로 그 점이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회개해야 하는 것은
용서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우리가 받은 용서를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너를 단죄하지 않겠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무죄선고'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무죄선고가 아니라 처벌을 면제해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가거라." 라는 말씀은 일종의 가석방입니다.
또 처벌을 면제하셨다고 해서 회개와 보속도 함께 면제하신 것은 아닙니다.
가석방으로 풀려난 사람이 회개하지 않고 또 죄를 지어서 붙잡히면,
잔여 형기에 새로운 죄에 대한 형기가 합해지는 것이 법입니다.
고해성사의 다섯 가지 요건을 생각하면,
그 여자는 범죄 현장에서 붙잡혔고 자기의 죄를 부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고백이 이루어진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성찰도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개, 통회(회개), 보속은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 여자에게 정개, 통회, 보속을 숙제로 주시는 말씀입니다.
만일에 그 여자가 돌아가서 다시 또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주신 용서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이 됩니다.
(용서가 취소된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용서를 스스로 못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대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고(정개),
진심으로 뉘우치고(통회), 죄를 씻어내기 위한 어떤 보속을 스스로 행한다면,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신 용서가 완성되고,
그 용서는 온전히 그 여자의 것이 됩니다.
또 하느님은 죄를 짓기만 하면 바로 천벌을 내리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죄에 대한 벌은 마지막 종말과 심판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의 고난과 고통을 천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다른 사람의 죄를 보면서 그 사람에게 천벌이 내리기를 기도해도 안 됩니다.
그 사람의 회개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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