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3월 23일 다해 성 투리비오 데모 그로베호 주교

dariaofs 2013. 3. 23. 08:17

 

                                                                     (성 투리비오 데모 그로베호 주교)

                                                                                (요한 11,45-56)

 

 

<희생>

 

예수님께서 마르타와 마리아의 오빠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일을 본 사람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요한 11,45).

 

그런데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라는 말은

기적을 보았으면서도 예수님을 안 믿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안 믿은 사람들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그 일을 알리고,

바리사이들과 사제들은 최고의회를 소집하고,

최고의회 의원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의논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반란과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고,

폭동이 일어나면 로마 군대가 와서

성전과 민족을 짓밟을 것이라고 걱정합니다(요한 11,47-48).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이

진짜 표징(기적)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고,

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때 대사제 카야파가 예수님을 죽이자는 말을 합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요한 11,49-50)."

 

대사제의 말 가운데 '여러분에게 더 낫다.' 라는 말은

'여러분에게 더 이익이다.' 라는 뜻이고,

'여러분'이라는 말은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기득권층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대사제의 말은 겉으로는 민족을 위하는 말 같지만

사실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자는 말이 됩니다.

 

그들이 지키고 싶어 하는 기득권은

로마제국의 하수인으로서 누리고 있던 권력과 부귀영화입니다.

사실 그들은 민족의 안위를 걱정하지도 않았던 자들입니다.

(친일파 무리들이 '민족을 위해서' 라는 핑계를 대면서

자기들의 친일 행위를 변명하고, 독립투사들을 탄압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대사제의 말에 대해서 복음서 저자는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요한 11,51-52)."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사제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언을 한 셈이 되었다는 것인데,

이 설명은 '예수님의 죽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희생이다.' 라는 뜻입니다.

 

대사제의 말에서

'대를 위해서 소가 희생해야 한다.' 라는 말이 바로 떠오릅니다.

 

대사제도 다수를 위해서 개인을 희생시키자고 말한 것인데,

'희생'이란 '자기가 하는 것'이지 '남에게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 쪽에서는 '희생'이지만, 최고의회 쪽에서는 '살인'입니다.

 

자기가 살자고 남을 죽이는 자는 희생을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남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가 죽을 때에만 희생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전체와 개인, 다수와 소수, 대와 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체를 위한 일이라고 해도

희생은 희생하는 사람 자신의 선택과 결단으로 이루어져야지

남에게 희생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전체가 개인에게 강요한다면 그것은 전체가 다 살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파시즘'이고 '전체주의 독재'입니다.

 

우리는 카야파 같은 지도자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자기가 희생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남을 희생시킬 생각만 하는 지도자들...

그런 사람은 지도자 자격이 없고, 그런 지도자를 따를 사람도 없습니다.

앞장서서 스스로 희생하는 지도자는 전체를 살리지만,

자기는 희생하지 않고 남을 희생시키려고 하는 지도자는 전체를 죽이게 됩니다.

 

(입으로는 국가 안보를 걱정하면서

자기 아들은 군대 안 보내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다 함께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하면서

자기들은 탈세, 횡령, 부동산 투기 등을 하는 자들...)

 

복음서 저자는 최고의회가 그날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한 11,53).

예수님을 체포하기도 전에 사형을 먼저 결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들이 예수님을 재판한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사형을 집행하기 위한 요식행위였을 뿐입니다.

 

이제 신앙인들과 예수님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자고 예수님을 희생시킨 것은 아니고,

예수님의 희생 덕분에 우리가 살게 된 것인데,

그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다고 나섰다면,

예수님처럼 남을 살리기 위해서

기꺼이 스스로 희생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공동번역)."

 

            ~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