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9,28-40)
<행렬, 길>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행렬은
실제로는 이스라엘과 로마 당국자들이 무시할 정도로
소규모였을 것이고, 작은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제자들은 그 일을
예수님께서 당신을 메시아로 선포하시는 중대한 사건으로 이해했습니다.
"제자들의 무리가 다 자기들이 본 모든 기적 때문에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하기 시작하였다(루카 19,37)."
이 구절에서 말하는 '기적'은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제자들이 본 모든 기적들을 가리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이 직접 목격한 기적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곧 메시아 왕국이 세워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기뻐하고, 흥분하면서 들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과 흥분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충격과 슬픔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께서 무기력한 모습으로 체포되고
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승리의 개선행진으로 생각했던 예루살렘 입성 행렬이
사실은 죽음을 향한 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충격과 슬픔은 다시 놀라움과 기쁨으로 바뀝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제자들에게 성주간은
양 극단을 오가는 충격적인 반전이 연속되는 기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셨으니
제자들은 일이 그렇게 진행될 것을 알고 있었지 않았을까?"
라고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제자들은 아직 믿음이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는 말씀을 하셔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고, 기억하지도 못했고,
그런 일을 모두 겪고 나서야 비로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충격적인 일을 연속으로 겪으면서
예수님의 예고 말씀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오늘날의 우리들은 성주간의 전체 과정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지 주일 행렬도 무덤덤하고,
성금요일의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도 별로 슬프지 않고,
부활절을 맞이해도 그렇게 크게 기뻐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전례라서 그럴 수도 있고,
습관과 타성에 빠져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전체 과정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른 척할 수도 없고, 놀란 척하기도 어렵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부활절이 되기도 전에 부활 성가를 연습하고,
부활절 전례와 행사를 준비합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흥분과 기쁨을 우리가 똑같이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에 대해서
마음이 무디어졌다고 안 좋게 생각할 것만은 아니고,
믿음이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인생 전체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살면서 정말로 좋은 일을 만나도
그것에만 도취되거나 자만하거나 방심하지 않고,
정말로 나쁜 일을 만나도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물론 기쁠 때 기뻐하고 슬플 때 슬퍼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잠깐 사이에 지나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마지막 종점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모두 덧없이 지나갈 것입니다.
신앙인에게 마지막 종점은 부활과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성주간의 사건들을 하느님께서 미리 만들어 놓으신
시나리오대로 진행된 연극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일을 미리 다 알고 계셨다고 해서
정해져 있는 각본대로 연기를 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부활을 미리 알고 계셨다고 해도
사람이신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과 죽음을 연극으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하느님께서 미리 정해 놓으신 시나리오대로 연기를 하는 연극이 아닙니다.
피와 땀과 눈물로 만들어가는 우리 각자의 작품입니다.)
신앙인이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믿는다고 해도
지금 당장 겪고 있는 고통과 고난이 가짜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안 믿는 사람들보다 덜 힘들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이 있어도 슬픈 일은 슬프고, 힘든 일은 힘듭니다.
믿는 사람은 믿음의 힘으로 고통과 고난을 견디는 것뿐입니다.
이제 다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행렬을 생각해 보면,
그 길은 '승리의 길'이었지만
사실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의 길'은 부활이 기다리고 있는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사는 것이 죽는 것이었고, 죽는 것이 사는 것이었습니다.
(조금은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것이 진리입니다.)
신앙인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길은 죽음을 향해서 가는 죽음의 길이면서
동시에 참 생명을 향해서 가는 생명의 길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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