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8월 25일 가해 연중 제20주간 금요일(성 루도비코, 성 요셉 데 갈라산즈 사제)

dariaofs 2017. 8. 25. 04:31

 

 

 

성 루도비쿠스(Ludovicus, 또는 루도비코)는 프랑스 왕 루이 8세와 카스티야(Castilla)의 블랑쉬(Blanche)의 아들로 프와시(Poissy)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1226년 그의 부친이 서거했을 때 그의 나이는 12세에 불과 했으므로 어머니가 섭정의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아들의 왕권을 노리는 샹파뉴(Champagne)의 티보를 비롯하여 야심 많은 귀족들과 대항했고, 어떤 때에는 전쟁도 불사하였다.

그는 1234년 5월에 프로방스의 공작 레이먼드의 딸인 마르가리타(Margarita)와 결혼하여 열 명의 자녀를 두었다. 같은 해에 그는 대권을 물려받고 통치자가 되었고, 모친 블랑쉬는 고문관으로 아들을 도왔다.

 

그는 1242-1243년의 남 프랑스의 반란을 진압했고, 또 잉글랜드(England)의 헨리 3세를 테임브르그에서 격퇴하였으며, 포와투를 손에 넣는 등 국가의 권력을 점점 확대하였다.

 

1248년 그는 십자군을 지휘하여 출정하였으나 1249년에 다미에타에서 포로가 되어 사라센인들의 손에서 곤욕을 치렀다.

 

그 후 그는 석방되어 성지로 가서 1254년까지 머물다가 모친의 사망 통보를 받고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는 플랑드르(Flandre)와의 평화를 이룩했고 리모주(Limoges), 카오르(Cahors) 등 수많은 지역을 평정하였다.

루도비쿠스는 천성적으로 신심이 깊었고, 또 실제로 이상적인 수도자를 꿈꾸었다. 이 때문에 그는 정의를 펴고 그리스도교적 사랑으로 나라를 다스렸으며, 왕으로부터 농부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권리를 옹호하여 성왕으로 불리었다.

 

동시에 그는 예리하고 힘찬 군주였으며, 동시에 평화를 사랑하는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불경한 태도나 말을 한 사실이 없다.

 

그의 맏아들에게 했던 유언에서도 그는 자신의 신앙을 그대로 설명하고 지키도록 부탁할 정도였다. 1270년 그는 재차 십자군을 일으켰다가 8주일 후에 이질에 걸려 운명하였다.

성인은 한마디로 가장 이상적인 중세의 그리스도인 왕이었다. 그의 치하에서 프랑스는 최대의 번영을 누렸다. 그의 신심은 자신이 작은 형제회 3회원이 됨으로써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는 작은 형제회 3회의 남자 수호성인이다.

 

그는 1297년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Bonifatius V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임종시에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주님, 저는 이제 당신의 집에 들어가렵니다.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서 예배하리이다. 당신의 이름에 영광을 드리나이다.”

 

그리고 오후 3시경에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하며 숨을 거두었다. 그의 유해는 생드니(Saint-Denis) 수도원 성당에 안장되었다.
 

 

 

아버지 페드로(Don Pedro Calasanza)와 어머니 마리아(Maria Gastonea)의 막내아들인 성 요셉(Josephus)은 에스파냐 아라곤(Aragun)의 페트랄타 데 라 살(Petralta de la Sal) 근처의 칼라산사(Calasanza) 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에스타디야(Estadilla)에서 문법과 수사학을 공부하였으며, 레리다(Lerida) 대학에서 철학과 법학을 공부하여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1571-1577년). 그리고 발렌시아(Valencia) 대학과 알칼라 데 에나레스(Alcala de Henares)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그런데 이 기간 중에 어머니와 형이 사망하자, 아버지는 요셉이 돌아와 결혼하여 가문을 이어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요셉은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물리치고 1583년 12월 17일 우르겔(Urgell)의 주교인 우고 암브로시우스(Hugo Ambrosius)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성 요셉은 알바라신 교구에서 활동하였다. 교구장 주교는 성 요셉을 자신의 고문 신학자이자 주교대리로 임명하여 피레네 산맥의 외딴 지역들에 대한 성직자들의 개혁과 신앙 재건을 위하여 파견되었다.

 

요셉은 모든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1592년 로마(Roma)로 가서 콜론나(Colonna) 추기경을 만났는데, 그 추기경 역시 성 요셉을 자신의 고문 신학자 겸 조카의 스승으로 삼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는 로마에서 교육과 자선 활동을 위한 공동체 설립을 시도하게 되었다.

 

그는 로마에서 일반 국민들의 무지와 윤리적 타락, 특히 부모가 죽은 뒤 버림받은 고아들을 보살피고 교육하는 일이 급선무임을 깨닫고 티베르 강을 끼고 있는 빈민가에서 유럽 최초의 무료 공립학교를 개설하였다.

 

그는 1597년에 두 사제의 도움으로 이 학교를 연 다음 ‘그리스도교 교리 형제회’의 책임자가 되었다.

 

 마침내 1617년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는 성 요셉이 설립한 학교를 공식 수도회로 승인해 주었고, 많은 이들의 지원과 협력으로 이와 유사한 많은 학교들이 설립되어 학생수가 천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1621년 11월 18일에 그의 공동체는 교황청으로부터 정식 인준을 받은 수도회가 되었으며, 성 요셉은 이 수도회의 종신 총장이 되었다.

초창기의 사제들은 주로 초등학교에서 가르쳤다. 성 요셉은 초급과 중급 학교의 체계화에 기여하였다. 그는 교과과정을 면밀히 구성하였고 어린이들이 선(善)을 사랑하도록 교육 원칙을 세웠다.

 

 “어린이들이 처음부터 신앙과 문학 교육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삶이 행복함을 알게 된다.”고 그는 기록하였다. 이들 학교는 에스파냐, 보헤미아(Bohemia), 폴란드, 이탈리아 등 수많은 나라에 세워졌다.

 

그러나 설립자의 만년은 야심을 가진 후계자들의 심각한 분쟁으로 점철되었다. 그는 또 다른 욥처럼 용기를 발휘하였지만 그의 수도회에 대한 신뢰는 그가 죽은 후에야 되살아났다.

 

그는 로마에서 1648년 8월 25일에 운명하였고, 1748년 8월 7일 시복되었으며 1767년 7월 16일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교황 비오 12세(Pius XII)는 그를 ‘모든 그리스도교 학교의 천상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7.39)

                    

                                                   (마태 22,34-40)


                              ♣ 마땅히 온 존재를 바쳐 사랑해야 하는 우리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과 하신 부활 논쟁에서 그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십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 소식을 들은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공격하려고 한데 몰려와 율법과 예언서에 관한 논쟁을 벌입니다.

 

그들 가운데 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묻습니다(22,34-36).

예수께서는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십니다(22,37-38).

 

하느님으로부터 온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계명은 하느님 사랑이라고 답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아침저녁으로 암송하던 ‘쉐마 이스라엘’(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신명 6,4-5)을 상기시켜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가장 심원한 곳에 있는 마음과 생명력, 사고를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온 존재와 힘과 생각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으뜸 계명임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하시고, 생명을 주셨으며, 영원히 함께하시고 사랑하시는 주님을 온 힘과 정성을 다해 사랑함이 우리 도리입니다.

사랑으로 나에게 당신 자신을 건네주신 주님께 내 전부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내 삶의 근원이요 뿌리인 주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내 밖의 존재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 자체이신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서, 또 주님의 사랑이 아닌 다른 그 어떤 것으로 누군가를 참으로 사랑할 수는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레위 19,8) 또한 하느님 사랑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하십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비슷하며 서로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하느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누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1요한 4,20)

그런데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은 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신 하느님께로부터 옵니다.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일은 수시로 변하는 애정에서 나오는 감정이 아니라, 누군가와 연관된 선택의 문제입니다.

 

오직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타자(他者)에게 자신을 내주고, 그를 중심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선택’ 말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는 그런 선택과 결단을 하려면, 사랑이신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자신을 개방하고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마음 열어 하느님의 자비와 선과 생명을 내 안에 받아 모시지 않고 사랑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낮추시고 비우시어’ 목숨까지 바치신 주님의 사랑에 동화되고 동참하지 않고 어떻게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울타리를 허물고 원수와 피조물에게까지 사랑의 품을 넓혀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 눈앞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 사랑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 사랑으로 이웃사랑을 더 넓고 깊게 실천해 나가야겠습니다.

 

하느님을 드러내는 이웃사랑이 되도록 사랑이신 주님의 집에 머물도록 합시다.

 

기도가 공염불에 그치지 않도록 살아있는 기도가 되어 이웃에게 달려갑시다. 이웃사랑으로 드러나지 않는 하느님 사랑은 관념의 유희일 뿐이기 때문이지요.

오늘도 실천 없이 입으로만 떠들어대는 사랑, 사랑 실천으로 드러나지 않는 관상기도,

 

자신의 내적 평화와 기쁨만을 찾는 신심행위 그 어떤 것도 사랑의 이중계명과 무관함을 깊이 깨달아, 온몸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