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8월 27일 가해 연중 제21주일(성녀 모니카 축일)

dariaofs 2017. 8. 27. 05:07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마태 16,13)

 


(이사 22,19-23; 로마 11,33-36; 마태 16,13-20)

 

신앙을 고백하는 하늘나라의 실험적 수련소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직무에서 대단히 중요한 첫 시기를 매듭짓는 대목입니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을 헤로데 안티파스의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카이사리아의 필리피 지방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가십니다.

 

거기에는 그리스계 시리아인들이 살았고, 목신(牧神)인 판(Pan)과 님프신에 대한 숭배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마태오 공동체의 환경과 흡사했습니다.

거기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16,13) 하고 물으십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두고 세례자 요한, 엘리야 또는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특별한 능력을 지닌 선구자로 인정했지만(16,14) 메시아이심을 몰라본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16,16) 하고 고백합니다.

사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란 표현은 마태오 복음사가가 덧붙인 것으로서 초대교회의 발전된 신앙고백을 보여줍니다. 아무튼 이 신앙고백이야말로 교회의 기초입니다.

 

교회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 신앙고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의 권세나 죽음의 힘마저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베드로가 참되고 행복한 신앙의 고백자가 된 것은 살과 피, 곧 나약한 인간성에 의존해서가 아니라, ‘어리석은 이들’(11,25)에게 약속하신 아버지의 계시 때문입니다(16,17).

 

베드로는 건물을 견고하게 하는 초석이 될 터인데, 그는 거기서 모든 백성이 나올 유일한 바위가 될 것입니다.

 

교회가 이 바위 위에 세워진다면, 그 어떤 죽음의 힘도 교회와 맞설 수 없을 것입니다(16,18).

마태오 복음사가는 ‘하느님에 의해 소집된 모임’을 예수님의 입을 빌어 ‘교회’라 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일종의 하늘나라의 실험적 양성소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율법을 해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대리자로서 열쇠를 쥐고 있다 하십니다.

 

베드로는 하느님의 계시로 맺고 푸는 권한을 받았기에(16,19), 하느님께서도 그의 결정을 시인하실 것입니다.

신앙은 인간의 계획과 생각을 벗어납니다. 우리의 신앙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예수님과 동행하며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의 공동체를 지탱했던 근원적인 힘은, 바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확고한 믿음이었습니다.

 

나에게도 그런 믿음이 있는지 돌아봐야겠지요. 그 믿음은 추상적인 생각이 아니라 그렇게 믿는 그리스도를 내 삶의 중심에 모시고, 그분의 가치를 받아들이며 그분의 길을 가는데 헌신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나 자신도 그런 신앙을 끊임없이 이어간다면 그 어떤 죽음의 힘도 이겨낼 것입니다. 내 마음, 교회공동체, 우리 각자의 삶의 자리, 이 사회가 곧 하늘나라의 실험적 수련소입니다.

 

모든 순간, 모든 상황이 바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도록 부름 받는 자리라는 것이지요. 나는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신앙인다운 선택과 결단을 하고 있습니까?

온갖 우상숭배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나의 진정한 고백을 준비할 때입니다.

 

 아울러 눈에 보이는 교회가 곧 하늘나라는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교계제도를 동일시하거나, 교회의 직분이 권위를 대신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겠지요.

 

교회는 오직 하느님 나라를 향한 끊임없는 쇄신과 새로운 변화의 노력을 하는 주체여야 함을 명심해야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

 

 

 

 

북아프리카 누미디아(Numidia)의 타가스테(Tagaste)에서 그리스도교 신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성녀 모니카는 이교도인이던 파트리키우스(Patricius)와 결혼했는데, 남편의 성품은 다소 난폭했고 또 방탕한 기질이 있었다고 한다.

 

이 부부는 3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나비지오(Navigius) 그리고 페르페투아(Perpetua)이다.

그녀는 끊임없는 기도와 인내로써 370년경에 남편과 시어머니를 개종시킬 수 있었으나 그 다음 해에 과부가 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그녀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개종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 당시 아우구스티누스는 카르타고(Carthago)에서 공부하던 중에 마니교에 심취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교 철학을 비롯하여 그릇된 길을 걷고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들을 따라 로마(Roma)까지 쫓아갔으며(383년) 또 386년에는 밀라노(Milano)까지 갔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여기서 그리스도교의 깊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387년 부활절에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아우구스티누스와 그의 아들인 아데오다투스와 함께 살다가 이탈리아의 로마 근처 오스티아(Ostia)에서 55세의 나이로 운명하였다.

성녀 모니카에 대한 공경은 처음에는 없었으나, 1162년 성녀의 유해가 프랑스의 아라스(Arras) 근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으로 옮겨지면서 전 교회에 확산되었고, 다른 유물들은 1430년 오스티아에서 로마에 있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당으로 옮겨졌다.

 

성녀 모니카는 가톨릭 여성 단체의 수호성인이자 그리스도교 어머니상의 모범으로서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