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나오는 포도원주인은 좀 심하다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참 당당한 사람이다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내 것을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요, 내 후한 처사가 비위에 거슬린다는 말이요 하면서
투덜거리는 일꾼들을 질책하는데,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봉사하는 분들, 남을 위해서 일하는 분들은 이 포도원 주인의 자세를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봉사자들의 착각중 하나가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의 인생을 책임져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책임감 없이 봉사해서는 안되겠지만,
전적으로 자신이 모든것을 다하려는 지나친 책임감은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누가 어려움을 호소하면 어쩔 줄 몰라 하며 자신이 나서서 모든 일을 다 책임져주려고 하는 봉사자들의 경우,
사람이 좋다는 소리를 들을지는 몰라도,
실제로는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면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요.
어떤 해를 끼치는가?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의존과 미성숙의 단계에 머물게 합니다.
도와주려는 사람이 지나치게 모든 것을 다 해주려고 할 때,
도움을 청하는 사람은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회피하려고 하는데
이런 책임전가는 스스로 자기 인생을 짊어지려는 책임감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부작용을 낳게 됩니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스스로 결정내리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도와주며 자율의식을 증가시켜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이런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책임지려고 하는 행위를 하는가?
첫째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서 자신의 권위, 자신의 전능함을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야 당연히 도움을 주는 사람 앞에서 머리를 조아릴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이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 일종의 쾌감을 안겨주게 됩니다.
두 번째 이유는
도움을 주는 자신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해서 그렇습니다.
각 사람은 저마다 삶의 역사를 가지고 삽니다.
각자의 환경을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도움을 주는 사람은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전부가 아닌, 일부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도움을 주는 자는 도움을 청하는 사람의 마음에 단지 한 알의 씨앗을 심어줄 수 있을 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은 반드시 도움을 청하는 사람의 의지를 존중해야 합니다.
이런 한계를 무시하고 자신의 능력이나 역할이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절대적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은
자기 역할에 대한 과대평가 때문입니다.
또한 도움을 주는 사람 마음안의 병적인 요소로 인한 부작용입니다.
세 번째는 기도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하느님이 내 뜻대로 하여주기를 바라는 기도는 백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괘씸죄일 뿐.
홍성남 마태오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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