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마음을 고쳐먹고 새롭게 살겠다고 결심하는 분들을 봅니다. 그런 결심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가상한 일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태어나 성장해가며 일정한 틀을 형성합니다. 틀이 고착화되면 어떻게 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고착화된 성격과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기가 어렵다면 당연히 순화시켜야 하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결심을 한다 하더라도 자기마음을 잘 모른다면 무리하여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입힐 수가 있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우선 사람의 마음은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아무리 상반되어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비슷한 성향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몸을 예로 들어볼까요? 우리는 서로의 몸을 많이 비교합니다. 몸짱, 얼짱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몸짱이나 얼짱이 귀가 셋이던가요? 코가 둘이던가요? 다 같습니다. 단지 그 모양새가 다를 뿐이지요. 마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들은 심리검사와 유사한 것들을 받고 오셔서 자기의 마음상태는 이러이러 하다고 단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야겠다는 식으로 말을 하시는데. 그렇게 인위적으로 사람의 마음과 성격을 분류하는 것은, 사람의 성격 안에 그 사람의 앞날이 함축되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대략의 예측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의 성격이 칼로 무 자르듯이 그렇게 다른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성격의 모든 요소들을 조금씩 다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심리검사를 하는 이유는 그중에서 두드러진 성향을 통하여, 그 사람의 심리적 장애나 질병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저런데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식의 자기비하는 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단지 지금의 자기마음을 더 보기 좋게 다듬는 일만 하면 됩니다. 마치 몸을 다듬는 것처럼.
두 번째로 알아두셔야 할 것은, 사람의 마음은 유전적인 요인과 양육 방법에 의해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그 이후로도 조금씩 수정되어가기는 하지만, 갑자기 어떤 일로 인하여 사람의 성격이 정반대로 바뀌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마음, 자기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확 바꾸어버리겠다고 하는 것은 자기인생을 망치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가끔 사람이 백팔십도로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 그사람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게으른 사람이 성실해진 것처럼 삶의 태도가 달라졌을 뿐입니다.
기본적으로 마음의 틀은 그대로란 것이지요. 다시 몸을 예로 들자면, 자기 몸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고 칼로 자기 몸을 이리저리 베어낸다면 몸뚱아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고 말겠지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떤 분들은 그러십니다. 마음이 그렇게 변하지 않고 처음그대로라면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그냥 그대로 살다 가면 되지 않겠는가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시 몸을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타고난 몸 그대로 살다 간다고 몸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몸이건 마음이건 관심 갖고 신경 써주지 않으면 점점 더 망가져갑니다. 좋아질 수는 없습니다. 타고난 마음을, 내 의지와 관계없이 주어진 성격이라 할지라도, 들여다보고 다듬지 않으면, 방치해둔 밭같이 잡초투성이로 변하고 맙니다.
매일 매일 돌아보면서 자신의 삶을 다듬지 않으면 결국에는 고약한 노인네로 전략하게 됩니다. 복음에서도 그리하였듯이 주님을 뵐 날에 불충한 종, 게으른 종이란 걱정을 듣게 될 것입니다.
홍성남 마태오 신부(가톨릭 영성심리 상담소장)
'영성심리학적 성경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태오 25장 14절 ~ 30절 탈렌트(talent)의 비유 (0) | 2019.01.28 |
---|---|
마태오 25장 1절 ~ 13절 열 처녀의 비유 (0) | 2019.01.21 |
마태오 24절 36절 ~ 44절 깨어 있으라 (0) | 2019.01.07 |
마태오 24장 3절 ~ 35절 우울증과 종말강박증 (0) | 2018.12.30 |
마태오 23장 7절 ~ 24장 2절 예루살렘을 두고 한탄하시다,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시다 (0) | 2018.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