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0일 나해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는 베드로와 정면으로 충돌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이 다툼의 원인은 바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있었습니다.
당시 유다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역할을 베드로가 하였고,
바오로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하였는데
베드로가 이민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도
유다교 그리스도인이 오면
그들의 관습과 맞지 않았으므로
눈치를 보느라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았던
위선적인 모습을 바오로가 목격하였습니다.
과연 그리스도인은 누구라는 말입니까?
유대인입니까? 아니면 이방인입니까?
이 세상 모든이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유대의 관습에 사로잡혀있어서
베드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줏대없는 모습이
바오로의 눈에 거슬렀던 것입니다.
때문에 바오로는 한결같이 율법이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좌불안석하는 베드로와 비슷할 것입니다.
즉 신앙과 생활 안에서 때론 일치되지 않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특히, 젊은이들 문화안에서
신앙과 생활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모습을 가끔봅니다.
언젠가 청년들하고 연수회를 갔다가
함께 주님의 기도를 했는데
이들의 기도가 하도 빨라서
숨이 가쁘게 기도를 마쳤던 것이 기억에 납니다.
신학교에 다닐 때,
신학생들이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분심이 들지 않도록
성모성을 빨리 하는 경우는 봤지만
청년들처럼 주님의 기도를
마치 귀찮은 것을 마지못해 하듯이
한숨에 후루룩 끝내버린것을 보고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어떤 청년은 주님의 기도를 외우지도 못하는 것을 보고
저는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이고
특히, 제자들이 청해서 예수님에게 얻어낸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기도를 배우고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한구절 한구절 머물면서
풍요로운 묵상을 할 수 있기에
그냥 스쳐지나가듯이 바치는 것에 대한
안탁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저 역시도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기도이기에
매번 마음을 두지 않고 무심코 바치고 있기에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사실 우리는 오늘 루카복음에 나오는 주님의 기도말고,
마태오 복음서에 나오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있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성부께 바치는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셨고,
2천년을 바쳐왔기에
세상의 그 어떤 기도와도 비교할 수 없는 풍요로운 유산입니다.
요즘 기도를 더욱 잘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많은 기도형태와 기도모임이 있습니다만,
평생을 주님의 기도만 바쳐왔던 제자들을 떠올려 봤을 때,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기도는 과연 무엇 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새삼들게됩니다.
신앙과 생활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은 바로 기도의 힘일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여 기도한 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가장 단순하고 쉬운 일이기도 합니다.
박동현 제노 신부(대전교구 목동성당 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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