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5일
오늘 독서인 필레몬서는 바오로 사도가
옥중에서 필레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또한 바오로의 서간 가운데 가장 짧은 서간입니다.
필레몬이라는 부유하고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이 있었던
그리스도교 신자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다른 서간과는 다르게 그리스도의 의무를 이야기 하지 않고
오히려 사적으로 부탁을 하는 편지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공동체의 모든 일은
개인적인 일이 아니고 오히려 필레몬이 속한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로 여기고 있기에
필레몬서는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줍니다.
필레몬서의 줄거리는
오늘 독서에서 들은것처럼
필레몬의 집안에 있던 노예 ‘오네시모스’가
필레몬을 떠나 바오로의 옥바라지를 하고 있었고,
그러한 오네시모스를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시대에 있어
주인이 노예를 두는 것은 일반적인 형태였습니다.
그러한 사회구조 안에서
주인이 노예를 자신의 형제처럼 대하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모든 지체가
동등한 인격을 가졌고,
그들의 인권을 누구보다도 더 존중하였습니다.
오늘날 소위 재벌 또는 권력에 의한 갑질이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필레몬서가 주는 의미는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저 그리스도의 재림만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도 천상의 교회를 닮은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한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마음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산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마음으로부터 건설되고 있고,
우리의 선한 마음으로 시작되어 점차 그 세력을 넓혀서
우리 가정으로
우리 공동체로
우리 사회로 점차 확장되어 갈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노예의 해방이 선포되기에
이미 필레몬의 노예 “오네시모스”는 바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나라를 이미 체험한 것입니다.
한국 초기교회의 순교자들 중에서도
많은 노예들이 가톨릭의 평등사상으로 하여금 가톨릭 신자가 되었고,
그들이 박해로 잡혀 매를 맞고 옥중에서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나라에서 살고 있소!’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힘없고 가난한 사람을 돌보아주고
그들의 인권을 되찾아 줄 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살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중에는 이미 하느님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박동현 제노 신부(대전교구 목동성당 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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