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4일
흔히 우리나라를 단일민족국가라고 칭합니다.
그러나 단일민족국가라는 단어를 '혈통적으로 단일한 민족의 국가'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 합니다.
사실 민족이 존재하고 단일민족국가가 존재해도
단일혈통이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역사학자들이 말하기를
단일민족이라는 것은 허구의 개념을 강요한 일제의 기조,
외세의 침탈에 대한 반작용과 군사정권 하에서 결합되어
사회통제 목적으로 악용된 영향이 크다고 지적합니다.
즉, 민족과 혈통은 절대적 상관관계가 없고,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원삼국시대의 부여인과 예맥인, 한인을 들고 있지만,
단일한 민족성을 띄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 쯤에서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올라가면
원래는 통일 왕국이었던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에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가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에 점령을 당하고
아시리아의 정복정책으로 북 이스라엘의 씨를 말리기 위해
타민족과의 혼인을 하는 정책을 썼기때문에
북 이스라엘, 즉 사마리안인은 혼혈민족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
남 유다사람들은 사마리아인을 자신들의 민족으로 여기지 않았고,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을 갈 때에도 사마리아 땅을 밟지 않으려고,
두 배의 시간이 걸려도 요르단 강을 돌아서 남쪽으로 갔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우물가에 있던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도 같은 맥락안에 있습니다.
이러한 분열된 한 민족의 갈등과 더불어
두 왕국에서도 버림받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들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열 명의 나병환자들인것입니다.
나병환자들은 두 나라에서 버림을 받았고,
어느나라에도 속하지 않았기에
두 나라 국경에서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들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스스로 하느님에게로 부터 저주를 받았고,
또 나라로 부터 버림받았다고 여기던 이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 자비를 청하며, 치유해 달라는 청을 합니다.
곧, 자신을 몸을 고쳐달라는 것과
사회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
이중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10명의 나병환자가 모두 병을 고쳤지만,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린 사람은
유다인들이 혐오했던 사마리아 사람 한명 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아홉명은 아마도 남 유다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남 유다인의 순수한 민족으로써의 자긍심은
스스로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민족주의로 변질된 하느님이 뽑아 세운 민족에 대한
근본적인 신앙심은 이미 변질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은
남 유다 사람들에게 수치스러운 감정을 남기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나병환자의 치유사건은
단순히 불쌍한 이들을 치유하는 사건인 것이 아니라
갈라진 하나의 민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민족이라는 것은 인종이나 혈족의 결합, 문화를 뛰어넘어
사랑으로 한 가족을 이루는 개념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많은 외국인들이 유입되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인종, 문화, 언어가 공존할 때 겪는 사회적 혼란이
존재합니다.
이것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이라는
보다 더 넓은 개념의 틀일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으로 창조하셨기에
다양성을 사랑으로 묶을 때,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박동현 제노 신부(대전교구 목동성당 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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