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8일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인내’라는 단어가
제 가슴에 다가 왔습니다.
‘인내’ 사전에서는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딤 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또 인내를 영어로 하면 patient인데
이는 병자, 또는 환자와 같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어원적으로 patient는 육체적 괴로움이나 고통 받는 사람인데
이는 병으로부터의 괴로움을 참고 견디는 사람,
즉, 고난을 인내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인내하라고 할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좀 더 편안한 길을 가르쳐 주지 않으시고,
괴롭고 어렵고 힘든 길을 가라고 하시는 걸까요?
우리의 마음을 전혀 개의치않으시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내하라고 가르치시지만,
결코 나 홀로 인내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인내해야하는 순간이 오면,
고통받고 있는 나와 함께 예수님께서 계신것을 발견합니다.
내 고통보다도 더 큰 십자가를 지고,
내 발걸음에 맞추어서
내 한걸음 앞에서 함께 가고 계십니다.
이런 우화를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힘든 사막 길을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그 사람은 예수님과 이야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걸어갔고,
사막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사이좋게 나란히 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사람은
사막의 뜨거운 태양과 목마름 속에서 너무나 힘든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순간 함께 걸어가던 예수님의 모습은 사라지고,
혼자 남은 자신을 발견합니다.
발자국도 어느 순간부터 하나만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예수님, 같이 잘 오시다가 이렇게 힘든 순간에
왜 나만 홀로 남겨 두십니까?”하고 예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친구야, 그 순간은 네가 너무나 힘들어해서
내가 너를 업고 걸어왔단다.”
이렇듯 우리는
인내를 통해서 하느님과 함께하는 의미를 깨닫고
인내 안에서 우리는 함께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홀로 하는 인내는 한낱 자기비하나 자아도취일 뿐일 것입니다.
홀로 인내하고 계시다면, 누군가와 함께 인내하십시요!
함께 하는 인내일때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박동현 제노 신부(대전교구 목동성당 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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