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잡혀가시고 난 후 베드로사도가 닭이 울기 전,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하였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졌을까요? 그것도 어떻게 공개적으로 복음서에까지 기록이 남게 된것일까요?
도대체 누가 교회의 첫 정째 수장이신 베드로사도의 치부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밝힌 것일까요? 이것은 베드로사도 자신이 복음서에 올린 것입니다.
우리나라 경우를 보면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과거 잘못을 숨기느라 바쁘고 심지어는 미화기키느라 정신들이 없을 정도인데, 왜 가톨릭교회의 초대교황이신 베드로사도께서 당신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버젓이 복음서에 공개했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마음의 괴로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설령 내 잘못을 다른 사람들이 모른다 하더라도, 나 자신이 나의 행동을 용서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해질 수 가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특히 비 의식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에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늘 지금 여기서 일어난 일처럼 느끼게 하는 기능을 합니다.
시간이 가면서 실제로 있엇던 일과 심리적 상상을 뒤섞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제보다 더 많은 괴로움을 안겨준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사도는 아마도 자신이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사실로 인하여 마음이 무척 괴로웠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의 괴로움을 덜어내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고백입니다. 여러 대중에게 고백해버림으로써 마음의 괴로움을 조금이나 덜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혼자 숨기고 살면 어떻게 되는가? 심리학에서는 아마도 심각한 강박신경증에 걸리시지 않으셨을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 라는 말처럼 사람들이 주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신경질 적인 반응을 보이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사도가 고백을 하게 된 두번째 이유는 주님의 너그러우심을 사람들에게 알리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이 조그만 잘못도 용서하지 않는 분이 아니라, 세 번이나 당신을 부인한 자신을 용서하시고 심지어 당신의 수제자로 인정하실 만큼 그릇이 큰 분이란 것을,
말 그대로 자비의 하느님이신 것을 자신의 부끄러운 행위를 고백함으로써 증명하려 했던 것입니다. 즉 복음서의 이 부분은 신앙간증의 자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주님을 잊거나 버리거나 무관심하게 대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질책하면서 때로는 주님이 그런 나를 벌하시지 않으실까 하는 두려운 마음 때문에 쉽게 주님 곁으로 가지 못하고 주저하기도 합니다. 그런 때에 이 복음 우리에게 커다란 위안을 줍니다.
홍성남 마태오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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