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복음내용은 바라빠와 예수님 두 사람이 재판정에 나와 있고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 것이냐를 결정해야 되는데, 군중들이 바라빠를 살리고 예수를 죽이라고 소리치는 내용입니다.
후대 신자 분들이 한결같게 그 어리석음에 대하여 비난합니다. 그때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리친 군중들이 무지렁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을 죽이라고 그럴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옛날에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리쳤던 사람들이 현대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데모가 일어났을 때 그냥 생각 없이 그 데모 대열에 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생각 없이 다수의 행동을 따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군중콤플렉스에 걸렸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리쳤던 사람들도 이 군중콤플렉스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소속이 없다는 것은 아무데도 갈 데가 없다는 것인데, 갈 데가 없고 어디 가도 반겨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만큼 외로운 것이 없습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 심리적 건강에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문제는 이런 소속감에 대한 욕구가 지나치다 보면 집단에서 자기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집단에 묻혀버려서 집단에 묻혀버린 삶을 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를 들어 집단콤플렉스에 걸린 사람이라고 얘기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말 못하고 그냥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서하는 사람들을 보고 집단콤플렉스에 걸렸다고 합니다.
집단콤플렉스는 어떤 사람이 잘 걸리는가? 자립심이 부족한 사람들이 잘 걸린다고 합니다.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의 힘으로 결정하는 것을 자립심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생각하고 결정내리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집단에서 결정한 것을 그냥 따라 갑니다. 남들이 하니까 할 수 없이 따라하는 것입니다.
이런 집단콤플렉스에 걸린 사람들은 그 집단이 악한 것이건, 선한 것이건 그냥 무조건 따라간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라 소리쳤던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을 정말 알고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던 사람들은 소수였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앞에 있는 사람들이 소리치니까 따라서 소리쳤던 것입니다. 자기인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공허하고 무미건조한 삶을 삽니다. 속말로 사람이 덜 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나 자신이 군중콤플렉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정체성을 찾는 작업, 자기탐색, 마음공부를 진지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홍성남 마태오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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