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먼저 보내어진 성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교회가 탄생일을 축제로 지내는 경우는 예수님(12.25)과 성모님(9.8)을 제외하면 성 요한(6.24)이 유일합니다. 그만큼 요한은 예수님께서도 인정하신 '큰 인물'(루카 7,28)입니다.
"안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루카 1,60)
오늘의 복음 대목은 앞선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루카 1,5-25) 내용이 실현되는 장면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니 방금 들은 엘리사벳의 단호한 외침이 무엇에 기인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막 출산을 마친 늙은 여인의 처지이면서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기를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루카 1,13) 하던 가브리엘 천사의 전달과, 그가 전하는 하느님 뜻에 철저히 순명하고 있습니다.
이웃과 친척들의 반응, 즉 아내(여성)의 의견이 있어도 남편(남성)에게 재차 확인을 하는 것이나, 아기의 이름을 아버지나 친척의 이름 안에서 선택해야 한다고 믿는 모습에서 우리는 당시 관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옛 계약의 관습과 새 계약 시대의 질서가 맞부딪히며 일으키는 파장이 느껴집니다. 어쩌면 요한의 탄생은 거대하게 흘러 온 구약 관습의 물줄기에 흘러들어 새롭게 방향을 바꾸는 낯선 조류와도 같은 역할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흠 없이 살아가는"(루카 1,6) 이들 부부의 예전 같지 않은 신념에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루카 1,65)고 합니다.
새로움은 이렇듯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는 동시에 두려움과 긴장 또한 야기하는 법이지요.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루카 1,80)
'광야'는 하느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고독하고 척박한 곳이기에 자신과 인간 삶의 본질을 대면하게 되는 장소입니다.
"당신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시고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신"(이사 49,2 참조) 주님의 보호 아래 요한은 광야에서 자기의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극기와 금욕의 삶을 살며 준비합니다.
요한은 출생 예고부터 죽음까지 예수님을 한 걸음씩 앞서 갑니다. 하지만 선구자적인 앞섬이 아니라 뒤에 오실 귀한 분을 위해 준비를 갖추기 위한 앞섬입니다.
온전히 예수님 존재에 초점을 맟춘 그의 삶은, "나는 그분이 아니다."(사도 13,25)라는 선언으로 더욱 명확해집니다.
자신이 누구가 아니라는 고백은 자신이 누구라는 계시 못지 않게 큰 겸손이 요구되지요. 이 겸손은 제 자리와 제 역할과 제 분수를 아는 자기 인식에 기인합니다.
우리는 가끔 세 들어 살면서도 주인 행세를 하거나 종업원이면서도 사장처럼 처신하기도 하지요. 피조물인 주제에 마치 창조주인 것처럼, 들꽃이면서도 장미와 백합인 양 생각하기도 합니다.
요한은 이렇게 자기가 누구인지 또 아닌지를 분명히 인식하였기에 '큰 인물'이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제1독서인 이사야서는 '주님의 종의 둘째 노래'입니다. '주님의 종'이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될 수도 있고, 예언자나 임금 등 특정 이스라엘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이사야서를 집필한 이사야 예언자거나 이스라엘 해방에 결정적 역할을 한 페르시아의 키루스 임금을 지칭하기도 하지요. 그러다가 신약에 들어오면서 '주님의 종'은 예언자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실현하신 예수님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앞서 고난과 박해 속에 스러져간 모든 예언자들의 자취는 세례자 요한을 거쳐 예수님에게서 완성에 이른 것이지요.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벗님은 "너는 누구냐?"라는 물음 앞에서 어떤 답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과의 관계 안에서 겸손하고 단순하게 자신을 드러낼 진실된 자기 계시 말입니다.
그 답은 내가 누구라는 것 못지 않게 누구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오늘 자기의 소명에 충실했던 세례자 요한과 함께, 나는 누구인지, 또 나는 누구가 아닌지 숙고하고 그 답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소명에 응답하는 첫걸음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하니까요.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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