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들에는 선과 악의 대결 구도가 들어 있습니다. 곧 하느님과 적대자 악마의 힘이 동시에 나타나서 팽팽한 긴장을 형성하고 있지요.
제1독서인 요한묵시록에는 성모님의 표상인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묵시 12,1)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해산할 아기, "쇠지팡이로 온 민족을 다스릴 분"(묵시 12,5)의 생명을 노리는 "크고 붉은 용"(묵시 12,3)도 함께 나옵니다.
여인과 아기를 해치려는 용의 공격은, 탄생한 아기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어좌로 들어 올려"(묵시 12,5)지고, 여인이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광야의 처소로 달아나면서 마무리가 됩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1코린 15,25)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악의 세력인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과 권능을 파멸"(1코린 15,24)시키러 오셨고,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할 원수"(1코린 15,26), 곧 죽음을 이기신 맏물이십니다.
제1독서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아슬아슬 긴박했던 하느님과 악의 대결은 제2독서에서 한 줄 문장으로 이렇게 정리됩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굴복시키셨습니다."(1코린 15,27)
복음에서는 두 여인이 만납니다. 모두 선하고 흠없고 거룩한 여인들입니다.
또 하느님에게서 특별한 은총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평생 불가능했던 임신이 이루어져 장차 주님의 길을 준비할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가 될 엘리사벳과, 처녀의 몸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임신한 마리아, 사실 두 여인 모두 공감과 위로, 격려가 필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신앙의 눈으로는 은총이고 기적이고 신비지만, 세상 눈에는 비웃음거리, 생명의 위협, 오해의 소지가 가득한 일이 몸에 생긴 겁니다.
엘리사벳과 마리아, 서로밖에는 하느님의 계획을 나누고 확인해 줄 사람이 따로 없습니다. 두 여인은 이 순간, 성령의 현존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진정한 위로자, 확인자가 되어줍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하느님은 변함없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분 앞에 선 우리 인간이 변덕스런 존재라서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불안과 진동이 스며듭니다.
어제는 믿다가 오늘은 흔들리고 내일은 불신하기를 반복하면서 신앙과 의혹 사이를 배회하기 일쑤지요. 항구하신 하느님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고 항구히 머무르는 힘이 믿음입니다.
또 변치 않는 분께 변치 않는 신뢰를 드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한 번 내리신 말씀을 이루시리라는 믿음으로 그분 앞에 머무르는 이는 행복합니다.
항구한 분 앞에 항구히 머무르는 사이 우리는 그분께 동화되고 같아져 가니 행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행복자체이신 하느님이 우리 존재를 온통 차지하시기 때문입니다.
산골 소녀 마리아의 찬송에는 하느님 업적에 대한 우주적 관상이 담겨 있습니다. 교만한 자, 통치자, 부유한 자와 비천한 이, 굶주린 이들은 온 인류, 모든 피조물, 전 우주를 상징합니다.
이 세상과 역사 안에서 악의 힘은 묵시록의 용처럼 드러내놓고 활동하기보다 이기적이고 무심하고 욕심 많은 이들의 영혼에 스며들어 은밀하게 그들을 장악합니다.
자기가 누구의 힘에 이끌려 결정하고 행동하고 명령하는지도 모르면서 세상에 악을 양산하고 퍼뜨리며 악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한 이들은 "하느님 팔의 권능으로" 흩어지고 끌어내려지고 빈손으로 내쳐질" 것입니다.
반면 비천한 이, 굶주린 이들은 들어 높여지고 좋은 것으로 배불릴 것입니다.
장차 오실 구원자께서 낮고 비천한 이들 곁으로 가셔서 세속적 높고 낮음의 지형도를 뒤바꾸실 것이고, 믿는 이들을 당신 살과 피와 말씀,즉 온갖 "좋은 것"(루카 1,53)으로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피조물, 만물, 우주는 악을 굴복시킨 그리스도 곁으로 모여와 함께 기뻐 뛰며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묵시 12,10)고 목청껏 외칠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과연 강생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 죽음, 부활로 악을 이기시고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선사하셨습니다.
이 업적은 마리아의 용기와 겸손, 믿음을 통해 가능성을 입은 것이고요. 그런 성모님께서 승천하셨음을 벗님과 함께 진심으로 경축합니다.
그분의 승천이야말로 악의 머리를 짓밟으신 여인의 승리이고, 모든 악을 파멸시키실 그리스도의 승리입니다. 이 승리에 힘입어 오늘도 꿋꿋이 믿음의 길을 걷는 우리 모두를 응원합니다.
하늘에 올라 천상 모후의 면류관을 받으신 성모 마리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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