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dariaofs 2021. 1. 6. 06:01

오늘 미사의 말씀은 주님과 함께할 때 일어나는 기적을 보여 주십니다.

"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혼자 뭍에 계셨다."(마르 6,47)

예수님께서 빵을 많게 하여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 뒤, 제자들은 분부대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는 중이고, 예수님은 군중을 돌려 보내시고 나서 산에 가서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홀로지만 아버지와 함께시지요. 제자들은 여럿이 한 배를 탔지만 예수님 부재 상태를 맞고 있습니다.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마르 6,48)

복음사가는 앞서 일어난 빵의 기적이 "늦은 시간"(마르 6,35 참조)에 있었다고 전하지요. 배에 탄 제자들이 "저녁"(마르 6,47) 때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다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맞바람으로 곤혹을 치르는 그들 곁으로 가신 것은 "새벽녘"이니 꽤 긴 시간 동안 호수 위에서 고생을 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것은 그분이 자연의 원리를 넘어서는 분이심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유령이라 여겨 두려워하지요. 전날 겪은 빵의 기적을 통해 그들에게 예수님의 권능과 사랑에 대한 신뢰가 생긴 건 아니었나 봅니다. 오히려 세속적 영광을 보장할 메시아의 측근이 된 것에 대해 자만심만 더 커진 건 아닌가 싶네요. 이를 복음사가는 "완고한 마음"(마르 6,52)이라 표현합니다.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마르 6,51)

사실 진짜 기적은 지금부터가 아닐까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 한가운데로 들어가시자 밤새 그들을 괴롭히던 바람이 멎었으니까요. 동시에 제자들 내면의 소용돌이도 잠잠해졌겠지요.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의 배에 발을 들이시는 순간 내외적으로 평화가 시작됨을 감지합니다. 주님의 현존은 이렇듯 평화를 가져다 줍니다.

제1독서에서는 사랑과 머무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4,16)

사랑하는 이는 사랑이신 하느님 안에 머무르는 중입니다. 사랑함으로써 하느님과 함께하지요. 하느님도 사랑하는 영혼 안에 당신 거처를 마련하시고 머무르십니다. 사랑을 통해 우리와 하느님은 서로의 거처가 되어 서로 안에 거하지요. 이 '서로에게 머무름'이야말로 인간이 하느님과 누리는 최고 절정인 일치입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1요한 4,18)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가 하느님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건 오로지 그분의 겸손과 자비 덕분입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 속 제자들처럼 현상계에 익숙한 우리는 다가오시는 그분을 두려워하기 일쑤지요. 삶의 맞바람과 풍랑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도 주님의 새로운 현존 앞에 겁을 집어먹습니다. 사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느 부분에서건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이지요.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르 6,50)

사랑하는 일에 서툴고 겁을 내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격려하십니다. 하느님과 누리는 완전한 사랑에는 두려움이 스며들 틈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내지요. 사랑한다고 하는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건 인간의 욕정과 자기애일 뿐, 하느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배는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우리 가정과 우리 공동체가 내외적 풍랑으로 두려움을 품고 있다면 어서 주님을 모셔들여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 배에 오르시는 순간, 바람도 멎고 마음의 동요 또한 가라앉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무르면 '함께함의 기적'은 언제라도 일어납니다. 우리가 지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참 막막하고 힘겹지만, 그럴수록 주님께 희망을 둡시다. 그분 사랑 안에 뿌리를 내린 영혼에게 맞바람과 풍랑은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다는 표징이니까요.

주님과 함께, 사랑에 머물러 세상이라는 망망대해를 건너는 벗님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시는 주님만 믿고, 우리 함께, 꿋꿋이 나아갑시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