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2,1-11; 1코린 12,3ㄷ-7.12-13; 요한 20,19-23)
<성령을 받았다면>
오순절 날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첫 번째로 한 일은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었는데,
사도들은 서로 다른 언어들로 말했고(사도 2,4),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 말로' 그 복음 선포를 알아들었습니다(사도 2,8).
이 '사건'은 창세기의 바벨탑 사건과 연결됩니다.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다가 그만둔 것은
하느님께서 온 땅의 말을 뒤섞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창세 11,9).
그때 생겼던 언어의 장벽이 성령 강림으로 허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 선포를 듣는 사람들은
사도들의 외국어 실력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이 알아듣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놀라워하고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사도 2,8).
그 당시 그 지역에서는 사도들이 여러 가지 외국어를 말하는 모습 자체는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를 모두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었고,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사람이 여러 나라 말을 하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강림 장면에서는
사도들이 서로 다른 언어들로 말한 일보다는
사람들이 그 말을(그 말의 내용을) 알아듣는 모습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선포하셨는데도
유대인들이 예수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 때가 많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사도들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저들이 하느님의 위업을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언어로 듣고 있지 않는가?(사도 2,11)"
이 말은, 사람들이 사도들의 '언어'만 알아들은 것이 아니라,
사도들이 하는 말의 '내용'을 알아들었음을 나타냅니다.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은 마음이 통했다는 뜻도 됩니다.
(마음이 통하게 된 것도 성령의 작용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사도들이 포도주에 취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은(사도 2,13)
사도들의 언어능력 때문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는 열정적인 모습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강림 때의 진짜 기적은,
사도들이 갑자기 외국어를 잘하게 된 일이 아니라,
그 전까지는 숨어 있었던 사도들이 용감하고 열정적인 모습으로 변화되어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한 것,
그리고 그 복음을 알아듣고
그날 하루 삼천 명이나 세례를 받았다는 것(사도 2,41), 그 두 가지입니다.
성령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야 할 점들이 있습니다.
성령이 내렸다, 또는 성령을 받았다, 또는 성령에 사로잡혔다, 등의 표현들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 자유의지를 잃게 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을 성령께서 알아서 다 해주신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성령 때문에 자유의지를 잃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성령께서 시키는 대로 복음 선포를 하고 설교를 하는 로봇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분명히 자유의지로 자기들의 믿음을 증언했고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성령은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만일에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으면 성령을 받더라도 못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박해를 받을 때
성령께서 일러 주시는 대로 말하면 되니까 무슨 말을 할까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마르 13,11).
증언은 제자들 자신들이 하는 것이고, 성령은 그 증언을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그 도움은 증언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바오로 사도는 '성령에 힘입다.' 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1코린 12,3).
이 표현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해도
사람들에게 힘을 주셔서 그 사람들을 통해서
성령의 일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만 그 힘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에 하느님을 거스르는 일을 한다면 성령의 힘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령을 받는다.', 또는 '성령의 은사를 받는다.' 라는 말은
무슨 초능력을 얻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누구나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을 받게 되고,
견진을 받을 때 성령의 은사를 충만하게 받지만,
세례를 받고 견진을 받는다고 해서 없었던 능력이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를 받고 견진을 받은 뒤에,
받은 사람답게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의 일을 함께 할 때,
그때 성령께서 그 일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성령을 받는 것은
비어 있던 수도 파이프에 높은 수압의 수돗물을 공급 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 수돗물이 쏟아지게 하려면 수도꼭지를 열어야 합니다.
수도 파이프에 물이 가득 들어 있어도
수도꼭지를 열지 않으면 그 물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수도꼭지를 여는 것은 각자 할 일입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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