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5월 18일 다해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성 요한 1세 교황 순교자)

dariaofs 2013. 5. 18. 06:00

 

                                                                            (성 요한 1세 교황 순교자)

                                                                                   (요한 21,20-25)

 

 

    <운명, 사명>

 

"그 제자를 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요한 21,21)."

베드로의 질문은 사도 요한의 운명이 어떻게 되겠느냐는 질문입니다.

 

앞의 18절-19절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순교를 예언하시는 내용이 있는데,

그 예언을 들은 베드로는

마침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요한에 대해서도 궁금해져서 질문을 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미래나 다른 사람의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심리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되면

오늘의 삶이 힘들어도 용기와 희망 속에서 살 수 있고,

안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되면

그 일이 닥치기 전에 잘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합격한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되면

마음 졸이지 않고 편안하게 시험공부를 할 수 있고,

합격하지 못한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되면

시간 낭비를 할 필요 없이 진로를 바꾸면 되고...

당선된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되면 신나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고,

당선되지 못한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되면 헛심 쓸 필요 없이 포기하면 되고...

과연 그럴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 인간에게는 더 좋은 일입니다.

합격과 불합격이 정해져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면,

아무도 공부하지 않게 될 것이고, 교육 제도 자체가 무의미해집니다.

당선과 낙선이 정해져 있고, 그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면,

선거 제도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정치라는 것도 엉망으로 망가질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이 미리 정해져 있고,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거나 멸망하게 될 사람도 미리 정해져 있다면,

종교와 신앙 자체가 아무런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러면 최선을 다해서 인생을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순교를 예언하신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예수님의 예언은 베드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순교를 예언하신 뒤에

"나를 따라라."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요한 21,19).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면 순교하게 되고 영광을 얻게 되는데,

순교하는 것이 싫으면 안 따르면 되고, 그러면 영광도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예언은 다 그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무엇 무엇을 하면 이렇게 저렇게 될 것이다.' 라는 구조입니다.

좋은 예가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하게 될 것이다.' 라는 예언들입니다.

그런 예언들은 '회개하면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예언이기도 합니다.

(가끔 '회개하지 않으면'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뜻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발생하는 일들이 있지 않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행운도 있고, 불의의 재난이나 사고나 사건도 있습니다.

그런 일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스포츠 중계자들이 자주 하는 '운도 실력이다.' 라는 말처럼

행운도 평소에 준비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행운으로 작용하는 법입니다.

 

불의의 재난이나 사고나 사건도 평소에 방심하지 않고 잘 대비한다면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정말로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도 하느님의 힘으로는 됩니다.

인간의 운명은 하느님의 뜻에 인간이 협력하면서 만들어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요한 21,22)."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라는 말씀은 '내가 바란다.' 라는 뜻이 아닙니다.

요한의 운명도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말씀에는 두 가지 뜻이 들어 있습니다.

1) 사람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2) 다른 사도의 사명을 상관하지 말고 너 자신의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하라.

 

예수님께서 각 제자에게 맡기신 사명들이 있기 때문에

제자들은 자기의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사명에 대해서는 서로 그것을 존중하고 배려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도단의 일치와 질서를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손과 발의 일이 다른 것처럼 각자의 사명이 따로 있으니

서로 협력하고 존중하고 배려해 주어야 한 몸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만일에 요한이 예수님께 베드로에 대해서 질문했다면,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도 같은 대답을 하셨을 것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