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 9,30-37)
<섬김, 권위>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마르 9,37)."
이 말씀에서 '받아들이다.' 라는 말은 '섬기다.' 라는 뜻입니다.
'어린이'는 바로 앞에서 말씀하신 '꼴찌, 종'을(마르 9,35) 가리키는데,
이 말은 '작고 보잘것없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뜻합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아버지 하느님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하느님을 섬긴다면 예수님을 섬겨야 하고,
예수님을 섬긴다면 보잘것없는 이들을 섬겨야 한다."이고,
하느님과 예수님과 보잘것없는 이들을
'모두 똑같이, 함께' 섬겨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
'어린이 - 보잘것없는 사람'을 받아들이라고 가르치신 것은
제자들이 '누가 가장 큰(높은) 사람이냐?'(마르 9,34) 하는 문제로
논쟁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작은 이들을 섬기는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가르침도 들어 있지만,
그 이상의 가르침이 더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서
어린이가 되라는 (스스로 가장 낮은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4)."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9,35)."
이 말씀들은 단순히 '겸손'을 실천하라는 가르침이 아니라,
'겸손'보다 더 어렵고, 더 위대한 '낮춤'과 '비움'을 실천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직무를 수행하면서도
그 직무에 따르는 권력과 권위를 완전히 내려놓으라는 가르침입니다.)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자기의 권한과 권력과 권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겸손하게 '작은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권한'은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권력'과 '권위'를 내려놓는 일은
부자가 가진 것을 모두 버리는 일만큼이나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일만큼이나)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수산나가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소년' 다니엘이 재판에 이의를 제기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원로들은 다니엘을 무시하지 않고
그에게 재판을 맡겼고, 수산나는 누명을 벗고 살아납니다(다니 13장).
만일에 그 원로들이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었다면,
소년 다니엘에게 재판을 다시 하라고 맡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이 어린 소년에게 원로(재판관) 지위를 준 것은
원로들이 자신들을 스스로 어린이 위치로 낮춘 것과 같습니다.
권력에만 의지하는 사람은 그 권력의 힘을 사용하는 일에 집착하게 되고,
권력의 힘과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의 직무 수행보다 권한 행사에 더 집착하게 됩니다.
(말로는 '봉사'를 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군림'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누가 자기를 비판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가 명령하면 모두 복종하기를 바랍니다.
또 자기의 판단과 생각만이 옳다는 오만과 독선에 빠지게 됩니다.
바로 그런 오만과 독선이 불통의 원인입니다.
스스로 자기를 낮추면 소통이 이루어지지만
권력으로 누르기만 하면 소통은 사라지고 불통만 남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귀를 쫓아내실 때에 권위를 사용하셨고(마르 1,27),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에도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는데(마르 1,22),
그 두 가지 권위는 같은 권위가 아니었습니다.
마귀들을 쫓아내신 권위는 그것들을 복종시키는 '힘'이었습니다.
(마귀는 힘으로 쫓아내버려야 할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가르치신 권위는 '사람들을 억누르는 힘'이 아니라,
'사람들을 섬기는 사랑과 헌신과 희생'이었습니다(마르 10,45).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서 있던 백인대장이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라고 고백한 것은(마르 15,39)
바로 그 사랑과 헌신과 희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죄수에게서 권력이나 권위나 힘을 보았겠습니까?)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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