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터베리의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마르 10,17-27)
<낙타가 될 것인가? 어린이가 될 것인가?>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십계명을 말씀하십니다(마르 10,17-19).
십계명만 잘 지켜도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인데,
그런데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요한 6,53)."
예수님께서는 왜 그 사람에게 처음부터 당신을 믿고 따르라고 하시지 않고,
십계명만 잘 지켜도 된다고 하셨을까?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분이기 때문에(마태 5,17)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곧
율법을(십계명을) '완전하게'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십계명을 '완전하게' 지키는 것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당시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안 믿었던 것은
십계명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요한 5,46-47).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가 어려서부터 십계명을 다 지켜 왔다고 대답합니다(마르 10,20).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스럽게 보셨다는 것은(마르 10,21)
그 사람의 말을 인정하셨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십계명을 다 지켜 왔다는 그의 대답은
적어도 거짓말은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십계명을 완전하게 지켰음을
예수님께서 인정하신 것은 아니고,
그 사람의 지향과 의도를 인정하셨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은 지향을 인정받긴 했지만 그의 실천은 아직 부족합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 10,21)."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한 것이 그 사람의 부족한 점입니다.
그 애착을 버려야 십계명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라는 말씀은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린 상태에서
이웃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 사람은 다른 유대인들처럼 불우이웃 돕기를 잘 했겠지만,
자기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한 채로 불우이웃을 돕는 것은
참된 이웃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가진 것을 모두 버리는 것과
가진 것에 대한 애착을 버리는 것은 구별해야 합니다.
사도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마르 10,28)' 예수님을 따랐고,
사도가 아닌 제자들과 신자들은 자기들의 재산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 모두가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를 따라라.' 라는 말씀은
사도들처럼 예수님을 따라다니라는 뜻일 수도 있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자가 되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그 사람은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갑니다(마르 10,22).
영원한 생명을 받고 싶은 소망을 포기할 수도 없고,
재물에 대한 애착도 버릴 수 없어서 슬퍼하게 된 것입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르 10,25)."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부자에게나 가난한 사람에게나 모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10,27)." 라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느님만 믿고 의지해야 한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과 바로 앞의 어린이에 관한 말씀을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마르 10,15)."
여기서 '어린이'는 '가난하고 힘없고 보잘것없는 처지여서
하느님만 믿고 의지하는 사람'을 뜻하는데, 이 말씀은
재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능력과 모든 소유에 관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의 수행이나 공덕이나 능력만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하느님께 도우심을 청해야 진정한 '어린이'가 될 수 있습니다.
바늘귀를 빠져나가지 못하는 낙타는
'자기의 재물만 믿고, 재물에만 의지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자기의 수행과 공덕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자만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지금 바늘귀 같은 하느님 나라의 문 앞에 서 있는 존재입니다.
낙타로 남아서 들어가기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들어가기 위해서 어린이가 되려고 노력할 것인가?
각자 결단할 일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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