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유스티노 순교자)
(마르 11,27-33)
<모르겠소.>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쫓아내신 뒤에
최고의회 의원들이(사제들, 율법학자들, 원로들이) 예수님께 따집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또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마르 11,28)"
'이런 일'은 일차적으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신 일을 가리키고,
넓은 뜻으로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가리킵니다.
최고의회 의원들의 질문의 뜻은
'당신은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예언자인가?
그렇다면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입니다.
그들이 이런 질문을 한 것은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가 아니고,
'예수는 거짓 예언자다.' 라고 주장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 질문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시는 것을 보면서도
예수님의 권한을 인정하지 못하고,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라고 비방하거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예수님께 요구했던 상황과(루카 11,14-16) 비슷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루카 11,29), 의원들에게는
세례자 요한의 세례에 관한 질문으로 답변을 대신하십니다.
"너희에게 한 가지 물을 터이니 대답해 보아라.
그러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대답해 보아라(마르 11,29-30)."
지금 예수님의 질문은 대답을 회피하기 위한 반문이 아니라,
'세례자 요한이 이미 나에 관해서 증언했다(요한 5,33).'
라는 뜻으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세례자 요한을 하느님의 예언자로 믿는다면 요한의 증언도 믿을 것이고,
요한의 증언을 믿는다면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을 것입니다.
그런데 최고의회 의원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말할 터이니,
`사람에게서 왔다.` 할까?'
그러나 군중이 모두 요한을 참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군중을 두려워하여,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마르 11,31-33)."
그들은 세례자 요한을 하느님의 예언자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왔다.' 라고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서 왔다.' 라고 대답하지도 못합니다.
군중이 요한을 '참예언자(하느님의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세례는 사람에게서 왔다.' 라고 대답했다가는
군중에게 돌을 맞을 수도 있었습니다.)
'모르겠소.' 라는 의원들의 대답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중간을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요한이 하느님의 예언자라는 것을
믿지 않고 있음을 자인한 것과 같습니다.
(의원들의 '모르겠다.' 라는 말은
안 믿는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대충 얼버무린 답변이지만,
정말로 모른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확실하게 믿는다고 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안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마르 11,33)."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은
'너희가 대답하지 못했으니 나도 대답할 필요가 없다.' 라는 뜻이기도 하고,
'너희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안 믿을 것이다.'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모르겠소.' 라는 말이 묵상의 좋은 주제가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뭘 알아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잘 모르지만, 그래도 믿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모른다. 그래서 못 믿겠다." 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완전하게 알게 되면 그때 믿겠다.' 라는 뜻이 될 텐데,
과연 믿음 없는 인간이 하느님을 완전하게 알게 되는 때가 올까?
신앙인들은 "나는 잘 모른다. 그래서 믿는다."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말장난이 아닙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모르면 모를수록 더욱더 믿음이 필요한 법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나를 따라라.' 라고 하시면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아서 따라간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잘 몰랐지만 '믿었기 때문에' 따라갔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잘 알게 된 때는 세월이 많이 흐른 뒤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처음에 응답하고 순종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모두 다 잘 알고 이해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잘 모르고,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었지만
마리아께서는 먼저 믿으셨고, 믿음으로 응답하셨고, 순종하셨습니다.
신앙인들이 걸어가는 길은 '잘 아는 길'이 아니라
'잘 모르지만 믿기 때문에 가는 길'입니다.
그 길은 이미 예수님께서 앞장서 가셨고,
사도들과 순교자들과 수많은 선배 신앙인들이 따라간 길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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